영화이야기/2018년 영화이야기

[레이디 버드] - 진정 소중한 것을 깨닫는 순간, 그녀는 어른이 된다.

쭈니-1 2018. 4. 6. 12:58



감독 : 그레타 거윅

주연 : 시얼샤 로넌, 로리 멧칼프, 트레이시 레츠

개봉 : 2018년 4월 4일

관람 : 2018년 4월 4일

등급 : 15세 관람가



2년 전 아쉬움을 올해는 모두 풀었다.


올해는 유독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영화를 보기 위해 굉장히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팬텀 스레드]는 놓쳤지만 제90회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중 마지막 국내 개봉작인 [레이디 버드]까지 챙겨봄으로써 일단 목표는 달성했습니다. 제가 이토록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영화를 보기 위해 안달복달했던 이유는 2년 전, 2016년의 아쉬움 때문입니다. 그 해 저는 작품상을 수상한 [스포트라이트]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챙겨보는 것만으로도 벅찼었습니다. 그렇게 대부분의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영화들은 나중에 다운로드로 미뤄졌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게된 영화들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극장에서 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만들었습니다. 브리 라슨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룸],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대니쉬 걸], 그리고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가 나란히 여우주연상과 조연상 후보에 오른 [캐롤]과 작품상 후보작이며 시얼샤 로넌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브루클린]까지... 이들 영화 모두 극장이 아닌 다운로드로 보고나서 "왜 이들 영화가 개봉했을 때, 나는 부지런하지 못했나?"라며 내 자신을 책망했습니다. 그때의 아쉬움이 올해의 부지런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7년전 한 남자에게 납치되어 작은 방에 갇혀 살다 엄마가된 조이(브리 라슨)가 다섯살 생일을 맞은 아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탈출을 감행한다는 위대한 엄마의 용기를 담은 [룸]을 떠올리며 [쓰리 빌보드]를 봤고, 1950년 뉴욕을 배경으로 백화점 점원 테레즈(루니 마라)와 귀부인 캐롤(케이트 블란쳇)의 동성애를 담은 [캐롤]의 짙은 여운에서 [콜비 바이 유어 네임]을 기대했습니다. 고향을 떠나 낯선 미국땅에서 자아를 실현하는 에일리스를 연기한 시얼샤 로넌의 매력이 돋보였던 [브루클린]을 기억하며 [레이디 버드]를 보기 위해 개봉 당일 집을 나섰습니다.


아! 나는 정말 시얼샤 로넌이 너무 좋다.

이제 고작 스물네살에 불과한 그녀는 벌써부터 다양한 연기폭을 보여준다.

[레이디 버드]에서의 그녀는 [브루클린]의 그녀와는 또 다르더라.



시얼샤 로넌... 그녀의 영화는 분명 챙겨볼 가치가 있다.


그렇습니다. 제가 [레이디 버드]를 기대작으로 선정한 이유는 순전히 시얼샤 로넌 때문입니다. 2008년에 개봉한 [어톤먼트]에서 첫사랑에 대한 질투에 눈이 멀어 언니인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와 그녀의 연인 로비(제임스 맥어보이)깊은 절망에 빠뜨린 브라오니를 연기하며 데뷔한 그녀는 2010년 개봉한 [러블리 본즈]에서는 살해당한 14살 소녀 수지를 연기하며 고통과 절망, 그리고 사랑과 용서의 다양한 모습을 관객에게 선보였습니다. 2011년에 개봉한 [한나]에서는 순수함을 간직한 치명적인 킬러를 연기했고, 2013년에 개봉한 [호스트]에서는 인간의 뇌에 들어가 기생하는 외계생명체 '소울'에 맞서 싸우는 강인한 정신력의 여전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그녀의 매력이 잘 드러난 영화는 [브루클린]입니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한 [브루클린]은 아일랜드의 조그만 점포에서 보잘것 없는 점원으로 일하는 에일리스(시얼샤 로넌)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에일리스가 고향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점원 뿐입니다. 그런데 그녀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언니 로즈의 도움으로 미국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지독한 향수병을 이겨내고 자아실현을 위해 한걸음씩 내딛던 그녀. 그런데 고향으로부터 언니의 죽음 소식이 전해지며, 에일리스는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책임을 떠안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결심합니다. 그 누구를 위한 삶이 아닌, 내 자신을 위한 삶을 선택하겠노라고... [브루클린]에서 시얼샤 로넌은 나약해보이는 육체 뒤에 숨겨진 강인한 영혼을 연기했고, 그녀의 마지막 선택에 저는 깊은 감명을 받으며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레이디 버드]는 [브루클린]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레이디 버드]의 크리스틴(시얼샤 로넌)은 대학 진학을 앞둔 열일곱 소녀입니다. 어머니 매리언(로리 멧칼프)은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학비가 싸고 집에서 가까운 주립 대학 진학을 권유하지만, 크리스틴은 답답하기만한 고향 새크라멘토를 떠나 대도시로 가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그런 면에서 [브루클린]의 에일리스와 [레이디 버드]의 크리스틴은 같은 고민을 가지고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두 캐릭터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것이 시얼샤 로넌의 매력입니다.


[브루클린]의 에일리스가 나약해보이지만 강한 정신력을 가진 캐릭터라면

[레이디 버드]의 크리스틴은 강한척하지만 아직은 덜 성숙한 나약함을 가지고 있다.

이 두 캐릭터는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대처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반항적인 사춘기 소녀 크리스틴


[레이디 버드]는 크리스틴의 성장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그녀는 부모가 지어준 크리스틴이라는 이름대신 자신이 지은 '레이디 버드'라 불리우길 희망하고, 답답한 새크라멘토를 떠나 활기찬 대도시 대학을 가기를 희망합니다. 그렇다고해서 그녀가 특별히 공부를 잘 하거나, 남들과는 다른 특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들은 물론 학교 선생까지도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라고 충고를 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실업자가된 아버지 래리(트레이시 레츠)의 상황과 어머니의 걱정을 잘 알지만 그녀는 크게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위해 앞으로 나아갑니다.

남을 위한 삶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선택하려는 십대 소녀의 자아실현이라는 면에서 [브루클린]의 에일리스와 [레이디 버드]의 크리스틴은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캐릭터는 완전히 다릅니다. [레이디 버드]의 크리스틴은 자신의 꿈을 위해 고향을 떠나려하는 것이 아닌, 그저 답답한 새크라멘토가 싫어서, 대도시에서 살고 싶어서 반항을 하는 것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반항은 조금은 코믹하고, 조금은 어이없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저 역시 사춘기땐 그렇게 어이없는 반항을 하기도 했습니다. 뭔가 특별히 되고 싶은 것도 없으면서 금전적 지원을 해주지 못하는 부모님의 경제력을 원망했고, 어머니가 하라는 것은 언제든지 반대로만 했습니다. 아마도 대학진학을 원했던 어머니의 소망을 물리치고 상업계 그등학교에 진학한 것 역시 그러한 반항심에서 기인된 것일 겁니다. 제가 상업계 고등학교를 가겠다고 선언한날 어머니는 학교 담임 선생님을 만나 "저희 아들이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지 못할 정도로 성적이 엉망인가요?"라며 눈물로써 호소했다고합니다. 하지만 저는 "나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돈을 많이 벌어서 엄마, 아빠처럼 살지 않을거야."라는 못된 말로 부모님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그러한 전력이 있기에 크리스틴의 반항이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땐 가족보다 친구들이 더 소중했다.

가족과 함께 있을땐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했지만

친구와 함께 있을땐 묘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모녀 관계란 원래 이런가?


크리스틴의 어이없는 반항의 반대편에는 항상 어머니 매리언이 있습니다. 영화 첫 장면에서 달리는 차안에서 말다툼을 하는 크리스틴과 매리언. 결국 크리스틴은 차 문을 열고 달리는 차 밖으로 몸을 날립니다. 이 어이없는 명장면은 크리스틴과 매리언의 관계를 잘 설명해줍니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계속해서 서로에게 막말을 합니다. 저는 딸에게 악담을 하는 매리언이 조금 심했다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두 사람의 관계가 돈독하다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달리는 차 밖으로 몸을 날리는 크리스틴의 장면 외에도 [레이디 버드]의 두번째 명장면은 옷가게에서 옷을 고르며 서로 티격태격하는 크리스틴과 매리언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말싸움을 하다가도 멋진 옷을 보면 함께 "우와! 예쁘다."라며 빙그레 웃는 모녀의 모습이 어떨땐 친구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매리언이 크리스틴을 대도시의 대학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도 단지 돈 문제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너무나도 빨리 자신의 둥지를 떠나겠다고 선언한 크리스틴에 대한 서운함이 컸을 것입니다. 크리스틴이 대학에 합격하고 대도시로 떠나던 날까지 크리스틴에게 굳게 입을 다물어 버렸던 그녀. 하지만 크리스틴에게 장문의 편지를 쓰고, 크리스틴이 떠난 공항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매리언의 모습을 보니 크리스틴의 성격이 매리언을 닮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빙그레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러고보니 저희 어머니와 제 누나의 관계가 딱 저렇습니다. 누나가 힘든 나날을 보낼 때마다 묵묵히 곁에서 도와주시던 어머니. 하지만 두 사람이 단 둘이 있을 땐 왜 그렇게 싸우는지... 며칠전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던 누나는 다시는 어머니와 병원에 안가겠다고 선언해 버리고(덕분에 제가 연차휴가를 내고 어머니와 병원에 다녀와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누나가 너무 지랄해서 힘들다고 하소연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병원비를 가장 많이 보탠 것은 결국 누나입니다. 원래 모녀 관계가 그런가요? (아들인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레이디 버드]의 가장 큰 재미는 크리스틴과 매리언의 모녀 관계를 지켜보는 것이다.

어쩜 이 모녀는 서로가 그렇게도 판박이처럼 똑같던지...

서로 악담을 퍼부는 모습에서 서로가 서로를 가장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크리스틴은 어른이 된다.


크리스틴은 대니(루카스 헤지스), 카일(티모시 샬라메)와 사랑을 하고 아픔도 겪습니다. 절친인 줄리(비니 펠드스타인)와의 우정에서 위기를 맞이하기도 하지만 결국 회복합니다. 그러한 실수들을 저지르면서 크리스틴은 점차 성장해가는 것입니다. [레이디 버드]는 [프란시스 하], [매기스 플랜], [재키]로 잘 알려진 배우출신 그레타 거윅의 감독 데뷔작입니다. 그녀는 [레이디 버드]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임을 밝혔는데, 그래서인지 영화는 꾸밈없이 진솔해 보였습니다.

특히 저는 [레이디 버드]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깊었습니다.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고향이었습니다. 대학 친구 중 한명이 고향이 어디냐고 묻자 새크라멘토가 아닌, 샌프란시스코라고 대답할 정도로... 하지만 어느순간 그녀는 자신이 고향의 풍경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크리스틴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되찾게 됩니다. 영화 초반 가족들에게 '레이디 버드'라고 불러달라며 화를 냈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크리스틴이라는 예쁜 이름을 줘서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그녀는 이유없는 반항을 일삼던 사춘기 소녀 '레이디 버드'에서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레이디 버드]를 보러 간 극장 안에는 십여명의 관객이 있었는데 저를 제외하고는 모두 여성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이 영화는 여성의 성장기를 담은 영화이기에 여성 관객의 공감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를 본 후 여성 관객들의 분위기를 가만히 살폈습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극장 밖을 나서는지, 아니면 실망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지... 남성 관객들은 재미없는 영화가 있으면 곧바로 얼굴에서 티가 나는데, 여성 관객들은 그렇지 않나봅니다. 표정으로만은 알수가 없으니... 저는 개인적으로 좋았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시얼샤 로넌의 연기도 좋았고, 영화 전체를 감싸는 경쾌한 분위기도 좋았고, 영화 마지막 깊은 깨달음을 얻은 크리스틴의 모습도 여운이 있었습니다. 역시 부지런은 이렇게 보상을 받게 되는 군요.


사춘기 성장담은 동서양, 남녀를 가리지 않고 비슷한가보다.

크리스틴의 성장담을 보며 묘하게 내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했다.

나 또한 사춘기땐 집에서 자취를 하는 것이 꿈이었으니...

그땐 가족과의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크리스틴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