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8년 영화이야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첫사랑의 감정이 아련하게 여운을 남긴다.

쭈니-1 2018. 3. 29. 16:04



감독 : 루카 구아다니노

주연 : 티모시 샬라메, 아미 해머

개봉 : 2018년 3월 22일

관람 : 2018년 3월 28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영원히 가슴에 남는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구피와 함께 보고 싶었던 저는 넌즈시 구피에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제목이 '너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라는 의미라는 것에서부터 엘리오(티모시 샬라메)라는 열일곱 소년의 첫사랑 이야기이고, 남성간의 동성애를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이지만 영화 자체가 굉장히 아름다워 큰 부담감이 없다는 것까지... 별 관심없다는 듯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대한 제 설명을 듣던 구피는 대뜸 "남자들은 첫사랑을 왜 그렇게 잊지못해?"라고 묻습니다. 예상 외의 질문이었기에 저는 "글쎄..."라며 대충 얼버무려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저혼자 보러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구피에 대한 설득은 얼버무린 제 대답과 함께 실패한 셈입니다.

사실 구피의 예상 외의 질문에 제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이유는 저 역시도 첫사랑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3학년때 학원에서 우연히 마주친 눈이 큰 소녀. 저는 그녀를 3년간 짝사랑하며 제 사춘기를 보냈습니다. 물론 제게도 그녀와 사귈 수 있는 기회는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회 앞에서 항상 망설였습니다. 사실 여자 형제들 틈에서 자랐기에 여자에 대한 수줍음도 딱히 없었고, 당시 여자 사람 친구만해도 여러명이어서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샀지만, 유독 그녀 앞에서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 말도 못하고 도망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첫사랑의 그녀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첫사랑이 이뤄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 아닙니다. 그녀에 대한 짝사랑이 제 사춘기 시절의 아름다웠던 기억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혼자 우두커니 앉아 시를 쓰고, 수업시간에 수업 필기 대신 소설을 쓰던 당시의 꿈 많았던 제 찬란한 추억의 일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첫사랑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첫사랑의 그녀를 잊지 못하는 것이 아닌, 너무 순수했던 첫사랑을 빠졌던 그때를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그러한 첫사랑의 추억을 완벽하게 담아낸 영화입니다.


열일곱살 소년 엘리오. 우리나라 나이로 따진다면 이제 고작 고등학교 1학년이다.

하지만 그는 가족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스물넷 청년 올리버와 사랑에 빠진다.

우리나라 정서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이지만,

그가 앓은 첫사랑의 감정 만큼은 나 역시도 깊이 공감했다.



적절하게 수위를 조절한 꽤 직접적인 동성애 장면.


1983년 이탈리아. 열일곱 소년 엘리오는 가족 별장에서 여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한 그의 지루한 일상은 스물넷 청년 올리버(아미 해머)가 오면서 바뀝니다. 고고학자인 아버지 콜먼(마이클 스털버그) 교수의 보조 연구원으로 6주간 엘리오의 가족 별장에서 지내게된 올리버. 핸섬한 미국인의 등장으로 엘리오의 주변 여성들도 술렁이는 가운데 엘리오는 자꾸만 올리버가 신경쓰입니다. 하지만 엘리오는 올리버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밝히지 못합니다. 그저 이성 친구인 마르치아(에스더 가렐)와의 섹스로 애써 외면하려할 뿐입니다.

만약 엘리오가 여성이었다면 올리버를 향한 마음을 그토록 감출 필요가 있었을까요? 올리버에게 적극적으로 유혹의 손길을 보내는 키아라를 보며 엘리오는 질투심과 부러운 감정을 함께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아무리 감추려해도 감춰지지않습니다. 더이상 감출 수 없을만큼 올리버를 향한 사랑이 깊어지자 결국 엘리오는 자신의 마음을 올리버에게 털어넣습니다. 그러자 올리버 역시 엘리오를 향한 마음이 다르지 않음을 털어놓습니다. 올리버는 이미 엘리오에게 자신의 마음을 신호로 보냈지만, 엘리오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6주간의 짧지만 강렬한 사랑을 시작합니다.

솔직히 저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동성애 장면은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직은 직접적인 동성애 장면이 익숙하지 않은 우리나라 관객들이 이 영화에 후한 평점을 줬음을 감안한다면, 직접적인 동성애 장면보다는 올리버를 향한 엘리오의 애타는 마음으로 영화가 진행될 것이라 예상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 예상과는 달리 영화는 중후반부에 꽤 직접적으로 엘리오와 올리버의 동성애 장면을 포착해냅니다. 동성간의 키스는 물론 펠라치오까지 그려냅니다. 그러한 장면이 나올때마다 극장안 몇 안되는 관객의 작은 술렁거림이 느껴졌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불편하다고 느낄 정도의 수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엘리오와 올리버의 묘한 감정 줄다리기는 엘리오의 피아노 연주 장면에서 드러난다.

원곡 그대로의 연주를 듣고 싶어하는 올리버에게 자꾸만 편곡한 연주를 들려주는 엘리오.

하지만 엘리오는 결국 올리버가 듣고 싶어한 원곡 그대로를 연주해준다.

원래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질 수 밖에 없는 법이다.


사춘기 소년의 풋내나는 사랑 이야기


분명 동성애가 불편하신 관객이라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역시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동성애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가진 관객이라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사춘기 소년의 풋내나는 사랑 이야기가 됩니다. 올리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애써 감추기 위해 마르치아와 서툰 섹스를 나누고, 올리버에게 괜한 심통을 부리기도합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엘리오는 영락없는 열일곱 사춘기 소년입니다. 그의 첫사랑 대상이 동성이긴 하지만, 원래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은 스스로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니만큼 이성이 아닌 동성을 향한 엘리오의 사랑은 그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는 그저 자신의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했을 뿐입니다. 여느 사춘기 소년, 소녀들이 그러하듯이...

영화에서 가장 화제가 될 만한 복숭아 자위행위 장면도 그가 사춘기 소년이기에 가능한 장면입니다. 만약 성인이 그런 짓을 했다면 화장실 코미디쯤으로 여겨졌을테지만, 한참 성적 호기심이 가득한 열일곱 소년이기에 그 장면 또한 풋풋하게 느껴질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복숭아 자위행위 장면에서 나혼자 키득거리며 웃음을 참으려 애썼는데,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고등학생 시절 반 친구중 한명이 두부로 자위행위를 하다가 부모에게 들킨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올리버에게 자신의 행위를 들킨 엘리오의 심정은 아마도 두부로 자위행위를 하다가 부모에게 들킨 그 녀석의 심정과 같았을 것입니다.

올리버를 향한 엘리오의 감정을 눈치챈 엘리오 부모의 배려로 올리버가 미국으로 떠나기전 단 둘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된 엘리오의 모습은 마치 소풍을 간 초등학생 같았습니다. 올리버와 함께 웃고 떠들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 엘리오. 그렇기에 그가 미국으로 떠나기 위한 기차에 오르자 어머니에게 전화해 데려와 달라고 울먹입니다. 사춘기 소년의 풋내기 첫사랑은 그렇게 기쁨과 슬픔을 안기며 6주간의 짧지만 긴 시간을 마무리한 것입니다.


Call me by your name (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
and I'll call you by mine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

올리버가 처음 그러한 이야기를 했을땐

이 말이 그토록 가슴 떨리면서 슬픈 말인줄 이해하지 못했다.



엘리오의 첫사랑이 아름다울 수 있었던 이유


동성애 영화라면 으레 주변의 반대가 어김없이 등장하곤 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도 엘리와 올리버의 관계를 알게된 엘리오의 아버지, 어머니의 반대가 뒤따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오와 올리버의 사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저는 아슬아슬하게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제 선입견에 불과했습니다. 별장을 방문한  동성애 커플(원작자인 안드레 애치먼이 깜짝 출연한)에 아무런 선입견없이 대하는 콜먼과 올리버를 향한 엘리오의 시선을 보며 미소짓던 엘리오의 어머니는 어쩌면 처음부터 그들의 관계를 눈치채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올리버가 미국으로 떠나기전 둘 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이겠죠.

특히 올리버가 떠나고 마음에 상처를 입은 엘리오에게 콜먼이 해준 충고는 너무나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지금 당장은 슬프고 고통스럽겠지만 그것들을 무시하지 말고 네가 느꼈던 기쁨과 슬픔을 그대로 간직하라는 콜먼은 아프고 슬플때마다 그것을 빨리 잊기 위해 마음을 떼어내면 나중에 새로운 인연을 만났을때 더이상 내어줄 마음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나중에 자신의 약혼 사실을 알리기 위해 엘리오와 전화통화한 올리버는 엘리오에게 정말 훌륭한 부모를 두었다며 부러워합니다. 만약 자신의 부모였다면 자신을 정신병원에 가뒀을 것이라 말합니다. 만약 엘리오의 부모가 아들의 동성애를 창피해하고, 감추려 했다면 올리버를 향한 엘리오의 첫사랑은 아름다운 추억이 아닌 끔찍한 악몽으로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해서는 안될 행동을 한 후 평생 그 상처 속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처럼 엘리오 역시 올리버를 향한 사랑은 상처로 남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오의 부모는 아들의 사랑을 인정해줬고, 감싸줬습니다. 올리버를 향한 엘리오의 첫사랑이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사려깊은 엘리오의 부모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올리버의 약혼 소식을 들은 엘리오가 벽난로에 쭈그리고 앉아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영화의 마지막 롱테이크 장면은

왜 아카데미가 이 어린 배우를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려 놓았는지 이해하게 만든다.

동성애라는 선입견만 버린다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최고의 첫사랑 영화가 될만하다.



영화가 끝나고 남는 여운은 엘리오의 첫사랑의 감정에 대한 공감일 것이다.


올리버의 약혼 소식을 들은 엘리오가 벽난로에 쭈그리고 앉아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장면으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끝을 맺습니다. 6주간의 짧은 만남, 하지만 영원히 간직할 첫사랑의 감정을 안기고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되어 떠난 올리버. 당장 엘리오의 마음은 찢어질 것처럼 아플테지만, 그것 역시 그는 이겨낼 것입니다. 그에겐 사려깊은 부모가 있고, 올리버와의 사랑을 위해 자신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손을 내밀어준 마르치아가 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저는 엘리오와 올리버의 사랑이 처음엔 조금 부담스러웠습니다. 특히 엘리오에게 펠라치오를 하며 자신을 향한 그의 사랑을 확인하는 올리버의 모습과 엘리오가 자위행위를 한 복숭아를 먹으려한 올리버의 행동에서 잠시 동성애에 대한 못된 선입견이 되살아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저 순수하게 올리버를 사랑한 엘리오의 마음 만큼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여운이 깊게 남았습니다. 어렸기에 순수하고, 순수하게에 서툴렀던 엘리오의 감정은 누가 뭐래도 그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어 영원히 그의 가슴 속에 기억될 것입니다. 우리가 첫사랑을 영원히 잊지 못하는 것처럼...

원작에서는 엘리오가 결혼한 올리버의 집을 찾는 장면이 있다고합니다. 여전히 올리버가 자신을 그의 이름으로 불러주길 바란 엘리오. 하지만 이미 안정적인 가정을 이룬 올리버는 엘리오를 자신의 이름으로 불러주지 못한다고합니다. 원작의 이러한 내용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현재 기획중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5~6년 후인 199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할 속편에 담겨질 예정입니다. 솔직히 첫사랑은 그냥 첫사랑으로 남겨둬야 더 아름다운 법이라고 생각하는 제게 이 영화의 속편이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올리버와 엘리오가 이탈리아에서의 뜨거운 여름의 사랑 이후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긴합니다. 똑같이 남성간의 동성애를 소재로한 2017년 제89회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문라이트]에서는 영화의 여운이 길지 않았는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여운은 아무래도 길 것 같습니다. 역시 첫사랑이라는 아련한 감정 때문일 것입니다.


동성애에 대한 약간의 불편한 장면도 있다.

우리나라 정서로는 이해안되는 장면도 있다.

하지만 첫사랑의 감정만큼은 아련하고 긴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