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8년 영화이야기

[레디 플레이어 원] - 현실은 차갑고 무서운 곳이지만,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쭈니-1 2018. 4. 2. 18:41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주연 : 타이 쉐리던, 올리비아 쿡, 마크 라이런스, 사이먼 페그, 벤 멘델슨

개봉 : 2018년 3월 28일

관람 : 2018년 4월 1일

등급 : 12세 관람가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려 했지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신작 [레디 플레이어 원]의 개봉을 기다리면서 저는 [레디 플레이어 원]을 웅이와 함께 재미있게 보기 위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기도 결심했습니다. 우선 [레디 플레이어 원]에 등장하는 수 많은 영화, 게임 속 캐릭터들을 숙지하고 그 중에서 [레디 플레이어 원]에 가장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인 [아이언 자이언트]를 영화 보기 전인 토요일 저녁에 웅이와 함께 봤습니다. 사실 [아이언 자이언트]보다 중요한 것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전설적 공포영화 [샤이닝]이지만, 겁이 많은 저와 웅이가 [샤이닝]을 본다는 것은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의 범주를 넘어서는 일이기에 포기했습니다.

영화를 예매할 때도 오랜만에 3D로 예매하려 했습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이 가상현실을 소재로한 영화이기에 3D로 보면 더욱 현실감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레디 플레이어 원]이 같은 날 개봉한 공포영화 [곤지암]에게 흥행에서 밀리며 예상 밖으로 3D 개봉관이 많지 않았습니다. 3D로 보기 위해 집에서 먼 멀티플렉스로 예매하려 했지만, 웅이가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해야해요?"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아쉽지만 오랜만의 3D 관람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이렇듯 제게 있어서 [레디 플레이어 원]은 3월 최고의 기대작이었습니다. 비록 웅이의 모든 초점은 개봉이 4주 남은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에 이미 꽂혀 있지만, 저는 4주라는 먼 미래의 기대작보다는 지금 당장 볼 수 있는 현실의 기대작에 모든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더군요.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기 전 필수 관람영화인 [샤이닝]은 겁이 많아 못보고, 3D관람은 극장이 멀어서 포기했으니... 결국 [아이언 자이언트]를 보는 것과,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며 팝콘 콤보세트를 먹는 것으로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 위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마무리지었습니다.


재미있는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보기 위해선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깟 영화한편보는데 뭔 노력까지 하냐고 묻지 마라.

영화를 보기 위해 투자된 내 돈과 시간, 그리고 재미있는 영화를 본 후의 쾌감을 생각한다면

재미있게 보기 위한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은 것이리라.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


아주 오래전, 사람들은 답답한 현실에서 잠시 탈출하고 싶을때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책 속에 그려진 온갖 모험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읽으며 현실의 답답함은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영화가 등장했습니다. 책을 읽을땐 머릿속에 책 속의 새로운 세상을 상상해야 했지만, 영화는 새로운 세상을 사람들의 눈 앞에 펼쳐 놓았습니다. 이렇게 책보다 훨씬 막강한 시각적이 효과에 매료된 사람들은 영화에 열광하였고, 수 많은 세월동안 영화는 답답한 현실에 지친 소시민들의 새로운 탈출구가 되어줬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끝이 아닙니다. 영화는 2차원적인 영상에서 3D로, 4D로 점차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이러한 영화의 발전은 사람들이 그저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상을 감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세상에 자신이 직접 발을 딛고 서있기를 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책, 영화로 이어지는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탈출구는 가상현실이 될 것입니다. 가상현실은 영화처럼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면서도 자신이 그 새로운 세상에 속해 있다는 현실감을 느끼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그러한 가상현실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으로 가득찬 세상을 관객에게 보여줍니다.

2045년. 거의 대부분 미래를 소재로한 영화들이 그러하듯이 [레디 플레이어 원]의 세상도 암울하기만 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희망이 없는 빈민촌의 사람들은 가상현실 오아시스에 더욱 집착합니다. 오아시스는 누구든 원하는 캐릭터로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곳입니다. 물론 현실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오아시스에 머물고 싶어합니다. 웨이드 와츠(타이 쉐리던)도 그러한 빈민촌 사람들 중 한명입니다.


현실에선 아무런 희망도 없는 빈민촌 소년 웨이드 와츠이지만

오아시스에서는 영웅 파시발이다.

만약 내가 웨이드 와츠라면 나 역시도 오아시스의 매력에 푹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매력적이어도 가상현실은 결코 현실이 될 수 없는 법이다.



오아시스의 창시자가 남겨놓은 이스터에그를 찾아라.


시간이 날 때마다 오아시스에 접속하여 시간을 보내는 것이 웨이드의 유일한 일과입니다. 그런 그에게 남아있는 희망은 오아시스의 창시자인 제임스 할리데이(마크 라이런스)가 숨겨놓은 이스터에그를 찾는 것입니다. 제임스 할리데이는 죽기전 유언을 남겼는데 오아시스 속에 숨겨둔 3개의 미션을 성공하여 이스터에그를 찾으면 오아시스의 소유권과 막대한 유산을 상속하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터에그를 찾는 사람은 웨이드 뿐만이 아닙니다. 특히 거대기업 IOI의 회장 놀란 소렌토(벤 멘델슨)는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오아시스를 찾기 위한 온갖 추잡한 짓을 서슴치 않습니다. 

이쯤되면 [레디 플레이어 원]이 갖춰야할 요소는 모두 완성됩니다. 웨이드의 임무는 놀란 소렌토의 방해를 물리치고 이스터에그를 찾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료가 필요합니다. 일단 오아시스에서 웨이드의 오랜 친구인 H(리나 웨이스)와 다이토(모리사키 윈), 쇼가 웨이드를 돕습니다. 하지만 부족합니다. 그때 등장하는 것이 IOI의 노동 착취로 과로사한 아버지의 복수를 원하는 여전사 아르테미스(올리비아 쿡)가 합류합니다. 웨이드가 다짜고짜 아르테미스에게 첫눈에 반함으로써 [레디 플레이어 원]은 손 쉽게 아르테미스를 웨이드의 동료로 합류시킬 수 있었습니다.

웨이드가 놀란 소렌토와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동기도 필요합니다. 단지 오아시스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라면 약합니다. 실제 웨이드는 첫번째 미션을 1등을 완수하며 오아시스의 스타가 되지만, 다음 미션에서 우승하는 것보다는 아르테미스 꼬시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한 그의 부주의는 부모대신 자신을 키워준 이모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이모의 죽음은 놀란 소렌토에 대한 분노가 되어 웨이드를 전사로 만듭니다. 이렇듯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꽤 촘촘하게 웨이드의 캐릭터를 완성한 후 영화의 클라이막스로 내달리게끔 만듭니다.


영화에서 아르테미스의 캐릭터가 가장 흥미로웠다.

아르테미스는 IOI에 대한 원한을 가지고 있었고,

그 원한을 웨이드와 공유함으로써 웨이드가 위협을 무릅쓴 전사가 되도록 만들고

동료없이 혼자 활동하겠다는 웨이드를 팀 플레이어로 이끈다.



영화 속의 다양한 문화 컨텐츠의 매력


어찌보면 [레디 플레어 원]은 가상현실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왔을을 뿐, 기존의 영화들과 별다른 차별점이 없는 영화일 수도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빈민촌 소년이 영웅이 되고, 거대 기업 총수가 악당이 되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되풀이 되었고,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게 구축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남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화 속에서 펼쳐진 익숙한 문화 컨텐츠의 매력입니다. 영화를 보며 내가 좋아하는 영화, 게임 캐릭터가 등장할 때의 쾌감은 다른 영화에서는 찾을 수 없는 [레디 플레이어 원]만의 매력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샤이닝]을 재미있게 보신 분이라면 웨이드와 동료들이 두번째 미션 완수를 위해 [샤이닝]의 세계에서 공포스러운 체험을 하는 장면을 보며 환호했을지도 모릅니다. 안타깝게도 저는 [샤이닝]을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놀라울 만큼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첫번째 미션에서 등장하는 [빽 투 더 퓨쳐]의 드로리안과 [아키라]의 오토바이, '킹콩'과 '티 렉스' 등은 저를 즐겁게 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에서 오아시스의 온갖 캐릭터들과 IOI의 대결전 장면은 다양한 문화 컨텐츠의 보물 창고같았는데, 빠르게 지나가는 화면 속에서 내가 아는 캐릭터를 찾는 재미가 솔솔했습니다. 특히 '건담'과 '아이언 자이언트', '처키'가 맹활약하는 장면이 백미였는데 [아이언 자이언트]를 먼저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는 만큼 재미있어진다는 것은 정확하게 [레디 플레이어 원]을 두고 하는 말인것 같습니다. 오아시스에서 웨이드의 닉네임인 파시발은 '아더왕의 전설'에서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 때 썼다는 거룩한 잔을 찾는 중대한 임무를 지닌 기사 중 하나입니다. 웨이드가 아르미테스와 두번째 미션을 풀기위해 무도회장에 갈 때 입은 버카루 반자이 의상은 1984년 SF영화인 [카우보이 반자이의 모험]의 주인공인 버카루 반자이가 영화에서 입고 나온 의상이라고합니다. 그리고 존 휴즈 감독의 [조찬클럽]도 웨이드와 놀란 소렌토의 대화에서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이들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 장면이 더욱 뜻깊었을 듯합니다.


'아이언 자이언트'가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웨이드를 전투장소에 갈 수 있게 하는 장면은

전날 본 [아이언 자이언트]가 생각나 미소짓게 만들었다.

특히 용암 속에서 엄지손가락을 척 하고 올리는 장면은

[아이언 자이언트]와 [터미네이터 2]의 콜라보레이션으로 기발함이 돋보였다.



제임스 할리데이가 이스터에그에 숨겨 놓은 메시지


[레디 플레이어 원]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답게 관객을 위한 교훈을 영화의 마지막에 심어 놓습니다. 그것은 제임스 할리데이가 이스터에그에 숨겨 놓은 진정한 메시지입니다. 사람들은 오아시스라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 가상현실에 집착하지만, 오히려 제임스 할리데이는 가상현실에만 집착하는 현실을 경계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햇듯이 가상현실이라는 것은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가상현실이 완벽하고 매력적이라할지라도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되었던 우리는 현실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야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가상현실이 잠시의 도피가 될 수는 있지만 현실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는 이유입니다.

사람과 어울리지 못했던 외톨이. 사랑했던 여성에겐 용기가 없어서 더이상 다가가지 못했고 결국 유일한 친구인 오르젠 모로우(사이먼 페그)에게 빼앗깁니다. 오아시스라는 완벽한 가상현실을 만들어냈지만 제임스 할리데이의 현실은 이렇게 외롭고, 처참했습니다. 어쩌면 그가 자신이 숨겨놓은 이스터에그를 찾은 웨이드에게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자신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충고였는지도 모릅니다.

2045년.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웅이가 40대가 될 때쯤엔 어쩌면 [레디 플레이어 원]의 현실처럼 사람들이 가상현실 속에서만 즐거움을 찾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가 되면 과연 웅이는, 그리고 웅이의 아들, 딸들은 제임스 할리데이의 진심에서 우러난 충고를 기억할 수 있을까요?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고 집에서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드는 웅이를 보며 약간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하지만 웅이도 웨이드처럼 똑똑한 소년이기에 가상현실의 유혹을 떨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나저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벌써부터 걱정하는 저도 참...


영화를 통해 답답한 현실을 탈출할 수 있지만,

영화는 시간적 제한이 있어서 필연적으로 현실에 다시 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가상현실은 시간적 제한이 없다.

그렇기에 자칫 잘못하면 답답한 현실의 탈출구가 아닌 영원한 무덤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난 가상현실이 난무할 미래가 약간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