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8년 영화이야기

[7년의 밤] - 2시간동안 강하게 몰아치기만하니 지치더라.

쭈니-1 2018. 4. 5. 15:51



감독 : 추창민

주연 : 류승룡, 장동건, 송새벽, 고경표

개봉 : 2018년 3월 28일

관람 : 2018년 4월 3일

등급 : 15세 관람가



두가지 기대요소


제가 [7년의 밤]을 기대한 것은 크게 두가지 요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번째는 장동건의 연기 변신입니다. 장동건은 1992년 TV 청소년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으로 데뷔한 후, 오랜 세월동안 대한민국 대표 미남배우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배우입니다. 하지만 그로인하여 맡을 수 있는 배역에 한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끊임없이 연기 변신을 시도했습니다. 그 중 가장 성공적으로 평가받은 영화가 [친구]입니다. 장동건은 [친구]에서 오랜 '친구'를 배신한 폭력조직의 행동대장 동수를  연기하여 지금도 자주 회자되고 있는 "내가 니 시다바리가?", "니가 가라, 하와이.", "고마해라. 마이 무그따 아이가." 등 숱한 명대사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벌써 17년전 영화입니다. 장동건 입장에서는 [친구]처럼 임팩트가 큰 연기변신이 절실한 상황에서 [7년의 밤]을 만난 것입니다.

두번째는 추창민표 스릴러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추창민 감독은 2005년 코미디 영화 [마파도]로 데뷔한 후, 2011년 노년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흥행시켰고,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로 천만 감독에 등극했습니다. 지금까지 그의 영화는 가슴 따뜻한 인간미가 물씬 풍겨났습니다. 특히 역사에서 폭군으로 기록된 광해군의 감춰진 15일간의 행적을 상상을 통해 담아낸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그의 특기가 잘 발휘되었는데, 광해군 대신 왕 노릇을 해야했던 광대 하선(이병헌)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완벽하게 담아냈습니다. 과연 이렇게 가슴 따뜻한 영화에 강점이 있는 추창민 감독이 그려낸 스릴러는 어떤 모습일까요? 스릴러에서조차 추창민 감독의 특기가 잘 발휘될까요?

하루 연차휴가를 내고 다리가 불편하신 어머니와 병원에 다녀온 후 [7년의 밤]을 보기 위해 폭풍의 질주를 해야만 했던 저는 이 두가지 기대요소를 가슴에 안고 극장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장동건의 연기 변신에는 만족했고, 추창민표 스릴러에 대해서는 만족하지 못한채 영화관람을 마쳤습니다.


[친구]에서조차 잘생김을 유지했던 장동건이

[7년의 밤]에서는 잘생김을 내려 놓았다.

그렇기에 장동건의 연기 변신은 [친구]보다 [7년의 밤]이 더욱 강렬했다.



장동건도 이렇게 섬뜩해질 수 있구나.


[7년의 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역시 장동건의 연기변신입니다. 장동건은 [7년의 밤]을 통해 굉장히 독하게 마음을 먹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의 악역 연기는 물론이고, 잘생긴 외모마저 섬뜩하게 바뀌어 버림으로써 저 사람이 정말 내가 알고 있는 장동건이 맞나 싶었습니다. 장동건의 연기변신 덕분피해자와 가해자 사이를 오가는 오영제(정동건)의 캐릭터가 돋보일 수 있었습니다.  

분명 영제는 피해자입니다. 그의 딸 세령(이레)은 최현수(류승룡)의 차에 치였고, 호수에서 시체가 되어 발견됩니다. 이에 영제는 복수를 다짐합니다. 아마도 제가 그였더라도 그랬을 것입니다. 특히 세령의 직접적인 사인이 교통사고 때문이 아닌, 질식사임이 밝혀졌을때 영제의 분노는 극에 치닫습니다. 만약 현수가 세령을 곧바로 병원에 데려갔더라면 어쩌면 세령은 죽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영제는 가해자입니다. 그는 아내와 딸을 학대했습니다. 세령이 죽던 그날도 세령은 아빠의 폭력을 피해 달아나다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만약 영제가 세령을 학대하지 않았다면 세령이 그렇게 차를 향해 뛰어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안승환(송새벽)은 세령의 죽음 이후 영제를 비난합니다. 예전, 숲에서 울고 있는 세령을 도와준 승환은 영제에게 아동추행으로 고발당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룬 경험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세령이 승환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승환은 세령을 피했고, 결국 사고로 죽게된 것이죠. 그렇기에 승환은 영제에게 세령을 죽인 것은 영제라고 비난합니다. 어쩌면 영제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죄책감을 잊기위해 더욱더 현수를 향한 복수에 집착합니다. 자신의 책임을 모두 현수에게 뒤집어 씌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피해자와 가해자를 오가는 영제의 캐릭터는 장동건에 의해 완벽해집니다. 영제가 세령을 학대하고, 도망가는 세령의 뒤를 쫓는 장면에서 저는 장동건의 섬뜩함에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영제는 아내를 사랑했고, 딸 세령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의 사랑을 비뚤어졌고, 가정폭력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드러냈다.

그렇기에 현수를 향한 복수는 가정폭력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강약조절 없이 시종일관 강으로만 밀어부친다.


이렇게 장동건의 연기변신이 굉장히 만족스러웠던 반면 추창민표 스릴러는 굉장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사실 영화적 짜임새가 헐거웠던 것은 아닙니다. 영화의 초반부터 세령을 향한 영제의 폭력과 현수의 우발적 사고를 보여주고, 이후에는 차근차근 현수가 범인으로 밝혀지는 과정과 영제의 복수를 잡아냅니다. 상이군인이었던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던 현수의 과거가 영화 중간 중간에 표현되며 그가 세령을 죽인 이유를 설명하고, 사형집행을 앞둔 현수와 살인마의 자식이라 손가락질 당해야만 했던 최서원(고경표)의 사건 이후 성장 과정, 그리고 마을 무녀(이상희)의 예언을 통해 앞으로 일어나게될 비극까지 추창민 감독은 꼼꼼하게 영화 속에 채워넣습니다.

문제는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강하기만 했다는 점입니다. 영화 자체가 너무 강하다보니 영화의 시작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긴장을 해야했고, 2시간동안의 긴장은 저를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뭔가 영화 중간중간에 관객의 숨통을 틔어줄만한 장면을 기대했지만, [7년의 밤]은 500페이지가 넘는 정유정 작가의 장편 소설을 2시간 안에 담아내기 위해 쉴틈없이 강하게 밀어부치기만합니다. 사정이 그러하니 영화가 끝날 때쯤에는 영화의 여운을 느낄 마음의 여유조차 남지 않았고, 결국 기진맥진한채 극장 밖을 서둘러 나서야만 했습니다. 어서 빨리 악몽으로 가득한 세령마을을 벗어나고 싶었거든요.

앞서 추창민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인간미가 물씬 풍겨나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라고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7년의 밤]을 보니 추창민 감독 스스로가 자신의 연출 스타일을 180도로 바꾸기 위해 무진 노력을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영제와 현수 그 누구에게도 인간미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현수의 과거를 통해 그의 범행에 대한 변명을 하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어린 소녀를 죽여 호수에 유기한 그는 용서받지 못할 살인마에 불과했습니다. 마지막 세령마을 참사도 서원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그런다고해서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결국 [7년의 밤]은 인간미가 없는 캐릭터들이 2시간동안 악다구니를 치는 영화에 불과했습니다.


[7년의 밤]은 최현수에 대한 변명을 통해 그에게 인간미를 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그의 범죄가 너무나도 참혹했기에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결국 그 누구에게도 감정이입을 하지 못한채 세령마을의 지옥을 참아내야만 했다.



원작소설을 읽지는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베스트샐러를 원작으로한 영화를 보고나면 원작소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독서를 다시 시작한 요즘은 영화와 원작소설을 비교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더욱 강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7년의 밤]을 보고나서는 그러한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영화 자체가 워낙 감정소모가 큰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었고, 누구에게도 마음 붙일 캐릭터가 딱히 없었기에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원작소설에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도 영화와 원작소설의 차이는 궁금해서 원작소설의 내용을 검색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역시나 원작소설과 영화의 차이가 꽤 크더군요.

일단 영제의 캐릭터 설명이 상당부분 삭제되었다고합니다. 그건 저 역시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영화에서는 현수를 위한 변명을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지만, 그와는 반대편에 서있는 영제는 그저 돈 많은 폭력 가장에 불과했습니다. 그가 어떤 과거를 가졌기에 그렇게 폭력적이 되었는지 설명할 법도 한데 추창민 감독은 그러한 설명을 통째로 들어낸 것입니다. 그런데 원작소설에서는 영제의 캐릭터를 현수 못지 않게 정성껏 만들어냈다고합니다. 영제의 아내인 문하영과 서원을 지켜준 승환도 원작소설에서는 꽤 중요하게 다뤄진다고합니다. 영화에서는 하영은 등장조차 않하고, 승환은 조금은 붕뜬 느낌이었습니다.

원작소설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마지막 결말 부분이라고합니다. '7년의 밤'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원작소설은 현수가 세령을 죽인 7년 전의 사건과, 7년 후 서원을 죽임으로써 현수에게 복수하려는 영제의 복수극으로 진행됩니다. 그리고 현수는 서원을 살리기 위해 하영, 승환의 도움으로 영제에게 반격을 가하고 결국 그가 7년 전에 저지른 범행을 자백하게 만든다고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7년의 밤'이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7년 후 영제의 복수와 현수의 반격을 아주 짧게, 그것도 원작소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려냅니다.


만약 원작소설의 방식으로 영화를 이끌어나갔다면 어땠을까?

확실히 결말에 이르러서 쾌감은 더욱 컸을 것이다.

영화는 원작의 쾌감보다 여운을 선택했는데, 그 여운을 느낄 새가 없어서 아쉬웠다.



이제는 조금 따뜻한 영화로 힐링해야지.


[7년의 밤]이 끝나고 극장 밖으로 나온 제 첫 느낌은 '지친다'였습니다. 추창민 감독의 스릴러 영화이기에 잔혹한 살인사건 속에서도 영화 속 캐릭터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펼쳐질줄 알았는데, 시종일관 강하게만 몰아부치니 영화가 끝나고 저는 감정적으로 지쳐버린 것입니다. 저는  영화가 끝나고 천천히 여운을 음미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7년의 밤]을 보고나서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고, 휴식을 통해 지친 마음을 채워넣었습니다. 그러고나니 다음 영화는 조금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를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이번주에는 코미디 영화 [바람 바람 바람]을 볼 예정이라 웃음으로 어느정도 힐링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말 박스오피스 성적을 보니 [7년의 밤]은 천만 감독 추창민 감독의 영화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흥행 부진에 빠져 있습니다. 개봉 첫주에 [곤지암], [레디 플레이어 원]에 밀린 것은 물론,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게까지 밀려 4위에 그쳤고, 이후 반등의 여지마저 보이지 않으니 말입니다. [7년의 밤]을 본 분들 중 원작소설에 비해 아쉬웠다는 평이 많았고, 저처럼 완급을 줬으면 좋았겠다라는 글을 남기신 분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마파도], [그대를 사랑합니다], [광해, 왕의 남자]로 승승장구하던 추창민 감독에게 [7년의 밤]은 쓰디쓴 흥행실패작으로 기억될듯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잔인한 소재의 영화일수록 완급조절이 중요함을 [7년의 밤]을 보며 느꼈습니다. 그래도 장동건의 연기변신이라는 수확은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만한 영화였습니다.


영화 이야기를 쓰는 동안 영화를 보며 지쳤던 마음이 되살아났다.

시종일관 하드하게 몰아치기만 하던 [7년의 밤]의 분위기는

영화를 본지 이틀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을 지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