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8년 아쩗평

[세 번째 살인] -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진심이 아닐까?

쭈니-1 2018. 3. 30. 11:29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주연 : 후쿠야마 마사하루, 야쿠쇼 코지, 히로세 스즈

개봉 : 2017년 12월 14일

관람 : 2018년 3월 29일

등급 : 15세 관람가



가장 충격적이었던 일본영화는 [아무도 모른다]이다.


2005년 시사회 초대로 본 [아무도 모른다]는 제게 있어서 정말 충격적인 영화였습니다. [아무도 모른다]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한 영화로 집을 나가버린 엄마를 대신하여 세 명의 동생을 돌봐야만 했던 아키라가 점점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무책임한 어른들과 그 사이에서 희생되는 아이들의 비극을 아주 담담하게 그려냈습니다. [아무도 모른다]를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후 배두나를 캐스팅한 [공기인형]을 비롯하여 [걸어도 걸어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태풍은 지나가고] 등의 영화를 통해 국내에서도 많은 팬을 거느린 세계적 거장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살인]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처음 도전하는 스릴러 영화입니다. 자신이 일했던 공장의 사장을 잔혹하게 살해한후 시체를 태워버린 미스미(야큐쇼 코지)와 미스미를 변호하게된 냉정한 성격의 변호사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의 이야기입니다.

대체적으로 스릴러 영화라면 잔인한 범행과 진실을 밝히기 위한 과정, 그리고 마지막 반전이 떠오를 것입니다. 하지만 [세 번째 살인]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답게 시종일관 담담하게 이야기를 진행시킵니다. 그리고 마지막 결말에 이르러서는 미스미의 범행에 대해서 열린 결말로 끝을 맺습니다. 일반적인 스릴러 영화에 익숙한 분들에겐 굉장히 당혹스러울 영화이지만, 영화가 끝난 후 미스미의 씁쓸한 웃음에 여운이 짙게 남은 영화이기도합니다.


 


자꾸만 진술을 번복하는 살인범


[세 번째 살인]은 처음부터 미스미의 범행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경찰에 체포된 미스미는 자신의 범행을 모두 자백합니다. 이쯤되면 사건의 진실은 명확해집니다. 미스미의 변호를 맡게된 시게모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미스미가 사형을 면하게 하는 것 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금전적 문제로 인한 살인보다는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미스미의 살인동기를 해명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미스미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자세로 시게모리를 대합니다. 게다가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피해자의 부인인 미츠에가 보험금을 노리고 자신에게 살인청부를 했다고 밝히기도 합니다. 미츠에가 미스미에게 보낸 수상한 문자와 통장에 입금한 50만엔의 돈 등 증거도 있습니다. 미스미를 변호해야하는 시게모리에겐 주범을 미츠에로 몰 수 있는 좋은 기호인 셈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피해자의 딸인 사키에(히로세 스즈)가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미스미가 자신을 위해 아버지를 죽인 것이라 시게모리에게 증언함으로써 사건은 다시 미궁이 됩니다. 게다가 미스미는 갑자기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며 증언을 번복합니다. 도대체 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왜 미스미는 자꾸 증언을 번복함하는 걸까요?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사실 처음부터 시게모리에겐 진실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의 의뢰인인 미스미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 여부가 중요할 따름입니다. 그렇기에 자꾸만 진술을 번복하는 미스미의 태도에 대해서 그가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보다는 그의 진술 번복이 유리한지, 불리한지만 따집니다. 그런 그가 미스미에 대해서 조사를 하면서 점점 진실에 관심을 가지게된 것입니다.

30년전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단 두명의 야쿠자를 살해하여 30년 동안 복역해야 했던 미스미. 그로인하여 딸과의 관계는 소원해졌습니다. 30년전 사건의 판사였던 시게모리의 아버지는 미스미에게 온정을 베풀어 사형을 판결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미스미의 딸은 아버지가 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미스미 자신도 스스로를 태어나지 말았어야할 사람이라 지칭합니다.

하지만 미스미가 묶었던 하숙집 주인은 미스미를 좋은 사람이라 말하고, 피해자의 딸사키에에겐 미스미가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키에의 말대로 미스미가 사키에를 위해 살인을 저지른 것이라는 확신을 들게합니다. 그러나 미스미는 그러한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급기야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진실을 파헤치는 시게모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어쩌면 처음에 시게모리가 그러했듯이, 나중에 미스미에겐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세 번째 살인 (영화의 결말을 언급합니다.)


결국 자신의 범행을 번복한 미스미는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아마도 미스미는 그러한 결과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판결이 끝난 후 미스미를 찾은 시게모리는 미스미가 사키에를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미스미는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은 태어나지 말았어야할 사람이라는 말만 할 뿐입니다. 이렇게 열린 결말로 영화가 끝남으로써 진실은 관객의 몫이 되었습니다.  

제가 판단한 진실은 시게모리의 생각과 같습니다. 사키에가 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진술을 법정에서 하게 된다면 사키에는 주목을 받게 될 것이고, 그녀의 인생에서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미스미는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사키에의 진술을 막기 위해 자신의 범행을 부정한 것입니다. 그러인하여 자신은 사형을 당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이죠. 30년간의 복역으로 딸에게 주지 못했던 사랑을 사키에에게 주고 떠난 것입니다.

영화의 제목이 '세 번째 살인'이라는 점도 그러한 제 생각을 뒷받침해줍니다. 미스미의 첫번째 살인은 30년전 두 명의 야쿠자를 죽인 것이고, 두번째 살인은 사키에를 성폭행한 아버지를 죽인 것이며, 마지막 세번째 살인은 사키에를 위해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영화 내내 사람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던 미스미 역의 야큐쇼 코지의 연기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짙은 여운으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