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스즈키 세이준
주연 : 오다기리 죠, 장 쯔이
개봉 : 2007년 6월 28일
관람 : 2007년 7월 2일
등급 : 12세 이상
내 이름은 오 다기리죠입니다.
이번 '일본인디필름 페스티벌 RETURNS'은 세 개의 섹션이 있습니다. 하나는 '망가, 논스톱'으로 일본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을 소개하고 있으며([웃음의 대천사]가 바로 여기에 속합니다.), '도쿄 팝 제너레이션'은 일본에서 하나의 장르로 정착한 청춘영화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 이름은 오 다기리죠입니다'라는 섹션은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배우 오다기리 죠의 출연영화 세편을 엄선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웃음의 대천사]에 이어 점심식사 후 바로 보게 된 영화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은 바로 '내 이름은 오 다기리죠입니다' 섹션에 소개된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것은 오다기리 죠 외에도 중국의 세계적인 배우 장 쯔이가 출연한다는 것과 제 58회 칸영화제에 특별초청작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적은 제작비가 들어간 B급 영화이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라는 거죠.
그러한 이 영화의 외적 모양새 때문에 저는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을 굉장히 기대했습니다. [메종 드 히미코]에서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준 오다기리 죠와 할리우드에서 맹활약중인 장 쯔이의 조합과 칸영화제가 인정한 B급 영화의 작품성은 어떠한 것인지 정말 궁금했죠.
하지만 그래서인지 실망도 굉장히 컸습니다. [웃음의 대천사]는 영화를 보는 내내 B급 영화의 기발한 감수성에 낄낄거리며 영화를 봤지만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은 당혹스러움과 졸음을 억지로 참아가며 봐야 했죠. 결국 이 영화를 보고나서 '대중문화와 문화사업'이라는 과목에서 배운 문화적 할인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더군요.
대중문화와 문화산업 : 문화적 할인 때문인가?
문화적 할인이란... 특정국가에서 제작된 프로그램이 외국에 방영될 때에는 프로그램의 가치가 하락한다는 이론입니다. 그 이유는 특정 문화에 뿌리를 두고 제작된 프로그램은 다른 문화에 속한 소비자가 쉽게 일체감을 가질 수 없는 패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같은 값이면 자국의 언어로 제작되고, 자국의 사회를 반영하며, 자국의 배우가 등장하는 프로그램, 그리고 자신들에게 익숙한 형식의 프로그램을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각적인 효과에 중점을 둔 프로그램의 경우는 그런 문화적 할인이 영향을 덜 끼친다고 합니다. 세계 영화 시장을 노리는 할리우드가 시각적 효과를 내세운 블록버스터에 사활을 거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만약 미국 문화에 대한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에서 주를 이룬다면 문화적 할인 때문에 세계 시장 개척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겠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즐길 수 있는 단순 액션에 시각효과를 극대화시킨 블록버스터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으니 쉽게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겁니다.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은 바로 그러한 문화적 할인으로 인하여 제게 별다른 재미를 안겨주지 못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 영화가 내세우는 영화적 형식인 뮤지컬은 우리 영화에서 가장 낯선 아직 정착되지 못한 장르이며, 배우들의 기모노 의상도 영화를 몰입하는데 방해를 줍니다. 너구리를 영묘한 동물로 보는 시각도 다분히 일본적인 발상입니다.
게다가 B급 감수성을 내세운 영화이니 영화는 한없이 유치하기만 합니다. 이러한 B급 감수성이 보편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웃음의 대천사]에서는 기발하게 느껴지더니, 다분히 일본스러운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에서는 너무나도 유치해서 짜증스럽기만 합니다.
결국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는 너무 일본적이어서 제겐 재미없는 영화였습니다. 그러한 일본적인 영화의 요소들은 세계적인 스타라는 장 쯔이도, 칸영화제 출품작이라는 명성도 제겐 소용없더군요.
대중문화와 문화산업 : 보편성을 위한 노력도 보이지만...
그렇다고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이 너무 일본적인 영화인 것은 아닙니다. 워낙 기모노 의상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 작용되었지만 뮤지컬이라는 서양적인 영화의 형식을 구축함으로써 서양 관객에 대한 보편성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러한 뮤지컬은 우리나라에선(아니 최소한 제겐) 보편성을 얻어 내는데 실패하고 말았지만 말이죠.
서양의 보편적인 동화인 [백설 공주]이야기를 영화의 기본 모티브로 삼은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 되기 위해 자신의 의붓딸을 죽이려 했던 왕비의 이야기인 이 끔찍한 동화는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에서는 살아있는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되기 위해 친아들을 죽이려하는 가라사 성의 성주인 아즈치 모모야마로 변주됩니다.
영화와는 어울리지 않게 너구리 공주로 장 쯔이를 캐스팅한 것도 세계 시장에서의 보편성을 확보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숨겨져 있을 것입니다.
이 영화를 만든 스즈키 세이준 감독은 나이 80을 넘긴 노장 감독입니다. 그는 1940, 50년대 일본에서 시리즈로 제작되고 대중적으로 흥행했던 [너구리극장]을 현대적인 재해석을 통해 일본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요소를 다양하게 뒤섞었다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일본적인 것을 세계적인 것으로 선보이고 싶었던 노장의 욕심이 묻어난 영화인 거죠. 그러한 스즈키 세이준 감독의 의도를 들으니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고 말한 임권택 감독이 생각나더군요.
일본적인 것을 여러 서양적인 요소들과 혼합시켜 세계적인 보편성을 얻으려는 스즈키 세이준 감독과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으로 보여주려는 임권택 감독의 노력은 분명 의미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그 노력에 대한 장벽은 높습니다. 무엇보다도 문화적 할인이라는 장벽을 넘어야만 스즈키 세이준 감독과 임권택 감독이 생각한 세계적인 영화가 완성되지 않을까요?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