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오다 이세이
주연 : 우에노 주리, 타이라 아이리, 세키 메구미
개봉 : 2007년 6월 28일
관람 : 2007년 7월 2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이번이 아니면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방통대 기말고사도 끝났고 해서 오랜만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극장을 찾았습니다. 일주일동안 극장 근처에도 못 간 상태이니 극장에 가면 보고 싶은 영화가 널려 있을 것이라 생각했건만 [트랜스포머]가 스크린을 모두 장악하고 있어서 오히려 볼 영화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나마 [트랜스포머]는 구피와 함께 보기 위해 명단에서 지워버리니 남은 영화라고는 [검은 집]과 [4.4.4.]뿐입니다. 둘 다 공포영화라서 보기가 꺼려졌지만 그래도 [극락도 살인사건]처럼 머리 풀어헤친 귀신은 안 나온다고 하니 용기 내어 보기로 결심했죠.
하지만 막상 극장에서 표를 끊은 영화는 [검은 집]도 [4.4.4.]도 아니었습니다. [웃음의 대천사],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 [카모메 식당] 이렇게 제목조차 생소한 3편의 일본영화입니다.
이들 영화는 '일본인디필름 페스티벌 RETURNS'라는 이름으로 전국 몇몇 극장에서 일본의 인디영화를 엄선해서 상영하고 있는 것으로 요즘 일본영화에 재미를 붙인 저로써는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하더군요. '일본의 인디영화는 어떠할까?'라는...
게다가 [검은 집]과 [4.4.4.]는 오늘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볼 수 있지만(극장 상영이 끝나면 비디오로...) 이들 영화는 오늘이 아니면 영영 볼 수 없는 영화들이라서 그냥 새로운 영화 경험을 해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결심은 결과적으로 매우 좋았습니다. 특히 [웃음의 대천사]는 보는 내내 너무 즐거워서 나도 모르게 낄낄거리며 영화를 봤답니다.
이번 '일본인디필름 페스티벌 RETURNS'에서 본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은 방통대 기말고사를 위해 일주일동안 밤새워 시험공부를 한 티도 낼 겸 해서 제가 공부했던 과목에 영화의 내용을 대입해서 잘난 척하며 한번 써보겠습니다. (새로운 시도 중!!! ^^;)
B급 영화란 바로 이런 것이다.
먼저 [웃음의 대천사]를 위해서 한 가지 용어 정리를 할 것이 있군요. 바로 B급 영화라는 용어입니다. 과연 B급 영화라는 것은 어떤 영화를 말하는 것일까요?
B급 영화 [B movie] :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 하에서 비용이 적게 소요되며, A급 영화나 장편영화보다 그 이름이나 등장하는 배우의 명성이 낮은 영화. 독립제작사들이 만든 영화도 예산이 적게 들게 되므로 B급 영화로 간주되고 있다. 1950년대 시작된 소규모 제작비의 영화는 공상과학영화로부터 시작해서 60년대의 모터사이클 영화들, 그리고 70년대의 흑인개척영화와 마약에 관한 영화들이 이에 포함된다. (네이버 백과사전 발췌)
B급 영화는 네이버에서도 설명했듯이 1차적으로 제작비가 적게 들어간 영화입니다. 제작비가 적게 들어가다 보니 아무래도 A급 영화보다는 허술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B급 영화는 그러한 허술함을 독특한 상상력에 의한 새로운 시도와 A급 영화의 패러디로 채워 놓습니다. 그것은 B급 영화의 단점이자 장점입니다. 그러한 B급 영화의 상상력은 때로는 어이없이 유치한 장면을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영화사를 새로 쓰며 A급 영화에까지 발전하기도 합니다. 이젠 전설적인 영화가 되어 버린 [터미네이터]와 로버트 로드리게즈라는 영화 천재를 탄생시킨 [엘 마리아치]가 후자에 속합니다. 결코 B급 영화는 제작비가 적게 들어간 잘 만든 영화는 아니라는 거죠. 사실 말하면 못 만든 영화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 감독의 능력으로 인하여 A급 영화보다 잘 만든 영화가 간혹 탄생되곤 했을 뿐입니다.
다시 [웃음의 대천사]로 돌아가면 이 영화는 전형적인 B급 영화입니다. 3명의 소녀들이 치킨라면을 먹다가 초능력이 생긴다는 설정에서부터 영화를 장식하는 유치찬란한 특수효과, 그리고 일부러 과장된 표정을 짓는 배우들의 연기까지.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는 있지만 분명 오다 이세이 감독은 신인 감독에게 지급된 제한된 제작비를 유치하지만 새롭고 유쾌한 시도들로 채워 놓으려 했을 것입니다. 전 이 영화의 그러한 점이 좋았습니다.
성.사랑.사회 : 소녀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이제 본격적으로 잘난 척 해보겠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그냥 일주일동안 벼락치기 공부를 해서인지 공부했던 내용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도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래서 그냥 그러한 내용들을 영화 이야기 속에 써내려는 의도일 뿐, 제가 이 부분의 전문가라서 잘난 척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웃음의 대천사]를 보는 동안 계속 떠오른 과목은 '성.사랑.사회'라는 쉽게 말하면 페미니즘 과목이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 때문이죠. 그녀들은 자유분방한 소위 말괄량이들이지만 어른 특히 남자들이 만들어낸 사회적 잣대인 요조숙녀가 되기 위해서 자신의 성격을 감추고 현모양처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후미오(우에노 주리)는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갑자기 급격한 신분 상승을 겪게 됩니다. 오빠라며 찾아온 카즈오미가 귀족이었던 것이죠. 스스로의 힘으로 자수성가하려 했던 후미오는 졸지에 상류층 여자들만 갈 수 있다는 성미카엘 학교에 가게 됩니다. 공부도, 운동도 자신 있는 그녀이지만 성미카엘 학교만큼은 적응이 안 됩니다. 언제나 친절한 미소를 지어야 하고, 깍듯이 인사를 해야 하고, 예의범절과 품위를 무엇보다도 중요시 여겨야 하는 학교에서의 생활이 전형적인 말괄량이인 후미오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던 겁니다.
사정은 성미카엘 학교의 반장인 유즈코(타이라 아이리)와 부반장인 카즈네(세키 메구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하게 자신의 모습을 숨기며 요조숙녀로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사실 그녀들도 후미오처럼 말괄량이들이었던 겁니다.
그러던 그들에게 어느 날 초능력이 생깁니다.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이 생긴 거죠.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된 그녀들의 보호자들(남자들)은 초능력을 쓰지 말라고 강요합니다. 그냥 평범한 다른 소녀들처럼 조용히 요조숙녀 교육을 받고 졸업 후엔 상류층 남자들과 결혼을 하라는 겁니다.
이 영화의 중간쯤 보다보니 직장에서도, 그리고 가정에서도 차별을 받는 여성들의 문제에 대해서 열성적으로 강의하시던 [성.사랑.사회]의 조주은 교수님이 생각났습니다. 과연 교수님께서 이 영화를 보신다면 뭐라 말씀하셨을까요? 자신들의 장점을 감추고 남자들이 만들어낸 요조숙녀, 현모양처라는 틀에 맞춰야하는 그녀들의 현실에 울분을 토하시지는 않으셨을까요?
성.사랑.사회 : 사회적인 틀을 넘어선 그녀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에 가면 조주은 교수님께서 좋아할만한 방식으로 영화는 전개됩니다. 상류층 여자들만 납치하는 국제 납치범들에 의해서 학생들이 납치되자 후미오, 유즈코, 카즈네는 힘을 합쳐 납치범들을 막아 냅니다.
제가 특히 좋아하는 부분도 바로 이러한 후반부인데 제가 후반부를 좋아하는 이유는 납치범들과 후미오 일행의 결투가 다분히 B급 영화다웠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액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일당백의 싸움은 물론, 일대일의 진검 승부까지 등장하고, 여기에 유치찬란한 특수효과까지 겹쳐져 긴장감보다는 웃음을 자아냅니다. 그 중 어색한 3D 애니메이션까지 동원되는 장면은 헛웃음이 나옵니다.
그러나 요 며칠 동안 할리우드의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블록버스터에서의 특수효과를 실컷 감상해서인지 [웃음의 대천사]에서의 어색한 특수효과가 오히려 색다른 재미로 느껴지더군요.
다시 '성.사랑.사회'로 넘어가면... 자신들의 능력을 제한하는 남자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후미오와 유즈코, 카즈네는 그들만의 힘으로 친구들을 구해냅니다. 여기에서 남자들은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합니다.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걱정할 뿐이죠. 영화 속 여성들이 사회적인 틀을 넘어선 순간이죠.
하지만 마지막 장면은 다시 논란이 될 만합니다. 친구들을 구해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측의 체벌 때문에 걱정하는 주인공들을 보며 그녀들도 결국은 사회적인 틀을 잠시 넘어 섰을 뿐, 그것에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니까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자들의 자유를 최대한 절제시키는 성미카엘 학교에서도 후미오, 유즈코, 카즈네의 활약은 멈춰 서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비록 초능력은 사라졌지만...) 그녀들은 자신을 감추고 요조숙녀처럼 행동할 테지만 결코 그러한 것이 그녀들 자체를 바꿀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결국 국제 납치범보다 무서운 것은 여자들을 숙박하는 사회적인 틀이죠. 가족과 일터에서 여자들이 평등한 날이 되려면 그러한 사회적인 속박을 남녀가 함께 깨 부셔 나가야 할 것 입니다. 그렇죠, 조주은 교수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