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토마스 알프레드슨
주연 : 마이클 패스벤더, 레베카 퍼거슨, J.K. 시몬스, 샤를로뜨 갱스부르
개봉 : 2017년 12월 14일
관람 : 2018년 2월 22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요 네스뵈의 원작소설이 너무 재미있어서...
한달전 저는 600페이지가 넘는 굉장히 두툼한 노르웨이의 추리 소설 <스노우맨>을 읽었습니다. 사실 <스노우맨>을 읽기 전에는 너무 두꺼운 책에 주눅이 들었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고나서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금새 <스노우맨>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말았습니다. 제게 있어서 <스노우맨>이 재미있을 수 있었던 것은 북유럽의 눈덮힌 스산한 풍경과 짜임새 있는 연쇄살인사건의 구성입니다. 한때 추리소설 매니아라고 자부하던 저는 <스노우맨>의 연쇄살인마 정체를 금새 알아냈고, 그가 시체를 어떻게 숨겼는지도 초반에 눈치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노우맨>은 마지막 그 순간까지 제게 추리소설의 짜릿한 즐거움을 안겨줬습니다.
제가 <스노우맨>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영화 [스노우맨]의 다운로드 서비스가 오픈했다는 인터넷 기사를 읽었기 때문입니다. [스노우맨]은 할리우드에서도 리메이크된 굉장깊은 스웨덴의 뱀파이어 영화 [렛 미 인]과 조용하지만 촘촘한 짜임새가 돋보였던 영국 스릴러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연출했던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의 영화로 마이클 패스벤더, 레베카 퍼거슨, J.K. 시몬스, 샤를로또 갱스부르, 발 킬머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2017년 12월 14일에 CGV 단관개봉했다가 조용히 잊혀진 영화입니다. 만약 [스노우맨]이 전국적으로 시끌벅적하게 개봉했다면 제 기대작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스노우맨]이 개봉하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이 영화의 다운로드 서비스 오픈되고 나서야 "아니, 이런 영화가 있었어?'라며 아쉬워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요 네스뵈의 원작소설 <스노우맨>에 도전했고, 이후 기대치가 한층 높아진 상황에서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의 [스노우맨]을 봤습니다.
내 기대가 너무 컸나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나서 제게 밀려든 것은 참을 수 없는 짜증과 허무함 뿐이었습니다. 믿을만한 감독에 연기력이 보증된 배우들, 그리고 치밀하게 짜여진 원작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 [스노우맨]은 최근 본 스릴러 영화 중에서도 최악이라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엄청나게 실망스러웠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영화의 만듦새가 우리나라 개봉 당시 단관 개봉으로 이어진 것이겠죠. 북미 개봉 당시에도 [스노우맨]은 2017년 10월 20일에 개봉해서 개봉 첫주 8위에 오르는 등 부진한 성적을 올라다가 북미 6백7십만 달러, 월드와이드 4천3백만 달러의 흥행 실패를 기록했습니다.
일단 [스노우맨]이 재미없는 이유는 스릴러 영화로써 제대로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원작소설은 2004년을 주요 배경으로 1980년과 1992년을 왔다갔다하며 2004년에 벌어진 유부녀를 대상으로한 연쇄살인사건의 진상을 촘촘하게 만들어놓습니다. 1980년의 사건은 일명 '스노우맨'이라 불리우는 연쇄살인마의 탄생을 설명하고, 1980년의 사건은 주인공 해리의 동료이자 유력한 용의자이기도한 카트리네 브라트의 정체를 설명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2004년에 벌어진 '스노우맨' 사건이 완성된 것입니다.
영화 [스노우맨]도 이를 착살하게 따라갑니다. 영화 초반 '스노우맨'의 탄생 과정을 보여주고, 영화 중간중간에 형사 게르트 라르토(발 킬머)의 사건을 요약해줍니다. 그러면서 해리 홀(마이클 패스벤더)와 카트리네 브라트(레베카 퍼거슨)이 처리해야할 '스노우맨' 사건의 진실을 하나씩 드러냅니다. 문제는 방대한 분량의 원작소설을 따라가려다보니 영화는 2시간이라는 제한된 러닝타임동안 우왕좌왕하다가 끝나버린다는 점입니다.
스릴러 영화의 짜임새는 어디로?
너무나도 당연하겠지만 원작소설을 고스란히 영화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만약 그랬다가는 영화 [스노우맨]은 러닝타임 5시간도 부족했을테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작업에서 생략할 것은 생략하고, 집중할 것은 집중하는 전략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당연히 원작소설의 몇몇 캐릭터들은 생략되어야 할 것이며 소설속 에피소드들 또한 단축되어야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원작의 짜임새를 놓치면 안된다는 조건 아래에서 가능합니다.
하지만 영화 [스노우맨]은 최소한의 생략으로 모든 것을 잡아내려합니다. 생략이 최소화되다보니 다른 부분을 희생시켜야하는데, 그것이 바로 '스노우맨'의 범행 동기와 시체의 행방입니다. 사실 이건 원작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스노우맨'이 아이가 있는 유부녀만 골라서 살해했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소설은 꽤 공을 들였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시체의 행방입니다. '스노우맨'이 오랜 시간동안 연쇄살인 행각을 벌였지만, 시체가 발견되지 않아 피해자들은 단순 실종사건으로 처리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소설 <스노우맨>의 전부라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영화 [스노우맨]은 이 두 가지는 맘대로 바꿔버립니다. 그 덕분에 '스노우맨'의 범행 동기는 단순해졌고, 시체의 행방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습니다.
'스노우맨'의 범행 동기가 단순해지며 영화는 뻔한 스릴러가 되어 버렸고, 시체의 행방을 모른채 하면서 짜임새 또한 헐거워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소설속 에피소드를 단순화시켜 나열시키기에 바빴고, 그 결과 영화가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왜 이렇게 흘러가야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제 경우는 그나마 원작 소설을 읽어 해리와 카트리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원작 소설을 읽지못한 관객 입장에서는 영화가 끝나고나서 그저 어리둥절했을 것입니다.
원작 소설의 차가운 정서만은 잡아냈다.
물론 [스노우맨]이 모든 면에서 낙제점을 받아야할 스릴러 영화는 아닙니다. 일단 배우들의 연기는 그럭저럭 좋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해리 홀을 연기한 마이클 패스벤더의 연기는 좋았고, 레베카 퍼그슨은 이번 영화에서도 은근히 매력적입니다. 특히 아직 제겐 [님포매니악]의 충격이 남아 있어서 샤를로뜨 갱스부르의 모습 자체만으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도 스릴러의 짜임새는 잡아내지 못했지만 원작 소설이 가지고 있는 북유럽의 차가운 정서만큼은 확실하게 잡아냅니다. 하긴 그는 이미 [렛 미 인]을 통해 새하얀 눈과 피의 이미지를 이용해서 북유럽의 스산함을 멋들어지게 잡아낸 경험이 있습니다. 만약 그것마저 제대로 잡아내지 못했다면 [스노우맨]은 정말 최악 중의 최악의 영화가 될뻔했습니다.
소설 [스노우맨]에서 마지막에 해리와 '스노우맨'이 라켈(샤를로뜨 갱스부르)의 집에서 벌이는 마지막 결투는 책을 읽는 제게 최고의 스릴을 안겨줬습니다. 비록 영상이 아닌 글씨로 봤지만, 제 머리 속에는 그 순간의 장면들이 아주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그와는 달리 영화 [스노우맨]의 마지막 장면은 그냥 어처구니가 없는 장면의 연속입니다. 해리가 정면도 아닌 그냥 뒤돌아서있는 '스노우맨'에게 방아쇠만 당기면 될 것을, 범인은 주저리 주저리 떠들지 말고 해리가 순순히 내놓은 총을 건네받아 해리와 라켈을 죽이기만 하면 될 것을, 소설을 이미 읽은 관객을 위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바꾸고 싶은 감독의 마음은 충분히 알겠지만, 기왕 바꾸려면 좀 더 스릴있게 바꿀수도 있었을텐데... 여러모로 영화 [스노우맨]은 소설 <스노우맨>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채 주저앉아 버린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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