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데이빗 로워리
주연 : 케이시 애플렉, 루니 마라
개봉 : 2017년 12월 28일
관람 : 2018년 2월 8일
등급 : 12세 관람가
무서운 호러 영화는 아니다.
판타지 멜로 영화의 전설 [사랑과 영혼]의 원제가 [Ghost(고스트)]라는 사실을 모르시는 분들은 없으실 것입니다. 국내 수입배급사가 관객이 [고스트]를 호러 영화로 착각할까봐 제목을 [사랑과 영혼]으로 바꾸었고, 그덕분에 [사랑과 영혼]은 우리나라에서도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일화는 이제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그런데 여기 [사랑과 영혼]과 비슷한 원제의 영화가 있습니다. 제목은 [고스트 스토리]입니다.
[고스트 스토리]는 [사랑과 영혼]과 마찬가지로 판타지 멜로 영화입니다. 교외의 작고 낡은 집에서 사랑을 하며 보내던 C(케이시 애플렉)와 M(루니 마라). 그러던 어느날 C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이하고 M은 슬픔에 빠져 상실의 시간을 보낸 끝에 집을 떠납니다. 하지만 C의 영혼은 집에 남아 끊임없이 M을 기다립니다.
많은 분들이 [고스트 스토리]라는 제목만 듣고서는 '호러 영화야?'라는 오해를 합니다. 그래서 만약 이 영화의 국내 제목이 [사랑과 영혼 스토리]라고 바꾼다면 어땠을까? 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또다른 오해를 불러 일으켰겠죠? 왜냐하면 [고스트 스토리]는 [사랑과 영혼]처럼 재미를 담보로한 오락 영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령이된 M의 애틋한 사랑을 기대하지 말라.
[고스트 스토리]는 관객의 예상을 모두 빗겨가는 영화입니다. 제목만 봐서는 호러 영화처럼 보이지만, 영화에서 호러적인 면은 거의 없습니다. 그저 하얀 천을 뒤집어 쓰고 집을 오가는 유령이 있을 뿐입니다. 내용만 봐서는 판타지 멜로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도 아닙니다. C가 죽은 후 M은 집을 떠나고, C는 M을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하지만 결코 C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고스트 스토리]는 어떤 영화일까요? 저는 집착에 대한 영화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M는 집을 떠나기전 쪽지를 집안 작은 틈 속으로 숨겨놓습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 자주 이사를 가야했던 M의 습관입니다. C는 M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M이 떠나버린 집에는 C가 아닌 낯선 사람들이 이사올 뿐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C는 M이 남기고간 쪽지를 틈 속에서 꺼내기 위해 애씁니다.
C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이웃집의 유령은 자신이 누군가를 기다리지만, 자신이 기다리는 사람이 누군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C 역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스트 스토리]는 92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 속의 시간은 서부 개척시대에서부터 현대까지 광활합니다. C와 M의 보금자리였던 교외의 작고 낡은 집이 철거가 되어 거대한 빌딩이 되는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C의 기다림은 몇 십년, 아니 몇 백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는 사이 C역시 이웃집 유령처럼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망각했을 것입니다.
집착이 사라지는 순간 소멸된다.
이웃집 유령의 집이 철거되자, 자신이 무엇을 기다리는지조차 모르던 이웃집 유령은 '안 올건가봐?'라는 말과 함께 소멸됩니다. 하지만 C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까지 집착을 버리지 못합니다. 집이 철거되며 M이 남긴 쪽지마저 폐허속에 파묻혀 버렸기 때문입니다. 결국 C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고, M의 쪽지를 꺼냅니다. 그렇게 쪽지에 대한 집착이 풀린 C는 이웃집 유령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소멸됩니다.
[고스트 스토리]를 보기 시작한 것은 저 혼자였지만, 구피가 잠시 합류했다가 롱테이크가 난무하는 영화의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영화보기를 포기했습니다. 영화의 중반부터는 최애 프로그램인 <세상에 이런 일이>가 평창 동계올림픽 때문에 결방한다는 사실을 알게된 웅이가 [고스트 스토리] 보기에 나섰습니다. 구피와는 달리 끝까지 [고스트 스토리]를 본 웅이는 영화가 끝나자 허무함에 제 [고스트 스토리]가 플레이되던 제 스마트폰을 집어던지려 하더군요.
일반 영화와는 다른 [고스트 스토리]의 화면 비율, 그리고 롱테이크와 음악을 최대한 자제한 조용한 화면 등 분명 [고스트 스토리]는 쉽게 즐길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게다가 데이빗 로워리 감독이 M이 남긴 쪽지의 내용을 끝까지 관객에게 공개하지 않습니다. C가 쪽지를 보기 위해 그토록 애를 썼고, 관객 역시 그 여정에 동참했음을 감안한다면 최소한 쪽지의 내용만이라도 관객에게 알려줘야 했지만 [고스트 스토리]는 그냥 쪽지를 확인한 C의 소멸로 영화를 끝내 버립니다. 네, 맞습니다. 허무합니다. 하지만 원래 집착이라는 것이 이토록 허무한 법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집착했던 그 모든 것들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고스트 스토리]는 그렇게 허무한 집착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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