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나타우트 폰피리야
주연 : 추티몬 추엥차로엔수키잉, 차논 산티네톤쿨
개봉 : 2017년 11월 2일
관람 : 2018년 1월 28일
등급 : 15세 관람가
사실 먼저 본 것은 사노 토모키 감독의 [변신]이다.
지난 일요일, 저는 사노 토모키 감독의 2005년작 [변신]을 봤습니다. 제가 뜬금없이 12년전의 영화를 본 이유는 [변신]의 원작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소설 <변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변신>은 그다지 재미있는 소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영화 [변신]은 제가 좋아하는 몇 안되는 일본 배우 아오이 유우가 주연을 맡은터라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저는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 진심으로 그만 보고 싶었을 정도로 영화 [변신]은 요근래 봤던 영화 중에서 최악중의 최악이었습니다.
영화의 분위기는 70, 80년대 우리나라의 최루성 멜로 영화를 보는 것만 같았고, 과장된 배우들의 연기는 헛웃음만 나왔으며, 원작에 대한 게으른 각색은 원작의 내용 그대로 영화에 옮기긴 했지만, 캐릭터의 감정선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영화 감독이 꿈인 고등학생이 만든 아마츄어 영화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리뷰를 쓰기 싫다고 느낀 굉장히 드문 졸작이었습니다.
[변신]에 너무나도 실망했기에 이 실망감을 치유해줄 영화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배드 지니어스]입니다. [배트 지니어스]는 우리나라엔 낯선 태국 영화이지만, 영화에 대한 관객의 평이 상당히 우수하기에 [변신]에 의한 짜증을 날려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제 기대는 맞아 떨어졌습니다.
컨닝에 대한 추억
학창시절 단 한번이라도 컨닝을 안해본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전통적인 컨닝페이퍼보다는 책상에 잘 외워지지 않는 것들을 써놓는 방식으로 주로 컨닝을 했습니다. 그랬다가 시험감독관 선생님이 자리를 바꾸라고하면 낭패를 보긴 했지만... 중학교 3학년땐 제 절친이 답안지를 보여달라고 간절하게 하소연해서 한번 보여줬다가 선생님께 걸려서 엉덩이가 불이 나도록 맞은 적도 있고, 고등학교에 다녔을 땐 제 뒤에 앉은 싸움 잘하는 녀석의 협박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제 답안지를 보여준 적도 있습니다. 이렇듯 컨닝은 누구나 하나쯤 간직하고 있을 법한 학창시절의 추억입니다.
[배드 지니어스]는 천재소녀 린(추티몬 추엥차로엔수키잉)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마치 중학교 3학년 시절의 저처럼 절친인 그레이스(에이샤 호수완)의 눈물어린 호소에 못이겨 그레이스의 컨닝을 도와줍니다. 하지만 이후부터 린의 컨닝은 점점 스케일이 커져갑니다. 그레이스 뿐만 아니라 그레이스의 남자친구인 팻(티라돈 수파펀핀요)과 그의 돈 많은 친구들에게 자신의 답을 보여줌으로써 그녀의 컨닝은 단순한 학창시절 추억이 아닌 비지니스로 발전합니다.
솔직히 저는 린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린의 집은 그다지 유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레이스와 팻의 집은 굉장히 부자입니다. 게다가 아버지가 린을 명문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거액의 돈을 학교에 기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땐, 학교도 이렇게 돈벌이를 하는데, 내가 해서는 안될 이유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린의 컨닝 사업에 나도 모르게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컨닝은 정말 친구를 위한 길일까?
뱅크(차논 산티네톤쿨)의 고자질로 린의 컨닝사업이 발각되었을 때에도 저는 뱅크가 찌질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린의 아버지가 린에게 화를 냈을 때에도 린의 반항적인 표정 그대로 '그게 뭐?'라고 저 역시 받아 넘겼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배드 지니어스]가 [오션스 일레븐]과 같은 할리우드의 경쾌한 케이퍼 무비를 청소년 무비로 변환시킨 재기발랄한 영화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린의 컨닝 사업이 STIC로 옮겨졌을 때부터 영화의 분위기는 점점 심각해지고, 긴박해집니다. 학교에서의 컨닝은 학창시절 추억이 될 수 있지만, 전세계적인 시험인 STIC의 부정행위는 큰 범죄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배드 지니어스]는 저처럼 컨닝을 가볍게 생각하는 관객에게 묵직한 한 방을 날립니다.
린은 컨닝으로 안하여 피해보는 사람은 없고, 오히려 자신은 돈을 벌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린의 아버지는 컨닝은 친구를 위한 일이 아님을 왜 모르냐고 다그칩니다. 어느순간부터 그레이스는 린을 친구가 아닌, 성적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을 하고 있었고, 팻은 뱅크가 STIC 컨닝 계획에 동참할 수 밖에 없도록 잔인한 계획을 세우기도합니다. 그레이스와 팻이 린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에 성공한다고해도 그것은 당장의 위기탈출일뿐, 미국 대학에서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또다시 돈을 미끼로 린을 끌어들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배드 지니어스]의 묵직한 한방은 그러한 깨달음입니다.
놀랍도록 세련된 영화이다.
[배드 지니어스]를 보기 전까지만해도 태국영화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태국영화라고 한다면 토니 자를 내세운 [옹박]과 같은 무에타이 액션 영화이거나, [셔터]와 같은 저예산 공포영화 뿐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배드 지니어스]를 보고나니 이 영화의 세련된 연출력에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영화보다 한수 위라고 생각했던 일본영화 [변신]의 촌스러움에 경악을 느꼈고, 그와는 반대로 한국영화보다 한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태국영화 [배드 지니어스]의 세련됨에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역시 영화는 선입견 없이, 영화 그 자체의 완성도를 온전히 느끼는 것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변해버린 뱅크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습니다. 그 누구보다 성실했던 뱅크는 린으로 인하여 미래를 잃습니다. 학창시절 추억이라 할 수 있는 컨닝의 경쾌함으로 시작해서 케이퍼 무비를 연상시키는 긴장감을 거쳐 교훈까지 깔끔하게 안겨주는 [배드 지니어스]. 진정 태국영화에 대한 제 선입견을 비웃는 명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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