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8년 아쩗평

[튤립 피버] - 거짓으로 완성하려는 사랑은 거품처럼 부질없더라.

쭈니-1 2018. 1. 26. 13:36



감독 : 저스틴 채드윅

주연 : 알리시아 비칸데르, 데인 드한, 크리스토퍼 왈츠

개봉 : 2017년 12월 14일

관람 : 2018년 1월 25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튤립버블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역사상 최초의 자본주의적 투기라 할 수 있는 튤립에 대한 과열투기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원래 튤립시장은 전문가와 생산자 중심으로 거래가 형성되어야 하지만 당시 귀족과 신흥 부자를 비롯해 일반 사이에서도 튤립 투기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하면서 튤립 가격이 1개월 만에 50배가 뛰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튤립버블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네덜란드 정부가 튤립 과열투기현상에 개입했고  법원에서 튤립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튤립버블이 순식간에 꺼졌습니다. 결국 튤립가격은 최고치 대비 수천 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습니다. 이처럼 순식간에 튤립버블이 꺼진 것은 꽃을 감상하려는 실수요보다는 가격 상승을 노린 투기 수요가 대다수였기 때문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버블은 마치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트코인 문제를 연상시킵니다.  인터넷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은 가격 상승을 노린 투기자들로 인하여 한때 수천만원이 호가할 정도로 가격이 상승했지만 결국 정부의 개입으로 현재는 백만원대로 하락했습니다. 튤립버블 때와 마찬가지로 비트코인 역시 실수요보다는 가격 상승을 노린 투기 수요가 대다수이기에 과열투기현상만 잡힌다면 비트코인 가격 하락은 막을 수 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17세기 암스테르담에서 벌어진 사랑 이야기


[튤립 피버]는 튤립버블 광풍이 진행중이던 1630년대 암스테르담을 배경으로한 영화입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수녀원에서 자란 소피아(알리시아 비칸데르)는 돈 많은 거상 코르넬리스(크리스토퍼 왈츠)를 남편으로 맞이합니다. 코르넬리스가 소피아에게 원하는 것은 자신의 재산을 물려 줄 수 있는 자식을 낳아주는 뿐입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나도록 소피아는 임신을 하지 못하고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 속에 하루하루를 보낼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됩니다.

그러던 어느날 소피아는 가난하지만 젊고 매력적인 화가 얀(데인 드한)을 만나고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소피아는 코르넬리스를 속이고 얀과 사랑의 도피를 하는 위험한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하녀인 마리아(홀리데이 그레인저)의 임신을 자신의 임신인 것처럼 코르넬리스를 속이고, 자신은 아기를 낳다가 열병에 걸려 죽은 것으로 처리, 얀과 머나먼 곳으로 도망치려한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얀은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을 튤립에 투자함으로써 소피아와의 도피 자금을 마련합니다.

하지만 완벽해보이던 두 사람의 계획은 마지막 순간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네덜란드 정부의 개입으로 튤립 가격은 폭락하기 시작했고, 자신에 대한 코르넬리스의 진정한 사랑에 소피아는 죄책감을 느꼈으며, 결정적으로 코르넬리스가 모든 진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뻔하게 진행될줄 알았던 이야기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흘러간다.


사실 제가 알리시아 비칸데르, 데인 드한, 크리스토퍼 왈츠 주연에 조연으로 주디 덴치, 카라 델레바인, 자흐 갈리피아나키스까지 초호화 캐스팅에 자랑하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은 이유는 내용이 너무 뻔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분명 코르넬리스가 소피아를 성적으로 학대함으로써 소피아와 얀의 사랑에 정당성을 부여할 것이고, 마지막엔 소피아와 얀의 사랑이 승리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맺음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튤립 피버]는 그렇게 뻔한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일단 소피아를 향한 코르넬리스의 사랑은 진실된 것이었습니다. 전아내가 아기를 낳다 위험한 상황이 되자 신에게 아기만이라도 살려달라고 기도를 했다는 코르넬리스는 그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소피아에게 최선을 다합니다. 그는 소피아의 거짓 출산 소동에 의사에게 만약 아기와 산모 중 한명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아기 대신 아내를 살려달라고 눈물로써 호소를 하기도 합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코르넬리스를 배신한 소피아와 얀의 사랑은 관객의 응원을 받지 못합니다.

결국 영화는 소피아와 얀의 사랑으로 영화를 마무리하지 않습니다. 코르넬리스에 대한 소피아의 죄책감은 얀과의 도피가 아닌 또다른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모든 진실을 알게된 코르넬리스의 선택도 의외였습니다. 저는 소피아에 대한 사랑에 배신당한 코르넬리스가 복수를 결심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코르넬리스는 오히려 사랑을 돈으로 샀던 자신에게도 죄가 있다며 모두를 용서합니다. 그동안 악역으로 이미지가 굳혀졌던 크리스토퍼 왈츠가 이렇게 멋져보일 줄이야...




사랑도 거품처럼 부질없더라.


영화를 혼자 보고나서 언제나처럼 구피에게 [튤립 피버]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조용히 소피아와 얀의 사랑 이야기를 들은 구피는 "그래서 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뭔데?"라고 묻습니다. 구피 역시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에 당황했던 것입니다. 구피는 이 영화가 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면 감독이 하고 싶은 또다른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 구피에게 저는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은 거짓된 사랑의 허무함이라고 말해줬습니다.

분명 소피아와 얀의 사랑은 튤립버블처럼 거짓되고, 허무했습니다. 튤립버블 당시 네덜란드 사람들은 튤립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고, 그것이 과열투기현상으로 번졌습니다. 소피아와 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소피아와 얀은 서로의 아름다움에 반해 사랑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코르넬리스를 속이는 거짓으로 사랑을 완성하려했습니다. 그러나 거짓으로 완성된 사랑이 오래갈리가 없습니다. 튤립 과열투기 현상이 튤립의 아름다움을 탐한 이들의 거짓된 탐욕의 결과물인것처럼...

튤립버블이 한순간에 사그라들었듯이 소피아와 얀의 사랑도 한순간에 사라진 것 뿐입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 슬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니라에서 벌어진 비트코인 과열투기현상도 [튤립 피버]와 같은 영화로 만들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진실되지 않은 과욕은 언제나 부질없음을... 비트코인 투기에 눈이 먼 사람들도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