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후쿠다 유이치
주연 : 오구리 슌, 스다 마사키, 하시모토 칸나
개봉 : 2017년 12월 7일
관람 : 2018년 2월 27일
등급 : 12세 관람가
애초에 내가 기대한 것은 병맛 코미디이다.
제가 [은혼]의 예고편을 본 것은 작년 늦가을쯤이었을 것입니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의 예고편에는 얼토당토않는 시대적 배경과 한껏 과장된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조잡한 특수효과들이 가득 담겨져 있었습니다. 처음엔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만히 보다보니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극장에서 볼 수는 없고, 다운로드로 출시될때까지 기다렸다가 어제에서야 [은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나도 모르게 낄낄거리며 굉장히 유쾌하게 즐길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은혼]에 기대한 것은 제대로된 병맛 코미디입니다. 그리고 [은혼]은 그러한 제 기대를 착실하게 채워줍니다. 영화의 배경은 에도막부 말기입니다. 일본의 에도막부시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하고 에도(현 도쿄)에 수립한 정권으로 1603년부터 1867년까지를 이릅니다. [은혼]은 천인이라 불리는 외계인의 습격으로 전근대와 미래가 공존하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천인의 모습은 누가 봐도 사람이 인형 탈을 쓴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애교에 불과합니다.
[은혼]의 주인공은 천인에 의해 금지된 사무라이 정신을 굳게 간직한 은발의 무사 킨토키(오구리 슌)와 그의 어리버리 조수 신파치(스다 마사키), 그리고 괴력의 왈가닥 소녀 카구라(하시모토 칸나)입니다. 영화의 첫 에피소드인 투구벌레 사냥이 이 영화의 병맛을 잘 나타냅니다. 투구벌레를 잡기위해 온 몸에 꿀을 발로 숲 속에 서있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마요네즈를 나무에 바르고, 투구벌레 탈을 쓰고 나무에 매달려 있는 신센구미 요원들의 모습은 영화가 아닌 코미디 프로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패러디는 나의 힘
[은혼]은 황당한 병맛 코미디로 영화를 이끌면서 끊임없는 패러디로 영화의 재미를 극대화합니다. 오구리 슌이 출연한 일본 드라마 <꽃보다 남자>,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미소녀라는 의미의 천년돌이 별명인 하시모토 칸나를 데뷔하게 만든 사진을 패러디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화의 조잡한 특수효과에 대해서 자기 비하도 서슴치 않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기생수>, <우주전함 야마토>, <기동전사 건담>, <원피스>,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등 일본의 걸작 애니메이션도 다수 패러디됩니다. 특히 저는 <기동전사 건담>을 패러디하는 부분에서 자쿠가 등장하는 장면과 자쿠의 주인인 뚱뚱한 붉은 혜성 샤아가 나오는 장면에서 빵 터져버렸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원피스>의 고무고무 열매가 나오는데, 혼자 영화를 보다가 박장대소를 해서 구피가 뭔일 있냐고 물을 정도였습니다.
[은혼]의 패러디 중 최고 명장면은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아예 대놓고 패러디하자 사건의 의뢰인인 테츠코는 "저작권 안걸릴까?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거 아냐? 정말 이래도 괜찮아?"라며 안절부절합니다. 그러나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의 표절논란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은 "어때? 절묘하지? 아슬아슬하게 안 걸리게 생겼잖아."라며 태연하게 말합니다. 그 동안 꽤 많은 패러디 영화를 봤지만, 이렇게 [은혼]처럼 절묘한 패러디는 처음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저는 이 영화에 만점을 주고 싶습니다.
가끔은 진지한 척해도 괜찮아.
물론 [은혼]이 처음부터 끝까지 병맛 코미디와 패러디로 일관한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 중반 긴토키의 어릴적 친구이자 동료였던 카츠라 코타로(오키다 마사키)가 살인귀에 의해 실종되고, 살인귀의 정체가 맹인 칼잡이 니조(아라이 히로후미)임이 밝혀지면서 [은혼]은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킨토끼는 니조가 들고 다니는 칼이 신비한 힘을 가진 불멸의 검 홍앵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옛 동료이자 막부에 대한 반감을 가진 타카스기 신스케(도모토 츠요시)가 이 모든 사건의 주범임이 밝혀지며 영화는 하이라이트로 치닫습니다.
하늘을 나는 전함 위에서의 후반기 전투 장면은 그래도 이 영화의 액션씬이 꽤 정교하게 꾸며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진지한 액션 위에 병맛 코미디가 끊임없이 끼어들어서 영화의 정체성만큼은 끝까지 잃지 않는 뚝심을 보여주기도합니다.
저는 [은혼]이 너무 재미있어서 구피와 웅이에게 [은혼]의 패러디 중 재미있었던 부분 몇 장면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웅이도 [은혼]이 보고 싶다고하네요. 과연 웅이가 [은혼]의 병맛 코미디를 즐길 수 있을런지 잘 모르겠지만, 주말쯤 웅이와 함께 [은혼]을 다시한번 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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