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츠키카와 쇼
주연 : 하마베 미나미, 키타무라 타쿠미
개봉 : 2017년 10월 25일
관람 : 2018년 3월 3일
등급 : 12세 관람가
내가 사춘기시절 꿈꾸었던 슬픈 사랑
한참 감수성이 예민하던 제 사춘기시절, 저는 '로미오와 줄리엣'식의 슬픈 사랑을 꿈꾸었습니다. 학교 수업시간엔 뒷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지 않고 노트에 슬픈 소설을 쓰겠다며 끄적였고, 다섯식구가 단칸방에서 옹기종기 모여 잘여때 밤새 슬픈 사랑에 대한 상상을 하느라 날 밤을 새우곤 했습니다. 제가 밤에 잠을 못이루고 삐쩍 말라가자 어머니께서는 한약방에 데려가셨는데, 그때 한의사가 제게 밤새 성을 쌓다가 부수느라 못자는거라며 씨익 웃으시더군요.
암튼 제가 당시 꿈꾸던 사랑은 불치병에 걸린 여성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성 앞에서 부끄러움이 많은 저를 닮은 상상 속의 남자 주인공은 언제나 수동적이고, 불치의 병에 걸린 여자 주인공은 언제나 능동적으로 남자 주인공에게 다가섭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소년, 소녀의 순수한 사랑을 하지만, 결국 여자 주인공이 죽음으로 언제나 사랑은 막이 내립니다.
어! 이거 어느에선가 많이 들어본 스토리 아닌가요? 맞습니다. 지금 며칠 전에 본 일본 멜로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정확히 그런 내용입니다. 제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보며 깜짝 놀랬던 이유는 사춘기 시절 제가 꿈꾸었던 슬픈 사랑과 거의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원작자인 스미노 요루도 저와 비슷한 슬픈 사랑을 꿈꾸었지 않았을까요?
소심한 소년과 불치병에 걸린 소녀의 만남
자의적인 은둔형 외톨이 시가 하루키(키타무라 타쿠미)는 맹장 수술 때문에 들린 병원에서 우연히 같은 반 여학생인 사쿠라(하마베 미나미)의 일기장을 줍습니다. '공병일기'라고 적혀 있는 일기장에는 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쿠라의 고백이 담겨져 있습니다. 반에서 인기도 많고 언제나 밝은 소녀인 사쿠라의 예상하지 못한 비밀에 당혹하는 하루키. 그런데 그의 앞에 태연한 표정의 사쿠라가 서있습니다. 그 이후 사쿠라와 하루키는 둘만의 비밀을 간직한채 우정을 쌓아갑니다.
하루키는 자신의 병을 절친인 쿄코에게 알리려 하지 않습니다. 만약 쿄코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울음을 터트릴 것이며, 그렇다면 자신은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얼마남지 않은 자신의 마지막 일생은 부모님과만 보내고 싶지도 않습니다. 슬픔을 애써 참는 부모님의 모습이 그녀의 가슴을 아프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루키는 달랐습니다. 사쿠라의 비밀을 알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담한 모습. 그렇기에 사쿠라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루키와 함께 하기로 결심합니다.
하루키 입장에서는 당혹스럽습니다. 친구 한명 없던 그가 갑자기 교내 인기녀 사쿠라의 절친이 되어 함께 데이트를 하고, 1박2일 여행을 가게 되었으니 반 아이들과 쿄코의 질투를 한몸에 받게 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렇다고 사쿠라의 비밀을 누설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루키는 사쿠라에게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어갑니다.
순수한 사랑은 슬픈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죽기 전에 만개한 벗꽃이 보고 싶다는 사쿠라. 그녀를 위해 벗꽃이 만개한 곳으로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는 하루키. 하지만 저는 잘 압니다. 사쿠라는 벗꽃이 만개한 아름다운 여행지에서 하루키의 품 안에서 마지막을 맞이할 것임을... 하지만 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조금은 허무하고, 너무나도 당황스러운 사쿠라의 죽음. 하루키는 갑작스러운 사쿠라의 죽음에 주저앉습니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앞서 언급했던대로 제가 사춘기 시절 했음직한 슬픈 사랑의 로망이 모두 담겨져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만큼은 뻔한 전개를 거부하겠다는 듯이 예상하지 못한 사쿠라의 죽음으로 영화를 끝냈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저는 영화를 보며 아무도 눈물을 한바가지 흘렸을텐데... 그날 집에 구피와 웅이가 모두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일지도...
마지막 사쿠라의 죽음이 너무 당혹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보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슬픈 사랑을 꿈꾸던 사춘기 시절의 저로 돌아간 것 같아 너무 모르게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그런 기분을 안겨준 것만으로도 저는 이 영화가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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