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7년 영화이야기

[1987] - 뜨거운 눈물과 함께 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스러웠다.

쭈니-1 2018. 1. 3. 16:25

 

 

감독 : 장준환

주연 :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박희순, 이희준

개봉 : 2017년 12월 27일

관람 : 2017년 12월 31일

등급 : 15세 관람가

 

 

2017년 마지막 영화

 

저는 2017년의 첫 날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합니다. 그날 저는 집에서 가족들과 TV를 보며 2017년의 시작을 알리는 제야의 종소리를 기다렸고, 2016년에서 2017년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구피와 웅이를 TV 앞에 앉혀 놓고 제 보물 1호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고 TV 화면에서 '2017년'이라는 자막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폴라로이드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하지만 사진에는 '2017년'이 아닌 '201'까지만 나오고 말았습니다. 제가 너무 긴장한 나머지 '2017년'이라는 자막이 모두 나오기 전에 셔터를 눌러 버린 것이죠. 그 덕분에 저희 가족은 2017년 첫 날을 시원한 웃음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365일이 후다닥 지나가 버리고 2017년도 저물어버렸네요.

2017년 마지막날 저와 웅이는 영화 [1987]을 보고 왔습니다. 전날 [신과 함께 : 죄와 벌]을 보고 왔기 때문에 이틀 연달아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2017년을 보내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30년전인 1987년 6월 항쟁을 담은 [1987]을 보며 2017년을 마무리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87년, 저는 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고, 그저 데모하는 형, 누나들이 왜그러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30년이 흘렀고 이제는 제 아들인 웅이가 1987년 당시의 저와 같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인 웅이와 함께, 제가 중학교 2학년때 벌어졌던 한국사의 큰 사건을 그린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뭔가 큰 인연같이 느껴졌습니다.

온가족이 즐길 수 있는 [신과 함께 : 죄와 벌]과는 달리 [1987]은 묵직한 주제를 가진 영화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분들이 영화 보기를 부담스러워하고 외면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제 예상과는 달리 극장 안은 관객으로 거의 꽉 들어찼습니다. 특히 저처럼 어린 자녀들과 함께 극장을 찾은 부모 관객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예전에는 자식들이 정치에 관심을 두면 데모한다며 혼냈었는데, 지난 2016년 촛불집회를 기점으로 정치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도 많이 변했나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대한민국의 수 많은 연희들에게 영화는 말한다.

우리 국민이 함께 일어서면 세상은 변한다고...

1987년에 그랬고, 2016년에도 그랬다고...

 

 

1987년 무슨 일이 벌어졌었나?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은 호헌선언을 합니다. 호헌선언이란 일체의 개헌 논의를 금지하는 조치입니다. 전두환 대통령이 이렇게 호헌선언을 밀어부친 이유는 간선제에서 직선제로의 개헌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간선제가 무엇일까요? 간선제는 간접 선거 제도의 줄임말로 대통령을 국민이 아닌 대리인에 의한 간접 선거에 의해 선출하는 방식입니다. 1972년 유신헌법 발표 이후 국민이 선출한 통일주체국민회의 의원들에 의한 간접 선거제가 채택되었고, 1981년 제5공화국 헌법에서는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제가 실시되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호헌선언에서 1988년 2월 정부를 이양하겠다고 발표하지만 이미 전두환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인단을 장악했기에 이는 자신의 후계자에게 정부를 이양하며 장기 집권을 하겠다는 선언과도 같았습니다.

이러한 4.13 호헌선언은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불을 댕기는 역효과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도화선은 1987년 1월 14일에 벌어진 서울대생 박종철 사망사건입니다. 스물두살의 청년 박종철은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다 고문과 폭행으로 사망했고, 전두환 정부는 이를 은폐하고 조작합니다. 하지만 1987년 5월 18일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 특별성명을 통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알려고, 이에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결성되어 박종철 사건 규탄과 4.13 호헌조치의 철회 및 민주개헌 쟁취를 목표로 1987년 6월 10일 대대적인 국민운동을 전개해나갑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7년 6월 9일 '6.10 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고 쓰러진 이한열 사건이 터집니다. 학우의 부축을 받아 시위 현장을 빠져나가는 이한열의 모습은 로이터 통신 기자가 촬영해 보도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그 결과 6월 항쟁은 전국적으로 20~30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연인원 4~5백만 이상의 국민이 참여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1987년 6월 29일 당시 민정당 대표인 노태우에 의한 국민들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인다는 특별선언을 이끌어 냈습니다.

 

'조사관이 탁자를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며

박종철 사망사건을 발표하는 박처장의 희대의 헛소리.

이는 그들이 대한민국 국민을 개, 돼지로 보았음을 알 수 있는 한 단면이다.

 

 

박종철 고문치사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1987]은 1987년 너무나도 뜨거웠던 대한민국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립니다. 영화의 시작은 박종철(여진구) 고문치사 사건입니다. 증거인멸을 위해 경찰내 실세인 박처장(김윤석)은 검찰에 시신 화장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박종철 사망 당일 당직이었던 최검사(하정우)는 이를 거부하고 부검을 밀어부칩니다. 단순 쇼크사로 거짓 발표를 이어가는 경찰. 하지만 현장에 남은 흔적과 부검 소견은 고문에 의한 사망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이에 사건을 취재하던 윤기자(이희준)는 박종철이 물고문 도중 질식사 했음을 보도하고, 박처장은 조반장(박희순) 등 형사 둘만 구속시키며 사건을 축소시킵니다.

만약 최검사가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시신 화장을 승인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영원히 단순 쇼크사로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만약 부검의가 권력의 협박에 못이겨 단순쇼크사로 소견서를 썼다면, 만약 신문 기자들이 경찰의 발표를 의심하지 않고 단순히 받아쓰기로 기사를 썼다면, 만약 교도관 한병용(유해진)이 감옥에 수감된 조반장을 통해 알게된 진실을 재야 인사에게 알리지 않았다면... 이들중 단 한 명이라도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하지 않고 권력에 굴복했다면 진실은 영원히 묻혀 버렸을 것입니다.

저는 전두환이라는 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당시 그런 용기있는 행동을 했던 이들의 선택이 놀라웠습니다. 그들이 진실을 향해 아주 잠깐만 눈을 감았다면 어쩌면 그들의 인생은 더 윤택해지고 편안했을지도 모릅니다. 최검사는 검사조직에서 승진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했을지도 모르고, 한병용은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테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목숨을 걸고 진실을 향해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좀 더 앞당겨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박종철 시신 화장을 요구하는 박처장에게 최검사는 부검을 밀어부친다.

나는 저 장면에서 박처장이 최검사를 총으로 쏴 죽이는 것은 아닐지 조마조마했다.

그 당시에는 충분히 그런 짓을 버젓이 벌일 수 있었을테니까.  

 

 

무거운 주제를 재미있게 담아내는 장준환 감독의 연출력

 

사실 영화를 보기 전 저는 약간의 걱정이 되었습니다. 영화가 너무 무겁거나, 그 반대로 너무 감성에만 호소를 하면 어쩌나? 하는... 하지만 감독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를 통해 한국 컬트 영화의 한 획을 그었고,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를 통해 스릴러라는 제도권 장르 영화에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과시한 장준환 감독은 [1987]를 너무 무겁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감성에만 호소하지 않는 세련된 연출력로 그려냅니다.

일단 [1987]의 기본 골격은 스릴러입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은폐시키려는 자들과 진실을 파헤치려는 이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영화는 관객에게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그러면서도 너무 무겁지 않게 간간히 웃음도 선사합니다. 특히 똘끼 충만한 최검사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주요 인물임과 동시에 하정우 특유의 능글맞은 연기가 입혀짐으로써 영화의 웃음을 책임집니다. 최검사가 박처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투리 좀 고치지? 김일성이네?'라며 일침을 가하는 장면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예상하지 못한 웃음을 안겨줍니다. 이후에도 최검사는 권력에 맞서 싸우면서도 결코 여유로운 모습을 잃지 않으며 관객의 가려운 곳을 긁어줍니다.

최검사가 [1987]이 너무 무겁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수행한다면 강동원이 연기한 이한열은 영화의 감성적인 부분을 채워줍니다. 아마도 [1987]에 강동원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극장에 간 관객은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최근에는 언론 발표를 통해 강동원이 이한열을 연기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제가 영화를 봤던 당시에만해도 이한열이 마스크를 내리는 장면에서 관객석이 술렁일 정도입니다. 저 역시도 나도 모르게 '우와! 강동원이다.'라고 나지막히 감탄사가 타져나왔을 정도니까요. 그때까지만해도 강동원이 맡은 역할이 이한열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렇기에 강동원의 출연은 연희(김태리)와의 로맨스라는 다분히 상업적인 장치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이 나오며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연희가 사준 운동화가 그런 의미일 줄이야...

 

삼촌인 병용에게 '그런다고 세상이 바꿔?'라며 쏘아 부치던 연희

하지만 이한열의 최루탄에 맞아 피를 흘리는 사진을 발견하고 그녀는 6월 항쟁에 뛰어든다.

그렇다. 대한민국을 바꾸기 위해 위험 속에 뛰어든 이들은 그냥 남이 아닌,

내 가족, 내 이웃, 내 첫사랑이었던 것이다.

 

 

1987년의 6월 항쟁과 2016년의 촛불집회

 

지금도 저는 제가 한 일 중에서 가장 잘 한 것이 2016년 촛불집회에 웅이와 함께 참가한 것입니다. 사실 구피는 말렸습니다. 자칫 경찰의 과잉 진압, 혹은 태극기 집회와의 폭력 시비에 휘말려 다칠 수도 있었을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평화로운 촛불집회의 힘을 믿었고, 그 결과 박근혜 정부 탄핵에 아주 조금이라도 일조했다는 자부심을 웅이와 함께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30년 전 6월 항쟁 덕분에 직접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선출하는 것으로 우리가 해야할 일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국민의 뜻을 받들어 대한민국을 잘 이끌고 있는지 끊임없이 지켜보고, 우리 국민의 목소리를 내야합니다. 우리가 그러지 못한다면 30년전 목숨을 걸고 직선제 개헌을 투쟁한 6월 항쟁의 의미는 퇴색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국민의 의무를 웅이에게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웅이도 자신의 자식들에게 가르쳐 줄 것이고, 민주주의라는 우리의 유산을 영원히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첫 걸음은 과거에 대해 아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담은 [택시 운전사]를 비롯하여 과거 우리의 아픈 역사와 민주화의 투쟁을 담은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쉽고 재미있게 과거의 사건들과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웅이에게 전두환 전대통령이 그토록 하고 싶어했던 간선제에 대해서 설명해줬습니다. 체육관 선거라고 별칭이 붙은 간선제는 우리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한다는 몇몇 이들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라 설명하니 웅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습니다. 영화에서 병용의 교도관 동료들은 전두환 대통령의 호헌선언을 보며 '그래, 아직 우리 국민들 수준에서 직선제는 무리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수준이 이미 정치인의 수준을 넘어섰음을... 그리고 6월항쟁, 촛불집회가 그 증거임을... 그렇기에 [1987]을 보며 뜨거운 눈물이 흘렀지만, 다른 한편으로 대한민국 국민임이 자랑스럽기도 했습니다.

 

1987년 6월 권력자는 국민을 개, 돼지라고 생각하며

자신 맘대로 대한민국을 주무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들의 생각만큼 어리석지 않다.

1987년에도, 2016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는 대한민국의 주인이 국민임을 그들에게 알려줄 것이다. 

 

 

뜨거웠던 그날의 보너스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