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7년 영화이야기

[어쌔신 : 더 비기닝] - 개인적 복수심이 사라지니 그 자리에 애국심이 싹 트더라.

쭈니-1 2017. 12. 12. 14:56

 

 

감독 : 마이클 쿠에스타

주연 : 딜런 오브라이언, 마이클 키튼, 테일러 키취

개봉 : 2017년 12월 7일

관람 : 2017년 12월 11일

등급 : 15세 관람가

 

 

영화를 보기 위한 폭풍의 질주

 

월요일 퇴근 시간을 앞두고 구피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회식하고 늦게 들어간다는... 그 순간 제 머리 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웅이는 기말고사를 하루 앞두고 처갓집에서 열공중이니 퇴근 후의 시간은 온전히 저만의 것이니까요. '집에서 다운로드 영화 한편과 치맥 한잔 할까?' 아니면 '침대에 뒹굴며 스마트폰으로 오락을 할까?' 많은 계획이 제 머릿속을 어지럽혔지만 결국 이번에도 '극장에서 영화 한편보고 들어가자!'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영화가 [어쌔신 : 더 비기닝]입니다. 원래는 극장이 아닌 다운로드로 보려고 했던 영화이지만, 이렇게 시간이 났으니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듯합니다.

문제는 영화 시작 시간입니다. 갑작스러운 결정이기에 미리 계획을 세울 수 없었던 저는 집 근처 극장의 [어쌔신 더 비기닝] 상영시간을 급하게 조회했습니다. 오후 6시 40분에 시작하는 영화가 있더군요. 하지만 당시 시간은 오후 6시 20분. 회사에서 극장까지 아무리 빨리 간다고해도 30분 이상은 족히 걸릴텐데... 저는 급하게 제 차에 탔습니다. 평소 제 운전습관은 '끼어들지 않기'입니다. 웬만하면 한 차선을 선택해서 그 차선으로 목적지까지 밀고 나갑니다. 하지만 퇴근길 상습정체구간인 경인고속도로에서 그렇게 운전했다가는 제 시간 안에 극장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저는 최대한 빨리 가기 위해 온 신경을 전방에 주시하고 달려 나갔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난폭운전을 한 것은 아닙니다. 도저히 6시 40분까지 극장에 도착할 수 없다고 판단된 순간에는 영화가 시작된 후 입장해야겠다고 포기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극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 50분. 다행히 영화 시작전 10분간의 광고타임 덕분에 [어쌔신 : 더 비기닝]을 처음부터 볼 수 있었습니다. 극장에서의 10분 광고 타임이 이렇게 반가울 때도 있네요. 평소엔 광고가 너무 길어서 짜증이 났었는데...

 

멀티플렉스가 있는 건물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 45분.

차를 주차시키고 주차장에서 상영관까지 정말 발에 땀이 나도록 뛰었다.

덕분에 의사가 그토록 권장하던 유산소 운동을 오랜만에 한 듯... ^^

 

 

미치 랩은 첩보액션 시리즈의 새로운 영웅이 될 수 있을까?

 

[어쌔신 : 더 비기닝]은 미국의 소설가 빈스 플린이 2010년에 발표한 <미국의 암살자>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빈스 플린은 세일즈맨으로 일하다가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1993년 <임기종료>를 씁니다. <임기종료>는 미치 랩을 주인공으로한 소설은 아니지만 이후 발표되는 미치 랩 시리즈와 세계관을 공유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임기종료>는 5년간 60곳 이상의 출판사에서 거절만 당합니다. 결국 빈스 플린은 1997년 자비로 <임기종료>를 출판했고, 이후 입소문으로 <임기종료>는 베스트셀러가 되며 빈스 플린에게 명성을 안겨줍니다.

<임기종료>의 성공 이후 빈스 플린은 1999년 <권력의 이동>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미치 랩 시리즈를 발표합니다. 미치 랩 시리즈는 2009년까지 10편의 소설로 이어졌고, [어쌔신 : 더 비기닝]의 원작인 <미국의 암살자>와 <킬 샷>으로 <권력의 이동> 이전의 미치 랩을 담은 프리퀼 2편도 발표합니다. 하지만 빈스 플린은 2012년 <최후의 사나이>를 발표한 후 2013년 전립선암으로 사망합니다. 빈스 플린의 죽음 이후에도 미치 랩 시리즈는 카일 밀스가 이어 쓰고 있을 정도로 미국에서 미치 랩 시리즈는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고합니다.

그렇기에 미치 랩 시리즈가 영화화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릅니다. 빈스 플린은 생전 유명 미드 <24>의 작가로도 활동할 정도로 그의 글은 영화화에 최적화되어 있었고, '007 시리즈', '본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잇는 첩보 액션 시리즈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제작사인 CBS, 라이온스게이트가 미치 랩 시리즈 중 첫번째 소설이 아닌 첫번째 프리퀼인 <미국의 암살자>를 원작으로 했고, 국내 배급사에서 원제에도 없는 '더 비기닝'이라는 부제를 넣은 이유도 [어쌔신 : 더 비기닝] 이후 시리즈화될 가능성을 염두에 뒀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치 랩은 첩보 액션계의 새로운 영웅이 될 수 있을까?

[어쌔신 : 더 비기닝]의 북미 흥행성적은 3천6백만 달러,

월드와이드 성적은 현재까지 6천4백만 달러에 불과하다.

어쩌면 그 해답은 박스오피스 성적에 이미 나와 있을지도...

 

 

복수에 불타는 야생마 미치 랩

 

첩보액션 시리즈의 롱런 여부는 캐릭터의 매력에 달려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오랜 세월동안 여러 명의 배우를 교체하면서까지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 자체가 워낙 매력적이기 떄문입니다. 그렇다면 미치 랩은 어떨까요? [어쌔신 : 더 비기닝]은 스페인의 이비자섬의 평화로운 해변에서 약혼녀 카트리나에게 청혼을 하는 미치(딜런 오브라이언)의 행복한 모습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의 행복은 잠시 뿐입니다. 평화로웠던 해변은 무차별 총격 테러로 아수라장이 되고, 카트리나는 테러범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둡니다. 그리고 1년 8개월 후, 미치는 자신을 단련시키며 카트리나를 죽인 이슬람의 테러리스트에게 복수를 다짐합니다.

이렇듯 미치의 캐릭터 성격은 복수심에 불타는 통제불능의 청년입니다. 그는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지도부에 접근하기 위해 코란을 공부하고, 이슬람 테러에 지원합니다. 하지만 미치를 감시하던 CIA 부국장 아이린 케네디(산나 라단)에 의해 복수는 좌절되고, 오히려 CIA 스카웃 제의를 받습니다. 미치는 아이린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CIA 최고의 트레이너 스탠 헐리(마이클 키튼)의 혹독한 훈련 아래 최고의 요원으로 거듭납니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것은 미치의 단점과 장점입니다. 그의 단점은 복수라는 개인적 감정에 너무 치우쳐 있다는 점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개인적 감정에 치우쳐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할 경우 임무를 망칠 위험이 있습니다. 그와 반대로 그의 장점은 예측이 불가하다는 점입니다. 개인 훈련으로 뛰어난 전투 능력을 키웠지만, 군이나 첩보기관에서 정규 훈련을 받지 않았기에 그의 행동 양식은 다른 정규 요원과 다릅니다. 그렇기에 전 세계를 위협하는 1급 테러리스트 고스트(테일러 키취)와의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CIA 최고의 트레이너 스탠 헐리,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명령을 듣지 않는 미치 랩은 임무수행에 있어서 최악의 골칫덩어리가 될 수 있지만,

그와는 반대로 자신을 잘 아는 고스트를 잡는데 있어서 최고의 카드가 될 수 있음을...

   

 

매력적인 캐릭터는 일관성이 있어야만한다.

 

미치를 훈련하는데 있어서 스탠은 미치의 단점을 없애는데 주력합니다. 그는 미치가 개인적 복수심을 잊고 국가를 위한 임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그러한 훈련이 완료되었다고 판단되자 그를 테러리스트인 고스트 제거 작전에 투입합니다. 이 부분에서 한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미치와 고스트가 상당히 닮아 있다는 점입니다. 고스트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해군에 입대합니다. 그리고 스탠의 눈에 띄어 스탠을 아버지처럼 따르며 최고의 요원이 됩니다. 하지만 임무 수행 도중 스탠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 임무를 망쳤고, 결국 스탠에게 버려집니다. 고스트는 자신을 버린 스탠과 미국에 대한 복수를 벌어고 있는 것입니다.

스탠이 자신의 상관인 아이린이 미치를 적극 추천해도 그를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그렇기에 미치의 훈련에 있어서 그의 개인적 복수심을 없애는데 주력합니다. 미치를 제2의 고스트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하지만 영화는 미치의 변화를 그다지 꼼꼼히 잡아내지는 못합니다. 스탠이 미치를 고스트 제거 작전에 데려가기 직전에도 미치에게 카트리나 영상을 보여주며 도발하는데 미치는 역시나 그 도발에 넘어갑니다. 하지만 스탠은 미치에게 경고 몇 마디만 하고 그가 준비가 다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후 미치는 개인적 복수심을 접어버립니다.

[어쌔신 : 더 비기닝]이 그냥저냥 볼만한 첩보액션영화가 될 수는 있지만 시리즈로 제작될만큼 매력적인 첩보액션영화가 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미치 캐릭터의 일관성 부족 때문입니다. [어쌔신 : 더 비기닝]은 개인적 복수에 불타는 야생마 미치 랩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영화의 후반까지 일관성있기 이끌어내지 못하고 중반부터 미치와 고스트의 대결에 집중합니다. 고스트와의 대결에 미치의 개인적 복수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미치가 이를 통해 개인적 복수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면 영화의 전개가 더욱 깔끔했을텐데, [어쌔신 : 더 비기닝]은 뜬금없이 미치의 CIA 동료 아니카(시바 네가르)의 개인적 복수를 고스트와의 대결과 연결시켜 버립니다.

 

스탠에게서 어릴적 아버지에겐 느끼지 못했던 부성애를 바란 고스트.

하지만 스탠에게마저 버려지자 그는 복수의 화신이 된다.

그렇기에 약혼녀를 죽인 테러리스트를 향한 복수를 어느 순간 잊어버리는 마치 랩보다

스탠을 향한 복수의 일관성을 잊지 않는 고스트가 더 인상적이었다.

 

 

몇몇 인상적인 액션씬으로는 첩보액션 시리즈가 될 수 없다.

 

저는 솔직히 [어쌔신 : 더 비기닝]을 꽤 재미있게 봤습니다. 어쩌면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봤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어쌔신 : 더 비기닝]은 북미 흥행은 물론 우리나라 흥행에서도 실패하며 제작사와 배급사의 기대와는 달리 시리즈 제작이 물거품되는 분위기입니다. 오죽했으면 제가 일찌감치 극장이 아닌 다운로드로 보려고 계획을 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큰 기대없이 본다면 기본적인 재미는 확실히 보장되는 영화입니다. 캐릭터의 일관성, 전개의 짜임성은 부족하지만, 오락영화가 지니고 있어야할 긴장감은 어느정도 유지시켰습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 요트에서 미치와 고스트의 대결씬이 꽤 인상깊었는데, 요트가 흔들릴때마다 이리저리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도 서로를 향해 주먹을 날리는 장면은 흔들리는 배 위에서 바다 낚시를 하다 이리저리 몸을 가누지 못한 경험이 있는 저로써는 굉장히 사실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핵 폭발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블록버스터급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는 아니다보니 미해군의 군함이 미니어처라는 것이 너무 티가 나지만, 그래도 바닷속에서 터진 핵 폭탄과 그로 인해 종이배처럼 흔들리는 거대한 군함의 풍경은 할리우드 영화다운 스케일을 자랑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저는 미치 랩이 고스트와의 대결을 위해 잠시 개인적 복수를 잊었지만, 임무 완수 후 다시 개인적 복수에 나서는 장면이 짧게라도 나오길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미치는 자신의 복수보다는 아니카의 복수를 먼저 실행하더군요. 이란의 유력 대통령 후보를 대상으로... 이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미치 랩의 캐릭터적 매력이 아쉬운 영화였지만, 갑작스럽게 생긴 여유 시간을 떼우기에 [어쌔신 : 더 비기닝]은 더할나위없이 좋았던 영화였습니다. 

 

무차별 총격 테러에 의한 약혼녀의 죽음, 그리고 1년 8개월동안 매달린 복수

이러한 것들은 한순간 아무 것도 아닌게 되어 버릴 수 없다.

하지만 [어쌔신 : 더 비기닝]은 고스트에 의한 엄청난 핵 테러를 내세워

미치의 복수는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린 후 지워버린다. 

이것이 이 영화의 최대 실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