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마이클 그레이시
주연 : 휴 잭맨, 미셸 윌리엄스, 잭 에프론, 젠다야 콜맨, 레베카 퍼거슨
개봉 : 2017년 12월 20일
관람 : 2017년 12월 23일
등급 : 12세 관람가
연말엔 역시 뮤지컬 영화가 제격
아마도 2012년부터였을 것입니다. 매년 연말만 되면 뮤지컬 영화를 보는 것이 당연시되었던 것은... 2012년 12월은 18대 대선이 있던 해였습니다. 이명박 정권에 지칠대로 지친 저는 대한민국을 이끌 차기 대통령을 꼼꼼히 살펴본 후 선택해야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있었고, TV 토론회와 공약집을 꼼꼼히 살핀 후 박근혜는 대통령감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제 기대와는 달리 박근혜가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당시의 제 불안하고 씁쓸한 마음은 [레미제라블]의 영화 이야기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2012년의 불안감은 2016년 겨울에 결국 터져버렸습니다.)
2014년에는 [숲속으로], 2016년에는 [라라랜드]가 저와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2017년에도 어김없이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이 개봉했습니다. 저는 [위대한 쇼맨]을 보기 위해 미리 [위대한 쇼맨] 전용 예매권 3장을 구매했습니다. 구피는 피곤하다며 [위대한 쇼맨]을 보기 싫다고 선언했지만 저는 그러면 예매권 1장을 버려야한다며 구피를 억지로 극장으로 끌고 나왔습니다. 제가 이렇게 구피를 극장으로 끌고 나간 이유는 2016년 연말 [라라랜드]를 혼자 쓸쓸히 봤던 기억 때문입니다. 최소한 연말 뮤지컬 영화만큼은 온 가족과 함께 즐기고 싶었습니다. [위대한 쇼맨]은 그러한 제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켜준 영화입니다.
[위대한 쇼맨]은 서커스의 제왕 P.T. 바넘이라는 실존 인물을 소재로한 뮤지컬 영화입니다. 그는 1810년 미국 코네티컷주 베델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대중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쇼맨을 자신의 생업으로 삼으며 미국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입니다. 영화는 서커스의 화려함과 가난을 딛고 성공한 바넘의 성공담, 그리고 바넘의 서커스에 동원된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천대받던 이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름답고 흥겨운 음악과 더해져 2017년을 보내야 하는 제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져 줬습니다.
150여년전 서커스가 현재의 나에게 재미와 감동을 안겨주었다.
P.T. 바넘... 그는 누구인가?
[위대한 쇼맨]을 보기 전, 영화의 소재가된 P.T. 바넘이 누구인지 알고 간다면 영화의 재미가 훨씬 더해질 것입니다. 바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속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천재적인 선전술로 성공을 이끌어낸 인물입니다. 1983년 그의 최초의 히트작이라 할 수 있는 조이스 헤스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바넘은 헤스가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간호 노예였으며 나이가 무려 161세라고 주장했고, 사람들은 바넘의 선전술에 속아 조이스 헤스를 보기 위해 몰려 들었습니다. 하지만 조이스 헤스의 실제 나이는 80세였습니다. 얼마 후 사람들의 관심이 줄자 바넘은 스스로 신문사에 익명의 고발 투고를 보냅니다. 바넘이 대중을 속였다고 비난하면서 조이스 헤스는 사실 인조인간이라고 주장하는 편지였습니다. 이게 보도되자 다시 관람객이 크게 늘어났다고합니다.
바넘은 항상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진실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1842년에는 원숭이 미이라와 마른 물고기를 조악하게 붙여서 만든 피지 인어를 전시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1843년에는 톰 섬이라는 난쟁이와 함께 영국 버킹엄궁 빅토리아 여왕 앞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1850년에는 스웨덴의 나이팅게일로 불린 소프라노 가수 제니 린드를 미국에 초청해 전국 순회 장기공연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톰 섬과 제니 린드는 [위대한 쇼맨]에서도 주요 캐릭터로 등장합니다.
P.T. 바넘의 일생에서 가장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점보 코끼리에 대한 것입니다. 1882년 영국에서 사들인 점보 코끼리 순회 공연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낸 바넘. 하지만 1885년 9월에 점보 코끼리가 기차와 충돌해 죽자, 바넘은 점보가 새끼 코끼리를 구하려고 자기 몸을 던져 죽었다고 주장하며 코끼리의 가죽과 뼈를 박제해서 순외 전시를 했다고합니다. 그리고 앨리스라는 이름의 암코끼리를 사들여 점보의 짝이었다고 소개하며 점보의 뒤를 잇게 하였고, 그 덕분에 바넘은 점보가 살아있을 때보다 죽고 난 후 훨씬 많은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무엇이건 크기만 하면 점보라고 불렀다고하네요.
P.T. 바넘의 일대기를 읽다보면
솔직히 그의 이야기는 뮤지컬 영화보다 코미디 영화가 더 어울려보인다.
그런 바넘의 이야기에 감동을 엊은 이들이 더 위대해보인다.
바넘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나?
만약 바넘의 실제 이야기를 고스란히 영화로 옮겼다면 [위대한 쇼맨]은 영락없는 코미디 영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의 성공담은 거짓을 선전술로 포장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시킨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광고학자 제임스 트위첼이 P.T. 바넘에 대해서 '야바위의 왕자'라고 칭한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꾸며 놓습니다. 가난한 양복쟁이의 아들로 태어난 바넘(휴 잭맨)이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채러티(미셸 윌리엄스)와 사랑에 빠지고, 신분의 벽을 넘어 그녀와의 사랑을 이루어낸다는 영화 초반의 설정부터가 감동의 시작입니다.
이후 바넘은 아내와 딸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눈여겨 볼 것은 그의 유연한 사고방식입니다. 은행에서 거액의 대출을 받아 온갖 신기한 것들을 전시한 박물관을 오픈하는 바넘. 하지만 생각보다 관람객이 없자 그는 '살아 있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어린 딸의 조언을 받아들여 난쟁이, 수염이 난 여성, 뚱뚱보 등 남들과 다른 외모로 사람들에게 천대받던 이들을 끌어 모읍니다. 흑인 곡예사는 관객들이 우릴 싫어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바넘은 그것이 무관심보다 낫다라고 대답합니다. 평론가가 바넘의 공연에 악평을 쏟아내자 바넘은 오히려 혹평을 광고에 이용해 관람객의 호기심을 이끌어내기도합니다.
바로 그러한 유연함이 바넘을 성공의 자리에 앉힌 것일지도 모릅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박물관이 안되면 포기하고 좌절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넘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실패 속에서도 새로운 것을 찾아내 모험을 했습니다. 그는 특이한 외모를 지닌 사람들의 묘기에 그치지 않고, 상류층의 명사 필립 칼라일(잭 에프론)을 영입하고, 소프라노 가수 제니 린드(레베카 퍼거슨)와 순회 공연을 하는 등 계속해서 새로움에 도전합니다. 그 결과 위기를 맞이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영화의 제목 그대로 '위대한 쇼맨'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바넘의 성공은 신분의 벽을 뛰어 넘은 채러티와의 사랑에서부터 시작한다.
조금은 뻔한 클리셰이지만, 그만큼 효과적이다.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것.
바넘의 일생에서 가장 독특한 이력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스웨덴의 소프라노 가수 제니 린드와의 미국 순회 공연입니다. 서커스 단장과 소프라노 가수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조합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의 시대 상황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당시 미국사회는 고급문화와 저급문화의 분리가 일어나기 시작한 과도기였기 때문에 서커스 단장과 소프라노 가수의 만남은 그다지 이상할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실제 바넘은 제니 린드와의 순회 장기공연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쇼맨]은 제니 린드와의 순회 공연을 갈등의 시작으로 설정합니다. 발레리나를 꿈꾸는 딸이 친구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을 본 바넘은 딸들은 자신처럼 천대받게 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제니 린드와의 순회 공연에 집착합니다. 하지만 제니 린드와의 순회 공연은 스캔들로 인하여 파국을 맞이하고, 채러티는 바넘의 곁을 떠납니다. 그리고 바넘은 크나큰 손실을 입게 됩니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서커스 공연장에 큰 불이 나는 바람에 바넘의 성공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합니다. 상류층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 자신과 가족들이 상류층 대접을 받길 원했던 바넘. 하지만 채러티는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며 곁에 좋은 사람 몇만 있으면 된다고 충고합니다.
결국 문제는 초심입니다. 제 경우를 예로 들면... 저는 영화가 좋고, 글 쓰는 것이 좋아서 영화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어느순간 우수 블로그가 되고, 제 글에 베스트 딱지가 붙고, daum 메인에 뜨면서 내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저는 더 많은 인정을 받기 위해 초심을 잃고 베스트 딱지에 집착하게 되었고, 그로인하여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제 글이 메인에 뜨건 말건, 처음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 처럼 영화와 글 쓰는 것을 즐기고 있는 중입니다. 바넘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서커스가 좋아서 시작한 바넘. 하지만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제니 린드와의 순회 공연에 집착했고, 결국 초심으로 돌아가며 해피엔딩을 맞이합니다.
소프라노 가수 제니 린드와의 미국 순회 공연은
바넘에게 있어서 상류층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지름길이었다.
하지만 그가 그것에 집착하면 할수록 진정 그가 원했던 행복은 점점 멀어진다.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닌 나의 행복이 진정 중요하다.
[위대한 쇼맨]은 결국 행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바넘은 채러티와 사랑에 빠졌고, 그 사랑을 이루며 행복한 삶을 시작합니다. 그는 채러티와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서커스를 시작했고, 비록 비평가들의 악평과 일부 사람들의 손가락질에도 불구하고 서커스를 성공시킴으로써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지켜냅니다. 문제는 그가 상류층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잠시 착각했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인정받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지가 중요한 것이죠. 그것은 상류층 명사였으나 나중에 바넘과 손을 잡은 연극배우 필립 칼라일의 경우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필립 칼라일은 상류층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연극 배우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연극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공허함을 이기기 위해 술과 여자에 빠져 삽니다. 그런 그에게 바넘이 손을 내민 것입니다. 처음엔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포기하고 함께 서커스를 하자는 바넘의 어처구니없는 제안에 콧웃음을 칩니다. 하지만 결국 바넘의 손을 잡습니다. 자신이 지금 이룬 성공은 결코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분의 벽을 넘고 흑인 곡예사인 앤 휠러(젠다야 콜맨)와 사랑에 빠짐으로써 진정한 행복을 깨닫습니다.
바넘의 서커스 단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남과 다른 외모 때문에 집안에 숨어 살아야 했습니다. 어쩌면 바넘은 그들의 특이한 외모를 돈벌이에 이용한 파렴치한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최소한 바넘은 그들의 외모를 외면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세상 밖으로 이끌어냅니다. 집안에 숨어 살아야 했던 그들은 비록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지만, 세상 밖으로 당당히 나섬으로써 사회의 일원이 됩니다. 야바위의 왕자 P.T. 바넘의 이야기는 이렇게 뮤지컬로 옮겨지며 '위대한 쇼맨'의 이야기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영화가 가지고 있는 힘이고 마술입니다.
P.T. 바넘은 거짓에다가 선전술을 이용해 대중의 호기심을 이끌어낸 야바위의 왕자이다.
[위대한 쇼맨]은 야바위의 왕자인 P.T. 바넘의 인생에
흥겹고 아름다운 음악과 감동적인 스토리를 입혀 '위대한 쇼맨'으로 탈바꿈시킨다.
이러한 영화의 마법은 충분히 P.T. 바넘답다.
'영화이야기 > 2017년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과 함께 : 죄와 벌] - 웹툰은 웹툰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즐기자. (0) | 2018.01.02 |
---|---|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 - 혈통을 깨고, 완벽한 세대교체를 이뤄내다. (0) | 2017.12.28 |
[강철비] - 현실보다 낙관적인, 그래서 섬뜩한 남북한 전쟁 시나리오 (0) | 2017.12.21 |
[어쌔신 : 더 비기닝] - 개인적 복수심이 사라지니 그 자리에 애국심이 싹 트더라. (0) | 2017.12.12 |
[기억의 밤] - 스릴러적 완성도 대신 그날의 아픔을 이야기하다. (0) | 2017.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