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용화
주연 : 하정우, 차태현, 주지훈, 김향기, 김동욱
개봉 : 2017년 12월 20일
관람 : 2017년 12월 30일
등급 : 12세 관람가
이 영화가 이렇게 흥행성공할줄 몰랐다.
몇 년 전만해도 제 하루 일과는 웹툰을 읽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네이버에 연재중인 웹툰을 요일별로 세, 네개 정도 봤으니까요. 그 중에서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는 제가 가장 좋아하던 웹툰 중의 하나였습니다. 조금은 투박한 그림체의 웹툰이지만, 그 속에 담겨진 기발한 상상력과 속 깊은 이야기가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그렇기에 <신과 함께>가 영화로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과연 웹툰의 기발한 상상력이 어떻게 영화 속 특수효과로 재현될까? 웹툰의 매력넘치는 캐릭터들을 연기할 배우들은 누구일까? 그러한 기대 속에서 저는 김용화 감독의 [신과 함께 : 죄와 벌]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신과 함께 : 죄와 벌]의 베일이 조금씩 벗겨지자 기대감는 서서히 불안감으로 바뀌었습니다. 특히 원작 웹툰에서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김자홍이 영화에서는 정의감이 투철한 소방관으로 바뀌었다는 소식은 제 불안감을 부채질했습니다. 제가 웹툰 <신과 함께>를 좋아했던 이유는 김자홍이라는 캐릭터 때문입니다. 김자홍은 큰 말썽없이 초중고를 나오고, 대학 가고 군대 갔다오고, 회사에 들어가서 뼈빠지게 일하다가 음주로 얻은 간질환으로 사망한 30대 후반의 노총각입니다. 이러한 김자홍을 두고 진기한 변호사는 '딱히 기억나는 착한 일도, 나쁜 일도 없는 굴곡이라곤 없는 인생'이라고 표현합니다. 바로 우리들처럼 말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김자홍에 애착이 갔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김자홍에게 어린 여자아이를 구하다 죽은 소방관이라는 특별함을 입혀 버린 것입니다.
웹툰 팬들에게 가장 논란이 되었던 진기한 변호사 캐릭터가 영화에서 삭제된 것도 불안감을 증폭시켰습니다. 웹툰을 보신 분이라면 평범한 김자홍이 저승의 재판을 무사히 치루도록 돕는 진기한 변호사 캐릭터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을테니까요. 그렇기에 저는 [신과 함께 : 죄와 벌]이 김용화 감독의 전작인 [미스터 고]처럼 미지근한 흥행을 기록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제 예상과는 달리 [신과 함께 : 죄와 벌]은 개봉과 동시에 관객이 몰려 들었고, 영화가 재미있다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입소문 속에서 저희 가족은 2017년의 마지막 토요일 저녁에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원작 웹툰에서 평범한 회사원 김자홍은
화재현장에서 여자아이를 구하고 죽음을 맞이한 정의로운 소방관이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귀인(貴人)이라며 그를 치켜세우는 저승차사들의 감탄이
원작 웹툰 팬으로써는 낯설었다.
김자홍은 왜 특별해져야만 했을까?
솔직히 [신과 함께 : 죄와 벌]을 보며 제 마음은 계속 '긴가민가'였습니다. 원작 웹툰을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기에 김자홍 캐릭터 변경과 진기한 변호사 캐릭터 삭제는 영화를 보기 전부터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재미있다는 입소문과 폭발적인 흥행은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켰습니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며 저는 김용화 감독이 웹툰의 설정을 바꿀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는 것에 주력했습니다. 그 이유를 찾게 된다면 제가 아무리 원작 웹툰을 좋아하더라도 [신과 함께 : 죄와 벌]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김자홍 캐릭터가 평범한 직장인에서 정의감 투철한 소방관으로 바뀔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영화를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원작 웹툰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지옥의 풍경 속에서 평범해도 너무 평범한 김자홍이 특별해도 너무 특별한 진기한 변호사의 도움으로 무사히 해쳐나가는 것으로 재미를 만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웹툰의 지옥 풍경을 영화로 고스란히 옮기려면 특수효과비가 많이 들어갈 뿐더러 (그렇지않아도 제작비가 1, 2편 합계 400억이 넘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특수효과 기술로는 감당할 수가 없을 것이 자명했으니까요. 그렇기에 김자홍(차태현)의 캐릭터를 특별하게 만듬으로써 관객의 포인트를 지옥 풍경에서 김자홍에게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사실 [신과 함께 : 죄와 벌]의 지옥 풍경은 우리나라 특수효과치고는 꽤 잘 만든 편에 속합니다. 하지만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 때문에 눈높이가 높아진 관객의 기대감을 만족시키기엔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관람평에는 유치한 특수효과를 지적하는 글이 꽤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관객이 [신과 함께 : 죄와 벌]에 만족하는 이유는 김자홍의 특별한 이야기가 있었기 떄문입니다. 김자홍의 이야기가 영화의 주가 되다보니 특수효과의 부족함은 넘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영화의 특수효과는 호불호가 확연하게 갈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만 관객을 향해 질주할 수 있었던 이유는
김자홍의 이야기가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켰기 때문이다.
진기한 변호사는 왜 빠질 수 밖에 없었나?
원작 웹툰은 두 개의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저승에서는 김자홍이 진기한 변호사와 함께 저승의 재판을 받는 동안 이승에서는 저승삼차사의 리더 강림도령, 일직차사 해원맥, 월직차사 이덕춘이 원귀가 된 유성연 병장을 잡기 위해 나섭니다. 김자홍과 진기한 변호사의 이야기가 기발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재미를 유발시킨다면 원귀가 된 유성연 병장의 이야기는 특별한 사연을 통한 찡한 감동을 자아냅니다. [신과 함께 : 죄와 벌]은 이 두개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은 것입니다. 아마도 분량이 무궁무진한 웹툰과는 달리 러닝타임이 제한적인 영화의 한계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두 개의 이야기를 엮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러닝타임은 2시간 20분이었으니까요.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엮이다보니 유성연 병장은 김수홍(김동욱)으로 이름이 바뀌어 김자홍의 동생으로 설정되고, 강림(하정우), 해원맥(주지훈), 덕춘(김향기)은 죽은 자를 저승으로 이끄는 차사의 임무와 더불어 변호사의 임무까지 떠맡겨집니다. 김수홍이 원귀로 변하고, 그로인하여 김자홍의 재판이 위험해지자 이를 처리하기 위해 강림이 직접 김수홍의 원귀를 잡으러 나서는 것으로 전개가 수정된 것입니다. 이렇게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다보니 자연스럽게 진기한 변호사가 설 자리가 애매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영화의 러닝타임이 진기한 변호사 캐릭터 삭제라는 초강수를 둘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린 셈입니다.
진기한 변호사 캐릭터 삭제는 러닝타임이 제한적인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 때문에 어쩔 수 없다라고 이해해도 아무래도 원작 웹툰 팬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며칠 전 <신과 함께>의 드라마 제작이 공식 발표되었고, 드라마에서는 진기한 변호사가 등장한다고합니다. 2018년까지 대본 작업 후 2019년에 촬영한다고하니 아직 2년이라는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지만, 그래도 기다림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드라마로 제작되길 기원해봅니다.
유성연 병장은 김수홍 병장으로 이름을 바꾸어 김자홍의 동생이 된다.
이렇게 저승의 재판과 이승의 원귀 사연이 하나로 엮이면서
진기한 변호사는 사라졌지만, 강림이 열일하며 열심히 메꿔나간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기한 변호사가 그립지만...
나는 과연 일곱개의 지옥을 통과할 수 있을까?
김자홍이 특별해지는 바람에 김자홍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지옥에서의 재판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김자홍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만약 죽어서 김자홍처럼 지옥에 간다면 과연 일곱 개의 재판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라는 상상을 하면서 영화를 볼 수가 있었습니다. 영화 속 지옥 재판은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으로 이뤄져 있고, 일곱 개의 재판을 무사히 통과해야 환생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웹툰의 김자홍처럼 저 역시도 특별히 착한 일을 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나쁜 짓을 한 적이 없기에 다른 죄는 그다지 걱정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 한가지, 나태는 걱정됩니다. 제가 그다지 부지런한 편은 아니거든요. IMF 당시에도 구직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기 보다는 오히려 백수 생활을 즐기며 집에서 뒹굴거렸습니다. "취직하면 이런 여유를 다시는 누릴 수 없어."라는 핑계를 대며 무려 1년 이상을 부모님 속을 태우며 혼자 룰루랄라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만약 제가 죽는다면 당시의 나태에 대한 벌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영화에서는 구르는 돌에 깔리지 않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벌을 받던데, 과연 저는 몇 년이나 그러한 벌을 받아야만 하는 것일지...
한가지 눈여겨 볼 것은 살인에 대한 재판입니다. 영화에서는 간접적인 살인도 죄에 포함됩니다. 이에 해원맥은 "그러니까, 악플같은거 함부러 달고 그러지마."라고 충고합니다. 아마도 이 부분에 뜨끔한 분들도 많이 계실 듯... 오랫동안 블로그를 운영하다보니 악플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는 저로써는 해원맥의 따끔한 충고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자! 과연 여러분들은 7개의 지옥 재판을 무사히 통과하실 수 있나요? 그러한 관점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신과 함께 : 죄와 벌]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7개의 지옥과 7번의 재판
귀인 김자홍도 여러 위기를 겪는데
과연 나는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
이제 [신과 함께 : 인과 연]을 기대해보자.
알려진 바와 같이 웹툰 원작의 방대한 양 때문에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동시에 제작되었다고합니다. 그 중 원작의 저승편을 각색한 것이 [신과 함께 : 죄와 벌]이고, 이승편과 신화편을 각색한 것이 [신과 함께 : 인과 연]입니다. [신과 함께 : 인과 연]은 2018년 8월 1일 개봉 예정이라고하니 올 여름을 기대해봐야겠습니다. [신과 함께 : 죄와 벌]의 마지막 장면에서 [신과 함께 : 인과 연]의 주요 캐릭터 중 하나인 성주신으로 마동석이 잠깐 출연해서 객석을 술렁이게 했습니다. 마동석은 2016년 [부산행], 2017년 [범죄도시]와 [부라더]의 흥행 성공으로 대세 배우가 되었지만, [신과 함께 : 인과 연]의 캐스팅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핫한 배우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결국 [신과 함께 : 인과 연]은 행운도 뒤따르고 있는 셈입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신과 함께 : 인과 연]은 강림과 해원맥, 덕춘의 과거 이야기가 새롭게 밝혀질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신과 함께 : 죄와 벌]에서도 잠깐 모습을 드러냈던 허춘삼(남일우)과 손자 허현동(정지훈)의 이야기가 펼쳐질 전망입니다. 원작 웹툰에 의하면 허춘삼이 죽는 날이 되어 강림이 허춘삼을 데리러 가지만, 성주신을 비롯한 허춘삼 집의 신들이 강림을 막아섭니다. 물론 저승편이 [신과 함께 : 죄와 벌]에서 많은 각색으로 인하여 내용이 상당 부분 바뀌었듯이 이승편 역시 원작 웹툰 그대로 영화 속에 그려지진 않을 듯합니다. 게다가 신화편까지 어느정도 영화 속에 녹아들어야하니...
[신과 함께 : 죄와 벌]에서 김자홍은 동생 김수홍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지나간 슬픔에 새로운 눈물을 낭비하지 말자.'라고... 이에 저는 영화를 재미있게 즐길 권리가 있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지나간 웹툰의 재미를 기대하며 영화의 새로운 재미를 낭비하지 말자라고... 웹툰은 웹툰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즐길 수 있다면 [신과 함께 : 죄와 벌]에 이어 [신과 함께 : 인과 연]도 수 많은 각색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나는 네이버에 연재중인 <신과 함께 : 이승편>의 재연재를 보고 있다.
매주 목요일 두편씩 감칠맛나게 공개되는 재연재 덕분에
나는 매주 목요일이 기다려진다.
원작 웹툰팬을 위한 보너스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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