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양우석
주연 : 정우성, 곽도원
개봉 : 2017년 12월 14일
관람 : 2017년 12월 20일
등급 : 15세 관람가
2017년 연말 영화보기 계획
지난 주말에 웅이와 함께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와 [강철비]를 보고, 이번 주말에 [신과 함께 : 죄와 벌], [위대한 쇼맨]을 본 후, 다음 주말에 [1987]과 [원더]를 본다면 2017년 연말의 영화보기 계획은 완벽하게 마무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처음부터 꼬이고 말았습니다. 지난 주말에 가족 모임이 연달아 잡혀 버렸고, 설상가상으로 구피가 감기몸살에 걸림으로써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와 [강철비]를 보겠다는 계획이 어긋나버린 것입니다. 첫 단추를 잘못 꿰고나니 이번 주말에 봐야할 영화가 무려 네편이나 되어 버렸고, 결국 최소한 한편의 영화는 포기해야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고민 끝에 저는 [강철비]를 웅이와 함께 보는 것을 포기하고, 이번 주말이 오기 전에 주중에 저 혼자 볼 계획을 세웠습니다. 다행히 [강철비]는 웅이가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한다고합니다. 원래는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 [신과 함께 : 죄와 벌], [강철비] 중 한편을 골라서 단체 관람을 하는 것인데,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를 선택하려는 웅이에게 제가 [강철비]를 고르라고 꼬드겼습니다. 이렇게해서 이번 주말에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와 [위대한 쇼맨]을 보고, 다음 주말에 [신과 함께 : 죄와 벌]과 [1987]를 보면 [원더]를 포기하는 것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대충 2017년 연말 영화보기 계획도 순조롭게 마무리될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아쉬운 것은 [강철비]를 혼자 봐야한다는 점입니다. 웅이와 함께 [강철비]를 본 후 북한과 전쟁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대화를 나눠보려 했는데, 이렇게 각각 영화를 보게 되었으니 한반도의 전쟁에 대한 심층있는 대화는 조금 어려워졌습니다. 저희 부모님 세대와는 달리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저와 웅이 입장에서는 연일 북한의 전쟁 도발이 남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렇기에 더욱더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며, 한반도의 평화가 우리에겐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에 대해서 이번 주말에 웅이와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습니다.
현실에서의 전쟁은 컴퓨터 게임처럼 단순한 오락같은 것이 아님을
젊은 세대에게 우리는 설명해줄 의무가 있다.
북한 쿠데타 시나리오... 얼마나 현실성이 있나?
우선 [강철비]가 단순한 남북 관계를 소재로한 오락영화를 넘어서는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영화의 설정이 얼마나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강철비]는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난다는 설정으로부터 시작하는 영화입니다. 일단 이러한 설정은 충분히 현실 가능합니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인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했을 때부터 꾸준히 북한 군의 쿠데타 가능성이 제기되어 왔으니까요. [강철비]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쿠데타 발생 직후 북한의 은퇴한 최정예요원 엄철우(정우성)가 총에 맞아 치명상을 입은 북한 1호와 함께 남한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영화가 진행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북한의 쿠데타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영화에서처럼 북한 1호가 남한에 내려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요? 솔직히 저는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쿠데타가 벌어짐과 동시에 북한 1호는 쿠데타 세력의 타깃이 될 것이고, 그러한 상황을 무사히 넘긴다고해도 북한 1호가 남북한의 경계선을 걸리지 않고 넘는 다는 것은 영화에서처럼 우연에 우연이 겹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강철비]의 다른 설정은 '정말 저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꽤 현실적이었습니다.
실제로 권력기반이 약한 상황에서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권력을 승계받은 김정은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군의 핵심 인물들을 숙청했습니다. 게다가 김정은은 계속된 핵 실험으로 핵 무기가 거의 완성단계에 있음을 과시했지만 현재까지는 이를 위협용으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강철비]는 북한 군의 과격파가 이러한 북한 1호의 정책에 앙심을 품고 쿠데타를 일으키는 상황을 담고 있습니다.
만약 진짜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우리 정부의 대응은 어떠할까?
[강철비]의 현실성은 북한의 쿠데타 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의 대응에서도 찾을 수가 있다.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우리 정부의 대응은?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난다는 설정으로 시작한 [강철비]는 엄철우가 북한 1호를 남한으로 데려오면서 자연스럽게 영화의 무대가 북한에서 남한으로 바뀝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남한의 상황이 정권교체기로 설정되었다는 점입니다. 영화에선 특별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얼핏봐도 보수정권인 이의성(김의성)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가고, 진보정권인 김경영(이경영) 당선인이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정권인수 단계에 접어든 상황에서 북한의 쿠데타가 일어나고 남한을 향한 선전포고를 합니다.
보수정권의 이의성 대통령은 곧바로 미군에 선제공격을 요청합니다. 이의성의 입장에서는 북한이 먼저 선전포고를 한 현 시점이 미군의 군사력을 이용해서 북한의 현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진보정권인 김경영 대통령 당선인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맞섭니다. 이러한 상황은 비록 영화적 상황에 불과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보수정권과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으로 연결되는 진보정권의 특징을 잘 드러냅니다.
실제로 북한의 핵 도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보수정당은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제와 남한의 핵무장을 주장하고 있으며, 문재인 정부는 대화를 통한 평화적인 해법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북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정책이 더 실효성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강철비]에서는 김경영의 입장이 더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북한에 핵 공격을 감행하면 전쟁을 조기에 끝낼 수도 있지만 수 많은 일반인들의 피해는 막을 수 없을 것이며, 통일이 되더라도 과연 북한 국민들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에게 핵 공격을 퍼부은 남한을 동족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강철비]는 [의형제], [공조]처럼 단순히 남북한의 우정을 다룬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는 북한 최정예요원 엄철우와 남한의 외교안보수석 곽철우(곽도원)의 우정에 그치지 않고, 북한의 쿠데타와 남한의 복잡한 정치 상황을 이용해서 꽤 현실성있는 정치 스릴러로 완성되었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싸움은 현 시점에서 대한민국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전문가가 아니기에 다른 것은 잘 모르겠고...
보수와 진보가 힘을 합쳐 한반도에 전쟁이 벌어지는
최악의 상황만큼은 막아줬으면 좋겠다.
군사 강국 사이에 낀 대한민국의 슬픈 현실
영화가 후반부로 치닫으면서 [강철비]는 한가지 반전을 선사합니다. 그것은 바로 북한의 핵 미사일이 애초의 목적지인 남한의 대전이 아닌 일본을 향한 것입니다. 과연 북한의 쿠데타 세력인 리태한(김갑수)은 왜 핵 미사일을 일본에 쏘았을까요? 리태한은 그 이유에 대해서 미국이 남한보다는 일본의 말을 더 잘 듣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난다면 남한과 북한의 대결이 아닌 미국과 북한의 대결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한민국은 아직 전시작전통제권조차 없으니까요. 하지만 아직까지 북한의 군사력은 미국에 뒤처져 있습니다. 결국 북한의 입장에서는 남한과의 전쟁을 위해서는 미국의 발을 묶어야 하는데, 리태한의 말처럼 일본을 위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일본이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슬프지만 그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이 중국과 미국, 일본, 북한이라는 군사 강국 사이에서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입니다. 북한의 핵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요청으로 사드를 배치하자 중국이 반발하고, 그로인하여 우리나라는 꽤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기도 했습니다. [강철비]는 그러한 대한민국의 상황을 영화 속에 그대로 반영시킵니다. 미국에서 선제공격을 요청했던 이의성은 일본을 위협하는 북한의 태도에 미국이 한발 물러서자 미국의 국방장관에게 '한미 동맹보다 미일 동맹이 더 중요합니까?'라고 항의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미국 국방장관의 핀잔만 듣습니다.
[강철비]를 보며 섬뜩했던 것은 실제 영화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우리에겐 북한 1호가 없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강철비]에서는 그나마 엄철우가 북한 1호를 데리고 남한에 내려온 덕분에 우리에게 유리한 카드를 확보할 수 있었지만, 앞서 언급했던대로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난다고해도 북한 1호를 남한이 확보하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다른 설정들은 실제로 일어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우리에게 유리한 설정인 북한 1호 확보만큼은 실제로 일어날리가 없다는 것은 영화보다 오히려 현실이 더 막막함을 의미합니다.
북한에서 실제로 쿠데타가 일어나고 과격파가 정권을 잡으면
우리에겐 엄철우도, 북한 1호도 없기 때문에
영화보다 훨씬 암울한 상황을 맞이할 것이다.
남한의 철우와 북한의 철우
물론 [강철비]는 어쩌면 일어날지도 모를 북한의 쿠데타를 소재로 현실적인 이야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이 영화는 연말 성수기에 개봉한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입니다. 결국 흥행이 뒤따라줘야하는 영화인 셈입니다. 아마도 양우석 감독이 정우성이라는 톱스타를 전진배치한 이유도 흥행을 위한 포석 때문일 것입니다. [의형제]의 강동원, [공조]의 현빈 등 꽃미남 배우가 북한의 최정예 요원을 연기한 영화들은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으니까요.
여기에 엄철우와 곽철우의 우정도 조금은 뻔하지만 영화의 감동을 부추깁니다. 남북한의 두 사람이 서로 이름이 같다는 설정에서부터 양우석 감독은 남한과 북한이 한 민족임을 강조했고, 서로 사는 곳도, 이념도 다르지만 한반도의 전쟁을 막는다는 공통의 목표로 움직이며 우정을 쌓는 것으로 영화의 재미를 차곡차곡 쌓아갑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엄철우의 희생을 강조하며 마지막 감동 코드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변호인]으로 천만 관객을 동원한 양우석 감독의 힘입니다. 1980년대 초 부산을 배경으로 故 노무현 전대통령의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 [변호인]은 영화의 소재만 놓고 본다면 꽤나 무거운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양우석 감독은 송강호를 전진 배치시킴으로써 영화의 무거움을 살짝 덜어냈고, 영화의 후반부에 감동을 증폭시킴으로써 [변호인]을 천만 영화로 만들어냈습니다. [강철비]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호인]에서 송강호가 했던 역할을 이번엔 곽도원이 무리없이 소화해냈고, 마지막엔 감동까지 엊혀냅니다. 그럼으로써 북한의 쿠데타라는 무거움을 살짝 덜어내고 재미와 감동을 완성해냅니다.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를 불안감을 [강철비]는 잘 포착해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적 재미를 놓치지 않는 양우석 감독의 연출력이 놀랍기만 할 뿐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강철비]가 제2의 [변호인]이 될 자격이 충분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초반 곽철우는 북한의 핵 도발에 맞서 남한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한 역시 핵으로 무장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의 계획은 영화의 마지막에 실행에 옮겨진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그렇기에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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