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7년 아짧평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부정확한 기억과 태워버린 일기가 빚어낸 첫사랑 미스터리

쭈니-1 2017. 11. 29. 15:40

 

 

감독 : 리테쉬 바트라

주연 : 짐 브로드벤트, 샬롯 램플링, 빌리 하울, 프레야 메이버

개봉 : 2017년 8월 10일

관람 : 2017년 11월 28일

등급 : 15세 관람가

 

 

첫사랑의 어머니가 남긴 일기장

 

11월 28일 연차 휴가를 냈습니다. 11월 들어서 벌써 세번째 연차휴가입니다. 지난 두번의 연차휴가는 내 자신의 휴식을 위해 낸 것이기에 하루종일 극장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이번 연차휴가는 개인적으로 해야할 일이 있어서 낸 것이라 극장으로 달려갈 수 없었습니다. 그대신 짬짬히 시간을 내서 다운로드로 무려 세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보고는 싶었지만 극장에서 보기엔 애매했던 영화들. 그 중에서 제가 첫번째 영화로 선택한 영화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입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영국의 잔잔한 드라마입니다. 런던에서 빈티지 카메라 상점을 운영하는 깐깐한 노인 토니(짐 브로드벤트)에게 어느날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첫사랑 베로니카(샬롯 램플링)의 어머니 사라가 죽으며 자신에게 유산을 남겼다는 내용입니다. 이때부터 토니는베로니카를 처음 만났던 대학시절의 추억 속에 빠져듭니다.

제가 이 영화를 가장 먼저 선택한 이유는 궁금증 때문입니다. 만약 베로니카가 죽으며 뭔가를 남겼다면 이해가 되는데, 베로니카의 어머니인 사라가 뭔가를 남겼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녀가 남긴 것은 토니의 대학 동창인 아드리안의 일기장. 도대체 그들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이후 영화의 스포가 담겨져 있습니다.)

 

 

 

토니가 스스로 조작한 기억과 실제의 사건

 

사라가 남긴 아드리안의 일기장에 대한 궁금증은 저 뿐만 아니라 토니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토니는 이혼한 전처 마가렛에게 "난 베로니카와 잠자리조차 하지 않았어!"라며 베로니카가 자신의 인생에서 별 의미없는 존재임을 주장합니다. 토니의 궁금증이 해결되려면 아드리안의 일기장을 받아보면 될텐데, 문제는 베로니카가 토니에게 아드리안의 일기장을 넘겨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토니는 수소문해서 베로니카를 만나지만, 베로니카는 토니에게 의문의 편지 한장만 남겨준채 싸늘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자! 그렇다면 토니의 기억부터 되짚어 보겠습니다. 젊은 토니(빌리 하울)는 베로니카(프레야 메이버)와 사랑에 빠졌고, 그녀 가족의 집에 초대까지 받습니다. 그곳에서 베로니카의 매력적인 어머니 사라를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토니와 사라의 어머니 관계엔 그 어떤 사건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토니는 자신의 절친 아드리안이 베로니카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고, 베로니카와의 관계마저도 끊어버립니다. 토니는 베로니카와의 관계에서 그 이상도 이하도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베로니카가 토니에게 남기고간 편지에는 다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토니는 자신이 아드리안과 베로니카의 사이를 쿨하게 인정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아드리안에게 보낸 편지에는 온갖 저속한 저주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아드리안은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아직은 풀리지 못한 아드리안의 사정

 

영화의 결말에서 토니는 사라와 아드리안 사이에서 태어난 저능아 아들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베로니카에게 자신이 젊은 시절 보낸 편지에 대해서 사과를 하고 아드리안의 일기장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영화가 그냥 그렇게 끝나버렸지만 제겐 아직 남아 있는 의문점이 한두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분명 사라는 토니에게 은밀한 유혹의 손길을 보냈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알았기에 토니는 아드리안에게 저주의 편지를 보내며 차라리 베로니카가 아닌 사라와 사귀는 것이 어떻냐며 빈정댔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드리안과 사라의 관계에 대한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어쩌다가 아드리안은 사라의 유혹에 넘어간 것일까요? 그리고 사라는 왜 토니에게 아드리안의 일기장을 남긴 것일까요?

이 모든 해답은 아드리안의 일기장에 담겨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아드리안의 일기장을 공개하지 않은채 서둘러 영화를 끝내버립니다. 그럼으로써 아드리안과 사라, 사라와 토니의 관계에 대한 의문만 남겨 놓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영화를 보고나서 차라리 원작소설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에는 영화에서 미처 하지 못한 그들의 사연이 자세히 나와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소설과 영화는 서로 결말이 다르다고합니다.)

 

 

 

헨리8세와 그의 시절에 일어난 역사에 대한 논란

 

영화의 초반, 교수가 헨리8세 시절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학생들에게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헨리8세는 복잡한 여성편력과 여섯번의 결혼을 했고, 아내 가운데 둘을 처형한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왕입니다. 그의 집권기간동안 늘어나는 왕실의 비용과 과도한 화폐 발행으로 심각한 인플레이션 현상을 겪었으며, 공유지의 사유재산화로 농민에 대한 수탈이 극심했다고합니다. 영화 [천일의 스캔들]과 미드 <튜더스 : 왕의 여자들>에서 그러한 헨리8세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아드리안의 대답입니다. 아드리안은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인이라며 우리가 헨리8세에 대해서 논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여자친구의 임신 때문에 자살한 친구를 예로 들며 그가 죽은 진짜 이유는 죽은 그만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그러한 아드리안의 역사에 대한 명쾌한 대답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도 유효합니다. 아드리안과 사라의 관계, 아드리안의 자살 등 노년의 토니를 혼란에 빠뜨린 문제들은 아드리안만이 답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드리안의 비밀을 간직한 일기장에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베로니카는 일기장을 태워버렸다고 말합니다. 결국 태워버린 아드리안의 일기장으로 모든 진실은 묻힙니다. 글쎄요. 진실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영화를 끝맺음하는 것이 리테쉬 바트라 감독의 연출의도라면 완벽하게 성공한 셈입니다. 역시 원작소설을 읽어야만 하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