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7년 아짧평

[윈드리버] - 장소를 통해 분위기를 압도하다.

쭈니-1 2017. 11. 8. 16:22

 

 

감독 : 테일러 쉐리던

주연 : 제레미 레너, 엘리자베스 올슨

개봉 : 2017년 9월 14일

관람 : 2017년 11월 5일

등급 : 15세 관람가

 

 

우리가 테일러 쉐리던 감독을 주목해야하는 이유

 

[윈드리버]는 제70회 칸영화제에서 테일러 쉐리던 감독이 신인 감독상이라 할 수 있는 주목할만한 시선의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입니다. 테일러 쉐리던 감독은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 [로스트 인 더스트]의 각본으로 미국내 각종 영화제의 각본상 후보에 올랐었고, 첫 연출작인 [윈드리버]로 칸 영화제를 수상하기까지 했으니 앞으로 그의 행보를 기대해볼만합니다.

앞선 영화에서 드러난 테일러 쉐리던의 특징은 명확합니다. 영화의 분위기는 소란스럽지 않고 차분하지만, 숨이 막힐 정도로 건조하고 암울합니다. 특히 드니 빌뇌브 감독의 연출력이 빛나는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는 테일러 쉐일던의 특징을 잘 드러냅니다.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는 미국 텍사스 주 엘패소와 리오그란데 강을 끼고 마주한 멕시코의 국경도시 시우다드 후아레즈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시우다드 후아레즈는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마약 도시로 악명이 높은데, 영화는 FBI 요원 케이트(에밀리 블런트)를 중심으로 마약조직과의 전쟁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소재를 가진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법과 원칙이 통하지 않는 늑대의 도시의 시우다드 후아레즈의 분위기를 통해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윈드리버]는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와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입니다. [윈드리버]의 배경인 '윈드 리버' 산맥의 인디언 보호지구는 시우다드 후아레즈만큼이나 법과 원칙이 통하지 않는 늑대의 도시입니다. 사람이 죽어도 발견하기 어려운 설원, 그 곳에서 신입 FBI요원 제인(엘리자베스 올슨)은 지역 토박이이자 야생동물 헌터인 코리(제레미 레너)의 도움을 받으며 소녀를 살해한 범인을 뒤쫓습니다. 

 

 

 

평범한 사건의 진실, 하지만 숨막히는 영화의 분위기

 

솔직히 [윈드리버]의 내용은 아주 평범합니다. 설원 한가운데에서 맨발의 인디언 소녀 시체가 발견됩니다. 소녀의 시체를 발견한 이는 야생동물 헌터 코리. 그런데 그는 3년전 비슷한 사건으로 딸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FBI요원인 제인이 파견되는데, 그녀는 코리에게 도움을 청하고, 딸의 복수를 위해 코리 역시 기꺼이 제인의 일행이 됩니다. 인적이 드문 마을의 속사정을 잘 아는 코리 덕분에 제인은 빠른 속도로 사건의 진실에 접근합니다. 하지만 코리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복수일 뿐입니다. 

[윈드리버]는 범인을 추리해내야하는 스릴러 영화는 아닙니다. 솔직히 소녀가 어쩌다 죽었는지도 영화의 첫 오프닝 장면에서 공개됩니다. 맨발로 설원에서 뛰게 되면 폐가 얼어붙어 피를 토하게 되고, 피가 기도를 막아버리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합니다. 그렇다면 인디언 소녀는 왜 맨발로 설원을 뛴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을 뒤쫓는 공포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가기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고, 그러는 사이 그녀의 폐는 얼어붙어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게된 것입니다. 그리고 토리는 똑같은 방법으로 범인에게 복수를 합니다.

이렇게 영화의 내용만 놓고본다면 김 빠지는 스릴러 같지만 막상 영화는 팽팽한 긴장감을 간직합니다. 하얀 설원은 빠져나갈 수 없는 지옥의 굴레 같았고, 그곳에서는 조상의 비옥한 땅을 빼앗기고 척박한 땅으로 내쫓긴 인디언들의 분노가 서러 있습니다. 너무 고요해서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가 그러했듯이 테일러 쉐리던 감독은 '윈드리버'라는 장소를 통해 영화의 분위기를 압도합니다. 

 

 

 

넘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배우의 연기

 

[윈드리버]가 우리나라에 개봉했을 때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각각 호크아이와 스칼렛 위치를 연기한 제레미 레너와 엘리자베스 올슨이 주연을 맡았다는 점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처럼 오락영화로써의 재미를 기대하고 보신 분들이라면 너무 건조한 영화의 분위기에 당혹하셨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넘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제레미 레너와 엘리자베스 올슨의 연기를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출연하기 전, 제레미 레너와 엘리자베스 올슨이 연기파 배우였음을 감안한다면 참 반가운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윈드리버]는 테일러 쉐리던이 각본을 쓴 [로스트 인 더스트]가 생각나기도 했던 영화입니다.

[로스트 인 더스트]는 [스타 트렉 : 더 비기닝]에서 제임스 커크 함장 역을 맡으며 스타덤에 오른 크리스 파인을 내세운 영화입니다. 하지만 [로스트 인 더스트] 역시 오락 영화적인 재미보다는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벼랑 끝에 내몰린 형제의 강도 행각을 다룬 무미건조한 범죄 스릴러 영화였고, 크리스 파인의 절제된 연기는 굉장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윈드리버]는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와 [로스트 인 더스트]를 쏙 빼다박은 절대 부인할 수 없는 테일러 쉐일던의 특기가 고스란히 묻어난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