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타이카 와이티티
주연 : 크리스 헴스워스, 마크 러팔로, 톰 히들스턴, 테사 톰슨, 케이트 블란쳇
개봉 : 2017년 10월 25일
관람 : 2017년 10월 29일
등급 : 12세 관람가
비장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의외로 유쾌했던...
2015년 개봉한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토르'(크리스 햄스워스)는 아스가르드의 미래를 보게 됩니다. 자신에 의해 아스가르드가 멸망하는 라그나로크의 충격적인 풍경을 보게된 '토르'는 울트론을 무찌르고 라그나로크를 막기 위해 머나먼 여행길에 오릅니다. '토르'가 슈퍼히어로 등록제를 두고 '어벤져스'끼리 대결을 펼쳤던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입니다. '토르'와 함께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 나오지 않은 히어로가 또 있습니다. 바로 '헐크'(마크 러팔로)입니다. '헐크' 역시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울트론을 무찌른 후 퀸젯을 타고 홀연히 머나먼 곳으로 떠나버립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헐크'의 존재가 인류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한 브루스 배너의 결단이었습니다.
[토르 : 라그나로크]의 개봉 소식을 접한 저는 이번 영화가 상당히 비장한 분위기로 진행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이전 영화인 [토르 : 천둥의 신], [토르 : 다크 월드]의 분위기는 약간의 코믹함이 있었지만, [토르 : 라그나로크]에서는 그러한 코믹함이 발 붙일 틈이 없을 것이라 단언한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스가르드의 멸망을 다룬 라그나로크가 이번 영화의 주요 테마이고, '토르'와 함께 팀을 이룰 '헐크'의 경우 <헐크 : 플래닛 헐크>를 밑바탕으로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헐크 : 플래닛 헐크>를 읽으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헐크 : 플래닛 헐크>는 '헐크' 입장에서 너무나도 아프고 슬픈, 그리고 최강의 분노를 일으킬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토르 : 라그나로크]의 예고편이 공개되면서 제 예상이 틀렸음을 예감하게 되었습니다. 영화가 공개되자 지금까지의 마블 시네마틱유니버스 중에서 가장 코믹한 분위기의 영화라는 의외의 감상평이 속속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라그나로크와 <헐크 : 플래닛 헐크>라는 비장감이 뚝뚝 떨어지는 소재를 어떻게 코믹하게 만들어냈는지... [토르 : 라그나로크]를 보러 가는 제 마음 속에서는 궁금증이 폭발 일보직전까지 갔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터져나오는 여유있는 웃음
지난 일요일 오전, 저희 가족은 아침 일찍 일어나 [토르 : 라그나로크]를 보러 가기 위해 부지런히 준비를 했습니다. 주말 늦잠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며 영화보기를 거부하던 구피마저도 [토르 : 라그나로크]만큼은 봐야한다고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꽃단장을 하는 보기 드문 광경까지 펼쳐졌습니다. 그렇게 저희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가슴 두근거림과 함께 시작한 [토르 : 라그나로크]는 소문 그대로 굉장히 웃긴 영화였습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숙적 수르트에게 인질로 잡힌 '토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토르'는 여유있게 웃으며 수르트에게 농담을 건네기도합니다. 최악의 상황에서의 여유있는 농담... 이것이 [토르 : 라그나로크]가 마블 시네마틱유니버스 중에서 가장 웃긴 영화로 등극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아스가르드에 라그나로크를 일으킬 수 있는 수르트의 투구를 빼앗아 아스가르드로 귀향한 '토르'. 하지만 아스가르드의 상황 역시 최악이긴 마찬가지입니다. [토르 : 다크 월드]에서 오딘(안소니 홉킨스) 행세를 하며 아스가르드의 왕좌를 가로챈 로키(톰 히들스턴)가 여전히 오딘 행세를 하며 거들먹거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찌보면 '토르' 입장에선 로키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할 상황이지만, '토르'는 이번에도 여유롭게 웃으며 로키를 제압합니다. 이 장면에서 눈여겨 볼 것은 로키의 무용담을 과장되게 포장한 아스가르드의 연극인데, 연극속 로키는 맷 데이먼이, '토르'는 크리스 햄스워스의 친형인 루크 햄스워스가, 오딘 역에는 샘 닐이 카메오로 출연했습니다.
로키에 의해 지구로 귀양간 아버지 오딘을 찾아 나선 '토르'. 그런데 이 장면 역시 코믹합니다. 로키가 오딘을 보냈다는 양로원은 철거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지구를 지키는 마법사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등장하여 깨알같은 웃음을 선사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맘껏 웃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심각한 장면이 이렇게 웃겨도 되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아마도 장난끼 가득한 '토르'이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요?
<헐크 : 플래닛 헐크>는 어떻게 코믹하게 변환되었나?
오딘의 첫째 딸이자, '토르'의 누나인 헬라(케이트 블란쳇)의 등장으로 '토르'는 묠니르를 잃는 위기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는 사카아르라는 행성에 불시착합니다. 사카아르는 <헐크 : 플래닛 헐크>의 주요 무대인 행성입니다. 여기에서 잠깐 <헐크 : 플래닛 헐크>의 주요 내용을 짤막하게 소개하겠습니다. <헐크 : 플래닛 헐크>에서 '헐크'가 사카아르 행성에 불시착한 이유는 동료라 생각했던 '어벤져스'의 배신 때문입니다. 리드 리처드, 토니 스타크, '닥터 스트레인지'는 '헐크'로부터 인류를 보하기 위해 '헐크'를 우주로 내쫓고, 그렇게 '헐크'는 사카아르 행성에 버림받습니다. 그곳에서 '헐크'는 복종 디스크를 강제로 삽입된채 노예로 팔려가 사카아르 최강의 검투사가 됩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헐크'는 새로운 동료를 만나는데 약삭빠른 미에크, 무시무시한 브루드, 현명한 바위인간 코르그, 섀도 전사 히로임, 반역을 일으킨 귀족 출신 엘로이와 그녀의 충직한 근위병 스키가 '헐크'의 새로운 동료가 됩니다. '헐크'는 동료들과 함께 사카아르의 독재자 레드킹을 몰아내고, 레드 킹의 근위병이었던 여전사 케이에라와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사카아르에서 '헐크'의 행복한 나날을 길지 못했습니다. '헐크'가 타고온 퀸젯의 폭발로 모든 것을 잃은 '헐크'. 그는 한때는 동료였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 '어벤져스'에 복수하기 위해 새로운 동료들과 지구로 향합니다. 그리고 <헐크 : 월드 워 헐크>로 이어집니다.
[토르 : 라그나로크]는 <헐크 : 플래닛 헐크>를 코믹하게 옮겨 놓았는데, '헐크'가 '어벤져스'의 배신으로 사카아르 행성에 간 것이 아닌, 스스로의 결정이었고, 미에크, 코르그는 [토르 : 라그나로크]에서 코믹한 조연 역할을 합니다. 특히 곤충이라며 멸시당하고, 이용당했던 미에크의 분노, 복수는 온데간데 없고, 코르그의 실수로 밟혀 죽은 존재감 없는 미에크만 남았습니다. 스스로의 선택으로 사카아르 행성에 온 '헐크'는 '어벤져스'에 대한 분노 대신 '토르'를 도와 헬라와 맞서 싸우는 전사의 길을 선택합니다. <헐크 : 플래닛 헐크>가 '헐크' 단독 영화로 비장미 넘치게 그려지길 원했던 저로써는 아쉬운 일이지만, 그래도 '토르'와 '헐크'의 협업은 [토르 : 라그나로크]의 최고 재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 캐릭터의 퇴장,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
2008년 [아이언맨]으로부터 시작된 마블 시네마틱유니버스도 어느덧 10년이 되어갑니다. 그러는 와중에 1세대 '어벤져스'인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가 3편의 시리즈로 완성되었고, [토르 : 라그나로크]로 '토르' 역시 마지막 3편을 완결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앤트맨',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닥터 스트레인지', '블랙 팬서' 등 새로운 '어벤져스'가 등장했고, 2018년 개봉 예정인 세번째 '어벤져스' 영화인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에는 무려 29명의 슈퍼 히어로가 등장할 예정이라고합니다.
물론 마블 시네마틱유니버스의 열렬한 팬 입장에서 영화에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가 많으면 많을 수록 즐길거리도 많아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무작정 슈퍼 히어로의 수를 늘릴 수만은 없습니다.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에는 무려 29명의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지만 그들 중 몇은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루머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토르 : 라그나로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새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메인 빌런인 헬라를 비롯해서 사카아르 행성의 지배자인 그랜드마스터(제프 골드브럼), 스컬지(칼 어번)그리고 아스가르드의 전설적인 여전사 발키리(테사 톰슨)가 [토르 : 라그나로크]에 새롭게 합류하였습니다. 특히 그랜드마스터와 발키리는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됩니다.
이렇게 새롭게 합류한 캐릭터가 있다면 아쉽게 하차하는 캐릭터도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저는 '토르'의 아스가르드 동료들인 워리어스 쓰리, 볼스태그, 호건, 팬드럴이 헬라에게 순식간에 죽음을 당하는 장면이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들은 '토르'와 함께 뭔가 대단한 활약을 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이야... 게다가 '토르'의 연인인 제인(나탈리 포트만)은 그저 간단히 '토르'와 헤어진 것으로 나오고, 원작 마블 코믹스에서 '토르'의 아스가르드 연인인 시프(제이미 알렉산더)는 등장조차 하지 않습니다.
넌 망치의 신이 아니라 천둥의 신이야.
비록 [토르 : 라그나로크]는 마블 시네마틱유니버스 중 최고의 웃긴 영화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격적인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정리해보자면... 첫번째는 오딘의 죽음입니다. 사실 오딘의 죽음은 이미 예견된 일입니다. [토르 : 천둥의 신]에서 이미 한번 오딘의 잠에 빠져 들었고, [토르 : 다크월드]에서는 로키에게 왕좌를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결국 [토르 : 라그나로크]에서는 영원히 아내인 프리가(르네 루소)의 곁으로 떠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딘은 헬라와의 싸움에서 힘겨워하는 '토르'에게 결정적 힘을 줍니다. '네가 망치의 신 토르냐?', '아스가르드는 장소가 아니라 백성이다.' 등의 명대사를 남기는 것 역시 오딘입니다. 역시 존재감 갑!!!
두번째 충격적인 장면은 묠니르의 파괴입니다. '토르'의 절대적인 무기이자 힘의 원천인 묠니르. 하지만 헬라는 아주 간단히 묠니르를 파괴해버립니다. 이에 '토르'는 패닉상태에 빠져 듭니다. 그것은 관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묠니르없는 '토르'는 [토르 : 천둥의 신]처럼 인간보다 조금 우월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비록 묠니르가 파괴되었어도 다시 '토르'에게 새로운, 그리고 더 막강한 묠니르가 생길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묠니르는 이제 더이상 없습니다. 대신 '토르'가 망치의 신이 아닌, 천둥의 신이라는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잠시 망각했던 당연한 자각만이 남았습니다.
세번째 충격적인 장면은 아스가르드의 멸망입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토르'가 라그나로크를 막고 아스가르드를 구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맺음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국내 정발된 마블 코믹스인 <토르 : 옴니버스>에서 라그나로크는 일어났고, 아스가르드의 사람들은 오클라호마의 사막에 새로운 아스가르드를 재건해냅니다. 그러면서 '아스가르드는 장소가 아니라 백성이다. 아스가르드인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아스가르드이다.'라는 오딘의 말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어쩌면 [토르 : 라그나로크]가 비장미 넘치는 소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있는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비록 아스가르드는 사라졌지만 토르에겐 아스가르드인과 지구라는 새로운 아스가르드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쿠키영상에서 지구로 향하던 아스가르드의 난민들은
타노스의 함대와 마주하게 된다.
부디 아스가르드 난민들이 타노스 함대를 넘어 지구에 안착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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