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드니 빌뇌브
주연 : 라이언 고슬링, 해리슨 포드, 아나 디 아르마스, 자레드 레토
개봉 : 2017년 10월 12일
관람 : 2017년 10월 14일
등급 : 15세 관람가
이 영화의 15세 관람가 등급이 놀랍다.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다렸던 [블레이드 러너 2049]가 드디어 개봉을 했습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82년에 만들어진 SF 걸작 [블레이드 러너]의 35년만의 속편으로 [컨택트]의 드니 빌뇌브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제 기대감을 더욱 부풀려 놓았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웅이와 함께 [블레이드 러너]를 복습했고, 토요일 밤에 온 가족이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나서 저는 구피한테 된통 혼나고 말았습니다. 구피는 "어떻게 이런 영화를 웅이한테 보여줄 수 있어? 아빠 자격이 없어."라며 큰 소리를 쳤고, 영화가 끝나고 극장에서 집까지 걸으며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커녕 어색한 분위기 속에 서로 땅만 보고 묵묵히 걸아야만 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영화의 노출 수위입니다. 전 [블레이드 러너 2049]의 관람등급이 분명 15세 관람가이기 때문에 별다른 고민없이 웅이를 극장에 데려왔습니다.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 2049]는 15세 관람가 등급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노출 수위가 강했습니다. 먼저 월레스(자레드 레토)가 리플리컨트 신제품을 살펴보는 장면에서 나체의 여성 리플리컨트가 등장하는데, 그녀의 가슴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저를 화들짝 놀라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2049년 길거리 사창가의 풍경이 비추며 섹스를 나누고 있는 남녀의 실루엣이 나오기도 하고, '블레이드 러너'인 K(라이언 고슬링)의 유일한 친구이자 연인인 인공지능 홀로그램 조이(아나 디 아르마스)는 창녀의 몸을 빌어 K와 섹스를 나눕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영화의 후반부엔 거대한 조이의 나체 홀로그램이 나오는데, 역시나 조이의 가슴 부분이 클로즈업되어 화면 가득히 나옵니다. 예전에는 여성의 가슴이 나오면 무조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었는데, 요즘은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성적 표현에 대해서 관대해진 것인지... 덕분에 저는 정말 오랜만에 분노에 불타는 구피의 화난 표정을 보며 죄인처럼 머리를 조아려야만 했습니다.
2019년에서 30년이 흐른 지구의 풍경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인 2019년에서 30년이 지난 204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049년의 풍경은 2019년과 사뭇 다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계 식민 행성인 오프월드로 이주했고, 오프월드에 갈 여유가 되지 않거나 건강상 문제가 있는 몇몇 사람들만 지구에 남아 있습니다. 리플리컨트 역시 진화되었는데 [블레이드 러너]의 리플리컨트 모델은 타이렐사가 제작한 수명이 4년으로 제한된 넥서스 6기종이라면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월레스사가 제작한 신 모델로 수명에 제한이 없지만 인간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도록 유전자 조작이 이뤄졌습니다. 윌레스는 이들 모델을 천사라 일컬었고, 사람들은 껍데기라며 멸시합니다.
K는 '블레이드 러너'이면서 윌레스사가 제작한 리플리컨트입니다. 그의 임무는 과거 타이렐사가 제작한 넥서스 8 모델 중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난 리플리컨트 제거입니다. 넥서스 8 모델의 문제점은 넥서스 6과는 달리 수명에 제한이 없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블레이드 러너]에서 타이렐 박사가 로이에 의해 죽음을 당하자 오너를 잃은 타이렐사의 간부들이 돈에 눈이 멀어 수명 제한이라는 안전장치를 없엔 신모델 넥서스 8을 출시했고, 그것이 2049년에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K는 단백질 농장에 숨어 있던 넥서스 8 모델 리플리컨트인 사퍼 모튼(데이브 바티스타)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30년전 여자 리플리컨트의 유골을 발견합니다. 놀랍게도 이 유골에는 출산의 흔적이 있는데, 이는 리플리컨트도 임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경찰 조직은 이를 덮기 위해 K에게 30년전 태어났을 리플리컨트 제거 명령을 내리고, 타이렐이 생전에 벌인 비밀 프로젝트를 캐고 있던 월레스는 자신의 말에 절대 복종하는 리플리컨트 러브(실비아 획스)로 하여금 K를 뒤쫓게합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봐야할 세 편의 단편 프리퀼
이렇듯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블레이드 러너]의 2019년에서 무려 30년의 시간을 건너뜁니다. 그 사이 수 많은 사건들이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2022년에 일어난 대정전입니다. 대정전으로 인하여 이전의 자료들이 모두 사라졌고, 이로인하여 K는 진실에 접근하는데 애를 먹습니다. 그렇다면 영화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대정전은 어쩌다가 일어나게 된 것일까요? 그에 대한 해답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프리퀼 단편 [블레이드 러너 2022]에 담겨 있습니다.
타이렐사가 수명제한이 없는 넥서스 8 모델을 출시한 것이 대정전의 시발점이 됩니다. 왼쪽 눈의 인식코드를 빼면 인간과 다른 것이 없는 새로운 리플리컨트에 위협을 느낀 인간들은 인간 우월주의 운동을 벌였고, 리플리컨트 등록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서 리플리컨트를 식별하고 무자비하게 학살합니다. 이에 리플리컨트는 살아남기 위해 리플리컨트 등록 데이터베이스를 파괴하기로 결심하는데 EMP 폭탄을 이용해 대정전 사태를 발생시키고, 조직을 결성하여 정보 보관소의 백업을 파괴합니다. 이로써 2022년 이전 리플리컨트에 대한 모든 정보가 사라집니다. 대정전 사태가 리플리컨트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돌고, 정부는 리플리컨트 생산 자체를 금지시킵니다.
그렇다면 월레스사는 어떻게 타이렐사의 뒤를 이어 리플리컨트를 제작하게 된 것일까요? 이는 두번째 프리퀼 단편인 [블레이드 러너 2036]에 담겨 있습니다. 유전자 변형 식량을 통해 식량난의 단번에 해결한 월레스는 기존 타이렐사의 모델과는 달리 인간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신모델을 정부 관계자들에게 선보입니다. 그가 제작한 리플리컨트 천사는 월레스의 명령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를 지켜본 정부 관계자들은 결국 리플리컨트 금지령을 해제합니다.
이 모든 것은 데커드와 레이첼의 사랑에서 시작되었다.
마지막 프리퀼 단편은 [블레이드 러너 2048]로 사퍼 모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K가 사퍼 모튼을 제거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사퍼 모튼은 어쩌다가 자신의 위치가 노출되었을까요? [블레이드 러너 2048]을 보면 사퍼 모튼은 불량배들에 의해 강간 위험에 빠진 모녀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아닌 리플리컨트임이 발각됩니다. 모녀의 위기를 바라만 보며 구경만하는 인간들과는 달리 자신의 정체가 발각되는 위기 속에서도 모녀를 구출한 사퍼 모튼. 과연 인간과 리플리컨트 중 누가 더 인간다움을 가지고 있는지 [블레이드 러너 2048]은 관객에게 묻습니다.
이 세 편의 프리퀼 단편을 감상했다면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즐기기 위한 50%의 준비가 끝난 셈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50%는 [블레이드 러너]를 봐야 채울 수가 있습니다. 물론 굳이 [블레이드 러너]를 보지 않더라도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보는데 별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의 마지막 장면에서 데커드(해리슨 포드)와 레이첼(숀 영)의 사랑의 도주가 [블레이드 러너 2049]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임을 감안한다면 아무래도 [블레이드 러너]를 보고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꽤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사퍼 모튼의 집에서 발견된 여성 리플리컨트의 유골은 레이첼입니다. 데커드의 사랑의 도주를 했던 레이첼은 데커드와의 관계로 임신을 했고, 출산에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결국 월레스가 밝히고 싶었던 타이렐의 비밀 프로젝트는 리플리컨트의 임신 가능성 여부였고, 레이첼은 데커드와 첫 눈에 사랑에 빠지게끔 유전자 조작이된 리플리컨트였던 것입니다. 문제는 레이첼이 낳은 아이의 행방입니다. 넥서스 8 모델로 구성된 리플리컨트 조직은 만들어진 존재가 아닌 태어난 존재인 레이첼의 아이를 내세워 인간에 대한 반란을 준비하고 있었고, 레이첼이 낳은 아이를 통해 생명의 비밀을 알아내고 싶었던 월레스는 레이첼의 아이를 손에 넣어 실험을 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과연 레이첼의 아이는 어디 있을까요? 그리고 레이첼의 아이와 K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이에 대한 정답은 영화에서 확인하시길... ^^)
조이를 잊지 못하는 K의 쓸쓸한 마지막 모습의 여운
[블레이드 러너 2049]가 대단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35년만에 제작된 속편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블레이드 러너]와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인 인간 데커드와 리플리컨트 레이첼의 사랑은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도 중요한 테마가 됩니다. 그러면서 이 주제는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더욱 확장됩니다. K는 '만들어진 존재가 아닌 태어난 존재라면 레이첼의 아기에겐 우리와는 달리 영혼이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K의 의문에 영화는 답합니다. 인간의 조건이 영혼이라면 사랑이라는 감정을 갖고있고, 임신과 출산이라는 숭고한 행위가 가능한 리플리컨트 또한 인간이라는...
[블레이드 러너]가 인간과 리플리컨트의 사랑을 통해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면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리플리컨트인 K는 월레스사가 제공하는 인공지능 홀로그램 조이와 사랑에 빠집니다. 조이는 비록 육체를 갖지는 못했지만 K를 이해하고, K의 아픔을 공유하고, K를 위해 희생하며 진정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로이는 데커드에게 묻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라면 레이첼도, 조이도 인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본 후 컴퓨터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2014년작 [그녀]가 문득 떠오른 이유입니다.
비록 영화가 끝나고 영화에 대한 감흥을 느낄새도 없이 구피에게 혼나야 했지만,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분명 제게 오랜 여운을 안겼습니다. 조이의 사랑을 잊지 못하는 K의 쓸쓸한 마지막 모습은 레이첼과 사랑의 도주를 선택하는 데커드의 모습 만큼이나 여운이 깊었습니다. 조이와의 사랑을 가슴 깊이 간직할 수 있었던 K. 누가 그에게 껍데기라며 멸시할 수 있을까요? 인간은 리플리컨트를 만들어내며 신 놀음을 하는 사이 리플리컨트는 이렇게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진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P.S. 그래서 데커드는 인간일까? 리플리컨트일까?
[블레이드 러너]를 본 후에도,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본 후에도 제겐 해결되지 않은 한가지 의문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데커드가 인간인지, 아니면 리플리컨트인지에 대한 해답입니다. 확실히 [블레이드 러너]는 데커드가 리플리컨트임을 암시하는 장치가 많았습니다. 인간은 리플리컨트에게 위험한 임무를 맡기는데, 경찰 서장은 '블레이드 러너' 홀든이 도주 중인 리플리컨트 리온을 조사 중 살해당하자 굳이 은퇴 중인 데커드를 호출합니다. 복귀하지 않으면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는 협박과 함께...
결정적으로 데커드가 리플리컨트라는 근거는 유니콘 꿈에서 드러납니다. 데커드를 감시하던 경찰 서장의 심복은 데커드의 집 앞에 종이로 만든 유니콘를 놓아두는데, 이는 데커드의 과거가 레이첼처럼 조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리플리컨트임을 모르던 레이첼처럼 데커드 또한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월레스는 레이첼이 데커드와 첫눈에 사랑을 느끼도록 만들어졌다는 말을 합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한사람만의 감정으로 부족합니다. 아무리 레이첼이 데커드와 사랑에 빠지도록 만들어졌다고해도 데커드가 거부하면 헛일입니다. 그렇기에 데커드 또한 레이첼과 사랑에 빠지도록 만들어진 리플리컨트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둘은 목숨을 걸고 사랑의 도주를 선택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2019년 당시 리플리컨트는 4년이라는 제한된 수명을 가졌음을 감안해야합니다. 레이첼은 4년의 수명 이전에 아기를 낳다 죽었지만 데커드는 30년이 지난 2049년에도 숨어 살아왔습니다. 그가 만약 리플리컨트라면 수명 제한을 없앤 넥서스 8 모델이라는 것인데, 넥서스 8 모델은 타이렐 박사가 죽은 후에 만들어졌음을 감안한다면 시기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과연 데커드는 리플리컨트일까요? 아니면 사람일까요? 저는 영화의 주제로 생각한다면 데커드가 사람인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확신이 안섭니다. 아시는 분은 댓글로 제게 정답을 알려주시길... ^^
어쩌면 우리는 리플리컨트를 만들 과학적 기술을 이미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겐 리플리컨트를 인간으로 대할 마음의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다.
[블레이드 러너]의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되지 않게 하려면
기술력 이전에 우리의 윤리적 가치관이 먼저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영화이야기 > 2017년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오스톰] - 결코 신이 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뜻밖의 성찰 (0) | 2017.10.25 |
---|---|
[대장 김창수] - 할 수 있어 하는게 아니라, 해야해서 하는거다. (0) | 2017.10.25 |
[킹스맨 : 골든서클] - 킹스맨의 파괴를 통해 스테이츠맨이라는 새로움을 얻다. (0) | 2017.10.18 |
[범죄도시] - 좀비잡던 그 놈, 이번엔 조폭을 맨 손으로 때려 잡다. (0) | 2017.10.17 |
[남한산성] - 역사는 현재의 교훈이 된다. (0) | 2017.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