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매튜 본
주연 : 테런 에저튼, 콜린 퍼스, 줄리안 무어, 마크 스트롱, 할리 베리, 페드로 파스칼
개봉 : 2017년 9월 27일
관람 : 2017년 10월 13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이 영화는 왜 청불일까?
"나도 [킹스맨 : 골든서클]은 보고 싶은데..."라며 입술을 삐죽 내밀던 구피. 하지만 저는 2015년 2월 혼자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를 보러 갈 수 밖에 없었듯이 [킹스맨 : 골든서클]도 구피 없이 혼자 극장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이 영화가 15세 관람가 등급만 되었어도 기나긴 추석 황금 연휴때 온 가족이 극장으로 총 출동해서 봤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킹스맨 : 골든서클]의 관람등급은 청소년 관람불가였고, 추석 연휴 기간동안 웅이만 떼어놓고 영화를 보러 갈 수 없어서 관람을 미루다보니 이렇게 [킹스맨 : 골든서클]의 극장 상영이 임박하고 나서야 저 혼자 영화를 보러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고보니 13일의 금요일에 혼자 본 두 편의 영화가 전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네요. [범죄도시]도 그렇고, [킹스맨 : 골든서클] 역시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이유는 잔인함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범죄도시]의 경우는 장첸이 가리봉동의 다른 범죄조직을 장악하기 위해 도끼로 토막살인도 서슴치 않는 장면이 나오고, [킹스맨 : 골든서클]에서는 고기 분쇄기에 사람을 넣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한 잔인한 장면들을 미성년자가 따라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것은 아닌지...
예전에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영화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야한 영화를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지난 토요일 밤에 본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여성의 가슴이 클로즈업되고 성 행위 장면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은 것을 감안한다면 요즘은 야한 영화보다는 잔인한 영화가 청소년 관람불가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암튼 [킹스맨 : 골든서클]의 잔인성 수위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추석 연휴에 온가족이 함께 이 엉뚱한 특수요원들의 활약을 즐길 수 있었을텐데...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특한 스파이 영화 '킹스맨'이 사랑받는 이유
2015년 개봉한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가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은 이유는 독특했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 스파이 영화라면 007 제임스 본드처럼 멋있거나, 제이슨 본처럼 절박하거나 둘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는 가벼우면서도 경쾌했습니다. 주인공인 에그시(태런 에저튼)는 전 세계를 위기에서 구출할 영웅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루저였고, 에그시의 멘토인 해리(콜린 퍼스) 역시 기존의 거친 스파이와는 다른 점잖은 신사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에는 스파이 영화가 갖춰야할 재미를 골고루 가지고 있습니다. 루저에 불과했던 에그시는 점점 영웅에 걸맞게 성장하고 결국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인간의 개체수가 줄어야한다는 미친 생각을 가진 발렌타인(사무엘 L. 잭슨)에 맞서 전 세계를 위기에서 구출합니다. 점잖은 신사처럼 보였던 해리의 파격적인 액션은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 결과 발렌타인에 의해 죽었던 해리는 [킹스맨 : 골든서클]에서 부활하기도 했습니다. 스파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각종 최신 무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재미였습니다.
스파이 영화가 갖춰야할 재미를 골고루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존의 스파이 영화와는 다른 독특한 매력을 선보였으니 어쩌면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에 대한 관객의 열광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속편 제작 또한 당연한 결정이겠죠. 2년만에 선보인 속편 [킹스맨 : 골든서클]은 전편의 재미를 고스란히 물러 받음과 동시에 새로운 변화를 꾀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변화를 위해 철저하게 비밀에 둘러싸인 영국의 정보 조직 킹스맨 본부를 무참히 파괴시켜 버립니다.
'킹스맨'를 파괴함으로써 새로움을 창조한다.
속편 영화의 숙제는 전편의 재미를 이어 받으면서 전편과 다른 새로운 재미를 관객에게 선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속편영화가 전편의 재미를 잇지 못하고 실패하는 이유는 이러한 숙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킹스맨 : 골든서클]은 이 어려운 숙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일단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가장 강력한 인상을 남긴 해리를 소환합니다. 사실 해리를 죽음으로부터 살려내는 것은 억지였지만, 그래도 전편의 재미를 이어받기 위해서는 해리가 너무나도 필요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해리의 부활로 에그시는 멀린(마크 스트롱)과 더불어 황금팀을 구축합니다.
빌런 포피(줄리안 무어)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의 발렌타인을 떠오르게 합니다. 자신만의 세계에서 우아한 생활을 즐기던 마약왕 포피는 마약의 합법화를 위해 전 세계 사람들을 포로로 한채 미국 대통령과 협상을 벌입니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 인간의 개체수를 줄여야 한다는 환경론자 발렌타인과 세계 경제를 위해 마약을 합법화시켜야 한다는 마약왕 포피. 그들의 논리는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결국엔 자신의 이상을 위해 대량 학살을 자행하는 미치광이에 불과합니다.
해리의 부활과 포피의 만행. 만약 이대로 영화가 진행된다면 전편에 대한 단순 복사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매튜 본 감독은 영화의 시작부터 '킹스맨' 본부를 파괴하고, 전편에서 에그시와 함께 발렌타인의 음모를 막아낸 록시(소피 쿡슨)을 희생시킵니다. 그리고 스테이츠맨이라는 새로운 조직을 내세웁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스테이츠맨의 새로운 에이전트에 의해 전편엔 없었던 새로운 재미를 선보입니다.
킹스맨 VS 스테이츠맨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는 철저하게 영국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스파이 영화입니다. 그것이 이 영화만의 독특함이었습니다. 하지만 킹스맨 본부는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에그시와 멀린 뿐입니다. 이 두 사람은 킹스맨 최후의 날 규약에 따라 미국 켄터키로 향하고 그곳에서 킹스맨과 형제 조직인 스테이츠맨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스테이츠맨은 여러모로 미국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조직입니다. 양복점을 주업으로 하는 킹스맨과는 달리 스테이츠맨은 주류 사업을 주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전설인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를 암호명으로 하고 있는 킹스맨과는 달리 스테이츠맨은 술 이름을 암호명으로 하고 있습니다. 반듯한 양복을 유니폼으로 하고 있는 킹스맨과는 달리 스테이츠맨은 카우보이 모자와 청바지를 입고 등장합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달라도 너무 다른 이 두 조직은 마치 영국과 미국를 대표하는 것처런 보입니다. 그렇기에 이 두 조직은 처음엔 서로에 대한 문화 차이로 티격태격합니다. 하지만 공공의 적인 포피를 무찌르기 위해 힘을 합치며 색다른 파트너쉽을 보여줍니다.
제가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스테이츠맨의 멤버 중 가장 개성이 뚜렷한 에이전트 데킬라(채닝 테이텀)가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지. 아이. 조 : 전쟁의 서막], [화이트 하우스 다운], [주피터 어센딩] 등의 영화를 통해 스타덤에 오른 채닝 테이텀은 태런 에저튼과 함께 [킹스맨 : 골든서클]의 투톱을 맡기에 충분한 배우였지만 [킹스맨 : 골든서클]은 그러한 급격한 변화 대신 완만한 변화를 지향했고, 그 결과 에이전트 데킬라의 자리에 에이전트 위스키(페드로 파스칼)을 앉히고 에이전트 데킬라의 활약은 다음 편으로 미루는 선택을 합니다. 변활르 선택하되 전편의 재미마저 해치는 급격한 변화 대신 전편의 재미를 지키는 완만한 재미를 선택한 매튜 본 감독의 노련함이 돋보이는 순간입니다.
에그시는 시리즈와 함께 점점 성장할 것이다.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는 엄밀하게 따진다면 에그시의 성장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의붓 아버지 밑에서 천덕꾸러기로 살아가던 에그시는 해리를 만나게 되고, 그의 지도아래 킹스맨의 혹독한 훈련을 견뎌내며 소년에서 남자로 한단계 성장합니다. 그리고 [킹스맨 : 골든서클]에서도 에그시의 성장은 계속됩니다.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의 마지막 부분에 만난 틸디 공주(한나 알스트룀)와 사랑에 빠진 에그시는 영화 초반 틸디에게 잘 보이려다 치명적인 실수를 하는 등 아직은 미숙한 모습을 선보입니다. 틸디와의 데이트를 서두르다가 킹스맨의 위치를 해킹당한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결혼을 언급하는 틸디에게 아직 내겐 어울리지 않는다며 확답을 피함으로써 틸디에게 마음의 상처를 줍니다. 하지만 [킹스맨 : 골든서클]의 마지막엔 틸디와 결혼하며 소년에서 남자로, 남자에서 남편으로 한단계 더 성숙한 것입니다. 어쩌면 3편에서 에그시는 아빠가 되어 있을지도...
예상과는 달리 [킹스맨 : 골든서클]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 에이전트 데킬라와 진저(할리 베리)도 3편을 기대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킹스맨 건물에 얼쩡거리는 데킬라의 모습은 태런 에저튼과 채닝 테이텀 콤비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더욱 부추겼습니다. 아쉽게도 멀린의 모습을 더이상 볼 수 없지만 그가 부른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어제 라디오에서 'Take Me Home, Country Roads'가 흘러 나왔는데 나도 모르게 멀린이 생각나 찡한 감동을 느꼈답니다.) 그런데 3편이 제작되긴 하겠죠? ^^
영화 속, 진정한 악당은 마약왕 포피보다는 미국 대통령 같았다.
국민을 지킬 생각이 없는 국가 지도자는 얼마나 끔찍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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