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황동혁
주연 :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고수, 박희순
개봉 : 2017년 10월 3일
관람 : 2017년 10월 4일
등급 : 15세 관람가
추석 연휴 영화로 우리 가족의 만장일치 선택
저희 가족의 추석 연휴 영화 보기 계획은 두편으로 좁혀졌습니다. 바로 [아이 캔 스피크]와 [남한산성]입니다. 하지만 [아이 캔 스피크]는 구피가 추석 음식을 만드느라 보러 갈 수 없어서 웅이와 단 둘이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저희 가족의 진정한 추석영화는 단 한편 [남한산성]이 되고 말았네요. [남한산성]은 개봉 전부터 제 기대작이었습니다.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고수 등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고 있으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영화인 만큼 웅이와 함께 보기에도 안성맞춤이라 판단했습니다.
[남한산성]은 구피에게도 기대작이었습니다. 영화의 예고편에서 척화파인 김상헌(김윤석)과 주화파인 최명길(이병헌)이 인조(박해일) 앞에서 각자의 주장을 펼치는 장면에서 짜릿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는 구피는 아무리 추석 준비로 힘들고 바빠도 [남한산성]만큼은 절대 놓칠 수 없다며 기대감을 표출했습니다. 결국 저희 가족은 추석 당일 밤에 지친 몸을 이끌고 [남한산성]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먼저 [남한산성]에 대한 제 개인적인 평을 하자면 저는 일단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솔직히 [남한산성]은 제작비가 150억원이 들어간 한국형 블록버스터치고는 영화적 재미가 부족합니다. 많은 분들이 [남한산성]에 대해 지루하다는 평을 내리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영화가 재미있으려면 선과 악의 구분이 뚜렷해야하는데 [남한산성]에는 선과 악의 구분되지 않습니다. 그대신 관객으로 하여금 척화파인 김상헌과 주화파인 최명길을 동등하게 바라보게 함으로써 생각할거리를 남겨줍니다. 제가 [남한산성]에 원했던 것이 그러한 것이기에 영화가 끝난 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을 수가 있었습니다.
병자호란은 왜 일어난 것일까?
[남한산성]은 1636년 12월 인조 14년에 일어난 병자호란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한 영화에서는 그러한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전후 사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남한산성]은 이 모든 것을 생략하고 청나라의 침입을 피해 '남한산성'에 고립된 인조와 조선 조정으로부터 영화를 시작합니다. 물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병자호란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기 전에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다시한번 복습을 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일단 병자호란에 대한 이야기는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592년 선조 25년에 왜군이 조선을 침략하자 선조는 피난을 가고, 선조를 대신해서 광해군이 전쟁 극복을 위해 나섭니다. 이렇게 분조(조정을 나누다) 활동으로 임진왜란 때 상당한 공을 세운 광해군이지만 선조는 광해군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우여곡절 끝에 1608년 왕위에 오릅니다. 임진왜란을 겪은 광해군은 또다시 조선 땅이 전쟁의 화염에 휩싸이지 않도록 실리외교를 펼치는데, 당시 명나라는 국력이 쇠하였고, 대신 여진족이 세운 후금이 세력을 키워나갔습니다. 이를 간파한 광해군은 후금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광해군의 실리외교는 결국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1623년 인조 반정이 일어난 것입니다. 인조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친명반청 정책을 펼칩니다. 광해군과는 달리 국제정세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명과의 의리를 중시하는 도덕 외교를 펼친 것입니다. 그 결과 일어난 것이 병자호란입니다. 이로써 조선은 불과 44년 사이에 두번의 큰 전쟁을 치루는 큰 혼란을 맞이했고, 인조 또한 삼전도 굴욕을 통해 조선으로는 일찍이 없었던 일대 치욕을 당해야 했습니다.
김상헌과 최명길... 누가 옳을까?
청의 공격을 피해 '남한산성'에 고립된 인조에겐 두가지 선택지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죽을 각오로 끝까지 청과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김상헌이 주장한 척화론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청에게 항복을 하고 후일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최명길이 주장한 주화론입니다. 당연히 인조로써는 김상헌의 척화론을 받아들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인조 반정의 명분 중 하나가 명나라와의 의리를 저버린 광해군의 실리 외교였기에 이제와서 최명길의 주화론을 받아들인다면 광해군의 실리 외교가 옳았음을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인조의 바람과는 달랐습니다. 조선의 군사로는 대군을 청을 이기기 어려웠고, 더우기 척박한 환경의 '남한산성'에 갇힌 상태에서는 시간조차도 인조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인조는 최명길의 주장대로 청에 항복합니다. 결국 인조는 목숨을 구걸하고, 나라를 보존한 댓가로 삼전도의 굴욕을 당함과 동시에 청나라의 속국임을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척화론을 펼친 김상헌은 틀렸고, 주화론을 펼친 최명길의 주장이 옳았던 셈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김상헌의 손을 들어줍니다. 김상헌은 훗날 절개의 지조의 상징으로 받들여졌고, 조선 후기 대표적인 세도가문인 안동 김씨가 김상헌으로부터 출발했음을 감안한다면 그의 후세들은 김상헌의 덕을 톡톡히 본 셈입니다. 그와는 달리 '조선왕조실록'에서 최명길은 기민하고 권모술수에 능했고, 선비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평가했습니다. 인조 반정의 핵심인물인 최명길은 죽어서 인조 묘정에 배항되지도 못했습니다.
정말 김상헌은 지조의 상징이고, 최명길은 소인일까?
중국의 유교사상을 건국이념으로 채택한 조선에서 김상헌과 최명길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어쩌면 당연합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실리외교를 펼친 광해군을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듯이 김상헌의 척화론과 최명길의 주화론 역시 재평가 받아야 옳습니다. [남한산성]은 김상헌과 최명길을 영화로 소환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재평가의 길을 열어준 셈입니다.
만약 인조반정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래서 광해군이 명과 청에 대한 실리외교를 계속 펼쳤다면 어쩌면 병자호란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인조가 최명길의 주화론을 일찌감치 받아들였다면 어쩌면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조선사에 길이 남을 치욕은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인조가김상헌의 주장대로 끝까지 청과의 항전을 선택했다면 어쩌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사라지고, 청에 정복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찌되었건 인조가 최명길의 주화론을 선택한 덕분에 조선은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잇었던 것입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남한산성'에서 서로 다른 주장을 펼쳤던 최명길과 김상헌은 청나라의 심양에서 만나 화해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반청의 댓가로 심양에 구류된 김상헌과 명나라에 '조선이 청과 강화를 한 것은 종묘 사직을 위하여 보존하기를 도모한 것일뿐'이라는 외교문서를 보내는 등 명과 내통했다는 죄목으로 청에 끌려온 최명길은 머나먼 타국의 옥살이를 하는 동안 서로 방법이 달랐을 뿐, 나라를 위한 마음은 같앗다는 것을 깨닫고 화해한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김상헌이 스스로 자결한 것으로 나오지만 오히려 김상헌은 최명길보다 오래 살았다고합니다.
역사는 현재의 교훈이 된다.
[남한산성]을 본 후 저희 가족은 집까지 천천히 걸어오며 영화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명과의 의리를 저버리면 안된다며 척화론을 펼친 김상헌의 주장이 가장 중요한 이야기거리였습니다. 외교라는 것은 결국 타국과의 관계를 통해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명과 청이라는 대국 사이에 낀 조선은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이익을 도모하며 위기에서 벗어나야 했지만, 명과의 의리라는 명분만 내세우며 병자호란이 발발하게 했습니다. 결국 삼전도의 굴욕은 인조의 외교 실패가 불러온 참사인 셈입니다.
영화에서 명분만 내세우며 친명반청을 내세우는 조선의 신하들을 보며 저는 성조기를 흔들며 시위를 하는 극우단체가 떠올랐습니다. 그들에게 미국은 병자호란 당시 명과도 같은 존재일 것입니다. 물론 미국은 분명 우리나라의 중요한 우방국입니다. 하지만 외교에서 영원한 우방은 없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와의 관계에서 더이상 이익이 없다고 판단된다면 언제든지 미국은 등을 돌릴 것입니다. 결국 우리나라가 살길은 무조건적인 미국에 대한 의존이 아닙니다. 스스로 힘을 기르고,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 강대국과 우리나라를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는 북한과의 관계를 조율하며 실리를 챙기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병자호란이라는 우리의 아픈 역사가 후세에 남겨준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남한산성]이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이 어려워졌다는 인터넷 뉴스를 봤습니다. 추석 연휴에 정치권이 [남한산성]을 보며 각기 다른 감상평을 밝히는 등 화제성은 충분했지만 결국 영화의 재미가 발목을 잡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한산성]처럼 역사 영화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배워야할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더 [남한산성]의 흥행 결과가 아쉽기만 합니다.
명, 청 교체기에 명과의 의리만을 외쳤던 무능했던 인조.
그로인하여 조선의 국민들만 두번의 외란을 연거푸 겪으며 고통을 당했다.
북핵 문제로 한반도의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대한민국.
우리는 어떻게 이 위기를 해쳐나갈 수 있을까?
'영화이야기 > 2017년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킹스맨 : 골든서클] - 킹스맨의 파괴를 통해 스테이츠맨이라는 새로움을 얻다. (0) | 2017.10.18 |
---|---|
[범죄도시] - 좀비잡던 그 놈, 이번엔 조폭을 맨 손으로 때려 잡다. (0) | 2017.10.17 |
[아이 캔 스피크] - 비상식의 세상에서 상식으로 맞선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 (0) | 2017.10.10 |
[아메리칸 메이드] - 냉전시대 미국이 만들어낸 영웅도 악당도 아닌 희생자 (0) | 2017.09.22 |
[살인자의 기억법] - 진짜 중요한 대결은 병수의 내면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0) | 2017.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