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7년 영화이야기

[아메리칸 메이드] - 냉전시대 미국이 만들어낸 영웅도 악당도 아닌 희생자

쭈니-1 2017. 9. 22. 11:28

 

 

감독 : 더그 라이만

주연 : 톰 크루즈, 도널 글리슨, 사라 라이트

개봉 : 2017년 9월 14일

관람 : 2017년 9월 20일

등급 : 15세 관람가

 

 

이란, 콘트라 비밀공작 사건

 

이란, 콘트라 비밀공작은 중앙아메리카를 핵심지역으로 간주하던 미국의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니카라과의 좌익정부를 붕괴시키기 위해 반정부 세력인 콘트라에게 정보, 무기, 기타 보급품을 제공했던 사건입니다. 미국 의회는 니카라과가 또 다른 베트남이 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콘트라에 대한 군사 지원을 금지하는 법률을 통과시켰지만, 레이건은 콘트라 지원을 비밀리에 진행시켰고, 콘트라 지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란에 무기를 팔기 시작한 것이 이란, 콘트라 비밀공작 사건의 내막입니다.

레이건의 계획은 이러했습니다. 당시 이란과 이라크는 전쟁 중이었고, 레바논에서는 미국인들이 인질로 역류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미국은 이란의 동맹국이 되어 무기를 보급하고, 그 수익금의 일부는 인질구출 자금으로, 일부는 콘트라 반군을 지원하려한 것입니다. 이렇게 미국은 이란에 무기를 제공하면서도 이란의 적국인 이라크에 미국이 수집한 군사 정보를 제공하는 양다리 전략을 택했고, 이는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을 장기전으로 이끌며 이란의 무기 수요가 계속되게 만들려는 꼼수였습니다.

하지만 이란, 콘트라 비밀공작 사건은 결국 발각되고 맙니다. 1986년 가을 콘트라에 보급품을 수송하던 수송기 한대가 격추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추락한 수송기의 승무원들은 미국인이었으며, 그들 중 생존자 한 사람이 자신은 CIA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자백한 것입니다. 이로써 레이건 행정부는 갑자기 워터게이트에 버금가는 스캔들에 휩싸이게 됩니다. [아메리칸 메이드]는 이란, 콘트라 비밀공작 사건이 발생하게된 과정이라 할 수 있는 실존 인물인 배리 씰 사건을 소재로한 영화입니다.

 

 

 

민간 항공사 파일럿 배리 씰은 어떻게 냉전시대의 총아가 되었나?

 

[아메리칸 메이드]는 냉전시대가 한창이던 1978년 TWA의 파일럿 배리 씰(톰 크루즈)이 CIA요원 쉐이퍼(도널 글리슨)를 만나며 시작됩니다. 민항기 파일럿으로 일하며 은밀하게 쿠바 시가를 밀수하던 배리는 쉐이퍼에게 덜미가 잡힙니다. 하지만 의외로 쉐이퍼는 배리를 체포하는 대신 국가를 위해 일해달라는 제안을 합니다. 때마침 자신의 일상이 무료하기만 하던 배리는 쉐이퍼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하긴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쿠바 시가 밀수 혐의로 모든 것을 잃을테니 그로써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쉐이퍼의 제안은 CIA가 제공하는 최신 비행기를 타고 소련이 지원하는 중남미 내 공산주의자들의 본거지를 촬영하는 것입니다. 뛰어난 비행기 조종술을 가지고 있던 배리는 너무나도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런데 그에게 새로운 제안이 들어옵니다. 콜롬비아의 마약조직인 메데인 카르텔에서 미국으로 마약을 실어나를 것을 제안하며 거액의 커미션을 약속합니다. 때마침 아내 루시(사라 라이트)의 임신으로 돈이 궁했던 배리는 이 위험한 제안을 덥썩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배리로써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메데인 카르텔의 제안을 거절했다가는 그 자리에서 총에 맞아 죽었을지도 모르니까요.

콜롬비아 당국에서 메데인 카르텔 소탕을 위해 급습하자 배리는 콜롬비아의 감옥에 갇히고 맙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쉐이퍼가 다시 접근합니다. 그는 배리에게 콜롬비아 감옥에서 꺼내주고, 루시가 마약단속국에 체포되는 것을 막아주는 대신 나카과라의 반군 콘트라에 무기를 실어나르는 일을 해달라고 제안합니다. 이 역시도 배리 입장에서는 승낙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배리는 쿠바 시가 밀수라는 작은 범죄에 약점이 잡힌 나머지 점점 위험한 범죄의 세계에 빠져들게 됩니다.

 

 

 

아슬아슬한 배리의 행보, 하지만 경쾌한 분위기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영화의 경쾌한 분위기입니다. 사실 영화를 보는 제 입장에서는 배리의 행보가 너무 아슬아슬하게만 보였습니다. 그는 CIA의 비호를 받고 있고, 남미 최대의 마약조직 메데인 카르텔과 동업자 관계입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 체제는 속에서 CIA와 마약조직에 양다리를 걸친 배리는 어마어마한 거액의 돈을 손에 거머쥡니다. 하지만 그러한 돈이 무슨 소용인가 싶습니다. 배리에게 돈은 그저 처치 곤란한 휴지 조각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집과 사무실 곳곳에 거액이 든 돈 가방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뒹굴고, 일부는 땅에 파묻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남아돌아 오히려 그를 궁지에 몰아 넣습니다.

오히려 배리에게 중요한 것은 돈보다는 목숨입니다. 지금 당장은 이용가치가 있기에 CIA가 배리를 비호하지만, 비밀리에 진행되는 콘트라 지원이 세상 밖으로 드러나면 배리는 CIA에 헌신짝처럼 버려질 것이 분명합니다. 만약 배리가 CIA에 버려진다면 메데인 카르텔 역시 더이상 배리와의 동업자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메데인 카르텔에 대한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기에 배리를 죽이는데 혈안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결국 배리는 불구덩이 안에 서있는 나방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당장은 호화찬란한 빛이 그를 감싸고 있지만, 언제 어느 순간 그 빛은 그를 불태워버릴지도 모릅니다. 배리가 그러한 사실을 모를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배리는 마치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이 위험한 상황을 즐깁니다. 그러한 배리의 모습이 [아메리칸 메이드]를 경쾌한 영화로 만듭니다.

 

 

 

배리는 영웅인가? 악당인가?

 

어느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더그 라이먼 감독은 배리 씰이 영웅이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는 배리가 나쁜 행동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하려고 하지 않는 것들에 용기내어 도전을 했고, 그것이야말로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겠느냐고 강변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영화 속의 배리는 영웅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가 국가를 위해 한 일들은 레이건 행정부가 불법적으로 벌인 정치 공작에 불구하고, 배리 또한 그것을 이용하여 마약조직과 손을 잡고 미국에 메데인 카르텔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공헌을 합니다. 그리고 콘트라에 지원되어야할 미국의 무기를 메데인 카르텔에게 빼돌리기도합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영웅이기보다는 악당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배리만의 잘못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어보입니다. 영화에서 배리는 별 고민없이 자신에게 제시된 위험한 제안들을 덥썩덥썩 받아들이는 것으로 표현되었지만 가만히 다시 생각해보면 그로써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애초에 쉐이퍼는 배리의 약점을 이용해서 배리가 CIA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끔 만들었고, 메데인 카르텔 역시 배리를 은근히 위협해서 배리에게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죽을 수도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습니다. 이렇게 배리는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영웅이 되었고, 또한 악당이 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아메리칸 메이드]는 한 개인이 냉전 시대에서 어떻게 국가에 이용된 후 몰락되었는지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배리가 자신이 저지른 수 많은 혐의로 인하여 FBI, 마약단속국 등에 체포되지만, 당시 알칸소 주지사인 빌 클린턴(제42대 미국대통령)의 압력으로 풀려나는 장면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레이건 행정부는 끝까지 배리를 이용했고, 그의 약점을 잡은 후 국가를 위한 일이라며 목숨을 건 임무로 내몹니다. 그리고는 메데인 카르텔을 배신한 그의 신상을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이용가치가 끝난 배리가 메데인 카르텔에 의해 자연스럽게 제거되도록 이끕니다. 어찌보면 배리는 영웅도, 악당도 아닌 그저 냉전 시대의 희생자가 아니었을까요?

 

 

 

이란, 콘트라 비밀공작 사건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앞서 언급한 이란, 콘트라 비밀공작 사건은 배리의 이용가치가 사라진 후부터 시작됩니다. 배리를 통해 무기 밀매와 콘트라 지원의 상관관계를 확인한 CIA와 레이건 행정부는 이를 발전시켜 이란, 콘트라 비밀공작 사건을 벌인 것입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쉐이퍼가 승진을 했다는 자막은 그렇기에 섬뜩했습니다. 배리 씰이라는 평범했던 일반인을 끌어들여 자기네 마음대로 영웅으로 만들었다가 악당으로 만들며 농락했던 CIA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은밀하고 추악한 이란, 콘트라 비밀공작 사건에 뛰어 들었으니 말입니다.

[아메리칸 메이드]에는 네명의 미국 대통령이 나옵니다. 미국의 40대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은 이 영화에서 거의 비중있는 조연급입니다. 레이건 행정부의 부통령이었던 41대 대통령 조지 부시의 모습도 잠시 비추고, 배리가 아칸소에서 체포될때는 42대 대통령인 빌 클린턴이 영향력을 행사해서 배리를 풀려나게 만듭니다. 배리가 레이건을 만나기 위해 백악관에서 대기할 땐 조지 부시의 아들이자 43대 대통령이 되는 조지 W. 부시의 젊은 시절 모습이 잠시 등장하기도합니다. 배리에게 자신도 전투기를 조종한다며 자랑하던 조지 W. 부시의 모습은 그의 군복무시절 비리를 추적하는 영화 [트루스]가 떠올라 묘한 웃음을 줬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배리의 몰락을 막지 않았습니다. 미국 법정에서 배리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합당한 댓가를 치루게 했다면 어쩌면 최소한 그의 죽음까지는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미국의 권력자들은 냉전 시대를 핑계삼아 배리를 더욱 이용하려고만 했고, 이용한 후에는 그가 암살되도록 내버려둡니다. 이것이 미국이 만들어낸 냉전시대의 영웅도 악당도 아닌 배리 씰의 실상입니다. [아메리칸 메이드]는 마지막 순간까지 경쾌함을 잊지 않지만, 영화가 끝나고나서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개인의 몰락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배리 씰이 쿠바 시가 밀수에 대한 정당한 죄의 댓가를 치뤘다면...

만약 레이건 행정부와 CIA가 미의회의 법에 맞게 중남미 국가를 대했다면...

정의란 다른 것에 있지 않다.

모두가 평등하게 법을 적용하고, 그 법에 의해 행동하는 것.

그렇기에 배리 씰의 죄를 덮어주고, 불법적으로 콘트라를 지원하며

이것이 애국이라고 지껄이던 쉐이퍼의 한마디는 그냥 개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