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주연 : 루이스 맥더겔, 펠리시티 존스, 시고니 위버, 리암 니슨
개봉 : 2017년 9월 14일
관람 : 2017년 9월 16일
등급 : 12세 관람가
시험공부보다 힐링이 중요해.
초등학교 시절 웅이는 시험에서 전과목 100점을 맞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학교에서 모범생으로 불리웠죠. 하지만 솔직히 웅이는 공부를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학원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스스로 복습, 예습을 하는 편도 아닙니다. 오히려 시험기간이 다가와서 구피가 시험공부하라고 혼내야 겨우 책상에 앉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자신을 향한 모범생이라는 인식만큼은 꽤 신경이 쓰이나봅니다. 지난 1학기 기말고사를 망친 이후에는 스스로 반성도 많이 했고, 그래서 더욱 이번 2학기 중간고사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철없는 아빠인 저는 그러거나 말거나 주말에 웅이와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구피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웅이 시험기간이야? 그런데 웅이 데리고 영화를 보러 가겠다고?"라며 반문합니다. 그때서야 저는 '아차'싶었지만 (솔직히 웅이가 시험기간인줄 몰랐습니다.) 임기응변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시험공부만 하면 스트레스 때문에 공부가 더 안돼. 그러니 영화를 보면서 머리를 식혀야지. 이번에 볼 영화가 [몬스터 콜]이라는 영화인데, 감동적이고, 교훈적이라서 시험공부하며 머리 식히는데 최고래." 사실 구피가 제 잔머리에 안넘어갈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구피도 웅이가 이번 시험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을 아는지 무언의 승낙을 하더군요.
그리하여 토요일 오전, 웅이와 [몬스터 콜]을 보러 갔습니다. 구피는 "나도 이 영화는 보고 싶은데..."라고 아쉬워했지만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일이 남아 아쉽게도 영화관람에 동참하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몬스터 콜]을 보며 많이 울었습니다. 엄마가 죽고나면 혼자 남게될 어린 코너(루이스 맥더겔)의 두려움과 코너를 혼자 두고 떠나야만 했던 엄마(펠리시티 존스)의 미안함이 너무 마음에 와닿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웅이는 영화를 보는 내내 덤덤한 표정입니다. 이 영화가 웅이에게 감동과 힐링을 주기엔 부족했나봅니다. 물론 영화를 보고나서 웅이는 "재미있었어요."라고 짧게 말해줬지만 말입니다.
코너가 외로움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몬스터 콜]은 코너의 악몽으로 시작됩니다. 땅이 무너지는 가운데 코너는 벼랑으로 떨어지는 엄마의 손을 잡습니다. 엄마의 손을 놓치면 절대 안되는 상황이지만 그만 엄마의 손을 놓치며 코너는 악몽에서 깨어납니다. 코너가 그런 꿈을 꿀 수 밖에 없는 것은 그가 처한 상황 때문입니다. 아빠(토비 켑벨)는 이혼후 미국에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고, 엄마는 병에 걸려 매일 매일 조금씩 죽어갑니다. 엄마가 죽으면 외할머니(시고니 위버)가 코너의 새로운 보호자가 될테지만, 코너가 보기에 외할머니는 못된 마녀같기만합니다. 그렇기에 코너에겐 엄마가 절대 죽을리 없다는 가느다란 희망이 전부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코너의 꿈이 암시하는 것처럼 코너 또한 엄마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코너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합니다. 아빠의 부재와 엄마의 투병은 코너를 소심한 아이로 만들었고, 학교 친구들은 그런 코너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오랜만에 집을 찾은 아빠는 코너를 미국에 데려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너의 모든 것이 여기에 있는데 내가 어떻게 널 미국에 데려가겠니?"라며 짐짓 코너를 위하는 척 변명하지만, 코너는 "내 핑계 대지마세요."라고 울부짖으며 아빠에 대한 원망만 키워갑니다.
그렇습니다. 코너는 외롭습니다. 아빠는 미국으로 떠날 것이고, 엄마는 죽어만갑니다. 친구들은 그를 괴롭히고, 외할머니는 마녀같기만합니다. 그리고 코너는 두렵습니다. 외로움과 두려움. 그것은 어린 코너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큰 짐입니다. 어쩌면 그래서였을 것입니다. 코너가 동네 묘지를 지키는 주목나무 몬스터(리암 니슨)를 만들어내야만 했던 것은...
몬스터가 들려준 세가지 이야기
몬스터가 나타나자 코너는 몬스터가 자신의 고민을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는 몬스터에게 엄마를 살려주고, 외할머니를 없애달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몬스터는 코너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대신 한가지 제안을 합니다. 코너에게 세가지 이야기를 들려줄테니, 세가지 이야기를 듣고나면 너의 진짜 이야기 하나를 해달라는 것입니다. 엄마가 죽어가는 최악의 상황에서 그깟 이야기라니... 하지만 몬스터는 강제적으로 코너에게 세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못된 마녀 계모와 착한 왕자의 이야기입니다. 왕을 죽이고 왕국을 가로챈 못된 마녀와 가난한 농부의 딸과 사랑에 빠진 착한 왕자. 하지만 못된 마녀는 농부의 딸을 죽여버리고, 이에 분노한 왕자와 왕국의 사람들은 마녀를 내쫓고 왕국을 되찾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일까요? 마녀는 정말 농부의 딸을 죽였을까요? 혹시 왕자가 농부의 딸을 죽임으로써 왕비를 몰아낼 명분을 만든 것은 아닐까요? 몬스터는 이야기합니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고... 왕비는 분명 마녀였지만 살인자는 아니었고, 왕자는 이후 현명한 왕이 되었지만 자신이 사랑한 여인을 죽인 살인자였던 것입니다. 외할머니를 싫어하는 코너에게 몬스터는 조금은 까칠하지만 외할머니 역시 코너를 사랑하는 사람임을 일깨워주려 했던 것입니다.
두번째 이야기인 불치의 병에 걸린 딸을 둔 목사와 약초사의 이야기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이고, 세번째 이야기인 투명인간의 이야기는 용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코너는 엉터리 이야기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지만, 몬스터의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조금씩 심적인 변화가 생깁니다. 가끔은 그 변화가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코너가 엄마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희망과 용기, 그리고 믿음을 안겨줍니다.
코너의 진짜 이야기는 무엇일까? (영화의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제 몬스터의 세가지 이야기는 끝이 났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코너의 진짜 이야기입니다. 몬스터는 말합니다. 너의 악몽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하지만 코너는 완강하게 거부합니다. 절대 이야기를 해줄 수 없다고 버팁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코너의 악몽은 이미 영화의 첫 장면에서부터 나왔습니다. 그런데 왜 코너는 이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코너의 악몽 속에는 코너가 감추고 싶었던 속마음이 내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코너는 엄마의 손을 놓칩니다. 너무 어린 그로써는 성인인 엄마의 손을 끝까지 잡을 힘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사실 코너는 엄마의 손을 놓친 것이 아닌, 놓아버린 것입니다. 오랜 세월 엄마의 투병을 지켜 보면서 코너는 이제는 이 괴로움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다시말해 코너는 엄마가 회복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그럴바엔 차라리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코너가 몬스터에게 절대 해줄 수 없다고 버틴 이유는 그러한 자신의 속마음에 대한 죄책감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코너를 비난할 수 있을까요? 저는 코너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물론 코너는 엄마가 죽지 않기를 누구보다 바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엄마의 투병 생활이 길어지면서 외로움과 두려움이 그의 일상이 되어 버렸고, 그것을 감당하기엔 어렸던 코너는 차라리 이 모든 것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자신의 속마음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코너는 더욱 외로워지고 두려워집니다. 몬스터는 코너를 위로해줍니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몬스터의 위로는 코너를 따스하게 감싸안아줍니다. 그날 코너는 주목나무 밑에서 처음으로 악몽없는 기나긴 짐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이겨내는가?
우리가 살다보면 수 많은 고통과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고통을 이겨내는 법을 터득합니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과 마주하게 됩니다. 과연 우리는 그러한 고통을 어떻게 이겨낼까요? 대부분은 희망에서 그 답을 찾습니다. 고통이 조만간 끝날 것이라는 희망. 고통의 끝에는 행복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 그러나 그러한 희망마저 잃게되면 그 다음 단계는 현실 도피입니다. 현실 도피를 통해 고통으로부터 멀리 멀리 도망쳐버리는 것입니다.
코너 역시 처음엔 희망에서 엄마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고통을 이겨내려합니다. 하지만 엄마의 투병이 길어지면 질수록 현실을 도피하려하고, 그것이 몬스터를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코너가 만들어낸 몬스터는 단순히 현실 도피를 위한 것이 아닌, 코너가 고통을 받아들이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는 존재가 됩니다. 어쩌면 그것은 코너의 외할아버지가 남겨준 선물일지 모릅니다. 영화에서 코너의 외할아버지는 사진으로만 등장하는데, 사진 속 외할아버지는 몬스터의 목소리를 연기한 리암 니슨입니다. 결국 몬스터와 외할아버지는 동일한 존재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외할아버지는 코너의 잠재된 의식 속에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 해답은 영화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엄마의 노트 속 몬스터 그림에 있습니다. 코너의 외할아버지는 자신의 딸인 엄마에게 삶의 지혜가 담긴 이야기를 해줬고, 엄마는 외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를 자신의 아들인 코너에게 해준 것입니다. 그리고 코너가 가장 힘들어하는 순간 엄마의 이야기가 몬스터의 형상으로 되살아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수 많은 고통과 마주하고, 그 고통을 이겨내는 법을 터득합니다. 그리고 고통을 이겨내는 법은 스스로가 아닌 우리보다 훨씬 오랜 삶을 산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죠. 외할아버지에서 엄마에게로, 그리고 다시 혼자 남은 코너에게로 이어진 고통을 이겨내는 지혜는 어린 코너가 다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그것이 [몬스터 콜]이 관객에게 던진 힐링의 원천입니다. 우리 역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과 마주했을 때, 결코 혼자가 아니었음을 이 영화는 코너의 성장을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몬스터는 고통을 이겨내는 삶의 지혜를 의미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나 역시 웅이에게 그러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아버지, 어머니에게 물려 받은 지혜를 웅이에게 온전히 물려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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