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7년 영화이야기

[매혹당한 사람들] - 전쟁보다 위험했던 그녀들의 은밀한 욕망

쭈니-1 2017. 9. 13. 11:09

 

 

감독 : 소피아 코폴라

주연 : 니콜 키드먼, 커스틴 던스트, 엘르 패닝, 콜린 파렐

개봉 : 2017년 9월 6일

관람 : 2017년 9월 11일

등급 : 15세 관람가

 

 

제70회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지난 5월 개최한 칸영화제는 우리나라에서 숱한 화제를 낳았습니다. 당당하게 경쟁부문에 초청된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에서 제작되어 극장 개봉이 아닌 온라인으로 일반 공개된 탓에 프랑스 극장 협회가 거세게 반발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결국 내년부터는 프랑스 극장 개봉을 전제로 한 작품만 경쟁 부분에 출품이 가능하다는 새로운 규정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경쟁 부문에 변성현 감독의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과 정병길 감독의 [악녀]가 초청되어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영화의 수상은 없었지만 그래도 칸영화제 기간 내내 우리나라 영화팬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게 충분했습니다.

이렇게 [옥자],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 [악녀] 덕분에 친숙해진 제70회 칸영화제에서 영예의 대상인 황금종려상은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스웨덴 영화 [더 스퀘어]가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영화를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세계 최고의 권위를 지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라 할지라도 흥행성이 없다면 국내 극장에서 외면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면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매혹당한 사람들]은 운이 좋은 편입니다. 분명 흥행성과는 거리가 먼 영화이지만 니콜 키드먼, 커스틴 던스트, 엘르 패닝, 콜린 파렐 등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을 캐스팅한 미국영화인 덕분에 이렇게 국내 개봉이 성사되었으니까요.

개봉 첫 주에 예상했던대로 흥행순위 9위의 저조한 성적으로 출발한 [매혹당한 사람들]을 지난 월요일에 보고 왔습니다.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이라는 점과 초호화 캐스팅이 제 마음을 잡아 끌었지만, 무엇보다도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일곱 여자들의 숨겨진 욕망이라는 영화의 기본적인 줄거리가 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극장 상영이 끝나기 전에 관람을 서두른 것입니다.

 

 

 

일곱명의 여자가 한명의 남자에게 매혹당하다.

 

[매혹당한 사람들]의 배경은 미국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4년입니다. 전투중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당하고 죽음 직전 상태에 놓인 북부의 군인 존은 남부에서 일곱명의 여자들만이 살고 있는 기숙학교의 학생 에이미에게 구출됩니다. 에이미는 존을 기숙학교로 데려오고, 교장인 마사(니콜 키드먼)는 일단 존을 치료해주기로 결정합니다. 먼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존을 치료한후 남부의 군인에게 인계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하지만 존이 기숙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존에게 매혹당한 기숙학교의 여자들은 오히려 남부의 군인으로부터 존을 숨겨주며, 존에 대한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제가 [매혹당한 사람들]에 관심을 가진 것은 바로 이러한 갈등 구조 때문입니다. 일곱명의 여자가 한명의 남자에게 매혹을 당합니다. 이러한 상황만 보면 존을 위한 행복한 하렘물로 오인받기 쉽겠지만 상황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일단 전쟁이 그들의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꼬아 놓는데, 남자는 북부의 군인이고 여자들은 남부의 시민입니다. 즉 그들의 관계는 적인 셈입니다. 그렇기에 엄밀하게 따진다면 존은 기숙학교 여자들의 포로이고 관계의 우선권은 존이 아닌 마사를 비롯한 기숙학교 여자들에게 있습니다. 존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그녀들에게 잘 보여야합니다.

기숙학교에 남부의 군인들이 잠시 들렀을때 존은 숨죽이며 마사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존은 먼저 기숙학교의 전권을 가지고 있는 마사에게 유혹의 눈길을 보냅니다. 그가 마사를 유혹하는데 성공한다면 기숙학교에서 전쟁이 끝날때까지 안전하게 숨어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사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흔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존에게 기숙학교를 떠나라고 요청합니다. 그때부터 존은 살아남기위해 기숙학교 여자들의 욕망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전쟁보다 위험했던 그녀들의 은밀한 욕망

 

그때까지만해도 존은 미처 모르고 있었습니다. 존이 보기에 기숙학교 밖은 남부와 북부의 전쟁의 한창이었고, 그와는 달리 기숙학교 안은 너무나도 평화로웠으니까요. 존 입장에서는 기숙학교 밖보다는 기숙학교 안이 훨씬 안전해 보였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그녀들의 욕망을 건드리지 않았다면 그러한 존의 판단은 옳았을 것입니다. 본격적으로 기숙학교의 선생 에드위나(커스틴 던스트)를 유혹하기 시작한 존. 어쩌면 그녀는 존에게 보험용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만약 기숙학교를 나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혼자 나갔다가 남부 군인에게 포로로 붙잡히느니, 남부 여성인 에드위나와 함께 나가 남부인으로 위장한채 살 수 있을테니까요. 기숙학교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에드위나의 욕망을 존은 잘 이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존은 이제 막 성인의 길에 접어든 사춘기 소녀 알리시아(엘르 패닝)의 유혹도 뿌리치지 않습니다. 수업 시간 중 몰래 빠져 나와 존에게 몰래 키스를 하는 알리시아는 마사, 에드위나와는 달리 노골적으로 존을 유혹하고, 존 역시 젊은 그녀의 유혹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로인하여 존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합니다.

욕망이라는 것은 서로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을 땐 크게 위험해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욕망이 분출되기 시작하면 결코 멈출 수가 없고, 자신의 욕망을 가로 막는 상대나 상황과 맞닥뜨리면 이성적으로는 할 수 없었던 선택도 서슴치 않고 하게됩니다. 존은 남북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들의 욕망을 건드렸고 결국 분출시켰지만, 그로 인하여 그는 전쟁보다 위험한 끔찍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하지만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한번 분출된 욕망은 결코 멈출 수가 없으니까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매혹당한 사람들]은 어땠나?

 

사실 이 영화는 1971년 제작된 돈 시겔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라고 한다면 마카로니 웨스턴의 대표작인 [황야의 무법자]의 거친 총잡이, 또는 [더티 해리]의 마초 형사 칼라한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그렇기에 [매혹당한 사람들]에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쉽게 매치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본 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매혹당한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역시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매혹당한 사람들]은 존을 좀 더 마초적인 인물로 그려냈고, 영화 자체가 존의 시선으로 진행된다고합니다. 그리고 존을 향한 일곱 여성들의 욕망은 좀 더 노골적이며, 그녀들에 의한 존의 파국은 좀 더 충격적이라 하네요. 어쩌면 로브 라이너 감독의 공포영화 [미져리]와 비슷한 영화였을지도...(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여성 감독인 소피아 코폴라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되면서 [매혹당한 사람들]은 존보다는 기숙학교 여자들에게 좀 더 포커스를 맞춥니다. 그것은 캐스팅에서도 드러납니다. 존에 캐스팅된 콜린 파렐은 전성기가 지난, 독하게 표현한다면 한물간 배우에 불과합니다. 그와는 달리 니콜 키드먼, 커스틴 던스트, 엘르 패닝은 전성기중인, 혹은 전성기에 접어든 핫한 배우들입니다. 1971년 [매혹당한 사람들]에서 관객의 시선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존에 꽂힌다면 리메이크된 [매혹당한 사람들]에서는 니콜 키드먼, 커스틴 던스트, 엘르 패닝에 먼저 눈이 가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소피아 코폴라는 기숙학교 여자들의 은밀한 욕망을 중점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녀들의 욕망은 알리시아를 제외하고는 노골적이지도 않습니다. 어쩌면 그렇기에 존은 그녀들의 욕망을 쉽게 이용해도 된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댓가를 혹독했고, 참혹했습니다. 차라리 적에 대한 살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전쟁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예상했던, 그리고 기대했던 영화는 아니다.

 

솔직히 [매혹당한 사람들]은 제가 예상했던, 그리고 기대했던 영화는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1971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매혹당한 사람들]과 같은 전개를 예상했고 기대했습니다. 그녀들의 욕망은 훨씬 노골적이고, 대담하며, 그에 대한 파국은 휠씬 잔인할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 구피에게 [매혹당한 사람들]은 아마도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와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일 것이라고 설명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는 로맨틱한 제목과는 달리 (원제는 [박싱 헬레나]입니다.) 상당히 충격적인 영화입니다. 한 여자를 사랑하게된 외과 의사 닉크(줄리안 샌드)가 그녀를 소유하기 위해서 팔과 다리를 잘라 버린다는 내용이니까요.

저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의 닉크가 그러했듯이 [매혹당한 사람들]의 기숙학교 여자들도 존을 소유하기 위해 파격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에 그녀들의 선택은 욕망에 의한 것이 아닌, 그저 어쩌다가, 혹은 총을 거머쥠으로써 주도귄을 획득한 존으로 부터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녀들의 선택에 소피아 코폴라 감독이 너무 당위성을 부여시키려 노력한 것은 아니었는지...

뭐 제가 예상했던, 기대했던 영화는 아니었지만, 소피아 코폴라 감독 특유의 아름다운 영상이 꽤 인상깊었던 영화였습니다. 특히 첫 장면에서 울창한 숲을 헤치고 버섯을 따는 에이미의 모습과 마지막 장면에서 기숙학교의 현관 앞에 모여 앉은 그녀들의 모습은 묘한 긴장감과 더불어 숨이 막히는 기분을 느끼게 만듭니다. 이렇게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마초의 몰락을 담은 원작을 여성의 감춰진 욕망이라는 같으면서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새로운 해석을 해냈고,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으로 그녀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줬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매혹당한 사람들]이 궁금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1971년 영화는 잊고

원작 소설을 여성의 시각에서 풀어내는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그녀들의 욕망은 은밀해졌고 그 남자의 파멸은 모호해졌다.

1971년 영화를 보지 못한 상황이기에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선택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예상했던, 그리고 기대했던 영화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