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7년 영화이야기

[대장 김창수] - 할 수 있어 하는게 아니라, 해야해서 하는거다.

쭈니-1 2017. 10. 25. 10:43

 

 

감독 : 이원태

주연 : 조진웅, 송승헌

개봉 : 2017년 10월 19일

관람 : 2017년 10월 22일

등급 : 12세 관람가

 

 

제21호 태풍 란이 만들어준 뜻밖의 여유

 

지난 토요일에는 제 일정이 꽉 차있었습니다. 금요일 밤, 회사에서 단체로 뮤지컬 <레베카>를 관람한 이후 토요일 새벽에 회사 낚시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여수로 출발,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무박2일로 갈치 낚시를 하고 집에 도착하면 일요일 낮 3시. 낚시 도구를 정리하고 늦은 점심겸,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치면 주말이 후다닥 지나가버리는 그야말로 여유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금요일 오후, 갈치낚시가 취소되었다는 뜻밖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일본 열도에 착륙한 제21호 태풍 란의 영향으로 여수 앞바다에서도 갈치낚시 배가 뜰 수 없다고 하네요.

마음속으로 만반의 준비를 하며 바쁜 주말을 대비했던 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여유를 무엇으로 보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토요일 낮에는 두산 베어스와 NC 다이노스의 2017 프로야구 플레이오프를 봤고, 웅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다가, 부대찌개를 끓여먹고나니 어영부영 하루가 후다닥 지나가버렸습니다. 이렇게 토요일 하루는 뒹굴거리며 보냈지만 일요일도 그렇게 보낼 수는 없죠. 갈치낚시 대신 저는 웅이와의 영화를 선택했습니다.

여유로운 주말에 걸맞게 [대장 김창수]와 [지오스톰] 두 편의 영화를 예매했습니다. 만약 갈치 낚시를 갔다면 둘 중의 한편, 아니 어쩌면 두 편 모두 극장에서 보는 것은 포기했어야 했지만 갈치 낚시가 취소된 덕분에 두 편 모두 극장 관람이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한가지 즐거움이 취소되면 또 다른 즐거움이 그 빈자리를 채워주네요. 이래서 인생은 살만한가봅니다. ^^

 

 

 

우리는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백범 김구 선생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는 1876년 고종 13년에 태어나 1949년 6월 26일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당할 때까지 독립운동과 자주독립에 의한 통일 정부 수립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의 자서전인 <백범일지>는 청소년 필독서이며, 효창공원의 '백범 김구 기념관'과 남산공원의 김구 동상을 통해 대한민국을 위한 그의 발자취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알고 있는 김구 선생에 대한 것은 이 정도가 전부일 것입니다. [대장 김창수]는 대한민국 근대사에 빼놓을 수 없는 위인인 김구 선생이 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전의 행적을 뒤쫓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제목이 '대장 김구'가 아닌 김구 선생의 본명인 '대장 김창수'로 정한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김창수는 17세에 조선왕조 최후의 과거에 응시하였지만 낙방하고, 벼슬자리를 사고 파는 부패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18세에 동학에 입도하였고, 의병부대에 몸담아 일본군 토벌에 나서기도 하였다고합니다.

하지만 일본에 의해 자행된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충격을 받고 귀향을 결심, 1896년 2월 안악 치하포에서 왜병 중위 쓰치다를 맨손으로 처단하여 21세의 의혈청년으로 국모의 원한을 푸는 첫 거사를 결행합니다. 1896년 5월 체포되어 해주감옥에 수감되었고, 7월 인천 감리영으로 이감되었으며 1897년 사형이 확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형집행 직전 고종황제의 특사로 집행이 중되었고, 1898년 봄에 탈옥합니다. [대장 김창수]는 김창수(조진웅)가 인천 감리영에 이감된 1896년 7월부터 1898년 탈옥할때까지의 행적을 그리고 있습니다.

 

 

 

감동과 코믹으로 나뉜 조연진

 

사실 저는 [대장 김창수]에게서 [동주]와 같은 묵직한 감동의 영화를 기대했습니다. 외세의 침략에 무너지고 있던 조선 말기의 혼란 속에서 청년 김창수가 백범 김구 선생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고난의 행적이 묵직한 감동으로 영화 속에 그려질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대장 김창수]는 웃음과 감동이 공존하는 [7번방의 선물]과 닮고 싶었나봅니다. 당연히 관객은 묵직한 [동주]보다는 웃으며 감동을 느낄 수 있는 [7번방의 선물]을 더 좋아합니다. 117만의 [동주]와 1,281만의 [7번방의 선물]가 기록한 관객수만 비교해도 답은 쉽게 나옵니다.

이를 위해 [대장 김창수]는 감동을 책임질 조연과 관객에게 웃음을 안겨줄 조연으로 역할을 나눕니다. 일단 고진사(정진영)는 감동을 책임질 조연입니다. 그는 김창수의 정신적 지주가 되지만 사형집행으로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영화 초반 김창수와 대립을 이루다가 나중엔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는 마상구(정만식)도 감동을 책임질 조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영화 후반에 자신을 괴롭히던 간수 이영달(유승목)를 구하며 희생됨으로써 후반부 클라이맥스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와는 달리 조덕팔(신정근)과 양원종(정규수)은 관객에게 웃음을 안겨줄 조연입니다. 그들은 칙칙한 감옥 안에서 주거니 받거니하며 코믹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냅니다. 이렇게 [대장 김창수]는 백범 김구 선생을 소재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무겁지 않게 영화를 이끌어나갑니다. 하지만 그러한 이원태 감독의 선택은 [대장 김창수]를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영화로 전락시킵니다.

 

 

 

웃음도 감동도 부족했다.

 

이원태 감독의 실수는 [대장 김창수]에 웃음을 끼워넣으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조선의 운명의 풍전등화와도 같았던 시대적 상황과 감옥이라는 장소, 그리고 백범 김구 선생이라는 소재 모두가 묵직한데 억지로 웃음을 끼워 넣으려고하니 영화가 어색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로인하여 신정근과 정규수의 코믹 연기는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못하고 겉돌기만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백범 김구 선생의 젊은 시절이라는 소재 자체만으로도 감동을 당연했지만 어색한 웃음 때문에 당연해야했던 감동마저 반감되었다는 점입니다.

김창수가 자신의 이름조차 쓰지 못하는 무지렁이 죄수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대장으로써의 면모를 갖추어 나가는 것이 이 영화의 키포인트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그는 온갖 고초를 겪었을 것입니다. 특히 친일파인 감옥소장 강형식(송승헌)은 김창수를 굴복시키기 위해 온갖 악행을 자행합니다. 결국 [대장 김창수]는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맞서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김창수와 망해가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외면하고 일본에 빌붙어 부귀영화를 누리고자했던 강형식의 대결입니다. 그리고 김창수는 강형식에 맞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음으로써 민족의 대장 백범 김구가 되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대장 김창수]는 감동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영화의 진행은 뜨근미지근합니다. 간수들의 도움으로 김창수가 죄수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과정도 순조롭고, 신문 기사 때문에 죄수들에게 글을 가리치는 행위가 강형식에게 들통나자 독방에 갇히는 것이 김창수가 겪는 고초의 대부분입니다. 강형식은 송승헌의 악역 도전이라는 화제성과는 달리 존재감이 미비했고, 고종황제의 특사로 사형 집행이 정지되는 극적인 순간마저 별다른 감흥없이 연출되었습니다.

 

 

 

영화적 만듦새로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솔직히 [대장 김창수]라는 영화 자체만 놓고 본다면 이 영화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오락 영화라고 하기엔 재미가 부족했고,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한 묵직한 감동의 영화라고 하기엔 너무 가벼웠습니다. 이 영화가 개봉 첫주말에 20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친 것도 이러한 어정쩡함 때문입니다. 이러한 흥행 속도라면 [7번방의 선물]은 커녕 [동주]의 117만에도 근접하지 못한채 흥행 실패의 쓴맛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주연을 맡은 조진웅은 개인적으로 미스 캐스팅이라 생각합니다. 분명 조진웅은 좋은 배우입니다. 하지만 그의 연기에는 언제나 웃음끼가 살짝 묻어나있습니다. 그렇기에 [끝까지 간다], [보안관]처럼 코믹함이 허용되는 영화에서는 그의 연기가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빙]과 같은 전통 스릴러 영화에서는 그의 연기가 어색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대장 김창수]에서 조진웅은 자신의 연기 스타일을 최대한으로 자제하려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지만, 오히려 그로인하여 김창수라는 캐릭터에 몰입하지 못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저는 받았습니다. 

하지만 [대장 김창수]는 영화적 재미, 감동과는 별개로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해 우리가 몰랐던 것을 이야기해줬다는 부분에서 어느정도의 의미는 가지고 있는 영화입니다. 특히 '할 수 있어서 하는게 아니라, 해야해서 하는거다.'라는 대사는 꽤 깊은 울림을 줍니다. 나라가 망해가던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망해가는 나라를 외면하거나 일본과 손을 잡을 때, 김창수는 자신의 해야할 일을 묵묵히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고난의 길이라 할지라도 해야하기 때문에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백범 김구. 과연 우리는 해야할 일을 하고 있을까요? 혹시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있지는 않나요? 김창수의 그 한마디만으로도 [대장 김창수]는 볼 값어치가 있는 영화였습니다.

 

린시절 읽었던 위인전은 소설보다 재미는 없었지만 언제나 묵직한 감동을 안겨줬다.

[대장 김창수] 역시 재미에 얽매이지 않고 묵직한 감동에 올인했다면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관객의 반응이 좋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