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7년 영화이야기

[지오스톰] - 결코 신이 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뜻밖의 성찰

쭈니-1 2017. 10. 25. 14:46

 

 

감독 : 딘 데블린

주연 : 제라드 버틀러, 짐 스터게스, 에비 코니쉬, 에드 해리스, 앤디 가르시아

개봉 : 2017년 10월 19일

관람 : 2017년 10월 22일

등급 : 12세 관람가

 

 

[지오스톰]에 대한 안좋은 소문들

 

지난 주에 개봉한 영화 중에서 저는 웅이와 함께 볼 영화로 단연 [대장 김창수]를 선택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젊은 시절을 소재로한 영화인만큼 웅이와 함께 보면 교육적으로도 좋을 것이라 판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웅이는 [대장 김창수]도 보고 싶지만, [지오스톰]도 보고 싶다며 제게 살짝 귀띔해주더군요. 문제는 주말에 여수 갈치낚시가 예정되어 있기에 두 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여수 갈치낚시가 취소된 덕분에 [대장 김창수]에 이어 [지오스톰]도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지오스톰]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은 이 영화에 대한 안좋은 소문들 때문입니다. [지오스톰]은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인 [유니버셜 솔저], [스타게이트], [인디펜던스 데이], [고질라] 등의 영화에서 각본을 쓰며 유명해진 딘 데블린의 감독 데뷔작으로 2014년 제작이 확정된 당시부터 화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2017년 초 개봉예정이었던 [지오스톰]은 무슨 영문인지 9개월이나 개봉 시기를 늦추었고, 2016년 말에는 [저지 드레드]의 대니 캐논 감독이 합류하여 추가 촬영에 들어갔다는 것이 알려지며, 영화에 대한 불안감을 부채질했습니다.

결국 추가 촬영분 때문에 순수 제작비가 1억2천만 달러까지 상승했지만 [지오스톰]의 개봉 첫주 성적은 2천5백만 달러의 저예산 코미디 [부 2 ! 어 마디아 할로윈]에 밀려 2위에 그쳤고, 흥행성적도 1천3백만 달러에 불과해 제작사인 워너브라더스를 울상짓게 만들었습니다. 이쯤되면 거의 흥행 폭망작 확정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저는 비싼 극장 관람보다 값싼 다운로드 관람으로 [지오스톰]을 미뤄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웅이는 물론, 구피마저 [지오스톰]이 보고 싶다고하니 극장 관람이 성사되었습니다.

 

 

 

예상을 빗나간 재난영화

 

별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저는 [지오스톰]이 기대이상으로 재미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지오스톰]이 전형적인 재난영화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기후 변화에 의한 재난 예방을 위해 제작된 '더치보이'가 오작동하며 오히려 지구에 더 큰 재난을 불러 일으키고, '더치보이'의 제작자인 제이크(제라드 버틀러)는 어린 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설국열차]와 재난영화의 뻔한 법칙들을 적당히 버무린 영화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진다면 [지오스톰]은 재난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SF 스릴러 영화에 가깝습니다.

분명 [지오스톰]의 볼거리는 '더치보이'의 오작동으로 일어나는 전세계의 재난입니다. 지금까지의 재난영화는 한가지 재난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지오스톰]의 재난은 '더치보이'에 의한 인공적 재난인 탓에 여러 재난들이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준비되어 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두바이의 쓰나미, 홍콩의 용암 분출, 리우의 혹한, 모스크바의 폭염 등 실제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재난이 영화에 담겨져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지오스톰]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재난이 아닙니다. '더치보이'를 둘러싼 음모가 영화의 가장 중요한 뼈대입니다.

'더치보이'를 만들어서 인류를 위해 큰 기여를 했지만 제 멋대로의 행동 탓에 야인이 된 제이크는 자신의 자리를 빼앗은 동생 맥스(짐 스터게스)를 원망합니다. 하지만 '더치보이'가 오작동하자 백악관은 빠른 처리를 위해 제이크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제이크는 '더치보이'를 제어할 수 있는 우주정거장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더치보이'의 오작동에 거대한 음모가 있음을 알아냅니다.

 

 

 

형제는 용감했다.

 

결국 '더치보이'에 의한 [지오스톰]의 재난은 재난이라기보다는 테러에 가깝습니다. 재난 예방을 위해 만들어진 '더치보이'는 어느사이 무시무시한 무기가 되어 오히려 자연재해보다 더 끔찍한 테러를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인류를 위해 만든 '더치보이'가 무기가 되어 오히려 인류를 위협하자 제이크는 음모를 막기 위해 몸을 내던집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제이크와 맥스는 힘을 합칩니다.

제이크가 우주 정거장에서 자신의 후임자인 우테(알렉산드라 마리아 라라)와 함께 '더치보이' 오작동에 얽힌 진실에 접근하는 사이, 맥스는 자신의 연인이자 대통령 경호원인 사라(애비 코니쉬)의 도움을 받으며 '더치보이' 오작동의 배후 인물을 캐냅니다. [지오스톰]은 그러면서 영화의 분위기를 스릴러로 이끕니다. '더치보이'의 오작동에 얽힌 비밀을 알아낸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조직에 의해 제거되지만, 맥스는 여기에 굴하지 않았고, 제이크 역시 우주 정거장에서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사고로 위장되어 죽을 고비를 맞이하지만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더치보이'에 의한 재난을 막기 위해 폭발 직전의 우주정거장에 남습니다.

사실 '더치보이' 오작동에 얽힌 비밀과 배후인물이 밝혀지는 장면에서는 기운이 쏙 빠집니다. 너무나도 예상가능한 반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주목한 것은 김빠진 사이다같은 반전이 아닙니다. 저는 반전 속에 담겨진 메시지가 인상깊었습니다. 그 속에는 아무리 신을 흉내내려해도 결코 신이 될수 없는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에 대한 뜻밖의 성찰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결코 신이 될 수 없는 이유 (이후 스포 포함)

 

과학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던 오랜 옛날에는 자연재해가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형벌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한 현재에도 우리 인류는 자연재해를 막을 뚜렷한 해결책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오스톰]에서는 드디어 인간이 기후를 조작함으로써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해집니다. 결국 인간은 '더치보이'를 통해 신을 흉내낸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이 신의 영역이라 믿었던 자연재해를 스스로 제어하기 시작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인간이 완벽한 그 무엇을 만들어도 인간의 욕심으로 인하여 그것은 오히려 인간을 향한 무기가 됩니다. 핵을 예로 들어보면... 핵 에너지는 잘만 사용한다면 인류를 위한 무한한 에너지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핵을 무기로 만들어 버렸고, 그렇게해서 만들어진 핵무기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최악의 살상 무기가 되었습니다. '더치보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더치보이'가 자연재해를 막기 위한 용도로만 사용한다면 인류는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더치보이'가 무기화되면서 자연재해보다 더 끔찍한 대량살상무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인간이 신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욕심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만들고 발견해도, 권력,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오히려 나쁜 용도로 쓰고야 마는 본성. [지오스톰]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러한 인간의 본성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미국 국무장관인 레너드(에드 해리스)는 앤드류 팔마(앤디 가르시아) 미국 대통령을 없애고, '더치보이'를 이용해 미국의 적국을 초토화시키는 계획을 실행에 옮깁니다. 그가 그러한 테러를 저지르는 이유는 미국 대통령이 되겠다는 권력욕과 미국을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최강국으로 만들겠다는 야망 때문입니다. 분명 레너드의 명분은 어처구니가 없지만, 핵무기를 개발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최강국의 자리를 차지한 미국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치보이'가 UN에 넘어가면 안전해질까?

 

레너드가 전 세계에 테러를 저지른 이유는 '더치보이'의 관할권이 조만간 UN으로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비록 전세계 과학자들이 힘을 합쳐 '더치보이'를 개발했지만, '더치보이'의 강력한 힘을 깨달은 레너드는 '더치보이'를 UN에 넘기지 않고 계속 '더치보이'의 관할권을 움켜쥠으로써 전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권력을 누리겠다는 속내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제이크와 맥스 형제의 활약으로 레너드의 야망은 저지됩니다.

하지만 과연 '더치보이'의 관할권이 UN에 넘어간다면 '더치보이'를 이용한 테러는 사라질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UN 내에서도 누군가는 또다시 욕망을 불태우며 '더치보이'를 차지하려 할 것이고, '더치보이'를 차지하기 위해 레너드와 마찬가지로 테러를 저지를 것입니다. 결국 '더치보이'에 의한 테러를 막기 위해서는 '더치보이'를 폐기하는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신을 능가하는 것을 만들어도, 욕심에 의한 악용을 막지는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입니다.

요즘 전 세계는 [지오스톰]에서처럼 온갖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재해를 이겨내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더치보이'와 같은 인공적인 것이 아닙니다. 더이상의 환경오염을 막고, 자연재해에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우리는 지구에 사는 수 많은 생명체 중 하나일 뿐입니다. 우리는 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구의 주인도 아닙니다. [지오스톰]은 신 행세를 하는 인간에게 우리가 신이 될 수 없는 이유를 SF, 스릴러, 그리고 재난영화의 형식을 빌어 따끔하게 충고를 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생명을 만들어내고(블레이드 러너 2049), 기후를 조절해도

인간은 결코 신이 될 수 없다.

인간의 욕심은 더 많은 것을 원하고, 그럴수록 모든 것을 망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