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7년 아짧평

[시칠리아 햇빛 아래] - 준비가 부족한 해외 진출의 나쁜 예

쭈니-1 2017. 10. 25. 17:07

 

 

감독 : 린유쉰

주연 : 이준기, 저우동위, 원경천

개봉 : 2017년 6월 28일

관람 : 2017년 10월 22일

등급 : 12세 관람가

 

 

이준기 주연의 중국 멜로 영화

 

이제 외국영화에서 우리나라 배우의 얼굴을 보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20년전만 하더라도 박중훈이 할리우드 B급 액션영화인 [아메리칸 드래곤]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큰 화제가 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김수현처럼 웬만한 블록버스터 영화에 출연하지 못하면 뉴스거리조차 되지 못합니다.

특히 예전부터 중국영화계에서는 우리나라의 미남 배우를 호시탐탐 노렸었습니다. 반문걸 감독의 [상해탄]에서는 정우성이 특별출연을 했었고, 송승헌은 원규 감독의 [버추얼 웨폰]에 출연했고, 한중 합작영화인 [제3의 사랑]에서 만난 유역비와 연인관계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그의 차기작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한 중국 전쟁영화 [대폭격]이라고합니다. 권상우는 성룡 감독의 [차이니즈 조디악]에 이어 [그림자 애인], [적과의 허니문]에 연달아 출연했으며, 지진희 역시 진가신 감독의 뮤지컬 영화 [퍼햅스 러브]에 이어 [적도], [연애의 발동 : 상해 여자, 부산 남자]로 우리나라보다 오히려 중국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습니다.

[시칠라이 햇빛아래] 역시 우리나라의 미남배우 이준기를 캐스팅한 중국영화입니다. 이준기는 할리우드의 SF 스릴러 [레지던트 이블 : 파멸의 날]에서 특별출연하며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적인 배우로 도약하기 위해 준비중인데, [시칠리아 햇빛아래]는 그러한 과정에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

 

[시칠리아 햇빛 아래]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죽음을 앞둔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뇌종양에 걸린 아버지를 여의고 누나(유선)를 따라 이탈리아로 간 준호는 우연한 기회로 중국 상하이 대학에 입학합니다. 그곳에서 샤오요우(저우동위)와 만나 사랑에 빠진 준호는 그녀와 함께 디자인 회사에서 일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하지만 준호 역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뇌종양에 걸려 6개월 시한부 인생이 선고되고, 샤오요우에게 상처를 주기 싫었던 준호는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고 이탈리아로 떠납니다. 그곳에서 샤오요우가 자신을 잊게 하기 위해 거짓 장례식까지 치루지만 샤오요우가 여전히 준호를 잊지 못하고 방황한다는 사실을 알고 준호는 그녀의 윗집에 이사와 그녀를 남몰래 돕고, 생을 마감합니다.

영화에서 샤오요우는 전형적인 민폐 캐릭터입니다. 그녀는 준호 덕분에 디자인 회사에 취직하지만 실력이 부족해 말썽만 일으킵니다. 준호가 떠난 후에는 세상 모든 것을 잃은 것마냥 행동해서 회사 동료들을 힘들게 하고, 준호는 뇌종양 수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샤오요우를 돕기 위해 무리해서 일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민폐 캐릭터마저도 사랑으로 감싸는 준호는 어쩌면 모든 여성들이 꿈에 그리는 멋진 남성의 표상일지도...

 

 

 

한국어와 중국어가 혼합된 연기

 

[시칠리아 햇빛 아래]는 준호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통한 사랑의 판타지를 그린 멜로 영화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한심해서 웃음이 났습니다. 솔직히 이 영화의 내용에 대해서는 딴지를 걸고 싶지 않습니다. 샤오요우가 너무 심한 민폐 캐릭터이지만, 오히려 그러한 그녀의 모습이 준호의 보호 본능을 자극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영화 중간 중간 낯간지러운 장면도 있지만 웃어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샤오요우가 서툰 한국말로 '나 잡아봐라'라고 하자 준호가 '샤오요우, 너 잡히면 죽어'라며 쫓아가는 장면은 너무 유치해서 웃음이 피식 났습니다. 준호의 실질적인 보호자라 할 수 있는 누나의 역할이 미비한 것도 이상했지만 어차피 영화의 포커스가 준호의 지고지순한 사랑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샤오요우의 건너편집 남자의 이해하기 어려운 무던함은 준호의 죽음 이후 샤오요우의 새로운 짝을 만들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언어의 장벽입니다. 이준기는 짧은 대사는 중국어로, 긴 대사는 한국어로 연기하고, 반대로 저우동위는 짧은 대사는 한국어로, 긴 대사는 중국어로 연기합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는 한국어와 중국어가 혼합되어 사용되는데, 영화 속의 캐릭터들은 한국어와 중국어를 마치 한가지 언어로 이해하는 듯이 행동합니다. 이렇듯 한국어와 중국어의 혼합은 중국어가 서튼 이준기를 캐스팅하기 위한 궁여지책입니다.

 

 

 

준비가 부족한 해외 진출의 나쁜 예

 

영화에서 한국어와 중국어의 혼합이 문제인 이유는 그것이 영화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점입니다. 정말 재미있는 영화는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내가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영화 속에 완전히 빠져 들어서 감정이입을 해야합니다. 그래서 내가 준호가 되고, 내가 샤오요우가 되어야합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 몰입하려하면 샤오요우의 이상한 한국말 대사가 튀어 나오고, 이준기의 한국말과 중국만을 뒤섞은 이상한 연기가 선보입니다. 이래가지고서는 아무리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도 몰입하기 어렵습니다.

[시칠리아 햇빛아래]를 보며 가장 먼저 떠올랐던 영화는 손예진, 진백림 주연의 한중 합작영화 [나쁜놈은 죽는다]입니다. 영화에서 진백림의 그 어색한 한국말 대사는 저로 하여금 도저히 영화를 재미있게 보게끔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배우의 해외 진출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억지로 끼워맞춘 연기가 아닌, 자연스러운 설정과 연기입니다. 준호가 상하이 대학에 진학했고, 샤오요우와 사랑에 빠졌다면 그는 중국말을 능통하게 했어야 했습니다.

이준기가 진정 해외 진출을 원했다면 언어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합니다. 별다른 준비없이 그저 얼굴만 믿고 지고지순한 사랑남 캐릭터를 연기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해외 진출이 아닌 어색한 해프닝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요? 요즘 들어서 외국영화에 출연하는 우리나라 배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막무가내 진출이 아닌 철저한 준비를 동반한 진출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