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마이클 그랜다지
주연 : 콜린 퍼스, 주드 로, 니콜 키드먼, 로라 리니
개봉 : 2017년 4월 13일
관람 : 2017년 6월 19일
등급 : 12세 관람가
천재의 불꽃같은 삶은 나와 같은 보통사람들에겐 매력적인 소재이다.
왜 천재들의 삶은 그토록 힘이 들고, 너무나도 짧았던 것일까요? 가끔 불행한 삶을 살다가 요절한 천재를 담은 영화를 보다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좀 더 윤택했다면, 그들의 삶이 좀 더 길었다면, 우리 인류의 문화유산은 더욱 풍성해졌을텐데... 마이클 그랜다지 감독의 영화 [지니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니어스]는 미국의 천재 작가 토마스 울프의 짧은 삶을 소재로한 영화입니다. 토마스 울프는 <천사여, 고향을 보라>를 비롯한 네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한 후 서른여덟살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작가입니다.
사실 토마스 울프는 동시대 작가인 <위대한 개츠비>의 F. 스콧 피츠제럴드와 <무기여 잘 있거라>, <노인과 바다>의 어니스트 헤밍웨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많이 알려진 소설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지니어스]는 유력 출판사의 편집자인 맥스 퍼킨스(콜린 퍼스)의 시선으로 토마스 울프를 재조명함으로써 그의 천재성을 부각시킵니다. 맥스 퍼킨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길들이고,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조력자로 최고의 명성을 얻은 편집자로 그가 모든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작가 토마스 울프를 선택했다는 것만으로도 토마스 울프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F. 스콧 피츠제럴드와 같은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것이죠.
특히 [지니어스]는 연기력 하나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콜린 퍼스와 주드 로가 주연을, 니콜 키드먼, 로라 리니가 조연을 맡음으로써 영화를 더욱 믿음직하게 했습니다. 이쯤되면 북미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조용히 극장 간판이 내려진 [지니어스]를 위해 월요일 저녁의 평화로움을 전부 투자하는 것이 아까워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최고의 편집자, 길들여지지 않은 천재 작가를 만나다.
1929년 뉴욕. 유력 출판사 스크라이브너스의 편집자 퍼킨스에게 방대한 분량의 원고가 전해집니다. 토마스 울프라는 신인 작가가 쓴 이 원고는 이미 모든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상태였지만 퍼킨스는 울프의 천재성을 한 눈에 알아보고 그에게 출판을 제안합니다. 서정적이고 세련된 울프의 감성과 냉철하고 완벽주의적인 퍼킨스의 편집이 더해져 탄생한 <천사여, 고향을 보라>는 출판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고 울프를 천재작가의 반열에 올려 놓습니다.
<천사여, 고향을 보라>의 성공이후 울프는 쏟아지는 영감과 엄청난 창작열로 5,000페이지에 달하는 두번째 원고 <때와 흐름에 관하여>를 가져오고, 퍼킨스와 울프는 <때와 흐름에 관하여>의 기나긴 편집 작업에 돌입합니다. 하지만 자신보다 작업에 몰두하며 퍼킨스만을 찾는 울프를 보며 그의 연인 엘린(니콜 키드먼)은 절망감에 휩싸이고, 가족보다는 울프와의 편집에 매달리는 퍼킨스를 보며 그의 아내 루이스(로라 리니)도 따끔한 충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기나긴 시간 끝에 완성된 <때와 흐름에 관하여>도 비평적 성공과 함께 베스트셀러가 되고, 엄청난 성공에 도취된 울프는 점점 통제할 수 없는 광기에 휩싸입니다. 그리고 혼자 떠난 바닷가에서 뇌종양으로 쓰러져 짧은 생을 마감하는데... 울프의 장례식을 치룬 퍼킨스에게 울프가 죽기전에 쓴 마지막 편지가 도착하고, 그제서야 퍼킨스는 진한 눈물을 흘립니다.
서로 상반된 성격을 가진 두명의 천재
[지니어스]는 토마스 울프라는 천재 작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토마스 울프 외에도 또 한명의 천재가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맥스 퍼킨스입니다. 맥스 퍼킨스는 다듬어지지 않은 작가의 원고를 독자가 읽기 좋게 편집을 하는 편집자입니다. 어쩌보면 작가의 창작물에 가위질을 하는 악역인 셈입니다. 그러나 그의 편집이 있었기에,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도 빛을 볼 수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이 영화의 진정한 천재는 어쩌면 맥스 퍼킨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울프와 퍼킨스의 관계가 참 흥미롭습니다. 아들을 간절히 원했지만 딸만 다섯인 퍼킨스에게 어쩌면 울프는 아들과도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윈 울프에게도 퍼킨스는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실제 두 사람은 편집 작업을 통해 서로에게 깊숙이 빠져드는데, 엘린이 두 사람의 관계를 질투하고, 현모양처인 루이스도 가정을 등한시하고 울프와의 작업에만 매달리는 남편에게 실망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두 사람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울프는 열정적이며 감성적이고, 퍼킨스는 매사에 차분하며 이성적입니다. 울프는 엄청난 분량의 원고를 가져와 "왜 소설이 길면 안되지?"라고 질문을 하고, 퍼킨스는 울프의 방대한 원고를 줄이기 위해 갖은 애를 씁니다. [지니어스]는 똑같이 천재이지만, 서로 상반된 두 사람의 우정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초점을 맞췄어야 했다.
열정적인 천재 작가 토마스 울프와 냉정한 천재 편집자 맥스 퍼킨스의 우정. 분명 [지니어스]는 두 천재를 통해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영화는 굉장히 밋밋합니다. 울프의 광기는 그저 성공에 도취된 천재 작가의 치기어린 행동에 불과했고, 퍼킨스는 그러한 울프의 광기에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영화 후반 울프와 퍼킨스의 비극적인 불화가 영화를 휘감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조용히 넘어가 버립니다.
게다가 [지니어스]는 두명의 천재에게 시선을 나누다보니 그 누구에게도 초점을 맞추지 못합니다. 울프의 열정과 광기는 퍼킨스 제 3자의 시선으로 간접적으로 처리될 뿐이고, 자신의 작업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있는 퍼킨스의 고뇌도 그렇게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엘린의 질투는 성급해보였고, 루이스의 걱정도 그저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토마스 울프의 열정적인 삶을 좀 더 세밀하게 그려냈다면, 아니면 맥스 퍼킨스의 고뇌를 좀 더 심도있게 드러다봤다면, [지니어스]는 실화를 바탕으로한 흥미로운 영화가 될 수 있었을텐지만, 그 누구에게도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탓에 그냥 밋밋한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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