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7년 아짧평

[미스 슬로운] - 답답한 대한민국의 고구마 정치에도 그녀같은 사이다가 필요하다.

쭈니-1 2017. 6. 13. 15:24

 

 

감독 : 존 매든

주연 : 제시카 차스테인, 마크 스트롱, 구구 바샤-로

개봉 : 2017년 3월 29일

관람 : 2017년 6월 10일

등급 : 15세 관람가

 

 

대한민국의 정치는 고구마처럼 답답하다.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던 제가 작년 가을 비선실세 스캔들로 인하여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요즘은 아침에 출근하면 먼저 포털 사이트의 정치 뉴스 기사부터 검색하고, 저녁에 퇴근하면 TV 뉴스를 꼼꼼하게 체크합니다. 그런데 정치에 관심을 갖게된 이후부터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정치 뉴스를 볼 때마다 너무 짜증이 나서 저를 답답하게 하는 정치인들에게 경고를 주고 싶은 마음에 어서 빨리 선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방선거는 1년이 남았고, 총선은 3년이나 남았네요. 저와 같은 일반 국민이 정치에 관여할 수 있는 것이 선거밖에 없다는 현상황이 정말 절망스럽습니다.

[미스 슬로운]은 미국의 정치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슬로운(제시카 차스테인)은 승률 100%를 자랑하는 로비스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로비스트는 린다김 때문에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정치 선진국인 미국에서는 일반적인 직업이라고 하네요. 로비스트가 하는 일은 의뢰인의 법안이 국회에 통과할 수 있도록 합법적인 로비를 하는 일인데, [미스 슬로운]은 총기 규제에 대한 히튼-해리스라는 가상의 법안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토요일 저녁에 [미스 슬로운]을 보기 시작했을 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제시카 차스테인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에 매료되고, 그녀의 치밀함에 감탄했으며, 마지막 한방에 가슴이 뻥하고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답답한 고구마 정치 상황에서 슬로운처럼 사이다같은 로비스트가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들었습니다.

 

 

 

승률 100%를 자랑하는 최고의 로비스트, 모두가 포기한 싸움에 뛰어들다.

 

엘리자베스 슬로운은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의 로비스트입니다. 거대한 로비회사에서 승승장구하던 그녀에게 보수 정치인이 총기규제 법안이 부결되도록 로비를 해달라는 의뢰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지지하는 법안만 맡는 슬로운은 의뢰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그로인하여 회사에서의 입지가 불안해집니다. 그러던중 총기규제 법안 찬성을 로비라는 작은 로비 회사의 대표 슈미트(마크 스트롱)가 자신을 도와 달라는 요청을 하고 슬로운은 자신의 최정예 팀원들과 함께 슈미트의 회사로 둥지를 옮김으로써 예전 동료들과 적이 됩니다.

하지만 상황은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엄청난 자본력으로 무장한 총기규제 법안 반대론자들의 총 공세로 인하여 슬로운은 궁지에 몰리고, 결국 승리를 위해 결코 해서는 안될 짓을 해버립니다. 슬로운의 팀원 중에는 과거 고교 총기난사 사건의 생존자인 에스미(구구 바샤-로)가 있는데, 슬로운은 에스미를 언론에 노출시킴으로써 여론을 총기규제 법안 찬성 쪽으로 되돌리려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로인하여 에스미가 괴한에 공격을 당하자 여론은 물론 에스미와 슈미트 마저도 슬로운에게 등을 돌립니다.

그러한 가운데 총기규제 법안 반대측은 슬로운의 약점을 잡아 그녀를 청문회에 세우고, 청문회에서 슬로운의 과거 불법적인 로비 활동이 낱낱이 공개됩니다. 하지만 슬로운은 최악의 상황에서 대반격을 시작합니다. 자기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승리를 얻어내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충격적인 한방을 터트립니다.

 

 

 

사이다같은 그녀의 멋진 한방

 

앞서 언급했던대로 [미스 슬로운]은 정말 속이 뻥하고 뚫릴만큼 사이다처럼 시원한 정치 드라마입니다.  일단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는 제시카 차스테인의 불꽃같은 연기에 한번 매료되고, 승리를 위한 슬로운의 치밀한 전략에 다시한번 매료됩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동료의 아픈 과거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마저도 희생시키는 슬로운의 놀라운 결단에 또다시 매료됩니다. 돈과 명성이 아닌, 자신의 신념에 따른 행동이기에 더더욱 그녀가 멋져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희생마저도 어쩌면 애초부터 계산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중독과 승리에 대한 집착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고, 약이 아니면 버틸 수가 없는 슬로운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일과 완전히 분리된 완벽한 휴식을... 그런 면에서 감옥은 그녀가 바라던 완벽한 휴식처가 된 셈입니다. 일을 하고 싶어도 결코 할 수 없는 일과 완전히 분리된 완벽한 휴식처. 결국 그녀는 승리를 쟁취했고, 자신에게 강제로 완벽한 휴식을 제공했으니,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슬로운에게는 최상의 계획이었는지도...

[미스 슬로운]에서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총기규제 법안에 대해서 보수당인 공화당과 진보당인 민주당의 의원들은 각자 지역 여론을 수렴하고, 그것에 맞춰 법안 찬성과 반대 투표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처럼 국회의원 개인의 의견과 여론은 무시되고 당락에 의한 당의 정책에 일사분란하게 따르는 것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법안 하나를 통과시키려면 국회의원 개인이 아닌 당 전체를 설득해야하니 아무리 천하의 슬로운이라고 하더라도 더러워서 못해먹겠다는 푸념이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정치 선진국으로의 길은 참 멀고도 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