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7년 아짧평

[목소리의 형태] - 심각하지 않게, 밝은 분위기로 풀어나간 집단 따돌림 이야기

쭈니-1 2017. 6. 19. 16:49

 

 

감독 : 야마다 나오코

더빙 : 이리노 미유, 히야미 사오리

개봉 : 2017년 5월 9일

관람 : 2017년 6월 18일

등급 : 전체 관람가

 

 

학교 폭력은 이제 더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4월 서울의 모 초등학교 수련회에서 3학년 4명이 같은 반 학생 1명을 집단으로 구타했고, 가해자 중에서는 재벌 총수의 손자와 유명 연예인의 아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인터넷 기사가 관심을 집중시켰습니다. 일단 학교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고작 초등학교 3학년이라는 사실이 놀라웠고, 가해자인 재벌 총수의 손자와 유명 연예인의 아들은 이 사건과 관련해서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게다가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을 둔 제 입장에서는 이러한 학교 폭력이 더이상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가 않았습니다. 웅이가 학교 폭력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두려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인가봅니다.

제가 일요일 낮에 웅이에게 [목소리의 형태]를 보여준 이유도 그러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목소리의 형태]는 평범한 초등학생이었던 이시다 쇼야(이리노 미유)가 청각장애인 전학생 니시미야 쇼코(하야미 사오리)를 괴롭히다가 결국 자신도 외톨이가 되고, 6년 후 쇼코를 찾아가 용서를 빌며 진정한 친구가 된다는 내용의 일본 애니메이션입니다.

[너의 이름은.]을 연상하게 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감성적인 그림체가 좋았고, 괴롭힘을 당한 아이와 괴롭힌 아이가 서로를 용서하고 친구가 되는 과정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집에서 영화를 보면 100% 꾸벅꾸벅 졸던 구피도 2시간 10분의 러닝타임을 가진 이 영화를 졸지 않고 끝까지 봤을 정도이니 일요일 낮 저희 가족의 [목소리의 형태] 관람은 대성공인 셈입니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

 

[목소리의 형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자살을 결심을 한 이시다 쇼야가 죽기전 마지막으로 니시미야 쇼코를 찾아가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왜 쇼야는 자살을 결심한 것일까요? 그의 사연은 6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개구쟁이이고 친구도 많았던 평범한 소년 쇼야. 그런데 그의 반에 귀가 들리지 않는 소녀 쇼코가 전학옵니다.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쇼코를 향한 반 아이들의 불만은 커져만 가고, 쇼야 역시 쇼코에게 짖궂은 장난을 하기 시작합니다.

반 아이들의 집단 따돌림에 괴로워하던 쇼코는 결국 전학을 갑니다. 그리고 쇼코가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이 학교에 알려지고 가해자로 쇼야가 지목됩니다. 쇼야는 너희들도 나와 함께 쇼코를 괴롭히지 않았냐고 항변하지만 반 아이들은 그를 외면하고, 결국 쇼야는 징계를 받고, 그 일로 인하여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게 됩니다.

6년후 쇼야는 여전히 외톨이입니다. 아무도 그와 이야기하려 하지 않고, 쇼야 또한 그들과 이야기하려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는 자실을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쇼코를 찾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쇼야와 쇼코의 만남은 그들의 인생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쇼야에겐 새로운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6년전 쇼코를 괴롭혔던 다른 아이들도 쇼야와 쇼코에게 모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6년전의 앙금이 남아 있어서 미묘한 균열이 발생하고, 쇼코는 결코 해서는 안될 선택을 하고 맙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의 시선으로 본 집단 따돌림

 

[목소리의 형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쇼야의 변화입니다. 쇼야는 그야말로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모범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제아도 아닌, 그냥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구쟁이 아이입니다. 그런데 그런 쇼야가 별다른 생각없이 쇼코를 괴롭히며 장애가 있는 친구를 괴롭힌 문제아로 낙인찍힘입니다. 그로인하여 쇼야는 쇼코가 그랬던것처럼 외톨이가 됩니다. 결국 [목소리의 형태]는 집단 따돌림의 가해자에서 피해자가 된 쇼야를 통해 집단 따돌림 문제를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의 시선으로 보게되는 것입니다.

한가지 더 흥미로운 것은 외톨이가된 쇼야가 점점 쇼코와 닮아간다는 점입니다. 친구들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그들이 모두 자신의 흉을 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목소리의 형태]에서는 그러한 쇼야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사람들의 얼굴에 X 표시를 하는데, 이는 쇼야가 친구들의 얼굴을, 친구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보려하지도, 들으려 하지도 않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쇼야와 쇼코의 그러한 공통점은 자존감 부족을 뜻하는데, 쇼야는 영화 초반 자살을 결심했고, 친구들과 놀이공원에서 즐겁게 놀며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쇼코는  어렵게 자신에게 손을 내민 친구에게 "난 내 자신이 너무 싫어."라고 고백합니다.

저는 집단 따돌림 문제가 자존감과 직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존감이 없는 아이는 스스로 위축되기 마련이고, 그러한 모습이 따돌림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웅이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야단보다는 칭찬을 해주려 노력하고, 웅이가 잘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위주로 함께 해줍니다. 물론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집단 따돌림이라는 사회적 문제의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는 웅이의 자존감이 높았으면 좋겠습니다.

 

 

 

심각하지 않게, 밝은 분위기로 풀어나간 집단 따돌림 이야기

 

집단 따돌림을 소재로한 영화라면 가장 먼저 무거운 영화 분위기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소리의 형태]는 그렇게 무거운 분위기의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 초반 쇼야는 자살을 결심하지만 쇼야의 성격 자체가 워낙 밝은 편이라 쇼야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영화의 분위기는 밝은 편입니다. 게다가 쇼야의 절친임을 자처하는 토모히로의 등장은 영화를 코믹한 분위기로 몰고 가기도 합니다.

영화의 중반에서는 쇼야와 쇼코의 청춘 로맨스물의 형식을 띄기도 합니다. 쇼야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쇼코와 그러한 쇼코의 사랑 고백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헛발질하는 쇼야의 모습에서 흐뭇한 미소를 띄기되는 것은 그들의 찬란하고 아름다운 젊은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밝은 분위기를 띄고 있지만 [목소리의 형태]는 영화의 주제를 결코 잊지 않습니다. 토모히로에게 '친구의 조건'을 묻는 쇼야의 심각한 표정에 토모히로가 감자튀김에 케찹을 찍어 담배처럼 물으며 거들먹거리며 대답을 하는 장면은 밝은 분위기와 심각한 주제의 적절한 조합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자기 자신 때문에 친구들이 어려움을 겪었다는 죄책감에 해서는 안될 선택을 하는 쇼코의 모습도 [목소리의 형태]의 무거운 주제가 청춘 로맨스물의 가벼움에 가려지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이렇듯 [목소리의 형태]는 밝은 분위기로 영화의 재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집단 따돌림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적절하게 풀어낸 영화입니다. 저처럼 사춘기 자녀가 있는 분이라면 함께 이 영화를 보시는 것도 좋은 선택일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