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7년 아짧평

[맨체스터 바이 더 씨] - 치유되지 않는 상처는 참고 견뎌나갈 뿐이다.

쭈니-1 2017. 5. 7. 00:16



감독 : 케네스 로너건

주연 : 케이시 애플렉, 루카스 헤지스, 미셸 윌리엄스, 카일 챈들러

개봉 : 2017년 2월 15일

관람 : 2017년 5월 2일

등급 : 15세 관람가



[특별시민]을 본 후 부랴 부랴 집으로 돌아온 이유


5월 2일은 제게 혼자만의 휴가와도 같은 날입니다. 구피는 회사에 출근했고, 웅이는 중간고사를 보기 위해 학교에 등교했고, 이번 황금연휴 기간 중에서 저혼자 아무런 계획없이 집에서 빈둥거릴 수 있는 단 하루가 바로 5월 2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구피보다, 웅이보다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섰습니다. 전날 보려고 했으나 결국 보지 못한 [특별시민]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특별시민]이 끝나고나서도 시간은 고작 오전 10시 30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평소같으면 한 두편의 영화를 더 본 후 천천히 집으로 돌아갔을테지만, 그날 저는 [특별시민]이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집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저 혼자만의 휴가를 [특별시민] 단 한편으로 만족하고 집으로 향한 것은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날은 oksusu에서 단 하룻동안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무료로 볼 수 있는 이벤트가 있었고, 저는 그 이벤트를 놓치지 않기 위해 [특별시민]을 본 후 서둘러 집에간 것입니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지난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6개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그 중에서 남우주연상과 각본상을 수상했습니다. 특히 지금까지 벤 애플렉의 동생으로 더 잘 알려진 케이시 애플렉이 형도 하지 못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함으로써 진정한 배우로 한단계 도약한 영화라는 점에서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의미가 있는 영화입니다. 그러니 비록 극장에서는 놓쳤지만 다운로드로 볼 수 기회마저 놓칠 수는 없었습니다.




조카의 후견인이 된 남자가 망설이는 이유


보스턴에서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는 리(케이시 애플렉)는 어느날 형인 조(카일 챈들러)가 심부전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맨체스터로 향합니다. 하지만 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조는 세상을 떠나고 리는 조카 패트릭(루카스 헤지스)의 후견인으로 지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하지만 패트릭은 맨체스터를 떠나 삼촌과 함께 보스턴에서 살 수 없다고 버팁니다.

조의 장례식을 위해 맨체스터에 잠시 머물게된 리. 하지만 조의 장례식에 온 전처 랜디(미셸 윌리엄스)와 만나게 되면서 그동안 그토록 잊고 싶었던 맨체스터에서의 악몽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한때 맨체스터에서 랜디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살았던 리는 한순간의 실수로 아이들을 잃고 맙니다. 자신의 멍청한 실수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기에 리는 혼자 도망치듯 보스턴에 갔던 것입니다.

패트릭과 함께 며칠을 보내며 맨체스터에 과거에 대한 악몽과 조카에 대한 책임감에서 갈등하던 리는 결국 패트릭의 후견인을 포기하고 보스턴으로 돌아갑니다. 패트릭에게 자주 들르겠다는 약속과 함께...




케이시 애플렉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이유


제가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 관심을 갖게된 이유는 케이시 애플렉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제게 있어서 케이시 애플렉은 B급 액션영화에 더 잘 어울리는 그저 그런 배우에 불과했습니다. 실제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오션스 일레븐]과 [인터스텔라]의 조연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눈에 띄는 영화가 없습니다. 그런 그가 덴젤 워싱턴(펜스), 라이언 고슬링(라라랜드), 비고 모텐슨(캡틴 판타스틱), 앤드류 가필드(핵소 고지)를 제치고 당당하게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명연기를 펼쳤길래...

그러한 궁금증으로 보게된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케이시 애플렉은 과연 대단했습니다. 영화 초반 무표정한 얼굴로 슬픔과 분노를 가슴 속 깊숙히 억누르며 사는 리의 모습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중반에는 리가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과거의 악몽이 나오는데... 그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진한 눈물이 제 두 뺨을 흐르고 내려왔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이 영화를 봤기에 저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맘껏 울 수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그런 일을 겪었다면 저 역시도 내 자신에게 행복한 삶을 누릴 권리를 허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리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자신은 절대로 행복해선 안된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모습은 그래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영화 후반 랜디가 과거 그에게 모진 말을 했던 것을 사과하지만 리는 그러한 사과조차 받을 자격이 없다는 듯 애써 외면합니다. 케이시 애플렉은 조용히 그리고 절제된 연기로 그러한 리를 표현해낸 것입니다.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그저 참고 견딜 뿐이다.


저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가 조카인 패트릭과 함께 하면서 리의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영화일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엔 리가 맨체스터로 다시 돌아와 정착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맺음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그렇게 뻔히 보이는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는 한 남자의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죄책감을 소재로 했으면서도 그가 결코 그날의 악몽에서 벗어나는 것을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리는 맨체스터에 정착할 수가 없습니다. 맨체스터엔 친구가 있고, 가족이 있고, 멋진 집이 있지만 그 모든 것을 포기할 정도로 상처가 컸기 때문입니다. 케네스 로너건 감독은 치유가 가능한 상처가 아닌, 치유할 수 없는, 그래서 참고 견딜 수 밖에 없는 상처를 가진 한 남자의 모습을 덤덤하게 그려내는데 성공했고, 그렇기에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제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P.S. 영화의 제목이자 무대인 맨체스터는 영국의 맨체스터가 아닌 미국 메사추세츠 주에 실존하는 인구 1만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라고 합니다. 마을의 저익 명칭은 '맨체스터 바이 더 씨'라고 하네요. 저는 '맨체스터'가 영국의 '맨체스터'인줄 알고 '맨체스터'와 보스턴이 그렇게 가까웠나? 라는 의구심을 안고 영화를 봤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