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7년 아짧평

[핵소 고지] - 죽이기 위한 전쟁이 아닌, 살리기 위한 전쟁

쭈니-1 2017. 5. 1. 23:05



감독 : 멜 깁슨

주연 : 앤드류 가필드, 테레사 팔머, 휴고 위빙, 샘 워싱턴, 빈스 본

개봉 : 2017년 2월 22일

관람 : 2017년 4월 30일

등급 : 15세 관람가



나는 전쟁영화가 싫다. 하지만 이 영화는 봐야했다.


지난 2월 넷째주는 최소한 영화에 잇어서는 제게 대박데이였습니다. 그 주에 일곱편의 영화가 새롭게 개봉했는데, 그 일곱편의 영화가 제게 기대작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아무리 시간을 쥐어짠다고해도 일곱편의 영화를 모두 극장에서 보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극장에서 볼 영화가 네편과 나중에 다운로드로 볼 영화 세편으로 나눌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핵소 고지]는 [루시드 드림], [싱글라이더], [문라이트]와 함께 극장에서 볼 영화로 분류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루시드 드림], [싱글라이더], [문라이트]는 극장에서 봤지만 [핵소 고지]는 놓쳤습니다.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애초에 다운로드로 보려고 했던 [23 아이덴티티]를 극장에서 봤을 정도로 분명 [핵소 고지]를 볼 시간은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핵소 고지]는 결국 극장이 아닌, 다운로드로 미뤄둘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영화가 전쟁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라면 두루 좋아하려고 노력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결국 제가 좋아하는 장르와 싫어 장르가 나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중에서 싫어하는 장르의 영화는 B급 액션, 공포 그리고 전쟁영화입니다. 특히 전쟁영화는 제가 좋아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장르인데, 영화 속에서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치뤄지는 대량살상을 참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전쟁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전쟁영화가 그 어떤 장르의 영화보다 끔찍하고 잔인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핵소 고지]를 봐야 했습니다. 이 영화는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그 중 편집상과 음향믹싱상을 수상했기 때문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전쟁에서 영웅되기


[핵소 고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오키나와의 '핵소 고지'에서 총 한자루 없이 75명의 생명을 구한 데스몬드 도스(앤드류 가필드)의 실화를 바탕으로한 영화입니다. 사실 그는 군대에 가지않아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군에 진주만을 폭격하고, 미국의 젊은이들이 앞다퉈 입대하자 데스몬드 역시 약혼녀인 도로시(테레사 팔머)을 남겨두고 자원입대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종교적인 신념 때문에 집총을 거부한 것입니다. 전쟁에 나가기 위해서는 총을 집어들어야 하지만 데스몬드는 하나님은 살인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며 총을 거부합니다.

데스몬드의 상관인 하웰(빈스 본) 하사관과 글로버(샘 워싱턴) 대위의 끊임없는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데스몬드는 결국 군사재판에 회부됩니다. 데스몬드가 상관의 명령 불복종이라는 죄를 시인한다면 불명예 제대를 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끝까지 데스몬드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결국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인 아버지(휴고 위빙)의 도움으로 의무병으로 '핵소 고지' 전투에 투입됩니다.

오키나와를 차지하기 위한 일본군과 미국군이 접전을 벌이고 있는 '핵소 고지'. 생과 사가 오가는 곳에서 데스몬드는 총 대신 의약품을 들고 전투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동료들이 모두 후퇴한 상황에서도 '핵소 고지'에 남아 부상을 당해 움직이지 못하는 동료들을 구함으로써 진정한 전쟁영웅이 됩니다.


 


내가 전쟁영화를 싫어하는 이유


저는 전쟁에서 선과 악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이라는 것이 각자의 이해관계가 충돌을 하며 극단적인 대립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이해관계를 따지고보면 보편적인 선과 악을 나눌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누가 봐도 악이었고, 연합군은 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을 일으킨 히틀러를 비롯한 독일의 지도자는 분명 악이었지만, 아무 것도 모르고 선동되어 전쟁에 동원된 일반 병사들까지 악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그저 전쟁의 희생자일 뿐입니다.

[핵소 고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악입니다. 하지만 전쟁에 동원된 일본의 젊은 병사들까지 악으로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핵소 고지' 전투에서 일본의 젊은 병사들은 자국을 침략한 미국군에 맞서 죽기 살기로 싸운 것 뿐입니다. 그렇기에 영화 속 전투 장면이 저는 끔찍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저 책상에 앉아 전쟁을 결정한 지도자들 때문에 아무 죄없는 젊은 이들이 전쟁터에서 잔인하게 서로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핵소 고지]는 제가 싫어하는 전쟁영화의 모든 장면들이 있습니다. 일본군이 낄낄거리며 미국군의 부상자들을 죽이는 장면은 의도적인 선과 악의 구분을 위한 불필요한 장면이었습니다. 미국군의 화병방사병이 일본군을 향해 화염방사기를 쏴 불태워죽이는 장면에서는 너무 끔찍해서 두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멜 깁슨 감독은 전쟁의 잔인함을 관객에게 보여주는데는 성공했지만, 그래도 영웅주의적 전쟁영화의 재미를 위한 장면들이 영화 곳곳에 보여서 저는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스몬드의 신념은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2시간 20분동안 제가 싫어하는 전쟁영화를 황금같은 연휴의 첫 영화로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습니다. 멜 깁슨 감독은 [핵소 고지]를 영웅주의적 전쟁영화로 완성해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스몬드 도스의 신념은 감동적이었기 때문입니다.

1차 세계대전 참전의 후유증으로 폭력적이 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데스몬드는 어린시절 아버지를 죽일뻔한 사건을 겪고 다시는 폭력을 쓰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그런 그가 조국을 지키기 위해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죽이기 위해서가 아닌, 살리기 위해서 전쟁에 나가는 것이라고... 살기 위해서는 적군을 한명이라도 더 죽여야 하는 전쟁터에서 그러한 데스몬드의 신념은 비웃음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해냈습니다.

"제발... 한 명만 더..."를 외치며 모두가 후퇴한 '핵소 고지'에서 부상당한 동료들을 구출하기 시작하는 데스몬드의 영웅담은 제가 아무리 전쟁영화를 싫어해도 충분히 감동적이었습니다. 분명 그도 살기 위해서는 도망치고 싶었을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 알고 있기에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 실제 데스몬드 도스의 모습을 비춰줄때는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영화를 보고나서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는 제발 전쟁이라는 것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간절하게 기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