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사토 신스케
주연 : 히가시데 마사히로, 이케마츠 소스케, 토다 에리카, 스다 마사키
개봉 : 2017년 3월 29일
관람 : 2017년 5월 1일
등급 : 15세 관람가
10년전 나는 '데스노트'에 빠져있었다.
2006년 저는 한편의 일본영화에 강하게 꽂혀 있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데스노트]입니다. 이름을 적으면 적힌 사람이 죽는 사신의 노트를 손에 쥔 라이토(후지와라 타츠야)가 '데스노트'를 이용해서 세계 각지의 범죄자들을 처단하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스릴러인 [데스노트]는 두 천재인 라이토와 L(마츠야마 켄이치)의 두뇌 싸움을 영화적 재미로 내세운 영화입니다. 저는 [데스노트]를 보기 전에 원작 만화를 모두 봤고, 그 치밀한 구성에 탄성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원작이 너무 재미있어서인지 막상 영화는 기대이하였습니다.
방대한 원작 때문에 애초에 1, 2편으로 기획된 [데스노트]는 2007년 [데스노트 : 라스트 네임]으로 완결되었습니다. 원작과 비교하며 영화를 봤기 때문에 [데스노트]는 재미없었지만, 원작의 결말을 살짝 비틀어서 새로운 결말을 제시했던 [데스노트 : 라스트 네임]은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데스노트'와 저의 인연은 끝이 날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돈이 되는 컨텐츠를 포기못하고 계속 우려먹는 것은 전세계 어디에서나 똑같나봅니다. 2008년 [데스노트 L : 새로운 시작]이 개봉했는데, 이 영화는 라이토와의 대결을 위해 '데스노트'에 스스로 이름을 적은 L의 마지막 23일간의 일을 다뤘습니다. 당연히 원작에는 없던 내용으로, 영화는 L이 마키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것으로 L의 최후를 포장해냈는데, 저는 진심으로 [데스노트 L : 새로운 시작]이 제작되어서는 안되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최악의 실망감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8년이 흘러 이번엔 [데스노트 : 더 뉴 월드]가 개봉했습니다.
키라와 L의 후예들
[데스노트 : 더 뉴 월드]는 키라라는 이름으로 전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라이또와 라이또를 막고 비장한 최후를 맞이한 L이 죽은지 10년 이후를 담은 영화입니다. 인간 세상에 이번에는 여섯권의 '데스노트'가 나타나고, 키라 숭배자인 천재 해커 시엔(스다 마사키)은 여섯권의 '데스노트'를 모두 차지하면 키라를 만날 수 있다는 망상에 빠져 '데스노트'를 모으기 시작합니다.
한편 수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하자 이 사건이 '데스노트'와 연관이 있음을 알게된 일본 경시청은 '데스노트' 특별수사 대책본부를 세우고, L의 유전자를 물러받은 천재 탐정 류자키(이케마츠 소스케)도 대책본부에 합류합니다. 하지만 류자키와 대책본부 팀장인 미시마(히가시데 마사히로)는 사사건건 의견이 충돌하며 시엔에게 당하기만 합니다. 그러는 사이 시엔은 네권의 '데스노트'를 확보합니다.
결국 류자키는 시엔을 막기 위해서는 일본 경시청에서 보관중인 '데스노트'와 자신이 갖고 있는 '데스노트'로 시엔을 유인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쩌면 시엔이 여섯권의 '데스노트'를 전부 차지하게될지도 모를 이 위험천만한 계획을 실행에 옮깁니다. 하지만 류자키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으니 키라의 연인이자 사신의 눈을 계약한 미사(토다 에리카)의 존재입니다. 결국 류자키는 미사에 의해 쓰러지고, 여섯권의 '데스노트'를 모두 손에 넣은 시엔은 키라를 만나기 위해 나섭니다. 그리고 미시마는 시엔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건 추격전을 펼칩니다.
키라와 L은 없고, 대신 '데스노트'만 넘쳐난다.
제가 [데스노트 L : 새로운 시작]에 실망한 것은 '데스노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라이또는 [데스노트 : 라스트 네임]을 끝으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에 더이상 키라와 L의 치밀한 두뇌싸움을 볼 수 없었던 것은 이해하지만 '전인류말살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이름아래 미생물로 전인류를 멸종시키겠다는 우스꽝스러운 테러집단이 등장하여 키라의 빈자리를 채우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데스노트'가 없는 [데스노트 L : 새로운 시작]은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데스노트 : 더 뉴 월드]에는 '데스노트'가 과할 정도로 넘쳐납니다.
무려 여섯권의 '데스노트'가 새롭게 인간 세상에 나타나고, 그로인하여 '데스노트' 쟁탈전이라는 새로운 전쟁이 벌어집니다. 그 덕분에 [데스노트 : 더 뉴 월드]는 최소한 [데스노트 L : 새로운 시작]보다는 재미있었습니다. 여섯권의 새로운 '데스노트'가 나타난 만큼 '데스노트'에 깃든 새로운 사신들도 등장하는데 류자키와 함께 하는 여성 사신 아마가 저는 고이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데스노트]와 [데스노트 : 라스트 네임]보다 실망스러운 것은 바뀌지가 않네요.
일단 이 영화엔 '데스노트'가 넘쳐나지만 대신 키라와 L은 없습니다. 물론 그 빈자리를 시엔과 류자키가 채우려 하지만 그들로는 부족한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영화는 잊을만하면 키라를 소환하는데... 그것으로 만족하기엔 키라와 L이 너무 그립습니다.
키라와 L이 그립다.
결국 '데스노트'가 시리즈로 계속 이어나가려면 키라와 L을 뛰어 넘는 캐릭터가 필요합니다. 원작에서는 니아와 멜로가 L의 후계자로 나왔었고, 실제 [데스노트 L : 새로운 시작]의 마지막엔 니아의 탄생을 암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데스노트 L : 새로운 시작]의 실패와 더불어 니아는 사라졌고, 그 빈자리를 류자키가 채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류자키가 이상한 가면을 쓰고 괴짜 행세를 해도 L의 빈자를 메꾸기엔 역부족입니다.
[데스노트 : 더 뉴 월드]는 그에 대한 대안으로 미시마를 내세우는데, 분명 미시마는 흥미로운 캐릭터이기는 합니다. 키라와 L의 역할을 모두 수행한 전력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L의 후계자가 되기엔 너무 평범합니다. 혼자서는 시엔조차 상대하지 못할 정도이니... 사정이 이러하니 [데스노트 : 더 뉴 월드]에는 미시마, 류자키 그리고 시엔과 미사가 각각 L과 키라의 후예임을 자처하지만 임팩트는 키라, L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약합니다.
만약 '데스노트 시리즈'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면 키라와 L을 능가하는 캐릭터의 등장이 필수요건입니다. '데스노트'가 여섯권이나 인간세상에 쏟아져 나와도 키라와 L을 능가하는 캐릭터가 없다면 '데스노트' 시리즈로써의 영화적 재미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데스노트 : 더 뉴 월드]를 보고나니 오히려 [데스노트]와 [데스노트 : 라스트 네임]이 그리워질 뿐입니다.
P.S. 쇼파에 누워 자다 깨다하며 [데스노트 : 더 뉴 월드]를 보던 구피는 영화가 끝나자 "재미도 없는게 길기도 하네."라고 푸념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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