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7년 영화이야기

[오두막] -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을 치유한다는 것.

쭈니-1 2017. 4. 21. 12:41

 

 

감독 : 스튜어트 하젤딘

주연 : 샘 워싱턴, 옥타비아 스펜서

개봉 : 2017년 4월 20일

관람 : 2017년 4월 20일

등급 : 12세 관람가

 

 

오랜만의 연차휴가... 그런데 볼 영화가 없더라.

 

요즘 들어서 부쩍 회사에서의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회사 매출은 전년대비 하락하고 있고 그에 따라서 회사 분위기도 좋지 않다보니 이 모든 것이 고스란히 제게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있는 중입니다. 결국 저는 제 자신에게 자금 당장 필요한 것은 휴식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게다가 4월 20일은 구피와의 열네번째 결혼기념일이고, 이런 뜻깊은 날을 스트레스로 얼굴 찌푸리며 보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다른 계획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연차 휴가를 냈습니다.

그런데 막상 연차 휴가를 내고나니 할 일이 없었습니다. 하루종일 극장에서 혼자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마땅히 볼 영화가 없더군요. 기대작인 [파워레인져스 : 더 비기닝]과 [콜로설]은 주말에 가족과 함께 보기로 했고, 애초에 다운로드로 보려고 했던 [오두막]을 예매하고나니 다른 영화들은 상영 시간대가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오랜만의 연차휴가를 [오두막]만 본 후 집에서 뒹굴거리며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늦잠을 자고 싶었지만 아침 8시에 눈에 번쩍 떠졌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뒹굴거리고 싶었지만 구피한테 미안해서 집안 청소를 했으며, [오두막]을 본 후 혼자 근사한 외식을 하고 싶었지만 결국 시장에서 족발을 산 후 집에서 캔맥주와 함께 조촐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애초의 계획과는 다른 휴가를 보내고나니 웅이와 구피가 집에 돌아왔고, 하루종일 무기력하기만했던 제 일상이 다시금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역시 제게 진정 필요한 휴식은 혼자가 아닌 가족과 함께 보내는 하루였나봅니다.

 

 

 

종교영화라는 편견을 버려라.

 

[오두막]은 판타지 드라마입니다. 가족 여행 중 사랑하는 막내딸을 잃고 깊은 슬픔에 빠진 맥(샘 워싱턴)은 어느날 딸을 잃은 '오두막'으로의 초대 편지를 받게 됩니다. 누가 보냈는 알 수 없는 의문의 편지. 하지만 맥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혼자 '오두막'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오두막'에서 신비로운 세 사람과 만나고, 그들과 마법같은 시간을 보낸 후 맥의 슬픔은 치유된다는 내용입니다. 문제는 맥이 '오두막'에서 만난 신비로운 사람들이 바로 하느님과 예수라는 점입니다.

저는 종교를 믿지 않습니다. 물론 매년 부처님오신날에는 가족들과 함께 집 근처 절에 가서 산채 비빔밥을 얻어먹고 오지만 딱히 불교 신자도 아니고, 매년 크리스마스땐 가족과 조촐한 파티를 하지만 딱히 기독교 신자도 아닙니다. 그런 제게 [오두막]과 같은 종교영화는 공감하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오두막]을 예매해놓고도 이 영화를 봐야하나 한참을 고민해야했습니다. 결국 볼 영화가 없어서 울며 겨자막기로 [오두막]을 선택하기는 했지만... 

하지만 막상 [오두막]을 보고나니 종교영화에 대한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맥은 '오두막'에서 파파(옥타비아 스펜서, 그레이엄 그린)와 그녀의 아들 예수, 그리고 바람의 숨결 사라유를 만나게 됩니다. 파파는 맥의 아내인 낸(라다 미첼)이 하느님을 부르는 애칭입니다. 이러한 설정 자체가 기독교인이 아닌 저와 같은 관객을 불편하게 할만도 하지만, 영화는 그저 맥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아름다운 화면으로 담고 있을 뿐입니다. 파파를 기독교의 하느님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저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 기댈 수 있는 영적인 존재로 이해하며 [오두막]을 보니 영화가 끝나고나서 감동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마치 피터 잭슨 감독의 [러블리 본즈]를 봤을 때처럼 말입니다.

 

 

 

그는 왜 맥에게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안겨줬을까?

 

[오두막]은 맥의 친구인 에밀(라이언 로빈스)의 나래이션으로 진행됩니다. 그는 맥이 겪은 신비로운 경험을 관객에게 소개하면서 맥의 어린시절 이야기로 영화를 시작합니다. 맥은 어린시절 술만 마시면 어머니를 때리는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습니다. 너무 어린 그는 아버지를 막을 수 없었고, 그런 그에게 이웃집 여성은 신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충고를 합니다. 그리고 맥은 교회 신부에게 아버지의 폭력을 이야기하며 신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화가 난 아버지의 더 큰 폭력 뿐이었습니다. 결국 맥은 아버지의 술에 농약을 넣어 그를 살해합니다.

맥의 이러한 어린시절 에피소드는 맥이 신을 믿지않는 이유가 됩니다. 성인이된 맥은 가족과 주말마다 교회를 찾지만 열심히 찬송가를 부르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저 건성으로 어정쩡하게 서있을 뿐입니다. 그러한 신에 대한 불신은 연쇄살인마한테 막내딸을 잃고 난 후 폭발합니다. '오두막'에서 파파를 만난 맥은 파파에게 왜 아무 죄가 없는 아이를 데려갔냐며 따지고 묻습니다. 전지전능하고, 모든 곳에 있다는 신이 왜 이 끔찍한 사고를 막지 못했냐고 원망을 쏟아냅니다.

사실 그것은 저 역시도 가지고 있는 의문점입니다. 정말 전지전능한 신이 있다면 이 세상은 훨씬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테러로 아무 죄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으며, 온갖 부정부패와 끔찍한 범죄로 힘없는 서민들은 고통받고 있습니다. 전지전능한 신이 존재한다면 왜 악을 처벌함으로써 이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주지 않는 것일까요?

 

 

 

당신은 스스로 집행자가 되길 원하는가?

 

사실 제가 처음부터 [오두막]에 감동을 느낀 것은 아닙니다. '오두막'에 도착한 맥이 파파에게 따지고 물었을 때 파파는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고 원론적으로만 말합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잠시 다녔던 교회 목사님이 그러했듯이... 그래서 저는 '에이 그러면 그렇지.'라며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영화 중반부에 맥이 '오두막'의 강 건너편에서 겪게되는 경험을 통해서 오랫동안 가졌던 의문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강 건너편에서 만난 지혜의 여인은 맥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느냐고... 맥은 당연히 할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지혜의 여인은 맥에게 선과 악을 무엇으로 구별하느냐고 묻습니다. 맥은 내 자신에게 해로운 것은 악이요, 이로운 것은 선이라고 대답합니다. 결국 맥이 구별할 수 있는 선과 악은 자기 중심적인 셈입니다. 그런데 따지고보면 우리 모두가 그러합니다. 우리는 맥처럼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그것 역시 내 자신이 중심일 뿐입니다. 우리가 악이라고 단정짓는 전쟁을 일으키고, 테러를 저지르는 사람들 역시 자기 중심적인 선에 의해 행동하는 것입니다.

맥은 지혜의 여인 대신 집행자의 의자에 앉아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의 악에게 처벌을 내립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한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맥의 아들인 조쉬와 딸인 케이트에게 처벌을 내려야하는 순간이 다가온 것입니다. 맥은 도저히 내 자식들을 벌할 수 없다며 차라리 나를 벌하라고 애원합니다. 그때 지혜의 여인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이 자식을 벌할 수 없어 자기 자신을 희생한 것처럼 신도 마찬가지라고... 

 

 

 

모든 용서는 내 자신을 위한 치유이다.

 

그날 밤, 맥은 아버지의 영혼을 만납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동안 맥의 마음 속 짐과도 같았던 아버지는 맥을 용서합니다. 자신의 술에 농약을 타서 죽인 아들을 말입니다. 그러면서 맥에게 "넌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좋은 아빠가 되었더구나. 네가 자랑스럽다."라며 오히려 격려합니다. 그리고 이제 맥의 슬픔을 치유하기 위한 마지막 순간이 남았습니다. 가장 중요하고, 가장 고통스러운 그 순간은 맥이 딸의 목숨을 앗아간 연쇄살인마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이라면 자식을 죽인 연쇄살인마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아뇨,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맥 역시 절대 그를 용서할 수 없다며 울부짖습니다. 그가 자신만큼 고통스럽길 바란다고 외칩니다. 하지만 용서는 맥 자신을 위해 해야할 일입니다. 마음 속에 증오를 품고 산다면 맥은 그러한 증오 속에 갇혀 평생 슬픔을 안은채 살아야했을테니까요. 맥이 파파의 도움으로 딸의 시체를 찾아 장례를 치루는 장면을 보며 저는 세월호의 미수습자 가족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들 역시 맥처럼 가족의 시신을 찾아 장례를 치루기만을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맥이 파파의 도움으로 슬픔에서 벗어났듯이, 세월호 희생자들의 가족들도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영화를 보며 자꾸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분명 눈물을 쥐어짜는 장면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맥의 슬픔이 치유되는 과정을 보며 내 볼에는 뜨거운 눈물이 주루룩 흘러 내렸습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감당하기 여러운 슬픔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우린 신을 찾습니다. 그 신이 하느님인지, 부처님인지는, 알리신인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존재에 이름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그저 우리가 기댈 수 있고, 슬픔을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 마음 속의 전지전능한 신이 아닐까요? [오두막]은 종교영화라기 보다는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을 치유하는 것에 대한 영화였습니다.

 

 나는 비록 종교가 없지만, 가끔 무언가를 간절히 바랄때 신을 찾는다.

신이라는 것은 그런 존재가 아닐까?

내가 간절히 원할 때 내 곁에 있어주는 것.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것.

교가 있건, 없건, 내가 어떤 사람이건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