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7년 영화이야기

[아빠는 딸] - 그때는 어려웠던 걸, 왜 지금은 쉽다고 생각했을까?

쭈니-1 2017. 4. 18. 16:39

 

 

감독 : 김형협

주연 : 윤제문, 정소민

개봉 : 2017년 4월 12일

관람 : 2017년 4월 16일

등급 : 12세 관람가

 

 

중2병을 앞둔 웅이와 꼭 함께 봐야했던 영화

 

웅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저와 구피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웅이의 중2병과 공부문제입니다. 애교가 많고, 아빠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웅이. 그런데 중2병에 걸리면 갑자기 말수가 적어지고, 부모와도 관계가 멀어진다고하네요. 영화보러 극장에 가자는 제게 웅이가 "아빠, 혼자 보러가세요."라며 차갑게 대답하는 것을 상상만해도 서운한데, 정말 웅이에게 중2병이 닥치면 어떻게해야할지 앞이 막막합니다.

공부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저와 구피는 웅이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다니고 싶다는 학원만 다니게 했습니다. 그래도 웅이가 알아서 공부를 척척하며 성적도 꽤 좋은 편이어서 걱정하지 않았는데 중학생이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고 하네요. 구피는 이미 웅이에게 '공부해라'라며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구피의 잔소리가 낯선 웅이는 요즘들어서 부쩍 엄마의 잔소리에 반항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아빠는 딸]을 웅이와 꼭 함께 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이 영화의 소재가 중2병에 걸린 아들, 딸을 가진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의 상황을 담고 있기 떄문입니다. 특히 서로의 몸이 바뀌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들은 판타지한 설정과 가벼운 웃음으로 무장하면서 역할극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에 저와 웅이에게 딱 알맞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미디는 성공

 

일단 코미디 영화로써의 [아빠는 딸]은 굉장히 성공적인 영화라고 할 수가 있었습니다. 며칠전 [비정규직 특수요원]을 보며 너무 웃기지 않아 분노를 터트렸었는데, [아빠는 딸]은 영화를 보는 내내 그야말로 실컷 웃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어쩌면 [비정규직 특수요원]은 집에서 구피와 단 둘이 봤고, [아빠는 딸]은 일요일 오후 만원사례인 극장에서 거의 200여명의 관객들과 함께 봤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웃음은 전염성이 강하거든요. 그렇기에 옆에 사람이 웃으면 나도 함께 웃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분명한 것은 [아빠는 딸]이 웃음 포인트만큼은 제대로 잘 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춘기 딸 원도연(정소민)과 40대 가장 원상태(윤제문)의 몸이 바뀐 이후 정소민과 윤제문의 연기는 이 영화의 재미를 모두 책임지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몸은 10대 소녀이지만, 행동은 중년 아저씨를 천연덕스럽게 연기한 정소민의 연기를 보다보면 [수상한 그녀]에서 스무살 꽃처녀가 된 칠순 할매를 연기한 심은경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정소민도 심은경처럼 앞으로 우리 영화계를 이끌어나갈 젊은 여배우가 될 것이 분명해보였습니다.

분명 정소민의 연기도 좋았지만 그래도 [아빠는 딸]의 최고 웃음 포인트는 윤제문의 연기입니다. 악역 전문 배우답게 우락부락한 얼굴로 사춘기 소녀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연기한 윤제문. 그 중에서도 걸그룹의 섹시댄스를 추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그리고 남친인 지오(이유진)의 손을 잡고 뛰는 장면도 얼마나 웃겼는지... 정준과 김소연이 주연을 맡았던 [체인지]처럼 [아빠는 딸]은 서로의 몸이 뒤바뀐 주인공의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통해 관객의 웃음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냅니다.

 

 

 

하지만 영화의 짜임새는 불합격

 

'코미디 영화는 웃기기만하면 된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라면 [아빠는 딸]은 분명 추천할만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아빠는 딸]에서 서로 몸이 뒤바뀐 아빠와 딸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의 감동을 기대하시는 분이라면 솔직히 [아빠는 딸]을 추천할 수가 없네요. 세세하게 따지고 들어간다면 [아빠와 딸]은 군데군데 헛점이 너무 많이 보이는 영화입니다.

제가 아무래도 직딩이다보니  원상태가 된 원도연의 회사 생활을 집중하며 영화를 봤습니다. 대기업에서 불량 재고를처리하는 부서에서 만년 과장으로 일하는 상태. 그는 자신대신 회사에 가야하는 도연에게 '절대로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신신당부합니다. 사실 저 역시도 그러한 상태의 말에 공감되었습니다. 모든 일에는 100% 성공이 없습니다. 새로운 일을 맡아 그 일을 성공시키면 승진의 기회를 얻지만, 실패하게된다면 승진은 커녕 상사의 눈밖에 나서 정리해고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사회라는 매정한 정글의 법칙입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실패가 두려워 새로운 모험보다는 현상 유지만을 신경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도연은 직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아무리 고작 일주일간의 시간이라해도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상태의 선택은 교통사고를 핑계로 일주일간 휴가를 내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장기 휴가 역시 상사의 눈밖에 나는 지름길이지만, 그래도 도연을 회사로 보내는 것보다는 성공확률이 높은 모험입니다.

 

 

 

회사라는 곳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물론 영화의 재미를 위해서 도연은 회사에 가야했고, 상태는 학교에 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것이죠. 차라리 둘의 몸이 바뀐 것이 교통사고 때문이 아니고, 그냥 자고 일어났더니 바꿨다면 도연이 회사에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설명됩니다. 갑자기 아무런 이유없이 회사에 일주일동안 휴가를 낼 수는 없었을테니까요. (웅이도 영화를 보고나서 만약 내가 아빠와 몸이 바뀐다면 아빠 휴가를 몽땅 써버리겠다고 말합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신제품 발표 장면도 허술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회장 앞에서 도연이 한 말은 모두 옳습니다. 그리고 회장 역시 "모두 맞는 말이군. 하지만 듣기 좋은 말은 아냐."라며 도연의 말을 수긍합니다. 하지만 다음날 상태의 부서 직원들은 모두 정리해고됩니다. 아무리 막장 회사라고해도 이렇게 하루아침에 듣기 좋은 말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부서 하나를 몽땅 정리해고해버리는 회사는 없습니다. 게다가  아무리 교통사고가 있었다고해도 회장은 또 하루아침에 말을 바꿉니다. 회사는 장난이 아닌데 회장은 장난을 하네요.

웃음은 배우의 연기력, 그리고 웃기는 상황이면 됩니다. 하지만 감동은 아닙니다. 배우가 아무리 리얼하게 울음을 터트려도 관객에게 감동을 안겨줄 수는 없습니다. 관객이 영화를 보며 감동을 느끼려면 그 상황에 공감이 되어야하고, 그러한 공감을 이끌어내려면 영화의 전개가 매끄러워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빠는 딸]은 분명 웃긴 영화였지만, 감동을 이끌어내기엔 부족한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어려웠던 걸, 왜 지금은 쉽다고 생각했을까?

 

[아빠는 딸]이 끝나고나니 감독과 주연배우들의 무대인사가 있었습니다. 저와 웅이는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뭔가 보너스를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만약 무대인사가 있는줄 알았다면 조금 앞자리에서 영화를 봤을텐데... 언제나 그렇듯 저희는 맨 뒤 통로 자리에서 영화를 봤거든요. 그래서 무대인사를 온 배우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웅이는 "아빠, [로봇, 소리]에 이어 두번째 무대인사예요."라며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아빠는 딸]은 마지막까지 저와 웅이에게 유쾌한 보너스 선물을 안겨줬습니다. 

[아빠는 딸]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대사는 '그때는 어려웠던 걸, 왜 지금은 쉽다고 생각했을까?"라는 상태의 한마디였습니다. 상태는 도연에게 "공부만 하면 되는데, 그게 뭐가 어려워."라며 잔소리를 합니다. 하지만 막상 도연이 되어 시험을 치룬 상태는 공부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됩니다. 그러한 상태에게 친구인 병진(박혁권)은 말합니다. "그때도 쉽지는 않았어." 그제서야 상태는 깨닫습니다. 자신도 도연처럼 공부 때문에 힘들어했었는데, 어른이 되어서는 그 시절을 잊고 도연에게 공부만 하면 된다며 잔소리를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에 대한 벽이 생기는 것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려고한다면 우리 사이의 벽은 사라지지 않을까요? 며칠 후면 웅이는 중간고사 기간입니다. 웅이가 너무 공부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며 걱정하는 구피에게 저는 "네가 저 나이때 어땠는지 생각해봐."라며 충고해줬습니다. 하지만 구피는 "난 저때 공부 잘했어."라며 대답합니다. 에궁... 뭐 이것도 학창시절 범생이 엄마를 둔 웅이의 운명인 것을... ^^

 

만약 나와 웅이의 몸이 뒤바뀐다면...

그래서 내가 웅이 대신 학교에 가야한다면...

사실 난 잘해낼 자신이 없다.

그때도 어려웠으니, 지금도 어려울 것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