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7년 아짧평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 - 기적의 조건

쭈니-1 2017. 3. 28. 13:15

 

 

감독 :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 톰 행크스, 아론 에크하트, 로라 리니

개봉 : 2016년 9월 28일

관람 : 2017년 3월 25일

등급 : 12세 관람가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창피했다.

 

며칠전부터 제 이목을 끌고 있는 것은 세월호 본체 인양 상황에 대한 뉴스입니다.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것이 2014년 4월 16일이니 무려 3년이 흐른 뒤에야 세월호는 다시 바다위로 건져졌고, 세월호 참사로 인하여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를 보며 오열해야했습니다. 저 역시 뉴스를 보며 어떻게 저런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었는지 가슴이 아팠습니다. 조금만 대처가 빨랐다면 저렇게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았을텐데...

토요일 밤, 저희 가족은 거실에 모여 앉아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을 봤습니다. 사실 저희 가족이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을 보기로 결정한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2016년에 개봉한 영화 중에서 제가 못본 영화 리스트를 정리하다보니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이 있었고, 관람등급이 12세 관람가이길래 웅이와 함께 보기로 결정한 것 뿐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니 세월호 참사와 겹쳐지며 우리나라에는 왜 '허드슨강의 기적'과 같은 기적이 없었는지 창피해졌습니다. '허드슨강의 기적'은 단순한 기적이 아닌,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 기장(톰 행크스)의 관록과 구조대원들과 해안경비대의 신속한 대처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와는 달리 세월호는 승객과 배를 버려두고 혼자 탈출한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함과 해경의 소극적 구조와 정부의 무능력한 대처가 참사를 만들어냈습니다. 세월호에 설렌버거와 같은 선장이 있었다면, 미국의 해경처럼 구조가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정부도 빠르게 대처했다면, 우리에게도 어쩌면 세월호 참사가 아닌 세월호 기적이 될수도 있었다는 안타까운 생각만듭니다.

 

 

 

2009년 1월 15일 US 에어웨이스 1549편 불시착 사고

 

현지시간으로 2009년 1월 15일 오후 3시 30분(한국 시각으로 1월 16일 새벽 5시 30분)쯤 미국 뉴욕 주 뉴욕 라구아디아 공항을 출발, 노스 캐롤라이나 주 샬럿으로 향할 예정이었던 US 에어웨이스 1549편은 승객과 승무원 155명을 태우고 이륙 직후 새떼와 충돌하여 엔진에 불이 붙으면서, 센트럴 파크 인근 허드슨 강에 불시착합니다. 이 사고는 전원 생존하면서, 허드슨의 기적(Miracle on the Hudson)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이 사고로 인하여 설렌버거는 국민적 영웅이 되지만 진상조사위원회는 이 사고가 설렌버거의 실수에 의한 것이 아닌지 의심을 합니다. 새떼와의 충돌 당시 관제탑에서는 US 에어웨이스 1549편의 회항 및 다른 공항으로의 착륙을 유도했지만, 설렌버거는 그러기엔 고도와 속도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 자의적 판단으로 허드슨강으로 비상 착륙을 시도한 것입니다. 이에 진상조사위원회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라구아디아 공항으로의 회항이 충분히 가능했다며 설렌버거를 압박합니다.

설렌버거 역시 자신의 판단이 혹시 틀렸던 것은 아닌지, 자신이 승객들을 구한 것이 아닌 오히려 위험에 빠뜨린 것은 아닌지 고뇌에 빠집니다. 하지만 결국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오류를 밝혀냄으로써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해냅니다.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보통 사람의 이야기

 

솔직히 저는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이 설렌버거 기장의 영웅담으로 영화를 이끌어나갈 것이이라 생각했습니다. 비행기에 오르기전 승객과 승무원들의 소소한 일상으로 영화의 초, 중반을 채우고, 비행기가 새떼와 충돌하는 위기의 장면을 하이라이트 삼아, 설렌버거가 허드슨강에 비행기를 비상착륙함으로써 '허드슨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영화가 훈한하게 끝맺음할 것이라 예상한 것입니다.

하지만 클린트이스트우드 감독이 주목한 것은 그런 영웅담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화는 '허드슨강의 기적'이후부터 시작을 하고, 허드슨강의 비상 착륙 장면은 회상 장면으로 영화 중간중간에 삽입할 뿐입니다. 그럼으로써 국민적 영웅이 되었지만 혹시 잘못 판단한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인간 설렌버거의 노뇌를 잡아냅니다. 

처음엔 긴박한 재난영화를 기대했던 저는 인간 설렌버거의 고뇌로 영화가 진행되자 조금은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은 옳은 선택입니다. 이 영화는 재난영화가 아닐 뿐더러, 영웅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저 자신이 해야할 일을 충실하게 했던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해냈기 때문에 '허드슨강의 기적'은 가능했던 것입니다. 기적이라는 것은 이처럼 특별한 능력을 필요로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을 묵묵히 해낼때 진정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죠.

 

 

 

기적의 조건

 

영화가 끝나고 TV를 켜니 세월호 본체 인양 뉴스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뉴스를 보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세월호의 이준석 선장이 설렌버거 기장처럼 침착하게 승객들을 먼저 대피시켰다면 이렇게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만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세월호를 책임지는 선장으로써 당연히 해야할 본연의 임무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고 승객들을 버려두고 혼자 빠져나왔습니다.

만약 해경이 적극적으로 승객을 구조했더라면, 만약 정부가 빠르게 대처했더라면, 희생자가 많이 줄어들지 않았을까요? 이것 역시 수퍼 히어로가 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요구하는 일이 아닙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해야할 책임이 있는 해경과 정부가 마땅히 해야할 업무일 뿐입니다. 그들이 설렌버거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해야할 일을 묵묵히 해냈다면 '허드슨강의 기적'은 분명 남의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제가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을 보고 창피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입니다. 미국이 대단해보여서가 아니라, 해야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우리나라가 한심해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민이 원하는 것은 슈퍼맨과 같은 슈퍼 히어로가 아닌, 그저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책임감일 뿐인데... 창피하지만 그것이 '허드슨강의 기적'과 세월호 참사의 차이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