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피터 버그
주연 : 마크 월버그, 커트 러셀, 존 말코비치, 케이트 허드슨
개봉 : 2017년 1월 25일
관람 : 2017년 1월 29일
등급 : 12세 관람가
설 연휴에 극장에서 본 유일한 영화
2016년 설 연휴 첫날, 저는 어머니를 모시고 7년만에 극장 나들이를 했습니다. 그날 제가 선택한 영화는 [로봇, 소리]였고, 그날은 때마침 이성민, 이하늬 등 [로봇, 소리] 주연배우들의 무대인사도 있었습니다. 매번 명절이 되면 명절 음식 만들고나서 술 마시고 놀기만 했는데, 이렇게 어머니를 모시고 영화도 보고, 외식을 하고나니 굉장히 뿌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오랜만에 극장 나들이를 나선 어머니께서는 영화 중간중간 졸으셨다고 나중에 고백하셨지만, 그래도 명절 첫날은 어머니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심은 2016년 추석 연휴에는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추석 연휴 첫날 이모네 가족들이 집에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17년 설 연휴. 저는 이번만큼은 어머니를 모시고 영화를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마침 온가족이 볼 수 있는 코믹 액션영화 [공조]가 개봉했고, 구피가 이 영화를 보고 싶다고 털어놓았지만, 저는 설 연휴 첫날 어머니와 함께 보기 위해 잠시 관람을 미뤄두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나네 가족들이 설 연휴 첫날 갑자기 찾아와 역시 제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어머니를 모시고 [공조]를 보러 가야겠다는 계획은 아쉽게 무산되었습니다. [공조]는 다음주에 구피, 웅이와 함께 보기로 또다시 미뤄졌고, 4일간의 설 연휴 동안 저는 웅이와 함께 [딥워터 호라이즌]만 극장에서 관람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영화 보기 계획이 어긋나면서 뭔가 아쉬운 설 연휴가 되었지만, 그래도 오랫만에 가족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낸 설연휴였습니다.
2010년 4월 20일 미국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딥워터 호라이즌]은 실화를 소재로한 재난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소재가된 사건은 2010년 4월 20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앞바다 멕시코만의 석유 시추선 '딥워터 호라이즌'호의 화재, 폭발 사고입니다. 이 사고로 인하여 11명의 시추 노동자가 사망했고, 18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딥워터 호라이즌'호의 폭발 이후입니다. 5개월동안 대량의 원유가 유츌되었는데, 2010년 6월 초에 나온 예상치에 따르면 수억 갤런의 원유가 바다로 흘러들어갔고, 원유유출로 인한 기름띠는 2010년 5월 말 기준으로 한반도 면적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이는 사상 최악의 환경재앙으로 이어졌습니다.
'딥워터 호라이즌'호의 폭발 사고는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는데, '딥워터 호라이즌'호을 제조한 곳이 현대중공업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원유 유출을 일으킨 것은 현대중공업이 제조한 '딥워터 호라이즌'호 때문이 아닌 시추 장비 때문이었고, 폭발 원인 또한 영국 최대 기업이자 세계 2위 석유회사인 BP사의 시추선 운영방식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딥워터 호라이즌]은 2010년 4월 20일 단 하룻동안 일어난 화재, 폭발사고를 담아냈습니다. 영화에서는 '딥워터 호라이즌'호의 총 책임자 지미(커트 러셀)와 엔지니어 팀장 마이크(마크 월버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본사 관리자 돈(존 말코비치)이 무리하게 시추선 가동을 서둘렀기 때문에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고 설정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돈의 무리한 요구는 곧바로 재앙이 되었고, 지미와 마이크는 동료들을 '딥워터 호라이즌'호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게 됩니다.
재난영화의 너무 뻔한 공식을 메꾸는 거대한 스펙타클
사실 [딥워터 호라이즌]은 아무리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해도 그동안 재난영화에서 무한반복되었던 뻔한 공식들을 그대로 차용한 영화입니다. 그깟 돈 때문에 안전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보다는 동료를 더 챙겨주는 영웅이 있으며, 최악의 재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너무 뻔한 재난 영화의 공식들이 이 영화를 식상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딥워터 호라이즌]은 식상함을 거대한 스펙타클로 메꿔버립니다. 영화 초반 헬기에서 내려다본 '딥워터 호라이즌'호의 위풍당당한 모습에서부터 영화를 보는 저를 압도하더니, 영화의 초중반부터 는 본격적인 '딥워터 호라이즌'호의 화재, 폭발을 담아내며 1시간 50분에 달아하는 러닝타임을 가득 채워버립니다. 이렇게 영화의 러닝타임이 거의 대부분 '딥워터 호라이즌'호의 화재, 폭발 사건이다보니 영화를 보는 관객 입장에서는 정신을 차릴 틈이 없습니다. 스토리 전개의 탄탄함, 캐릭터의 매력을 전혀 따질 새가 없었던 것입니다.
실제 [딥워터 호라이즌]은 마이크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의 캐릭터에 성격 자체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마이크 또한 '딥워터 호라이즌'호에 탑승하기 전에 아내인 펠리시아(케이트 허드슨) 그리고 어린 딸과 오붓한 한때를 보내는 장면이 아주 짧게 등장할 뿐입니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카메라는 대부분 '딥워터 호라이즌'호 안에서 머뭅니다. '딥워터 호라이즌'호의 사고 소식을 들은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관객이 감정선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어 보였지만, [딥워터 호라이즌]은 마이크를 걱정하는 펠리시아의 장면을 아주 짧게 삽입한 것을 끝으로 '딥워터 호라이즌'호의 화재, 폭발 사고 안에 관객들을 가둬버립니다.
전쟁영화에 특화된 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일까?
어쩌면 이러한 [딥워터 호라이즌]의 전개는 연출을 피터 버그 감독이 맡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피터 버그 감독은 배우로 영화 경력을 시작해서 1998년 [배리 베드 씽]으로 감독이 된 인물입니다. 이후 그는 [웰컴 투 더 정글], [핸콕]등을 연출하며 감독으로써 성공적인 이력을 쌓아올렸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그가 감독으로써 주목을 받은 것은 2007년 [킹덤]에서부터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벌어진 폭탄테러를범을 잡기 위해 구성된 FBI요원의 활약을 담은 이 영화는 액션, 스릴러 장르의 영화이지만 영화 전반에 전쟁영화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비평면에서 좋은 평가를 얻어냈습니다.
그 후 SF와 전쟁영화의 오묘한 결합을 시도한 [배틀쉽]과 아프가니스탄 네이비씰 요원들의 활약을 담은 [론 서버이버]를 연달아 연출했는데, 비록 [배틀쉽]은 흥행에서 쓰디쓴 실패를 맛보았지만, [론 서바이버]는 4천만 달러라는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 북미에서만 1억2천5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큰 성공을 거둡니다. [론 서바이버]의 흥행 성공은 피터 버그 감독의 주특기를 재확인시키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딥워터 호라이즌]은 재난영화이지만, 피터 버그 감독은 자신의 주특기처럼 재난의 현장을 전쟁터처럼 표현합니다. 이 영화 속의 재난 현장은 그저 살아남기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이 영화가 대부분의 캐릭터를 생략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전쟁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제가 [딥워터 호라이즌]에 살짝 실망한 이유이기도합니다.
재난영화가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 안에 사람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저는 [딥워터 호라이즌]에 살짝 실망했습니다. 분명 거대한 스펙타클로 표현된 '딥워터 호라이즌'호의 화재, 폭발 사고는 압도적이었지만, 그게 이 영화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재난영화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캐릭터 자체를 생략하다시피한 이 영화에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이지 않습니다. 11명이나 죽은 실제 사건이지만, 영화의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 희생자들의 이름과 사진이 나오전까지도 이 어처구니없는 재난에 희생당한 사람들에 관심을 갖기 어렵습니다.
재난현장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재난현장 밖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부디 살아서 돌아오길 간절하게 비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가, 자식이, 부모가, 애인이, 저 끔찍한 재난 현장에서 살기위해 사투를 벌어지만 결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의 아픔. [딥워터 호라이즌]은 역시나 이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거의 생략합니다.
'딥워터 호라이즌'호의 화재, 폭발 사고 이후 벌어진 최악의 환경재앙에도 이 영화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결국 [딥워터 호라이즌]은 해야할 이야기가 많은 재난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단순하게 '딥워터 호라이즌'호의 화재, 폭발 사건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스펙타클하게 담아내는 것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1억1천만 달러의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북미에서 6천1백만 달러 밖에 벌어들이지 못한 이유일 것입니다. 사람이야기가 빠지고 스펙타클만 남은 재난영화라니... 이번엔 피터 버그 감독의 주특기가 엉뚱한 곳에서 발휘되고 말았네요.
재난영화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영화여야 한다.
그리고 이미 일어난 재난을 되짚어보며 앞으로의 교훈을 얻어야만 한다.
하지만 [딥워터 호라이즌]에는 압도적인 스펙타클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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