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한재림
주연 : 조인성, 정우성, 배성우, 류준열, 김아중
개봉 : 2017년 1월 18일
관람 : 2017년 1월 20일
등급 : 15세 관람가
무엇이 대한민국으로 하여금 이 영화에 열광하게 만드는가?
지난 월요일 아침, 회사에 출근하면서 이번주에 해야할 일들에 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새로 맡은 프로젝트를 위해 할 일이 산더미 같았지만, 차근차근 일을 해나간다면 계획했던대로 금요일까지는 일이 대충 마무리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금요일 오후가 되었지만 마무리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지난 5일간 점심식사도 건너뛰며 열심히 달렸지만, 또다시 새로 맡은 프로젝트의 마무리는 다음주로 미뤄지고 말았습니다. 다음주는 설날 연휴가 있기에 1월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모든 일을 마무리해야하는 저로써는 그야말로 발등이 불이 떨어진 셈입니다.
순간 허무감이 밀려왔습니다. 저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작년 여름부터 준비작업에 매달렸고, 11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일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마무리가 12월말에서 1월 중순으로 밀리고, 1월 중순에서 1월 말로 밀렸지만, 여전히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만갈 뿐입니다. 짜증도 나고, 무기력증도 느끼고, 초조함에 매일 밤 악몽을 꾸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서 1월 중으로 모든 문제를 마무리하도록 노력하는 것 외에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는걸요.
금요일 일정을 모두 마치고 저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의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혼자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원래는 현빈, 유해진 주연의 액션 코미디 [공조]를 보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생각이었지만, [더 킹]의 흥행 소식을 듣고 계획을 바꾸었습니다. 사실 지금처럼 스트레스를 심한 날에는 심각한 정치 드라마 [더 킹]보다는 속시원한 액션영화 [공조]가 더 나을 것으로 보였지만, 관객들이 열광하는데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더 킹]을 보고나니 제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열한 거리]로 시작해서 [내부자들]로 끝맺음한다.
[더 킹]은 하회탈에 대한 한강식(정우성)의 시덥지않는 농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하회탈이 웃고 있는 이유는 하회탈이 대마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이 농담에 양동철(배성우)과 박태수(조인성)가 조금은 오바하면서 받아들이고, 순간 그들이 탄 차는 교통사고가 납니다. 슬로우모션으로 표현된 교통사고 장면과 함께 태수의 나래이션이 시작됩니다. 불우했던 학창시절부터, 그가 검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던 일들, 그리고 검사가 된 후 겪게 되는 사건들로 나래이션은 이어집니다.
결국 [더 킹]은 철저하게 태수의 관점에서 영화를 진행시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보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2006년에 개봉했던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입니다. [비열한 거리]는 조폭조직의 2인자인 병두(조인성)의 흥망성쇠를 다룬 영화입니다. 그는 황회장(천호진)과의 뒷거래를 통해 성공을 위한 빠른 길을 선택하고 승승장구하지만, 영화감독을 꿈꾸는 친구 민호(남궁민)로 인하여 결국 몰락하게 됩니다. 그러한 병두의 캐릭터는 조인성이 연기했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더 킹]의 태수와 굉장히 많이 닮았습니다.
비록 검사라는 어엿한 직업을 가졌지만 건달의 자질을 두루갖춘 태수의 성격에서부터 강식을 만나며 성공을 위한 빠른 길을 선택하는 장면과 건달 친구인 최두일(류준열)로 인하여 결국 몰락을 맞이하는 것까지... 어찌보면 [더 킹]은 [비열한 거리]의 조금은 유쾌한 버전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듭니다. 하지만 영화 후반, 태수가 강식에 대한 복수를 준비하면서 [더 킹]은 권력에 대한 통쾌한 한방을 다룬 [내부자들]로 방향을 선회합니다. 바로 그것이 [더 킹]에 관객이 열광을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을 풍자한 영화
제가 [더 킹]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것은 예고편을 본 이후부터였습니다. 물론 [더 킹]은 조인성과 정우성이라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남 남자배우 두 명을 동시에 캐스팅했고, 여기에 떠오르는 샛별 류준열을 추가함으로써 캐스팅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더 킹]이 제 관심 속으로 들어온 것은 현시국을 떠오르게 하는 예고편을 보면서부터입니다. [더 킹]의 예고편에는 권력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이들의 무속신앙에서부터,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장면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더 킹]이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일반에 알려지기 전에 촬영을 마친 영화임을 감안한다면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실제로 [더 킹]을 보다보면 요지경에 빠진 대한민국의 실상이 그대로 보여집니다. 대표적으로 강식은 태수와의 첫 만남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 빌붙어 우리 국민에게 아픔과 상처를 준 친일파는 지금 현재 재벌, 국회의원 등을 하며 대한민국 권력의 중심축이 되어 있지만,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정부 보조금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빈곤층이라며 결국 하는 일의 옳고 그름이 아닌 시대의 흐름을 잘 타는 것이 성공의 길이라고 강변합니다. 슬프지만 그것이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는 강식의 수법 또한 낯설지가 않습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가 터지면 대중의 시선을 이끌 연예인 관련 스캔들이 함께 터져나온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물론 이것이 단순히 우연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진짜 권력의 중심에서 이슈를 이슈로 덮기위해 벌이는 음모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더 킹]에서는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는 이러한 권력의 횡포를 관객에게 속시원하게 보여줍니다.
한강식은 김기춘?
[더 킹]에서 가장 제 주목을 끄는 캐릭터는 바로 한강식입니다. 최근 [감시자들]에서 악역을, [마담 뺑덕]과 [아수라]에서는 나쁜 남자를 연기하며 배우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는 정우성이 이전 영화와는 차원이 다른 대한민국을 병들게 하는 진짜 악역을 맡아 화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강식의 캐릭터에 주목한 진짜 이유는 그에게서 김기춘이 연상되었기 때문입니다.
김기춘은 공안검사 출신으로 군사정권 시절 승승장구하였으며, 제22대 검찰총장, 제40대 법무부 장관을 거처 박근혜 정부에서는 제2대 대통령비서실장을 역임함으로써 오랜 기간 권력의 중심에 자리잡았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최근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조사 대상이 되었고, 결국 구속되었습니다. 한강식은 여로모로 김기춘과 닮았습니다. 굵직 굵직한 사건을 시기적절하게 터트리며 스타 검사로 자리잡은 그는 정권교체 시절마다 줄을 잘 서며 승승장구합니다. 그리고 결국 검찰총장 자리까지 올라가며 권력에 대한 야욕을 불태웁니다.
결국 김기춘이 최근 들어서 몰락하고 있듯이 한강식 또한 박태수의 반격으로 인하여 몰락의 길을 걷습니다. 단지 김기춘은 대통령 비서실장에 올라 왕실장, 혹은 기춘대원군이라 불리우며 권력의 최고 정점을 찍었지만, 한강식은 고작(?) 검찰총장까지 밖에 오르지 못했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더 킹]의 영화 속 대한민국보다, 우리가 사는 실제 대한민국이 더 암울한 곳일지도 모르겠네요. 참고로 한강식의 오른팔 노릇을 한 양동철은 2014년 길거리 음란행위를 했다가 체포된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에 대한 풍자로 보입니다.
마지막의 속시원한 한 마디
솔직히 저는 [더 킹]의 후반부까지는 그저 '흥미롭네'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바라봤습니다. 물론 영화적 상상력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요지경에 빠진 대한민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장면들이 저는 흥미롭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가 태식이 본격적으로 강식에게 복수를 하는 장면에서는 조금 속이 후련했습니다.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태식의 몰락으로 영화를 끝내는 것보다는 태식의 복수와 강식의 몰락으로 영화를 끝맺음하는 것이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뻔뻔하게 버티고 있는 박근혜 정권에 지친 국민들을 위한 결말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진정으로 [더 킹]의 가장 중요한 하이라이트는 영화가 끝나기전 태식이 관객에게 건넌 한 마디로고 생각합니다. 강식을 몰락시키고, 야당의 후보로 종로구 국회의원 선거에 나선 태수. 상대는 여권의 유력한 대권 주자입니다. 하지만 태수는 강식의 비리를 폭로하며 인지도를 올리며 선거결과를 안갯속으로 몰고 갑니다. 그리고 드디어 선거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영화는 끝납니다. 태수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는지, 낙선되었는지 알려주지 않은채 말입니다. 그런데 태수는 그것이 궁금한 관객들에게 한마디합니다. "선택은 당신이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대한민국의 왕이니까."
저는 영화가 끝나기 전의 그 한마디가 정말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우리 국민입니다. 그런데 마치 자신이 왕인척 행세를 하며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르고도 당당한 일부 권력자와 그러한 권력자를 숭배하는 이들이 문제입니다. [더 킹]을 보기 전, 새로 맡은 프로젝트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태수의 한마디를 듣고나니 웬지 가슴이 뻥하고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이것은 [더 킹]이 제게, 그리고 관객에게 주는 선물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왕은 누구인가?'
[더 킹]의 이러한 질문은 어쩌면 답이 정해져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랜 세월 가짜 왕들에게 시달리며 답을 잊어버렸다.
그것이 지금의 비극을 만들어낸 원인이다.
잊지말자. 대한민국의 왕은 바로 우리 자신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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