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가스 데이비드
주연 : 써니 파와르, 데브 파렐, 니콜 키드먼, 루니 마라
개봉 : 2017년 2월 1일
관람 : 2017년 2월 1일
등급 : 12세 관람가
나는 지금 길을 잃었다.
작년 여름, 회사에서 제게 뜬금없는 프로젝트를 하나 맡겼습니다. 관리부이기에 거의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속 회계장부를 보며 하루종일 보내던 저는 새로 맡은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외근이 잦아졌습니다. 한 여름이 땀을 뻘뻘 흘리며 홍대 주변을 샅샅이 뒤졌고, 11월이 되어서야 제 임무가 끝이 난 듯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습니다. 제가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일들이 연일 계속 되었고, 저는 어떻게든 이 프로젝트를 무사히 끝마치기 위해 죽기 살기로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12월 말에 끝났어야 했던 프로젝트는 해를 넘겨 1월 중순으로 미뤄졌고, 또 2월 1일로 한 차례 더 미뤄졌습니다. 하지만 2월 1일에도 프로젝트는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사장님의 새로운 주문으로 인하여 프로젝트 완료는 2월 중으로 연기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김 빠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번 주를 끝으로 프로젝트를 다른 직원에게 넘겨주고 손을 떼라는 주문이 제게 떨어진 것입니다. 작년 여름부터 시작해서 무려 6개월을 매달린 프로젝트입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많이 서투르고 그로인하여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내 손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프로젝트 완료를 앞두고 저는 손을 뗄 수 밖에 없게되었습니다.
물론 회사의 입장도 이해가 됩니다. 2월이면 관리부 직원으로서 가장 중요한 업무인 회계결산 업무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2월 1일 제 미완의 프로젝트 결과물을 둘러봤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6개월동안 한 곳만 보며 걸었던 길이 갑자기 사라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길을 잃었습니다.
[라이언]과의 만남은 필연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저는 구피에게 '영화보고 들어갈께.'라는 문자를 보내고 곧장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보고 싶은 영화 1순위는 요즘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공조]였고, 2순위는 2017년 아카데미 작품상 등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명품 SF영화 [컨택트]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두 영화를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두 편 모두 주말에 웅이와 함께 보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두 영화를 빼고나니 제가 볼 수 있는 영화는 [라이언]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라이언]은 1986년 기차에서 잠이 드는 바람에 길을 잃은 5살 인도소년 사루(써니 파와르)가 호주로 입양된 이후 성인이 되어 25년만인 2012년에 집으로 돌아온 실화를 바탕으로한 감동 드라마입니다. 성인이 된 사루(데브 파텔)는 어릴적 희미한 기억과 구글어스에 의존해서 집을 찾아냈고, 그의 사연은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집에 가고 싶고, 가족이 보고 싶었던 사루의 포기하지 않은 집념이 기적을 이뤄낸 것입니다.
[라이언]을 보는 동안 저는 6개월동안 매달린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야 하는 허탈함에 대한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라이언]을 보기 전에는 길을 잃은 기분이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사루가 25년 만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처럼 저 역시 길을 잃었다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제가 정성껏 이뤄낸 프로젝트의 결과물과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요? [라이언]을 보고나서 다시 길을 되찾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단순한 이야기를 특별하게 이끄는 힘
사실 제가 [라이언]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이 영화가 2017년 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작품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등 6개 부문에 후보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항상 2, 3월이 되면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된 영화를 위주로 제 영화관람 목록이 채워지곤합니다. 만약 [라이언]이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되지 않았다면 이 영화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라이언]에 아카데미 노미네이트를 제외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은 이유는 이 영화의 소재가 너무 단순하고 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라이언]은 놀라운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루가 25년만에 구글어스로 집을 찾은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이야기가 없어보였습니다. 실제로 지난 1월 1일 MBC TV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사루의 사연이 소개되었는데 10분 남짓한 러닝타임으로 사루의 이야기를 담아냈습니다. 그런데 [라이언]은 사루의 이야기를 2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라이언]이 사루의 이야기를 지루하게 늘어뜨렸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 생각은 완벽하게 틀렸습니다. 저는 단지 25년만에 집을 찾은 사루의 이야기가 전부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라이언]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담아 냈습니다. 특히 사루를 입양한 호주의 부모인 수(니콜 키드먼)과 존(데이비드 웬햄)이 인상적이었는데, 사루가 인도의 친모를 찾으며 수와 존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방황하는 장면은 미처 제가 몰랐던 사루의 또다른 이야기였습니다. [라이언]에는 4년동안 구글어스에 의존해 인도의 집을 찾는 것에 집착하는 사루와 갈등을 빚는 루시(루니 마라)의 이야기도 담겨져 있습니다. 결국 [라이언]은 사루 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 이야기를 통해 사루의 사연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 셈입니다.
그가 집을 찾아야 했던 이유
만약 사루가 양부모에게 학대를 받았기에 인도에 살고 있는 엄마를 그리워하고 집착했다면 [라이언]은 극적 재미를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루는 호주에서 행복했고, 수와 존은 사루에게 친부모 이상으로 잘해줬습니다. 그렇기에 어쩌면 사루는 행운아였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인도에서 계속 살았다면 빈민가에서 석탄을 훔치고 돌을 나르는 일 밖에 할 수 없었을테니까요. 하지만 그는 길을 잃었고, 수와 존을 만났기에 풍족한 환경에서 대학을 다닐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된 사루는 인도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사랑하는 루시를 잃었고, 25년동안 자신을 정성껏 키워준 수와 존에게 죄책감을 느끼면서까지 말입니다. 그가 그렇게 인도의 집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은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을 어머니와 형 때문입니다. 자신은 이렇게 행복한데 인도의 가족들은 자신 때문에 괴로워했고, 25년이 지난 지금도 괴로워하고 있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사루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신을 잡으려는 어른들에게서 도망치고 도망치며 몇 달을 버팁니다. 하지만 사회복지사에게 신문광고까지 내며 사루의 집을 되찾아주려고 했지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맙니다. 어린 사루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어른이된 사루에게는 25년전의 선택이 마음의 한으로 남아버립니다. 그리고 결국 오랜 노력 끝에 집으로 돌아온 사루는 오랜 세월동안 자신을 기다린 어머니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렇게 잘 컸다고. 그러니 이제 그만 어머니도 행복해지라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않았다. 단지 행복했졌을 뿐이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사루가 인도의 어머니를 만나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감격스러운 재회를 하는 장면에서 저는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습니다. 영화를 보며 자주 우는 울보인 제가 이렇게 감동적인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라이언]이 억지 감동이 아닌 자연스러운 감동을 이끌어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저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어머니와 25년만에 재회한 사루의 모습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마지막에 실제 사루와 수, 존 그리고 인도의 어머니가 만나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놀라운 것은 니콜 키드먼이 실제 수와 매우 많이 닮아 있더라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그러한 니콜 키드먼의 열정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노미네이트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요? 데브 파렐이 남우주연상이 아닌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것은 조금 아쉬운 결과이지만...
영화를 보며 왜 제목이 '라이언'일까? 계속 궁금했는데, 사실 사루의 진짜 이름은 새루라고합니다. 너무 어렸던 사루가 자신이 사는 동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 것입니다. 새루의 의미는 '라이언' 즉 사자라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비록 집을 잃어버렸지만 다섯살에 불과한 나이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사루의 모습에서 사자의 용맹스러움이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영화의 제목에 얽힌 비밀까지 알고나니 행복감이 저를 더욱 감쌌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러한 행복감을 가슴에 안고 저는 잃었던 길을 되찾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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