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7년 영화이야기

[컨택트] - 지적 쾌감을 안겨주는 명품 SF

쭈니-1 2017. 2. 6. 17:21

 

 

감독 : 드니 빌뇌브

주연 : 에이미 아담스, 제레미 레너, 포레스트 휘태커

개봉 : 2017년 2월 2일

관람 : 2017년 2월 5일

등급 : 12세 관람가

 

 

비내리는 선유도 공원에서 포켓몬 GO를...

 

며칠전 저는 버스에서 통화를 하다가 스마트폰을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제 스마트폰은 4년째 사용중인 갤럭시 노트 2입니다. 구피가 새 스마트폰으로 바꾸라고 해도 그럴 필요없다며 버텼는데, 버스에서 살짝 떨어뜨렸을 뿐인데 액정에 금이 가더군요. 결국 저는 새 스마트폰으로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실 제가 새 스마트폰을 바꾸기로 결심한 이유가 액정에 금이 갔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요즘 웅이가 한참 빠져 있는 증강현실게임 '포켓몬 GO'가 갤럭시 노트 2에서는 안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웅이와 함께 게임하는 것을 좋아하는 제게 갤럭시 노트 2의 치명적인 약점이 발견된 셈입니다.

암튼 지난 주말 동네 휴대폰 대리점에서 저가보급형 스마트폰인 갤럭시 와이드를 새롭게 구매했습니다. 갤럭시 와이드를 받자마자 저는 당장 '포켓몬 GO'를 설치했고, 곧바로 웅이와 포켓몬 잡기에 나섰습니다. 웅이가 어렸을땐 함께 포켓몬 카드게임도 하고, 포켓몬 피규어도 잔뜩 모았었는데, 중학생이 된 웅이와 또다시 포캣몬 게임을 다시 하게 될줄이야...

웅이는 일요일에 선유도 공원으로 놀러가자고 조릅니다. 선유도 공원이 '포켓몬 GO'의 성지라면서... 문제는 그날이 웅이와 함께 [컨택트]를 보기로 한 날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웅이에게 "선유도 공원에 가면 [컨택트]는 못 보는 것야!"라고 말했지만, 웅이는 "아침에 일찍 [컨택트]를 보고, 오후에 선유도 공원에 가면 되지."라며 버팁니다. 결국 저는 웅이의 말대로 일요일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웅이와 함께 극장에서 [컨택트]를 본 후, 비 내리는 선유도 공원에서 포켓몬 잡기에 나서야만 했습니다.

 

 

 

딸을 잃은 후, 시작과 끝이 의미가 없어진 루이스

 

만약 웅이가 '포켓몬 GO'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저 역시도 비내리는 선유도 공원에서 포켓몬을 잡겠다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공원을 배회하는 미친 짓은 결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희귀 포켓몬을 잡았다며 환하게 웃는 웅이의 미소가 너무 좋아서 저는 이 미친 짓을 주저하지 않고 하고 있네요. 이렇듯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은 내 모든 것, 아니 그 이상의 기쁨을 안겨주는 존재입니다. 그러한 자식에 대한 감정은 루이스(에이미 아담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컨택트]는 사랑하는 딸 한나를 잃은 루이스의 모습에서부터 영화를 시작합니다.

[컨택트]는 한나가 태어나는 순간에서부터 그녀가 애교덩어리 꼬마를 거쳐 반항적인 사춘기 소녀가 되더니, 결국 불치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모든 순간을 함께 한 루이스는 '이제 내게 시작과 끝은 의미가 없어졌다.'라고 말합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써 저는 그러한 루이스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후 무표정한 얼굴로 무미건조한 일상을 보내는 루이스의 모습은 자식을 잃은 후 죽지 못해 살아가는 부모의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외계에서 온 듯한 정체불명의 12개 셀이 지구를 찾아옵니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고 군 당국의 콜로넬(포레스트 휘태커)은 언어학자인 루이스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도저히 해독이 불가능한 외계 생명체 헵타포드의 언어를 루이스가 해독하기를 바란 것이죠. 그들은 왜 지구에 왔는지...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루이스는 물리학자인 이안(제레미 레너)과 함께 빠른 시일 내에 헵타포드의 목적을 밝혀내야만합니다. 헵타포드의 목적을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과 접촉해야 하는 상황.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노출될 수도 있고, 헵타포드의 공격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루이스는 상관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녀에게 시작과 끝은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SF식 바벨 탑 이야기 (이후 영화의 결말이 빠짐없이 소개됩니다.)

 

이후 [컨택트]는 헵타포드와 접촉하며 그들의 목적을 밝혀내려는 루이스의 모습을 긴장감있게 잡아냅니다. 특히 헵타포드의 모습이 이름처럼 일곱개의 다리를 가진 괴물(인간의 관점에서)처럼 표현되는 부분에서 루이스가 느꼈을 이질감에 의한 공포가 제게도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하지만 루이스와 헵타포드가 서로의 문자를 주고 받는 장면에서부터 헵타포드는 인간에 대한 공격 의지가 없음이 밝혀집니다. 오히려 헵타포드와 12개의 셀에 공포심을 느낀 인간의 광기가 문제가 됩니다.

여기에서 저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에 대한 일화를 떠올랐습니다. 높고 거대한 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 했던 인간의 오만한 행동에 분노한 신은 본래 하나였던 인간의 언어를 여러개로 분리하는 벌을 내렸고, 그로인해 바벨탑은 결국 혼돈 속에 막을 내렸다고 합니다. 언어가 달라 서로 소통을 할 수 없게된 인간들은 불신과 오해 속에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만약 지구촌의 모든 인류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면 지금과 같은 분쟁과 전쟁은 상당부분 사라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바벨탑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한 신화가 아닌 인간의 분쟁과 전쟁의 기원에 대한 통찰력있는 우화인 셈입니다.

[콘택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처음부터 헵타포드의 언어와 문자를 인간이 해독할 수만 있었다면 혼란 따위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헵타포드와 소통할 수 없었던 인간은 헵타포드의 목적을 의심하고 두려워합니다. 루이스가 해독한 헵타포드의 문자 중에서 '선물을 주다'가 '무기를 주다'로 잘못 해독되는 것처럼... 다른 언어에서 오는 불통은 불신과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헵타포드에 대한 공격 명령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3000년후 인간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 지구를 찾은 헵타포드

 

분명 헵타포드는 인간에 대한 공격 의지가 없습니다. 만약 공격 의지가 있었다면 인간과의 소통을 시도하기 전에 처음부터 공격을 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라는 질문은 풀리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헵타포드는 지구를 찾아온 것일까요? 헵타포드의 문자를 어느정도 해독할 수 있게된 루이스는 영화의 후반에 가서야 헵타포드에게 대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헵타포드는 3000년후 인간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 지구를 찾은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시간은 일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하지만 고차원적 세계에 사는 헵타포드에게 시간은 일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들의 시간은 현재와 미래 그리고 과거를 오고가는 것이죠. 그렇기에 그들은 3000년 후 자신의 행성에 크나큰 위기가 닥쳐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들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종족이 인간임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3000년 후에 인간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 지구를 찾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바로 지금일까요? 그에 대한 해답은 루이스에게 달려 있습니다. 루이스가 최고의 언어학자이기 때문에?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실 루이스는 미래를 보고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족의 언어와 문자를 해독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단 며칠만에 이룰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는 사이에 아주 작은 오해가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헵타포드의 목적을 오해하고 공격 명령을 내린 중국의 씽 장군처럼... 하지만 미래를 볼 수 있는 루이스는 오랜기간 연구의 결실인 자신의 헵타포드 문자에 대한 연구를 미리 볼 수 있습니다. 루이스가 빠른 시간 안에 헵타포드 문자를 해독하고, 씽 장군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 덕분입니다. 결국 헵타포드가 하필 바로 지금 지구를 찾은 이유는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 덕분에 헵타포드 문자를 빠르게 해독할 수 있는 루이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이미 알고 있다면 당신은 그 미래를 바꾸려 할 것인가?

 

[컨택트]의 내용이 복잡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과거와 미래, 현재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헵타포드의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 순으로 진행되지 않듯이, 루이스의 시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반전이 제시되는데 루이스의 딸인 한나의 죽음은 과거의 일이 아닌 미래의 일이라는 점입니다. 루이스는 이안과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 사이에서 한나가 태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루이스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한나는 젊은 나이에 불치의 병에 걸려 죽을 운명임을...

루이스는 이안에게 묻습니다. 만약 당신이 미래를 알고 있다면 그 미래를 바꾸겠냐고... 분명 한나의 탄생은 루이스에게 자식을 잃는 슬픔을 안겨줄 것입니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러한 슬픔을 받아들이려합니다. 왜냐하면 한나의 탄생과 한나의 성장을 바라보며 느끼게될 행복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끝이 슬픔과 아픔일지라도 루이스는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컨택트]를 보러 가기 전, 이 영화가 단순히 외계인의 지구 침공 영화는 아니라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조금 철학적이고, 어쩌면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각오도 미리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영화가 끝난 후 내게 찾아온 것은 짜릿한 전율입니다. 지적 쾌감에 의한 전율. 이 영화는 제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언어의 불통이 가져온 불신과 오해, 그리고 시간이 일방향으로만 흐른다는 편견에 대한 강한 한방, 마지막으로 루이스의 마지막 선택에 대한 공감과 감동까지... SF영화를 본 후 이렇게 짜릿한 지적 쾌감을 느낀 것은 2012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프로메테우스]를 본 후 아주 오랜만입니다. 그러고보니 드니 빌뇌브 감독은 리들리 스콧이 제작을 맡은 [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연출도 맡았습니다. 벌써부터 [블레이드 러너 2049]가 개봉하는 10월이 기다려집니다.

 

지금도 나는 웅이와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관계가 바벨탑처럼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