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성훈
주연 : 현빈, 유해진, 김주혁
개봉 : 2017년 1월 18일
관람 : 2017년 2월 4일
등급 : 15세 관람가
현빈은 아픈 구피도 일어나게 한다.
2016년 11월 말에 구피는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걷거나,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을 힘들어했습니다. 특히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 수술부위에 통증을 느낀다고 하네요. 그로인하여 구피는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가는 것을 한동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2016년 11월 20일에 본 [신비한 동물사전]이 구피가 극장에서 본 마지막 영화였으니까요.
대부분 하지정맥류 수술에 의한 후유증은 1개월 정도만 지나면 괜찮아진다고하던데, 구피는 해를 넘겨 2017년 1월이 되어서도 여전히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을 힘들어했습니다. 그래서 극장에서의 영화관람은 언제나 저 혼자, 혹은 웅이와 둘이서만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설날을 앞두고 구피가 "나도 [공조]는 보고 싶다."라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저는 "이젠 괜찮아?"라고 물었는데, 구피는 "아직은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 아프지만, 그래도 [공조]가 보고 싶어."라는 뜻밖의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신이 나서 [공조]를 보기 위한 계획에 착수했습니다. 개봉 첫째주에 [공조]를 보려고 했지만 갑작스러운 폭설과 강추위 때문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설연휴 첫날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보려고 했지만 갑자기 누나 부부의 방문으로 예매를 취소해야했고, 설연휴 마지막날에는 만원사례로 인해 [공조]를 예매할 수가 없어서 그냥 웅이와 둘이 [딥워터 호라이즌]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습니다. 이렇게 자꾸만 [공조]와 어긋나서 불안했는데, 다행히 [공조]가 흥행대박을 일으키며 개봉 3주차에도 많은 상영관을 확보한 덕분에 네번째 시도만에 드디어 구피, 웅이와 함께 [공조]를 보고 왔습니다.
남과 북의 '공조' 수사
사실 저는 [공조]를 그다지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구피가 [공조]를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면 굳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려고 노력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공조]가 흥행에서 같은 날 개봉한 [더 킹]을 꺾는 파란을 일으킨 이후에는 '궁금해서'라며 결국 [공조]를 극장에서 봤겠지만 역시나 큰 기대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공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스토리 라인이 너무 뻔하기 때문입니다.
[공조]는 북한에서 비밀리에 제작된 위조지폐 동판를 탈취하려는 차기성(김주혁)과 차기성으로 인하여 아내와 동료들을 잃게된 특수 정예부대 출신의 북한형사 림철령(현빈)의 이야기로 영화를 시작합니다. 차기성이 위조지폐 동판을 들고 남한에 숨어들자 북한은 서울에서의 남북 회담을 요청합니다. 남북 회담의 북한측 수행원으로 서울에 도착한 림철령. 그의 임무는 위조지폐 동판을 회수하고 차기성을 없애는 것. 북한측의 이례적인 '공조' 수사 요청에 혼란스러워진 국정원은 정직중인 형사 강진태(유해진)를 림철형의 파트너로 정합니다. 강진태의 임무는 최대한 림철형의 임무를 방해하고 감시하는 것. 그 사이 국정원에서 차기성을 확보하려한 것입니다.
이쯤되면 이후의 내용은 뻔합니다. 림철형과 강진태는 성격은 물론 서로의 임무가 다르니 처음부터 티격태격할 것입니다. 하지만 둘은 파트너로써 서로를 믿게 될 것이며 힘을 합쳐 차기성을 잡을 것입니다. 게다가 항간에는 [공조]가 월터 힐 감독의 1988년작 [레드 히트]의 표절이라는 소문까지 돌았습니다. 그러고보니 정말 두 영화의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이 비슷하긴 하더군요. 이래저래 [공조]는 스토리 라인만 놓고본다면 기대하기 어려운 영화임에는 분명합니다.
버디 무비의 재미에 충실하다.
하지만 아무리 뻔한 영화라고 할지라도 관객의 열광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공조]는 개봉 첫째주에 초호화 캐스팅으로 대한민국의 현시국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더 킹]에 밀려 2위에 그쳤지만, 이후 재미있다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개봉 2주차에는 결국 [더 킹]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고, 그 열풍은 설연휴가 지난후에도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과연 뻔해 보이는 스토리 라인을 지닌 [공조]가 관객을 사로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난 토요일 온가족이 함께 [공조]를 본 후 저는 이 영화의 요소 요소가 맡은 바 책임만큼은 다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선 [공조]는 전형적인 버디 무비의 재미를 충실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버디 무비는 두 남성 캐릭터가 콤비로 등장하는 영화를 총칭하는데 대부분의 버디 무비는 서로 성격이 다른 두 남성 캐릭터가 처음엔 티격태격하다가 결국엔 힘을 합친다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내일을 향해 쏴라], [스팅], [레인맨] 등이 있지만, [리쎌 웨폰]의 성공 이후에는 액션 코미디에서 주로 이용하는 장르입니다. [공조]가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레드 히트] 역시 버디 무비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버디 무비는 [투캅스]가 있습니다.
[공조]는 이러한 액션 코미디로써 버디 무비의 전개를 고스란히 따라하는데, 북한 형사 림철형은 무표정한 얼굴로 날렵한 액션을 자랑하고 있으며, 남한 형사 강진태는 몸보다는 입을 먼저 쓰면서 시종일관 코믹함으로 관객을 웃깁니다. 이렇게 달라도 너무 다른 림철형과 강진태는 거의 모든 버디 무비가 그러하듯이 영화의 후반에는 힘을 합쳐 차기성을 무찌릅니다.
액션 배우 현빈, 코믹 배우 유해진
[공조]는 처음부터 림철형과 강진태에게 주어진 임무가 다릅니다. 림철형은 액션, 강진태는 코믹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 다른 임무 만큼이나 배우들 역시 각각의 임무에 충실해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조]의 흥행은 캐스팅의 성공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현빈은 시종일관 잘생김을 풀풀 풍기며 고난도의 액션을 선보입니다. 마치 [아저씨]의 원빈을 연상하게 하는 그의 액션은 아픈 구피가 극장에서 보고 싶어할만큼 여성관객의 관심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합니다.
이렇게 현빈이 잘생김이 묻어나는 액션에 치중하는 동안 유해진은 관객 웃기기에 나섭니다. 최근 [극비수사], [베테랑], [그놈이다] 등의 영화로 코믹 배우로써의 이미지 벗기에 나선 유해진이지만 최근 흥행에 성공한 [럭키]에서 알 수 있듯이 결국 유해진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코미디입니다. 그리고 [공조]에서 유해진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무난하게 소화해냅니다.
버디 무비의 흥행공식을 고스란히 따르는 전개에 현빈과 유해진도 자신의 맡은 바 책임을 충실하게 소화하니 [공조]가 재미없을리가 없습니다. 저 역시도 이 영화가 어떻게 진행될지 눈에 훤히 보이면서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속이 후련함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으니까요. 아마도 요즘 정치적, 경제적으로 암울한 시기이기에 [공조]의 이러한 속 후련함이 더욱 관객에게 먹혀들어간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자신의 맡은바 책임만큼은 다하는 액션코미디
물론 [공조]에서도 의외의 영화적 재미는 존재합니다. 특히 저는 강진태의 처제인 박민영(임윤아)을 연기한 임윤아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인기 걸그룹 '소녀시대'의 멤버이기도한 그녀는 간간히 연기도 병행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제 입장에서는 그다지 눈에 띄는 연기력의 소유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공조]에서는 대학 졸업후 언니의 집에서 빌붙어 사는 백조 주제에 공주병에 걸려서 임철령에게 작업을 거는 박민영을 완벽하게 연기했습니다. 저는 유해진보다는 박민영이 나오는 장면에서 더 많이 웃었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 차기성을 연기한 김주혁도 의외이긴 했습니다. 최근 김주혁은 [나의 절친 악당], [비밀은 없다] 등에서 악역을 곧잘 연기하긴 했지만, 그래도 최근의 추세대로 차기성에게 약간의 동정심을 느낄만한 여지는 남겨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김주혁은 그런 것 없이 그저 밉상으로 똘똘 뭉친 악당 연기를 해냈습니다.
이렇게 버디 무비의 전형적인 재미요소와 약간의 의외성이 뭉쳐서 [공조]를 재미있게 즐길만한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깐깐하게 영화를 따지면서 보는 분이라면 [공조]에서 영화적 재미를 느낄 수 없을테지만, 분명한 것은 [공조]가 깐깐하게 따지면서 볼 영화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저 아무 생각없이 영화를 보며 2시간동안 스트레스를 날리는 것으로 만족하면 그 뿐인 영화, 그것이 [공조]입니다.
나는 세상의 영화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하면서 볼 수 있는 지적 쾌감을 주는 영화와 아무 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
[공조]는 아무 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이다.
그렇기에 맡은바 책임만 다했다면 재미있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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