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 사랑이 꼭 해피엔딩일 필요는 없다.

 

 

감독 : 홍지영

주연 : 김윤석, 변요한, 채서진, 김상호, 안세하

개봉 : 2016년 12월 14일

관람 : 2016년 12월 18일

등급 : 12세 관람가

 

 

웅이와 처음으로 함께 본 멜로 영화

 

주말은 직장인에게 있어서 황금과도 같은 시간입니다. 5일간의 스트레스를 주말동안 말끔히 씻어내며 새로운 한 주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가끔은 회사일을 위해서 황금같은 주말을 반납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지난 주말이 그랬습니다. 금요일 저녁에는 회사 송년회가 있었고, 토요일에는 자회사 이전이 있었으며, 일요일에는 이전한 자회사의 인터넷선 설치 공사가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주말을 몽땅 회사에 반납한 셈입니다.

그렇지않아도 몇 주 동안 계속되고 있는 감기몸살로 컨디션도 엉망진창인데 주말에 스트레스마저 풀 수가 없으니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주말 회사 근무를 마치고 짧은 시간에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것은 영화 밖에 없는데, 하지동맥류 수술을 받은 구피는 극장 좌석에 오래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웅이와 함께 볼만한 영화도 특별히 없어서 영화 관람 계획을 세울 수도 없었습니다.

물론 보고 싶은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중에서 제 눈에 확 띄인 것은 판타지 멜로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입니다. 당연히 구피와 함께 본다면 금상첨화인 영화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멜로 영화를 혼자 보는 것은 너무 청승맞아 싫었습니다. 그때 제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웅이와 함께 보러 가는 것입니다.

 

때마침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12세 관람가 영화입니다. 게다가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의 소재가 있었기 때문에 웅이도 흥미를 가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남녀간의 사랑을 이해못하는 웅이에게 멜로 영화를 보여준다는 것은 조금 꺼려지긴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웅이의 의견을 들어야 했습니다. 웅이에게 "너무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같이 봐줄래?"라고 물었더니 우리 효자 아들은 "아빠를 위해 같이 봐줄께요."라고 대답해줍니다.

이렇게해서 일요일 자회사의 인터넷선 공사가 끝나자마자 저는 집으로 향해 달려갔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웅이와 함께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아직 사랑을 잘 모르는 웅이와 함께 시간을 초월한 남녀간의 사랑이 듬뿍 담긴 멜로 영화를 보게 될줄이야... 웅이도 언젠가는 제게 여자친구를 소개시켜주겠죠? 그날을 위한 예행연습이라 생각하면 될듯합니다. 

하지만 영화 중간 중간에 저는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12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에서 뭔 키스씬이 그리도 찐하던지, 게다가 남녀간의 배드씬도 등장하고, 연아(채서진)의 옷 속으로 손을 집어 넣는 수현(변요한)의 장면도 나오는 등, 이 정도 수위면 15세 관람가 등급이 적당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 역시 웅이와의 멜로 영화 관람은 너무 일렀나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막으면 안되는 수현의 사연.

 

웅이 때문에 얼굴을 화끈거리며 영화를 보긴 했지만, 확실히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데이트용 영화로는 딱 안성맞춤인 영화였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영화의 주요 소재는 타임슬립입니다. 캄보디아 의료봉사 활동을 하던 수현(김윤석)는 캄보디아 노인에게 정체불명의 신비로운 10개의 알약을 받게 됩니다. 이 알약을 먹고 잠이 들면 20여분 동안 30년전의 시간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30년 전일까요? 그곳엔 연아가 있기 때문입니다.

폐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수현. 그의 곁에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스러운 딸 수아(박혜수)가 있고, 자신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주는 진정한 친구 태호(김상호)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남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기 전에 첫사랑 연아를 꼭 한번 만나고 싶다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소망입니다. 그런데 캄보디아의 노인에게 받은 알약이 이 불가능한 소망을 이루어준 것입니다.

30년전 젊은 수현은 여성으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 조련사인 연아와 서울, 부산을 오가며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연아를 사랑했고, 연아 역시 수현과의 결혼을 꿈꾸었지만 수현은 선뜻 연아와의 결혼을 결심하지 못합니다. 그에겐 아버지에 대한 불우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와중에 연아는 사고로 죽음을 당하고, 그것은 수현에게 있어서 평생의 상처가 되어버립니다.

 

이제 수현에게는 30년 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는 신비의 알약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현은 연아를 죽음으로부터 구하고, 30년 전에는 결코 이룰 수 없었던 연아와의 행복한 결혼을 완성할 수 있을까요? 만약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가 연아의 죽음을 막기 위한 수현의 눈물겨운 사투로 진행된다면 이 영화는 [시간이탈자] 혹은 [더 폰]과 비슷한 타임슬립 영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수현은 연아의 죽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아니 막으면 안됩니다.

연아를 너무나도 사랑했고, 연아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30년 동안이나 괴롭고 외로운 인생을 살아야했던 수현. 그에겐 30년 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젊은 시절의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제 그는 연아의 죽음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수현은 그러지 않습니다. 그저 멀리서 연아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왜냐하면 연아의 죽음을 막는다면 수아가 태어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어바웃 타임]과 비교하는 이유는 그러한 수현의 사연 때문일 것입니다.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로인하여 내 목숨보다 소중한 나의 딸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로인하여 수현은 연아를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그녀를 멀리서 지켜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의 서로 다른 선택 (이후 영화의 결말이 언급됩니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분명 [어바웃 타임]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와 [어바웃 타임]은 확연하게 다른 영화입니다. 왜냐하면 [어바웃 타임]의 팀(돔놀 글리슨)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수현에게는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가 서로 충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당연합니다. 현재의 나에게 수아는 소중한 딸이지만, 과거의 나에게 수아는 아무런 존재도 아닙니다.

"당신에게는 과거지만, 나에게는 미래예요. 그 미래는 내가 정하는 거고!"라는 30년 전의 수현의 울부짖음은 그렇기에 슬프게만 느껴졌습니다. 사랑하는 딸 수아를 위해 연아의 죽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수현의 결정을 과거의 수현은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에게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은 수아가 아닌 연아 뿐이기 때문이죠. 결국 현재의 수현과 과거의 수현은 거래를 합니다. 연아를 살리는 대신 연아와 헤어져야 한다는 조건이 달린...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바로 이러한 두명의 수현이 연아를 살리기 위한 거래를 하면서부터 예측불허의 스토리가 진행됩니다. 30년전 죽을 운명이었던 연아가 생명을 이어나가며 현재의 수현에게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현재의 수현과의 거래로 연아와 헤어져야 하는 과거의 수현.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그렇게 단칼에 잘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수현이 아무리 연아에게 모질게 대해도 수현과 연아의 사랑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고, 그럴수록 현재의 수현에게 수아의 존재는 지워집니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가 삐그덕거리기 시작한 것은 공교롭게도 두명의 수현이 연아를 살리기 위한 거래를 하면서 부터입니다. 그들의 거래가 성사되는 순간부터 정교하게 짜여진 듯한 영화의 전개도 어딘가 모를 허점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연아를 잊을 수 없었던 과거의 수현은 현재의 수현과의 약속을 깨고 연아에게로 달려가고, 과거 수현의 선택으로 인하여 현재의 수현에게 수아의 흔적이 지워집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현재의 수현이 과거에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연아의 운명이 바뀝니다. 분명 과거의 수현이 연아에게 달려가는 그 순간 수현의 현재가 바뀝니다. 그것은 정상입니다. 그런데 연아는 수현과 만나려는 그 순간 교통사고를 당하고 쓰러집니다. 그리고 지워졌던 수아의 흔적이 다시 되살아납니다. 만약 연아가 어차피 죽을 운명이었다면 짧은 순간이라도 수아의 흔적이 지워져서는 안됩니다. 만약 연아의 운명이 바뀌어서 수아의 흔적이 지워졌다가 다시 되살아난 것이라면 어떠한 형식으로든 현재의 수현의 간섭이 있었어야 했습니다.

중요한 순간의 불균형은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수현은 폐암으로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수현의 마지막 편지로 이 모든 사연을 알게된 태호의 간섭으로 수현의 운명도 바뀝니다. 해피엔딩을 위한 영화적 장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중요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마치 시간에 쫓기듯이 자세한 설명도 없이 얼렁뚱땅 처리되어 버립니다.

 

 

사랑이 꼭 해피엔딩일 필요는 없다.

 

어쩌면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 대한 아쉬움은 제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사랑보다는 새드엔딩으로 끝나는 사랑을 더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직까지 제게 있어서 최고의 사랑 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입니다. 너무나도 사랑했지만 죽음으로 인하여 이뤄질 수 없었던 이 어린 연인의 슬픈 사랑은 사춘기 시절을 관통해서 아직까지도 제게 깊은 여운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저는 수현과 연아의 사랑도 그렇게 깊은 여운으로 끝나길 바랐던 것입니다.

저 역시 과거로 갈 수만 있다면 꼭 이루고 싶은 사랑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마주친 이후 무려 3년 동안이나 제 짝사랑의 대상이었던 그녀. 시간만 되돌릴 수 있다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바라만 보지 않고 용기를 내어 사랑 고백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만나 제게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르쳐준 그녀 역시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녀에게 상처만 주지 않고 좀 더 잘 해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정작 제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해도 저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나간 사랑은 아쉽지만 지금 현재 구피와의 사랑을 포기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도 내 목숨보다 소중한 웅이를 놓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정을 알기에 연아와 결코 이뤄질 수 없었던 수현의 슬픈 사랑은 제게 아련한 여운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영화의 새드엔딩이 해피엔딩으로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물론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마지막 장면이 억지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연아와 헤어져야 했고, 태호와의 우정도 깨져버린 과거의 수현은 공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담배에 의존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미래에서온 태호의 메시지는 30년 후의 새로운 희망으로 받아들여졌고, 그러한 희망이 담배에 대한 의존을 낮췄을 것이며, 그 덕분에 폐암에 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태호의 작은 메시지가 수현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것이죠.

과거의 수현에게 현재의 수현은 충고합니다.  "꼭 해피엔딩이어야만 하나? 중요한 것은 이야기 그 자체인데..." 저도 그러한 수현의 한마디에 공감했습니다. 연아와의 사랑을 이룰 수는 없지만 그녀를 살렸고, 수아도 함께 있을 수 있으니 어쩌면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해피엔딩이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이 영화는 완벽한 해피엔딩을 바랬고, 결국 이뤄냈습니다.

기욤 뮈소의 원작 소설을 읽지는 않았지만 원작 소설의 결말 역시 영화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새드엔딩에 의한 슬픈 사랑의 여운은 요즘 시대에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것일지도... 비록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슬픈 여운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수현과 연아의 재회에 의한 해피엔딩으로 극장을 나서는 제게 행복감은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사랑이 꼭 해피엔딩일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해피엔딩으로 끝맺은 사랑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의 현재가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현재가 송두리째 바뀐다면

그것이 아무리 행복한 변화라도 나는 시간을 되돌리지 않겠다.

지금 나의 현재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만큼 소중하기에...

 

 

 

[어바웃 타임] - 이 세상의 모든 시간여행자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