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가스 제닝스
더빙 : 매튜 맥커너히, 리즈 위더스푼, 스칼렛 요한슨, 태런 에저튼, 토리 켈리, 세스 맥팔레인
개봉 : 2016년 12월 21일
관람 : 2016년 12월 25일
등급 : 전체관람가
2016년 크리스마스의 영화
매년 연말이 되면 알 수 없는 흥분감에 휩싸여 들뜬 기분으로 나날을 보냈었습니다. 하지만 2016년 연말은 예년과 달리 굉장히 차분한 느낌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아 일이 너무 바쁘기도 하고, 구피가 하지동맥류 수술을 받아 집안 분위기도 차분합니다. 게다가 나라 안팎으로 시끄러운 정세가 이어지고 있어서 더욱도 조용한 연말을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연말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가족은 크리스마스 이벤트 없이 조용히 집에서 보낼 계획이었습니다. 물론 웅이가 굉장히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케잌을 미리 예약하긴 했지만 그것 외에는 특별한 이벤트가 없었습니다. 그때 제 눈에 들어온 것이 홍대 경의선 책거리에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하는 <팀 버튼 언톨드 스토리 : 팀 버튼감독의 작품세계와 그 뒷이야기> 강연이었습니다.
1시간 남짓 앉아서 강연을 듣는 것이기에 하지동맥류 수술 후유증을 앓고 있는 구피에게도 큰 무리가 가지 않았으며, 저와 웅이가 좋아하는 팀 버튼 감독의 작품 세계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로 이뤄져있어서 지루하지도 않았습니다. 게다가 홍대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기에 모든 면에서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이렇게 저희 가족의 크리스마스 이브는 팀 버튼감독의 이야기로 소소하게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크리스마스. 전날 매운 족발과 옛날 후라이드 치킨, 그리고 아이스크림 케잌으로 광란(?)의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를 벌였던 저희 가족은 크리스마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극장 나들이 준비를 했습니다. 그날 제가 선택한 영화는 [씽]입니다. 크리스마스를 그냥 방구석에서 보낼 수는 없어서 웅이와 함께 볼만한 영화를 찾던 와중에 선택한 영화입니다. 결국 크리스마스 이브는 팀 버튼감독의 이야기로, 크리스마스는 [씽]과 함께 보내게 되었네요.
[씽]은 [슈퍼 배드], [미니언즈], [마이펫의 이중생활]로 요즘 할리우드에서 새로운 애니메이션의 강자로 떠오른 일루미네이션 스튜디오의 신작입니다. 일루미네이션의 앞선 영화들이 그러하듯이 [씽] 역시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져 있는 귀여운 애니메이션입니다. 하지만 [씽]이 일루미네이션의 다른 영화들과 다른 점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음악입니다. 그것도 추억의 올드팝, 최신 유행 팝송을 선보이며 어른 관객들도 즐길 수 있는 요소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조조 시간대에 [씽]을 관람했는데, 극장 안에는 데이트족 관객과 어린 자녀들을 동반한 가족 관객들로 양분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극장에 오기엔 너무 어린 관객들입니다. 영화 상영 도중 집에 가자며 징징거리고, 결국엔 울음을 터트려도 부모 관객은 [씽]이 재미있기 때문인지 아랑곳하지 않더군요. 물론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다른 관객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삼가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웅이가 극장에서 조용히 영화를 볼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렸는걸요. 최소한의 극장 예절은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슈퍼스타 K'를 어린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난다면...
비록 어린 아이들의 울음 소리때문에 [씽]을 관람하는데 조금 방해를 받긴 했지만, 다행히도 [씽]이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조용한 영화가 아닌, 흥겨운 음악이 함께 하는 시끄러운 영화이기 때문에 [씽]을 재미있게 관람하는데엔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습니다. [씽]은 망해가는 문 극장을 살리기 위해 극장 주인인 버스터(매튜 맥커너히)가 대국민 오디션을 선언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유쾌하게 그린 영화입니다.
대국민 오디션이라면 우리나라 관객에게도 익숙합니다. 대국민 오디션의 원조격인 '슈퍼스타 K'를 시작으로 '위대한 탄생', 'K팝 스타' 등 노래실력을 겨루는 대국민 오디션 프로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서 요즘은 춤, 힙합, 요리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대국민 오디션이 치뤄진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 역시 한때 '슈퍼스타 K'의 열렬 시청자였습니다. '슈퍼스타 K'는 다른 오디션 프로와는 달리 출연자들의 사연을 집중조명했었는데, 사연많은 이들이 선보이는 아름다운 노래는 언제나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최근 '슈퍼스타 K 2016'은 출연자들의 사연보다 노래에 집중했는데 그래서인지 저는 재미가 없었습니다.)
[씽]은 정확히 '슈퍼스타 K'의 어린이 애니메이션 버전입니다. 이 영화는 영화의 첫 부분부터 문 극장의 주인 버스터의 사연을 먼저 선보입니다. 아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세차장에서 어렵게 돈을 벌었던 아버지의 땀으로 이뤄진 문 극장. 그렇기에 버스터는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어도 문 극장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애틋한 사연은 출연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25남매를 둔 슈퍼맘 로지타(리즈 위더스푼)는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를 하느라 젊은 시절 가수의 꿈을 잊으며 살고 있었고, 남자친구와 함께 록 스타의 꿈을 키우는 애쉬(스칼렛 요한슨)는 남자친구의 노래가 인정받지 못해 속상하기만합니다. 자신과 같은 범죄자가 되기를 원하는 아버지 밑에서 남몰래 가수의 꿈을 키우는 조니(태런 에저튼), 노래를 좋아하지만 너무 소심해서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하는 미나(토리 켈리), 그리고 오만한 거리의 가수 마이크(세스 맥팔레인)까지... 그들은 각자의 사연을 안고 버스터의 오디션에 참가합니다.
[씽]은 오디션을 통한 캐릭터들의 성장담에 초점을 맞춥니다. [씽]의 영화적 재미는 바로 이러한 부분에서 비롯됩니다. 사실 '슈퍼스타 K'는 출연자들의 노래보다 사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많은 혹평을 받았던 프로입니다. 하지만 출연자들의 사연은 곧 캐릭터가 되고, 캐릭터가 입혀진 노래는 더 큰 감동을 안겨주는 법입니다.
[씽]이 노린 것은 바로 캐릭터가 입혀진 노래입니다. 버스터는 자신의 꿈이 문 극장의 주인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무대를 연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로지타는 엄마, 아내로써의 자신이 아닌, 노래와 춤을 즐기는 자신을 새롭게 발견합니다. 애쉬는 자신도 몰랐던 싱어송라이터로써의 재능을 깨닫고, 조니는 노래를 통해 아버지의 마음을 바꿔놓습니다. 미나는 자신감을 되찾게 되고, 반대로 마이크는 겸손함을 배우게 됩니다. [씽]은 이들 캐릭터가 성장하는 과정을 노래와 함께 관객에게 선사한 셈입니다.
역시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무대의 감동
[씽]은 음악영화입니다. 아무리 캐릭터가 훌륭하더라도 영화 속의 노래가 관객에게 감동을 안겨주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슈퍼스타 K'도 출연진들의 사연과 매력적인 캐릭터에 집중하다가 노래를 그다지 잘하지 못하는 출연진들이 최종 본선 무대에 오르며 구설수에 올랐었습니다. 결국 사연은 부수적인 것일뿐, 음악 프로에서 중요한 것은 노래입니다. 그리고 음악영화 역시 마찬가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씽]의 마지막 하이라이트 무대는 음악영화인 [씽]의 재미를 완벽하게 완성해냅니다.
[씽]의 마지막 공연은 로지타와 군터(닉 크롤)의 흥겨운 무대로 시작합니다. 로지타의 공연을 통해 엄마에게 열광하는 아기 돼지들과 로지타에게 찐한 키스를 하는 남편 돼지의 모습은 그녀가 더이상 엄마, 아내가 아닌 로지타 그녀 자신임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자작곡을 선보인 애쉬의 무대에서는 자신의 능력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표출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옆에 있었던 애인의 능력을 알아주지 못했던 애쉬 전남친의 후회가 속을 후련하게 만들었습니다.
조니의 노래는 아버지와의 화해를 불러 일으켰고, 마이크의 '마이 웨이' 무대는 탈옥한 조니의 아버지를 뒤쫓는 헬기의 바람과 함께 스펙타클한 무대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역시 뭐니뭐니해도 미나의 마지막 무대가 가장 큰 감동이었습니다. 이 무대를 통해 미나는 자신을 얻게 되고, 자기 자신이 최고라며 남들을 업신여기던 마이크는 미나의 노래에 감동을 받으며 겸손함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1시간 45분 동안 수 많은 캐릭터들의 사연과 갈등, 그리고 화해를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씽]은 오프닝에 짧게 각각 캐릭터들의 사연을 담아 내고, 버스터에게 우승상금 10만달러가 없다는 진실을 통해 갈등을 표출시키고, 마지막 무대를 통해 모든 캐릭터들의 화해를 담아냅니다. 그러한 이 영화의 구성이 어쩌면 다른 분들에겐 너무 대충대충 넘어가는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씽]의 감동적인 노래를 통해 이 모든것이 너그럽게 용서가 되고, 오히려 영화적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나서 웅이에게 네가 만약 심사위원이라면 누구에게 우승 트로피를 주겠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웅이는 심각하게 고민을 하더니 로지타를 선택하더군요. 아무래도 14살 웅이에겐 감미로운 음악보다 흥겨운 로지타의 무대가 가장 인상깊었나봅니다. 그리고 어쩌면 로지타의 포동포동한 볼과 뱃살에서 엄마인 구피를 느꼈을지도...
저는 모든 무대가 좋았지만 그래도 하나만 꼽으라면 미나의 노래를 선택하고 싶습니다. 사실 [씽]의 더빙은 전문 가수가 아닌 인기 배우들로 이뤄어졌고, 그들이 노래까지 직접 불렀습니다. 하지만 미나만은 미국의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의 가수, 토리 캘리가 더빙과 노래를 맡았습니다. 그만큼 가스 제닝스 감독도 미나의 노래가 [씽]의 하이라이트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가스 제닝스 감독의 선택만큼이나 미나의 노래는 감미로웠고, 뻔뻔하고 이기적이던 마이크의 마음까지 녹아내리게 만들 정도로 감동적이었습니다.
목적을 가로 막는 수단
[씽]은 애니메이션답게 제 눈을 즐겁게 했고, 음악영화답게 제 귀도 즐겁게 했습니다. 그리고 영화에 담겨져 있는 교훈도 영화를 보고나서 다시한번 음미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씽]을 본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웅이와 얼띤 토론을 벌인 주제는 목적보다 우선시되는 수단에 대해서입니다. 버스터를 예로 들면 그의 꿈은 모두가 감동하는 멋진 무대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한 무대를 위해 문 극장이 필요했고, 문 극장을 운영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순간부터 버스터의 목적은 멋진 무대가 아닌 돈이 되어 버립니다.
버스터의 오디션에 참가한 캐릭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목적은 노래입니다. 버스터의 오디션을 통해 노래에 대한 꿈을 펼치는 것이 그들의 진정한 목적입니다. 하지만 어느순간부터 거액의 우승상금이 우선시됩니다. 우승상금은 그저 목적을 이루고나서 뒤따라오는 포상일 뿐이지만, 우승상금이 없다면 노래를 부를 필요가 없다는 이상한 논리가 그들의 갈등을 부추기게 됩니다. 그러 의미에서 문 극장이 무너져내리는 장면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승삼금을 마련하기 위해 거짓된 화려한 무대로 문 극장을 꾸미는 버스터. 하지만 진심이 담겨지지 않은 거짓은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져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문 극장이 무너지는 장면은 버스터와 오디션 참가자들의 꿈이 무너지는 것으로 보여지지만 사실은 그들의 목적을 가로 막았던 수단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문 극장이 무너지며 버스터와 오디션 참가자들은 진정 그들이 원하는 무대를 완성하게 됩니다.
과연 제게는 목적을 가로 막고 있는 수단이 없을까요? 그럴리가요. 우리 모두 그러한 수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돈만해도 행복을 위한 수단이지만, 어느순간부터는 돈이 목적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돈에 대한 집착이 행복이라는 목적을 가로 막아 버리는 셈입니다. 귀여운 동물 캐릭터들과 감미롭고 흥겨운 노래로 [씽]을 가볍게 즐기던 저는 문 극장이 무너져내리는 순간 나와 내 가족의 행복이 혹시 돈이라는 수단에 가로 막혀 있지는 않은지 저는 진지하게 제 자신을 뒤돌아봤습니다.
물론 이러한 교훈이 특별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착한 영화들에게 관객에게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교훈이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저만해도 영화를 볼 당시에는 '그래 맞아. 정녕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지.'라고 깨닫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잊어버리고 돈을 벌기 위해 진짜 중요한 행복을 내팽겨치기도 하니까요.
그것이 바로 제가 어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갈구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웅이에게 진정으로 가르쳐주고 싶은 삶의 지혜이기도 합니다. [씽]은 비록 특별한 영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귀여운 동물 캐릭터들과 흥겹고 감미로운 음악, 그리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중요한 교훈을 담은 착한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흥겹고 감미로운 노래
게다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교훈까지...
[씽]은 이 모든 것을 무난하게 담아낸 2016년 최고의 애니메이션 중 하나이다.
'영화이야기 > 2016년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그 원 : 스타워즈 스토리] - 나는 포스와, 포스는 나와 함께 한다. (0) | 2017.01.03 |
---|---|
[라라랜드] - 꿈을 꾸는 사람들을 위한 아름답고 슬픈 재즈 뮤지컬 (0) | 2016.12.21 |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 사랑이 꼭 해피엔딩일 필요는 없다. (0) | 2016.12.20 |
[판도라] - 나는 잘 사는 세상보다 안전한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 (0) | 2016.12.14 |
[잭 리처 : 네버 고 백] - '잭 리처'는 톰 크루즈의 새로운 대표 캐릭터가 될 수 없었다. (0) | 2016.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