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6년 영화이야기

[라라랜드] - 꿈을 꾸는 사람들을 위한 아름답고 슬픈 재즈 뮤지컬

쭈니-1 2016. 12. 21. 17:53

 

 

감독 : 다미엔 차젤레

주연 : 라이언 고슬링, 엠마 스톤

개봉 : 2016년 12월 7일

관람 : 2016년 12월 19일

등급 : 12세 관람가

 

 

슬픈 사랑의 깊은 여운을 느끼고 싶다면...

 

일요일에 본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분명 재미있는 판타지 멜로 영화였지만 해피엔딩으로 인하여 제게 깊은 여운을 안겨주기엔 약간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제 아쉬움을 말끔하게 해소시킨 영화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라라랜드]입니다. [라라랜드]는 동화같이 아름다운 화면과 감미롭고 흥겨운 재즈 음악이 곁들어진 뮤지컬 영화입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나면 슬픈 사랑의 깊은 여운을 느낄 수 있는 영화입니다.

사실 제가 [라라랜드]를 선택한 것은 슬픈 사랑의 깊은 여운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월요일 외근이 예상보다 일찍 마무리되었기에 일찍 퇴근해서 주말에 쉬지 못한 것을 만회할까 고민했지만, 결국 제 선택은 유쾌한 영화를 보며 기분 전환을 한 후, 조금 늦게 집으로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주저없이 [라라랜드]를 선택했습니다. 사랑이 듬뿍 담긴 뮤지컬 영화는 언제나 유쾌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라라랜드]는 중반까지만해도 제 예상 그대로 유쾌한 뮤지컬 영화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영화 중반이 넘어가면서 점점 쓸쓸해지더니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미아(엠마 스톤)의 이뤄질 수 없었던 사랑 때문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영화가 끝나고나서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말입니다.

 

[라라랜드]는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과 배우 지망생 미아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할리우드에 머무르지만 꿈을 이루는 것은 어렵기만 했습니다. 재즈의 전통을 잇겠다는 세바스찬의 열정은 재즈보다는 돈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한테 짓밟히고, 배우가 되겠다는 미아의 꿈 역시 철저하게 무시당합니다. 두 사람은 꿈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좌절감만 느끼게 됩니다.

세바스찬과 미아가 꿈을 내려놓고 현실과 타협하려는 순간 두 사람은 우연히 마주치게 되고,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서로에게 큰 힘이 됩니다. [라라랜드]는 세바스찬과 미아의 사랑을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마지막엔 5년 후 겨울로 마무리짓는데, 계절에 따라 그들의 사랑도 시시각각 변합니다.

처음 시작인 겨울이 세바스찬과 미아에게 혹독한 시련의 시기라면, 봄에는 두 사람의 사랑이 서서히 꽃피기 시작하고, 여름에는 두 사람이 사랑이 완연하게 여뭅니다. 하지만 가을에서부터 두 사람의 사랑에 균열이 생기더니 결국 세바스찬과 미아는 이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5년 후 또다시 찾아온 겨울, 세바스찬과 미아는 이젠 남남이 되어 우연히 마주칩니다. 지나간 사랑을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며... 

 

 

사계절에 빗댄 그들의 사랑

 

[라라랜드]는 꽉 막힌 고속도로의 풍경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너무 답답하게 꽉 막혀서 도저히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고속도로. 마치 꽉 막힌 고속도로의 풍경은 세바스찬과 라라의 현실과도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여성이 차에서 내리더니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일제히 노래와 춤에 동참합니다. 그들은 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서 꿈과 희망을 노래합니다. 마치 처음부터 [라라랜드]는 뮤지컬 영화라는 것은 강조하는 듯이...

솔직히 이러한 [라라랜드]의 첫 장면은 조금 촌스러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물론 이 영화가 뮤지컬 영화이기는 하지만 마치 인도 영화에서처럼 뜬금없이 군무를 추는 것은 너무 고전적인 뮤지컬 기법입니다. 그러나 저는 [라라랜드]의 이러한 고전적인 시작이 맘에 들었습니다. 아쉽게도 첫 장면 이후 70년대 뮤지컬 영화를 보는 것같은 고전적인 군무 장면은 없지만, 그래도 제가 꿈을 꾸는 사람들을 위한 별들의 도시 '라라랜드'에 발을 딛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명장면이었습니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처음 만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두 사람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서 수다에 열중하는 미아와 그러한 미아에게 짜증을 내며 추월하는 세바스찬. 두 사람은 이렇게 스쳐 지나갑니다. 그러나 운명은 두 사람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기대했던 오디션에서 또다시 떨어진 미아는 우연히 세바스찬의 재즈 선율을 담은 피아노 소리를 듣게 됩니다. 비록 그로인하여 세바스찬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미아를 스쳐 지나가버리지만, 미아의 가슴 속에는 세바스찬의 아름다운 선율이 담겨집니다.

 

지루한 파티에서의 세 번째 만남. 그제서야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게 되고, 사랑에 빠져버립니다. 여전히 세바스찬과 미아는 꿈을 이루기 위해 힘겹게 현실과 맞서 싸워야 하지만 이제 두 사람은 혼자가 아니기에 서로에게 의지를 하며 꿈에 한걸음씩 천천히 다가가게 됩니다. 봄과 여름 챕터에 펼쳐지는 세바스찬과 미아의 사랑 이야기는 마치 재즈를 곁들인 아름다운 동화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이뤄지지 않는 세바스찬과 미아의 꿈은 서서히 그들을 지치게 하고, 결국 현실과 타협하게 만듭니다. 전통 재즈 클럽을 만들어 사람들이 마음껏 재즈를 연주할 수 있게 하겠다던 세바스찬의 꿈은 돈을 벌기 위한 키이스(존 레전드)의 퓨전 재즈 밴드에 들어가며 잊혀지고, 마지막 희망을 안고 자신의 전재산을 털어 1인극을 준비했던 미아는 관객의 혹평과 흥행 실패로 인하여 결국 배우로써의 꿈을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어쩌면 그들이 서로 사랑에 빠졌던 것은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꿈을 꾸는 사람들은 언제나 아름다운 법이니까요. 하지만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순간 그들의 아름다움은 퇴색합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실망하게 되죠. 그렇게 세바스찬과 미아는 서로에게 멀어집니다. 힘들었지만 꿈을 꿨던 아름다운 나날과 사랑을 잊은채 말입니다.

 

 

꿈을 꾸는 사람은 아름답다.

 

솔직히 저는 엠마 스톤이라는 배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스파이더맨'의 비극적인 연인 그웬 스테이시를 연기했을 때만해도 눈여겨 보긴 했지만, 그 이후 그녀의 연기는 저를 매료시키지는 못했습니다. [라라랜드]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미아가 마지막 오디션을 보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그녀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습니다. 너무나도 간절한 그녀의 노랫소리는 진정으로 아름다웠습니다.

라이언 고슬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를 스타덤에 올려 놓은 [노트북]을 아직 못본 저로써는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의 [드라이버]에서의 섬뜩한 모습이 제가 기억하는 라이언 고슬링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미아에게 재즈의 매력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라이언 고슬링의 매력이 느껴졌고,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미아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실려 보내는 장면에서는 그의 표정만으로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꿈을 꾸는 사람들은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라라랜드]가 아름다운 영화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 역시 꿈을 꾸는 사람들을 진솔하게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플래쉬]에서 재즈에 실린 광기만으로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내뿜는 최고의 음악 영화를 만들어냈던 다미엔 차젤레 감독은 [라라랜드]에서는 재즈의 열정으로 최고의 로맨스, 뮤지컬 영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사실 [라라랜드]의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만 놓고본다면 평범 그 자체입니다. 세바스찬과 미아가 서로 만나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는 과정이 별 특별함 없이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없었다면 그냥 재미있는 로맨스, 뮤지컬 영화로 [라라랜드]를 기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라라랜드]에게는 올해 본 멜로 영화 중에서 최고의 엔딩이라 할만한 장면이 있습니다. 사랑을 해봤고, 그 사랑을 놓쳐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만한...

세바스찬과 미아는 꿈을 이루었습니다. 세바스찬은 그가 그토록 원했던 전통 재즈 클럽의 사장이 되었고, 미아는 누구나 우러러보는 할리우드의 톱스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번 어긋난 그들의 사랑은 다시 되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5년 후 꿈을 이루고 나서 다시 우연히 마주칩니다. 그리고 세바스찬은 미아에게 마지막 연주를 들려줍니다. 결코 이뤄지지 않았던 미아와의 사랑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가득 담긴 연주를...

세바스찬의 연주 속에서 그들은 서로 사랑했고, 꿈을 이뤘고, 결혼했으며, 단란한 가정을 함께 만들어갔습니다. 만약 그때 그랬다면... 이라는 세바스찬의 후회가 가득 담겨진 마지막 연주는 흥겹고, 슬펐으며, 아련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세바스찬의 연주를 듣는 미아의 모습 역시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하지만 미아는 뒤돌아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이미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였으니까요.

 

 

그들의 마지막 표정이 가장 가슴 아팠다.

 

[라라랜드]의 가슴 뭉클한 여운은 특별한 이야기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기엔 [라라랜드]의 스토리 라인이 평범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영화의 여운은 다미엔 차젤레 감독이 관객에게 선사한 재즈와 라이언 고슬링, 엠마 스톤이 연기한 세바스찬과 미아의 쓸쓸한 표정에 있습니다. 아직도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아쉬워하지만, 서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두 사람. 그들의 표정이 그저 흥겨운 뮤지컬 영화를 기대했던 제 가슴을 사정없이 후벼판 것입니다.

다미엔 차젤레 감독은 [위플래쉬]와 [라라랜드]를 통해 재즈의 각기 다른 매력을 완벽하게 관객에게 선사한 셈입니다. 솔직히 저는 미아가 그랬던 것처럼 재즈의 매력을 아직 잘 모릅니다. 그런 제게 다미엔 차젤레 감독은 재즈는 열정적이고, 광적이며, 아름답고, 슬프다고 가르쳐줍니다. [위플래쉬]의 카리스마에 압도되고, [라라랜드]의 아련함에 눈물을 흘리고 나면 다미엔 차젤레 감독이 이야기한 재즈의 매력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 밖을 나서면서도 제 귓가엔 세바스찬의 마지막 피아노 선율이 생생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라라랜드]에 담겨진 꿈을 꾸는 사람들의 아름다움과 이룰 수 없었던 사랑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가 자꾸 제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아마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 이어 연이틀 멜로 영화를 봤기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멜로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는 이러한 먹먹함이 좋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라라랜드]는 올 겨울 제 감수성을 다시 한번 깨워준 최고의 멜로 영화였습니다.

 

이뤄지지 않은 옛 사랑은 언제나 아련하고 가슴 아프다.

그리고 그러한 먹먹함을 안겨준다는 것만으로도 옛 사랑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