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6년 아짧평

[올레] - 여행판타지의 나쁜 예

쭈니-1 2016. 11. 29. 14:19

 

 

감독 : 채두병

주연 : 신하균, 박희순, 오만석, 유다인, 한예원

개봉 : 2016년 8월 25일

관람 : 2016년 11월 25일

등급 : 15세 관람가

 

 

여행가도 안생겨요.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후회스러웠던 것은 20대를 찌질하게 보냈다는 점입니다. 당시 저는 꿈도 없었고, 돈도 없었으며, 직업도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냥 허송세월을 보낸 것이죠. 지금이 가장 찬란한 나이인줄도 모르고 빨리 암흑의 시기가 지나기만을 바랬습니다. 그 중에서 연애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연애를 했던 것이 20대 후반이었고, 그 사랑도 1년만에 너무 아픈 상처만 주고 끝나버렸습니다. 결국 제 인생의 전성기는 구피를 만나 결혼한 30대에서야 비로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선택하고는 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탈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20대 시절, 저와 친구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남자들끼리 여행을 가곤 했습니다. 여행지에서 달콤한 일탈과 내 반쪽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진채 말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똑같았습니다. 기껏 여행을 와서는 그냥 술과 여자 이야기로 날밤을 세우기 일쑤였습니다. 용기가 없어서 여자들한테 대쉬도 못했고, 여행지에서의 달콤한 일탈과 내 반쪽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소주 몇 병에 송두리째 날려버렸습니다. 그리고는 항상 다짐을 합니다. 다시는 너희들과 여행을 안간다고... 어떻게든 여자친구를 만들어서 다음 여행은 그녀와 함께 가겠다고... 하지만 그 꿈이 이뤄질리가 없죠. 가장 찬란한 20대를 찌질하게 보낸 저희들에게는...

 

찌질한 남자들은 여행을 가서도 그 찌질함을 벗어던지지 못한다.

 

 

[올레]는 여행판타지이다.

 

[올레]는 20대의 저처럼 낯선 곳으로 여행을 뭔가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입니다. 중필(신하균)은 잘나가는 대기업 과장이지만, 미혼이라는 이유로 정리해고 대상자가 됩니다. 수탁은 13년 동안 고시공부에 매달리고 있지만 더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방송국 아나운서 은동(오만석)은 암 진단을 받습니다. 30대 후반의 친구들인 그들은 대학 선배의 부친상 소식을 듣게 되고 제주도에 모입니다. 

물론 그들의 목적은 상가집에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의 위기를 맞이한 그들에겐 제주도에서 기대하는 각기 다른 무언가가 있습니다. 중필은 이제 선배의 아내가 된 첫사랑 선미(조은숙)와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고, 은동은 암 치료를 받으러 해외로 떠나기전 친구들과의 추억을 쌓고 싶어하며, 수탁은 고시공부로 보냈던 세월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제주도에서 여자들과 실컷 섹스를 하고 싶어합니다. 결국 그들은 상가집은 뒷전으로 밀어두고 제주도에서 노는데 집중합니다.

[올레]는 기본적으로 여행판타지입니다. 그렇기에 현실에서는 일어날리가 없는 로맨틱한 사건들을 나열합니다. 필리핀으로 여행을 온 사람들의 로맨틱한 사건을 소재로한 2008년작 [로맨틱 아일랜드], 세 여성이 일본으로 여행을 가서 겪게되는 2013년작 [일탈여행 : 프라이빗 아일랜드]과 비슷한 구조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올레]의 관건은 '중필, 수탁, 은동이 제주도에서 얼마나 로맨틱한 소동을 겪게되는 것인가?' 입니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면 낯선 사람과 뜻밖의 로맨스를 펼칠 수 있을까?

꿈깨라! 그건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수탁의 짜증스러움이 이 영화를 망쳤다.

 

일단 냉정하게 평가해서 [올레]는 잘 만든 영화는 아닙니다. 우선 이 영화는 캐릭터 설정 자체가 너무 허술합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수탁인데, 13년동안 고시공부를 하다가 희망이 안보이자 자살을 결심했던 그가 제주도에서 마지막 희망을 찾는다는 설정까지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그의 행동은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쳐보입니다. 관객인 제가 봐도 수탁의 행동이 짜증날 정도입니다. 그러한 수탁의 짜증나는 행동 때문에 저는 [올레]를 보는 것 자체가 짜증스러웠습니다.

은동은 너무 존재감이 없습니다. 도대체 그가 이 영화에 왜 필요한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아마도 세 친구중 유일하게 결혼을 한 유부남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일탈을 벌어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럴려면 차라리 은동의 캐릭터를 없애버리던가, 아니면 은동 역시 미혼으로 설정해서 중필처럼 제주도에서 뜻밖의 로맨스를 겪게 되는 것으로 설정하는 편이 훨씬 나아보입니다.

그나마 이 영화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캐릭터는 중필입니다. 명예퇴직 1순위에 몰린 중년 남자의 막막함과 첫사랑을 잊지 못해 새로운 사랑을 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20대의 찌질했던 제 모습을 연상시켰습니다. [올레]는 중필의 대학시절 첫사랑 이야기를 회상씬으로 영화 중간중간에 삽입시킴으로써 수탁 때문에 너무 막나가는 영화의 중심을 잡으려 애씁니다. 하지만 중필 혼자만으로는 벅차보입니다.

 

짜증스러운 수탁은 술만 취하면 여자 나오는 노래방에 데려가달라고 조르는

아직 미혼인 짜증스러운 내 친구를 연상시킨다.

 

 

여행판타지는 이래선 안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올레]는 여행판타지입니다.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리가 없는 여행지에서 생긴 일을 영화적으로 풀어나감으로써 관객에게 대리만족을 안겨줘야 하는 영화인 셈입니다. 하지만 [올레]는 대리만족을 안겨주지 못합니다. 수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짜증나게 행동하고, 은동은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희미합니다. 그나마 중필과 나래(유다인)의 뜻밖의 로맨스가 여행판타지에 걸맞지만, 그렇다고해서 두 사람의 로맨스가 딱히 해피엔딩인 것도 아닙니다. 뭔가 어정쩡합니다.

영화 속의 에피소드들도 상당히 유치했는데, 주필, 수탁, 은동이 기타 솜씨를 뽐내며 여대생들을 꼬시는데 성공하지만, 그녀들은 기독교 동호회에서 순결서약을 하러 온 여대생이더라는 설정은 너무 생뚱맞습니다. 중필에게 잘 보이기 위한 나래의 '패왕별희'급 화장술도 어처구니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개그 프로의 단막극도 아니고...

결국 세 중년 친구들은 제주도에서 이상한 소동만 실컷 벌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상가집에 들렀다가 서울로 상경합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수탁은 역시나 아무런 희망도 없이 제주도에 남겼다고 선언하고, 중필은 명예퇴직을 당했으며, 은동은 암 치료를 위해 한국을 떠나야합니다. 20대 시절 친구들과 여자들을 꼬시겠다며 호기롭게 떠난 여행에서 술만 실컷 마시고 '다시는 너희들과 여행 안간다.'며 허무하게 집으로 돌아온 느낌. [올레]를 보고나서 들었던 첫 느낌이 바로 그러한 허무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