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장 마크 발레
주연 : 제이크 질렌할, 나오미 왓츠, 크리스 큐퍼
개봉 : 2016년 7월 13일
관람 : 2016년 11월 3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아내가 죽었는데 슬프지 않다.
만약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죽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 것 같은가요? 어쩌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펑펑 울음을 터트릴지도 모르고, 어쩌면 너무 커다란 충격으로 실신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저 멍한 상태가 되어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슬픔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공한 투자 분석가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습니다. 교통사고 당시 차에 함께 타고 있었지만 데이비스는 상처하나 없이 멀쩡했지만 아내는 죽음을 맞이한 것이죠. 장인인 필(크리스 쿠퍼)이 아내의 죽음을 알렸을때 데이비스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울거나, 실신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아내의 장례식날에도 데이비스는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병원 자판기 고객센터에 편지를 쓰는 일입니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내의 장례식 다음날 멀쩡한 모습으로 회사에 출근한 그를 보고 직장 동료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리고 데이비스도 스스로 자신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나보다고 자책합니다.
아내가 죽었다. 그런데 슬프게도 괴롭거나 속상하지도 않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말 데이비스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필은 데이비스에게 비난을 퍼붓습니다. 왜 하필 내 딸이냐고... 네가 죽었어야 했다고... 왜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딸이 죽었는데 사위인 데이비스는 어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회사에 나와 앉아 있으니 필의 입장에서는 데이비스가 원망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데이비스가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제가 보기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내의 죽음 이후 마치 시계처럼 항상 일정한 시간에 같은 일을 해오던 데이비스의 하루가 달라져버립니다. 그 첫번째 징후는 병원 자판기 고객센터 직원인 캐런(나오미 왓츠)에게 집착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녀에게 어떤 흑심이 있기 때문에? 아닙니다. 단지 그녀가 데이비스의 말을 잘 들어줬기 때문입니다. 지금 데이비스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대상이 필요했고 그것이 엉뚱하게도 캐런이었던 것입니다.
두번째 징후는 스스로 손재주가 없다던 데이비스가 무엇인가를 분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엔 망가진 냉장고를 분해하고, 회사 화장실 문과 컴퓨터를 분해하더니 끝내 아내와의 추억이 남아 있는 집을 분해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말이 좋아 분해이자, 데이비드의 행동은 파괴에 가깝습니다. 영화의 제목인 '데몰리션'처럼 말입니다.
장인어른이 말씀하시길...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게 뭔지 알아내야 돼. 자넬 강하게 할 그것"
데이비스가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
캐런과의 만남... 그것은 데이비스 문제의 분질이 아닙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은 아내가 죽은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다른 여자를 만나나며 그를 비난하지만 철저하게 혼자일 수 밖에 없었던 데이비스에게는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를 할 상대가 필요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문제의 본질은 파괴입니다.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중요한게 뭔지 알아내야 한다는 필의 충고 그대로 데이비스는 자신이 파괴할 수 있을 모든 것들을 파괴하기 시작합니다. 무엇인가를 파괴할때의 카타르시스는 데이비스가 마음 속 꽁꽁 숨겨 놓았던 슬픔의 감정을 밖으로 분출하는 계기가 되고, 필의 충고대로 집마저 파괴하고나서야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데이비스에게 진정 중요했던 것은 자신이 아내를 사랑했다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은 그것은 애써 외면했던 것이죠. '바쁜척 그만하고 나좀 고쳐줘요.'라는 아내의 메모는 처음엔 고장난 냉장고를 지칭하다가, 나중엔 자신에게 무심한 남편을 향한 아내의 슬픈 외침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파괴를 통해 자기 스스로를 고치게 되는 데이비스의 깨달음이 됩니다. 결국 데이비스는 망가져 있었고, 모든 것을 분해한 후에야 진정 중요한 것이 뭔지 알아냄으로써 스스로를 치유합니다.
남자가 아내를 잃으면 홀아비이고, 아이가 부모를 잃으면 고아이지만,
부모가 자식을 잃으면? 그건 단어가 없네. 있어서는 안될 일이니까.
데이비스의 변화가 캐런에게 영향을 끼친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아내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슬픔을 극복하는 데이비스의 과정은 캐런에게도 영향을 끼친다는 점입니다. 그저 자신을 과분하게 사랑해준다는 이유로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는 캐런. 성정체성 때문에 괴로워하는 캐런의 사춘기 아들인 크리스(유다 르위스)는 캐런에게 반항을 하고, 데이비스에게 거부감을 표현하지만 나중에는 데이비스를 아버지처럼 따르고 의지합니다.
캐런이 마음의 문을 열고 데이비스의 이야기를 들어준 것처럼, 데이비스는 아버지가 없는 크리스에게 어버지가 되어 그의 걱정을 들어주고 진심어린 충고를 합니다. 어쩌면 바로 이것이 사람과 사람간의 긍정적인 관계가 아닐까요? 우린 누구에게나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인간이 집단생활을 하는 이유는 서로가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개인주의와 경쟁사회가 되면서 남의 부족함은 채워주기 위한 배려가 아닌, 짓밟기 위한 기회가 되어버립니다. 현대인의 외로움은 바로 그러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요?
필은 비록 데이비스와 캐런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하지만, 저는 데이비스의 캐런과 크리스의 관계야말로 데이비스가 슬픔을 이겨내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데이비스가 캐런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는 평생 슬픔을 가슴 속에 숨겨둔채 거짓된 삶을 살았을테니까요.
같이 잘 순 없어요. 위험할 수 있으니까.
그냥 함께 잠 들어요. 함께면서 따로...
묘한 슬픔과 예상하지 못한 힐링이 느껴지는 영화
사실 제가 [데몰리션]을 보기 시작한 것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과 [와일드]를 연출했던 장 마크 발레 감독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 그대로 [데몰리션]을 제게 묘한 슬픔과 예상하지 못한 힐링을 안겨줬습니다. 아내가 죽은 이후에도 슬픔은 커녕 오히려 엉뚱한 행동을 하는 데이비스를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가 자신의 것들을 파괴하면서 점차 중요한 것을 깨닫는 과정에서는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별 의미없었던 '바쁜척 그만하고 나좀 고쳐줘요'라는 메모가 영화의 후반부에는 제 마음을 울컥하게 했습니다. 물이 새는 냉장고처럼, 자신에게 무심한 남편에 대한 애달픈 외침. 왜 데이비스는 미처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까요? 그제서야 데이비스는 아내를 향한 그리움으로 눈물을 쏟아냅니다.
결국 데이비스는 자신의 방식으로 아내를 추모합니다. 모두가 롤러코스터를 타느라 이제는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망가진 회전목마처럼... 더 빠르고 더 자극적인 삶에 집착하느라 무심하게 외면했던 세상의 그 모든 소중한 것들을 추모하며...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데이비스와 필이 함께 웃는 장면은 그렇기에 제게 특별함으로 기억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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