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6년 아짧평

[트루스] - 진실은 어떻게 감춰지고 왜곡되는가?

쭈니-1 2016. 11. 10. 11:41

 

 

감독 : 제임스 밴더빌트

주연 : 케이트 블란쳇, 로버트 레드포드, 토퍼 그레이스, 데니스 퀘이드

개봉 : 2016년 8월 24일

관람 : 2016년 11월 9일

등급 : 15세 관람가

 

 

영화를 보는 내내 소름돋았다.

 

제가 [트루스]를 선택한 이유는 아주 단순했습니다. 주말마다 회사 행사때문에 쉬지 못했던 저는 하루간의 휴가가 필요했고, 지난 수요일이 제가 벼르고 벼르던 하루간의 꿀맛같은 휴가였습니다. 사실 이렇게 평일 연차 휴가를 내면 당장 극장으로 달려가 영화를 보곤 했지만, 이번 휴가에 저는 극장보다는 거실 TV를 선택했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극장에 가는 것조차 귀찮았고, 딱히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할일없이 거실에서 뒹굴거이며 볼만한 영화를 고르던 저는 케이트 블란쳇, 로버트 레드포드라는 걸출한 캐스팅이 돋보이는 영화 [트루스]를 선택했습니다. 이 영화는 2004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 기간중 그의 군복무 비리 의혹을 파헤친 CBS '60분' 팀의 활약과 좌절을 그린 실화 영화로,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스포트라이트]를 연상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스포트라이트]는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 보스턴 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팀의 활약을 담은 실화 영화입니다.

이렇게 저는 [트루스]를 꿀맛같은 휴일의 영화의 선택한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특별히 보고 싶은 영화가 없어서 별 기대없이 [트루스]를 선택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 영화는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을 연상하게 만드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재선을 노리는 현직 대통령 조지 W. 부시의 군복무 비리를 밝혀내고야 말겠어. 

 

 

'60분' 팀은 결국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패배하고 만다.

 

CBS 뉴스 프로그램 '60분'의 베테랑 프로듀서 메리 메이프스(케이트 블란쳇)는 부시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이 이어지던 중 부시의 군복무 비리 의혹을 뒷받침할 증거를 입수하게 됩니다. 사회적인 파장이 클 수 밖에 없는 현직 대통령의 비리 의혹을 밝혀내기 위해 메리를 중심으로 '60분' 팀은 증거 수집에 나서고 결국 추적 끝에 심층 보도 방송을 내보냅니다.

메리의 예상대로 부시의 군복무 비리 의혹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킵니다. 하지만 이내 증거 조작과 오보라는 주장이 제기되며 '60분'팀을 궁지에 몰아넣습니다. '60분' 팀은 증거를 보완해서 후속 방송을 내보내지만, '60분' 팀에 유리한 증언을 해주던 이들이 갑자기 발을 빼기 시작하고, 부시의 군복무 비리 의혹 증거를 메리에게 전해준 제보자의 거짓말을 했음이 밝혀지면서 메리는 더욱 궁지에 몰립니다.

결국 CBS는 사과 방송을 오보임을 인정하며 사과방송을 해야했고, 메리를 비롯한 '60분' 팀은 CBS를 떠나야 했으며, 조지 W. 부시는 민주당의 존 케리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합니다. [스포트라이트]와는 달리 [트루스]의 '60분' 팀은 결국 진실을 파헤치지 못하고 미국의 최고 권력자에게 무릎을 꿇고 만 것입니다.

 

대통령의 군복무 의혹을 방송한 것에 대한 댓가는 너무 가혹했다.

 

 

그들이 진실을 감추고 왜곡하는 방법

 

[트루스]에서 제가 주목했던 것은 부시의 재선을 바라는 보수층이 부시의 군복무 비리 의혹을 감추고 왜곡하는 방법입니다. 그들은 우선 '60분' 팀이 제시한 부시의 군복무 비리 의혹의 핵심 증거인 문서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문서가 원본이 아닌 복사본이라는 것을 약점잡아 문서가 MS워드로 만들어진 가짜 문서라는 주장을 펼친 것입니다.

메리는 이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70년대 당시 타자기로도 똑같은 양식의 문서를 만들 수 있음을 밝혀내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지레 겁을 먹은 증인들은 재선을 노리는 현직 대통령에 맞서는 것을 두려워하며 발을 빼기 시작하고, 언론은 메리의 정치적 성향이 좌파임을 내세워 여론을 부시의 편으로 만들어놓습니다. 그리고 결국 제보자의 약점을 파고들어서 '60분' 팀이 제시한 의혹을 거짓말로 만들어 놓습니다.

참 이상하지 않나요? '60분' 팀이 의혹을 제시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의혹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밝히기 위해 부시의 군복무 시절을 파헤치는 것이 마땅한 후속조치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의혹을 제기당한 부시의 군복무 시절을 파헤치지 않고, 오히려 의혹을 제시한 '60분' 팀을 파헤침으로써 그들을 굴복시킵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는 지금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그들은 의혹을 제시했을 뿐이다.

그것이 죄가 된다면 언론이 과연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얼마전,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에 대한 의혹이 봇물처럼 터져나오며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혹을 제시한 것은 손석희가 주도하는 JTBC의 '뉴스룸' 팀입니다. '뉴스룸' 팀이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의혹을 제기한 가장 큰 증거는 비선 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의 태블릿 PC입니다. 최순실의 태블릿 PC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에서부터 온갖 국가 기밀이 담겨져 있었고, 그것이 모든 의혹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뉴스룸' 팀이 의혹을 제시하자 보수층에서는 태블릿 PC를 어떻게 손에 넣었냐? 개인의 물건을 불법적으로 손에 넣은 것은 아니냐? 그것이 진짜 최순실의 것이 맞냐? 등 [트루스]의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의혹을 제시한 '뉴스룸' 팀을 흠집내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최순실은 태블릿 PC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끝까지 주장하고 있는 중입니다.

중요한 것은 제시된 의혹이 진짜인지 아닌지 밝혀내는 것이지, 증거가 진짜인지 아닌지 밝혀내는 것이 아닙니다. 언론은 의혹을 제시하고, 수사기관은 그 의혹이 진짜인지 아닌지 밝혀내는 것이 그들의 역할입니다. 의혹을 제시한 언론에 꼬투리를 잡아 죄를 뒤집어 씌운다면 언론은 더이상 언론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권력을 위한 앵무새가 될 뿐입니다. 다행히 대한민국의 국민은 2004년 당시 미국의 국민처럼 바보가 아니었기에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의혹은 지금 수사중이며 조금씩 진실을 밝혀지고 있는 중입니다.

 

바보같은 국민때문에 패배를 인정해야하는 댄 래더 앵커의 표정은 슬펐다.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에게 많은 생각은 안겨준 영화

 

공교롭게도 [트루스]를 보고나서 TV 뉴스를 켜니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확정되었다는 긴급 속보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사실 어이가 없었습니다. 막말에 온갖 추문 의혹을 일으켰던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다니... 정치 선진국이라는 미국도 이제보니 별것없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뭐 우리나라도 TV 토론회에서 자신의 정책을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했던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뽑았으니 '도긴개긴'이기는 하지만...

[트루스]를 보고나서 영화 한편을 더 볼 생각이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지만 오히려 역풍을 맞고 자리에서 쓸쓸히 물러나야 했던 메리와 댄 래더(로버트 레드포드)의 쓰쓸했던 뒷모습에 여운이 너무 짙게 남았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조지 W. 부시의 군복무 의혹이 진실이었는지, 아닌지 엔딩 자막이라도 통해 알고 싶었지만, 결국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현재 대한민국도 현직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의혹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고 있는 중입니다.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의혹에 대한 진실을 보며 2016년 당시 대한민국 국민들은 현명했고 용감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단 한치의 의혹도 없이 모든 진실이 밝혀지기를 원하고 또 원합니다.